소설리스트

던전공략 LIVE-93화 (94/185)

093.

"망할……."

"놓친 거야?"

허탈한 목소리들이 사방에서 들려왔다.

우르르 몰려갔던 헌터들은 요정이 사라진 방향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아직까지도 몇몇은 요정을 잡겠다는 듯 달려가고 있었지만, 대부분 상황을 받아들인 것 같았다.

이어서 그 분노한 헌터들의 시선이 향한 건 바로 상현이었다.

"크윽… 저 개자식이!"

"이게 내가 몇 번째 보는 시험인데!"

빠드드득! 뿌드득!

이를 거칠대 갈아대는 헌터들.

자신들이 점수를 놓친 게 상현 탓이라고 생각한 건지, 주먹을 꽉 말아 쥔 채 당장이라도 덤벼들 기세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상현은 여유로웠다.

'어차피 시간은 많으니까. 아웃돼도 상관은 없는데…….'

다시 어떤 파티가 쿠키를 획득한다고 해도, 모두가 시스템을 알아 버린 지금 시점에선 점수를 얻기 힘들 터였다.

경쟁 파티들이 손가락만 빨고 있진 않을 테니까.

즉 상현이 아웃된 채 20분을 허비한다고 해도, 그 안에 결판이 날리는 없단 뜻이었다.

"비웃어?"

"후회할 거다, 개자식아!"

상현이 살기어린 눈빛을 받아내며 어깨를 으쓱하자, 헌터들의 태도가 더욱 흉흉해졌다.

마침 선두의 헌터가 이를 드러내며 한 발짝 나온 순간.

저벅. 저벅.

곁에 서 있던 이주완이 걸어 나오더니 상현의 앞을 가리고 섰다.

"…주완 씨?"

상현이 갸웃하며 불러보았으나, 이주완은 대답 대신 앞의 헌터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비웃듯 입꼬리를 올린 채 말했다.

"당신들 능력이 부족한 걸, 왜 저희 길잡이 탓을 하시죠? 투정부릴 여유 있으면 차라리 다음 점수 얻을 생각이나 하는 게 어때요?"

"…뭐라고?"

"그럴 머리가 안 돼서 몇 년째 같은 시험보시는 건가? 아, 그런가보네요. 죄송해요. 멍청한 건 죄가 아니라고 했는데."

'이런 사람이었어?'

상현이 흥미진진하게 그를 바라보았다.

항상 능글맞게 웃으며 장난만 걸어오던 사람인줄 알았는데, 지금은 한 마디 한 마디에 가시가 잔뜩 돋아난 채였다.

"이 새끼가……."

"뭐, 맘에 안 드시면."

바로 발끈하는 헌터들에게 이주완이 목소리를 깔았다.

"덤벼 보시던가요. 무조건 한 명은… 데려갈 테니까. 아, 여러분 실력이라면 그 이상일 수도 있겠네요."

척. 척.

이주완은 몸을 낮게 숙이고, 오른손은 앵거 바딜의 손잡이에, 그리고 왼손은 앞으로 살짝 내밀었다.

그 상태에서, 도발하듯 검지를 세운 다음 까딱거렸다.

"자신 있으면, 들어오시죠."

별 거 아니라는 듯 평이한 어조였지만 그의 분위기는 마치 잘 벼려진 칼날 같았다.

상현은 카메라로 그 모습을 찍어가며 기대감이 차오르는 걸 느꼈다.

[영화찍네ㅋㅋㅋㅋㅋ]

[오빠ㅏ!!! 사랑한다고 전해주세요!!!]

[와ㅅㅂ 개멋잇다ㅋㅋㅋㅋ]

주르륵 올라오는 시청자들의 채팅.

하지만 상현은 분위기를 깰까 싶어, 특별히 멘트는 치지 않고 상황을 지켜보았다.

결국.

빠드득!

헌터들은 얼굴을 와락 구긴 채 뒤로 물러났다.

이유진과의 전투 장면을 본 그들로서는 그게 최선이었다.

이주완의 말이 허언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분명 가장 처음 덤벼드는 몇 명은 아웃시키고도 남을 실력이었고, 괜히 나섰다가 아웃되면 합격 가능성만 낮추는 꼴이었다.

