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5.
"히! 하! 호!"
동화에 나올 법한 오두막집.
그 문 앞에 선 채, 쿠키가 괴상한 소리를 내질렀다.
나름의 기합소리인 것 같았다.
'…놀리는 건가?'
둥글게 마감된 두 손은 웨이브를 추듯 흔들어댔고.
하얀 초콜릿으로 신발을 그려놓은 발 역시 계속해서 스텝을 밟고 있었다.
마치 언제든 덤벼보라는 듯한 몸짓이었다.
"이건 무슨 개 같은 경우야!"
"일단 물러나. 상황을 좀 보자고."
모여 있던 이십 여명의 헌터들이 뒤로 슬금슬금 물러났다.
반원을 그리며 둘러싼 형상.
상현과 그의 파티는 그때까지도 그 무리에 합류하지 않고, 일단은 지켜보고 있었다.
하지만 한 명은 그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아, 우리도 싸우자고! 내가 고작 저런 과자한테 밀릴 거 같아? 어? 젠장! 내 친구만 데려왔어도 한 방인데!"
싸이코. 빨강 머리의 박민혁은 그 상황에서도 길길이 날뛰었다.
그에 상현이 급히 손을 들어 제지했다.
"잠시만요. 지금 문제는 과자가 아니에요."
그리고 상현이 쿠키의 행동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온갖 포즈를 취하며 도발하는 쿠키.
때마침 헌터 하나가 달려들었다.
퍼어억!
"컥!"
역시나, 접근하자마자 허공으로 붕 떠오르는 헌터.
쿠키의 손에서 쏘아진 무지갯빛이 그를 멀찌감치 날려버린 것이었다.
"뾰롱! 뾰로롱!"
상현이 입을 쩍 벌리고 있는 사이, 갑자기 요정이 마구 팔랑대며 춤을 추기 시작했다.
마치 쿠키와 경쟁이라도 하는 듯한 모습.
[이것도 너프해보시지~~]
[뾰롱이가 저거 이기지않을까??]
[포켓몬각 날카롭네ㅋㅋㅋㅋ]
"뾰롱이! 힘!"
그 때문인지 지켜보는 시청자들도 잔뜩 신난 상태였