그리고 그때.

띠링!

익숙한 효과음과 함께 허공에 큼직한 글자로 메시지가 한 줄 떠올랐다.

- 전설의 쿠키 확보 완료! 해당 파티에게 점수가 부여됩니다!

요정이 성공적으로 마을에 도착한 모양이었다.

그에 고민하던 헌터들이 물러나기로 마음을 정한 듯, 짜증스러운 목소리를 내뱉었다.

"일단…이동해!"

"이럴 시간 없어. 쿠키부터 확보하자고."

그에 이주완이 픽 웃으며 상현을 향해 고개를 돌린 순간.

띠링!

효과음과 함께, 새로운 메시지가 떠올랐다.

- 새로운 과제: 공주를 빼앗긴 쿠키들! 녀석들의 분노를 피해, 시험이 끝날 때까지 생존하세요!

'…뭐지?'

상현이 눈썹을 밀어 올렸다.

시험 시작 전, 시험관들이 얘기한 것과는 다른 내용이었다.

웅성웅성!

헌터들도 혼란스런 기색을 풍기며 무어라 떠들어대고 있었다.

"공주님! 공주님!"

"공주님을 내놔! 공주님!"

그리고 그때 아까 이유진이 갈라놓은 크레바스로부터 좀 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마릿수의 쿠키들이 우르르 기어 나왔다.

"이게 뭐야! 시험관님! 뭡니까, 이게!"

"도, 도망쳐!"

마구 비명을 토해내며 몸을 날리는 헌터들.

갑작스런 상황에 사람들은 거의 네발로 뛰다시피 하고 있었다.

하지만 상현은 오히려 태연하게 기다리고 있었고, 그에 이주완이 먼저 물어왔다.

"…상현 씨? 저희도 도망칠까요?"

"아뇨 저희는……."

상현이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그럴 필요가 없었다.

어차피 시험 내용은 전부 드러난 상황이고, 그런 만큼 특정 파티가 점수를 얻긴 힘들 터였다.

'서로 견제할 테니까. 아웃당하더라도, 차라리 정보를 얻는 게 나아.'

그렇게 생각했지만, 상현은 일단 방송을 의식하며 말했다.

"좀 기다렸다가 가겠습니다! 다른 파티끼리 치고 박을 시간은 좀 줘야 하지 않겠어요? 그래야 재밌으니……."

슥슥 시선을 돌리며 멘트를 치던 상현이 흠칫, 입을 닫았다.

아직까지도 가면을 쓴 채, 꼼짝도 않고 상현을 바라보는 이유진이 눈에 들어온 탓이었다.

"…릴 거야… 꼭……."

그녀가 뒤집어쓴 후드 아래로 음습한 중얼거림이 흘러나왔다.

'…진짜 왜 저러는 거야?'

상현 자신이 뭘 했다고 저렇게까지 싫어하는 건지, 도통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이주완이 조금 심하게 말했다 싶긴 했지만 그 전부터 덤벼왔지 않은가.

그리고 그건 단순히 시험에 합격하기 위한 움직임이 아닌, 상현 자신을 끔찍하게 싫어한다는 의미였다.

'나 원…….'

다행히 덤벼들 생각은 없는 듯 보였기에, 상현이 시선을 슬쩍 왼쪽으로 돌렸다.

와르르르! 우르르르!

그곳엔 어마어마한 숫자의 쿠키들이 파도처럼 밀려오고 있었다.

"보자……."

상현이 여유로운 기색으로 녀석들을 살피려는데, 갑자기 이주완이 말을 걸어왔다.

"상현 씨."

"네?"

"아까 팔찌. 어떻게 아셨어요? 이유진 씨가 차고 있다는 거."

"어릿광대요?"

"네."

상현이 고개를 갸웃했다.

갑자기 이런 걸 왜 물어보나 싶었다.

"소매 안에 빨간 빛이 보이더라구요. 그래서……."

"그걸로 확신하신 거예요? 어릿광대라고?"

"아, 확신까진 아닌데요……."

말하며 상현이 이유진의 눈치를 살폈다.

지척까지 쿠키가 몰려왔음에도, 그녀는 여전히 미동조차 하지 않고 있었다.

"상현 씨."

이주완이 팔을 탁 내리더니, 자신의 옷깃을 당겨 안쪽 주머니를 확인했다.

그리고 왼손으로 그 주머니 앞을 가린 채 말했다.

"이 안에 뭐 들었게요?"

"…네?"

상현이 어처구니없다는 얼굴로 되물었다.

"그걸 제가 어떻게……."

"역시 그렇죠? 그럼."

이주완은 바로 수긍하더니, 바지 주머니에서 아이템을 하나 꺼내들었다.

첫 시험에서 상현이 골랐던 것과 같은, 녹색 반지였다.

"그거……?"

"네. 상현 씨가 고르셨던 거죠. 저도 하나 가지고 있던 참이라."

그가 그렇게 넘기며 상현에게 반지를 건넸다.

"이거 한 번만 끼워 볼래요?"

"…지금요?"

"네."

이주완의 단호한 대답에 상현이 인상을 살짝 찌푸렸다.

왜 저 반지를 가지고 있는지도 미심쩍었고, 무엇보다도 쿠키들과의 거리가 점점 좁혀지는 상황.

조금이라도 많은 정보를 알아내야 하는데 왜 시간을 뺏는 건지 모를 일이었다.

"중요한 겁니다."

하지만 이주완은 다시 한 번 말하며 상현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갑자기 왜 이러는 거야?'

상현이 인상을 찌푸린 채 반지를 슥 끼워 넣었다.

곧바로 이주완이 다시 말을 걸어왔다.

"다시 여쭤볼게요."

그가 방금처럼 안쪽 주머니를 탁 짚었다.

"이 안에, 뭐 들었게요?"

"아니, 그건 저도……."

모른다고 말하려던 상현이 멈칫했다.

마치 흐릿한 이미지 따위가 머릿속에 떠오르는 기분이었다.

"공주님! 공주님!"

"잡아! 공주님을 돌려줘!"

어느새 지척까지 밀려온 쿠키들이 마구 소리를 내질렀지만, 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묘한 느낌이었다.

분명 이주완은 아무런 힌트도 주지 않았지만, 어째서인지 그가 상현 자신에게 알려준다는 듯한…….

"뭔지 아시겠어요?"

이주완이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물어왔다.

생전 처음 느끼는 감각에 머뭇거리다가, 상현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뾰족하고 짧은… 단검? 아니, 단검은 아니고. 투척용 무기 종류……?"

히죽. 이주완의 미소가 진해졌다.

그가 주머니로 천천히 손을 집어넣더니, 다시 꺼내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나온 건.

손바닥 정도 크기의 날카로운 수리검이었다.

"역시. 감응력이었군요?"

이주완이 그렇게 말한 순간.

파앗!

시간이 멈추었다.

아니, 시간이 멈추었다기보다는 상현과 이주완을 제외한 주변의 모든 것들이 멈추었다는 게 맞았다.

달려오던 쿠키들은 그 상태로 굳어버렸고, 멀찌감치 도망치는 헌터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주변에 피어오른 흙먼지마저 마치 그림처럼, 그대로 멈춘 상태였다.

"…뭐야?"

묘한 감각이 더욱 강해졌다.

"이게 무슨 상황일까요?"

이주완도 상황을 모르겠다는 듯 물어왔다.

그리고 다음 순간.

번쩍!

눈앞이 번쩍인다 싶더니, 시야가 격하게 흔들렸다.

바로 이어서 몸이 붕 뜬다는 느낌과 함께, 파노라마처럼 시험장 풍경이 스쳐 지나갔다.

'…이건?'

순간적인 어지러움에 상현이 눈살을 찌푸렸다.

이번 시험에 들어온 뒤로 몇 번이나 겪었던 상황이었다.

'다른 장소로 이동하는 거야.'

그렇게 생각하고 잠시 후. 흔들림이 멈추었다.

상현이 반사적으로 주위를 살폈다.

함께 이동한 듯, 곁엔 이주완이 서있었다.

"귀염둥이?"

"뭐야, 네가 왜 여기 있어?"

그리고 그뿐 아니라 처음 아웃됐던 박민혁과 민찬영 역시 어리둥절한 눈으로 상현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서 와, 친구들!"

그때 기다렸다는 듯 유쾌한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

"뭣……!"

네 사람의 시선이 일제히 뒤로 돌고, 상현이 대표로 고개를 갸웃했다.

"어?"

눈앞에 보이는 사람들은 머피 맥그레인과 금발의 여자 시험관이었다.

그때 머피가 먼저 말했다.

"일단 스트리밍은 좀 꺼주겠어, 소년?"

"아, 네, 넵."

상현이 급히 카메라를 얼굴 방향으로 돌리고 미안하다는 듯 눈을 찡긋했다.

그리고 바로 방송을 종료하며, 빠르게 주위를 살폈다.

정면. 머피의 뒤로 지원자들 하나하나를 담은 화면이 있는 걸 보아하니, 아무래도 시험관들의 대기실 같았다.

'…왜 이런 곳으로?'

상현이 생각하며 다시 고개를 들어 머피를 바라보았다.

"자, 그럼……."

머피가 양 팔을 쫙 벌렸다.

"너희들이 이번 시험 최초 합격자들이야. 후! 굉장하지? 마음껏 좋아하라고! 소리 질러도 좋아!"

하지만 머피의 기대와는 달리 순간 정적이 흘렀다.

이어서.

"예?"

"우리 합격이라고?"

"저희가 합격이라구요?"

게이, 민찬영을 제외한 세 사람이 동시에 되물었다.

"흐응……."

민찬영만은 알 것 같다는 표정으로 콧소리를 냈다.

그에 머피 맥그레인이 히죽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Yes! 물론 당황스러울 거야. 하지만 이 친구는 이해한 것 같은데?"

머피의 시선을 따라, 나머지 세 사람도 민찬영을 바라보았다.

영문을 모르겠다는 시선에 민찬영이 한쪽 눈을 찡긋해 보였다.

"최초 클리어 보상. 아닌가요?"

"정확해! 바로 그거야."

척!

머피가 엄지를 치켜세우더니, 스르륵 팔을 접어 팔꿈치로 옆의 여자를 툭툭 건드렸다.

일을 떠넘기는 듯한 행동.

여자 시험관, 비키 엘리엇은 눈살을 찌푸리면서도 한 걸음 앞으로 나왔다.

그리고 얼빵한 얼굴의 상현을 보며 입을 열었다.

"현존하는 미공략 던전이 몇 개나 된다고 생각하지?"

"꽤 많죠."

대답은 이주완에게서 나왔다.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C급 던전은 협회 초창기에 대부분 공략을 마쳤지만, 그 이상부턴 아니다. B급. A급. 이 두 등급의 던전들은 아직도 상당수가 미답지로 남아있지."

거기서 그녀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미간을 좁혔다.

"문제는 미공략 던전의 비율이, A급보다 B급이 훨씬 높다는 거다."

"……?"

상현이 고개를 갸웃했다.

이 얘기와 합격이 무슨 상관인지도 몰랐지만, 그것보다도 A급보다 B급 미공략 던전이 많다는 게 이해가 되질 않았다.

그녀의 설명이 이어졌다.

"A급 헌터들은 같은 시간동안 훨씬 많은 보상을 얻을 수 있는 던전을 가고, B급 헌터들은 미공략 던전이라는 리스크를 감당할 능력이 없으니… 그런 일이 발생하는 거다. 그런데 너희는."

비키 엘리엇이 네 사람을 주욱 둘러보며 말했다.

"가장 먼저 쿠키를 얻어냈지. 그런 의지. 그리고 성과를 얻어낼 수 있는 실력. 두 가지가 이번 시험의 주요 평가항목이었다. 솔직히 나는 마음에 들지 않지만."

그녀가 스르륵 머피를 바라보곤, 다시 상현 일행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곤 마치 판결을 내리듯, 차가운 어조로 말했다.

"어쩔 수 없지. 협회는 너희 같은 녀석들을 필요로 하니까. 오늘부턴, 너희 모두 B급 헌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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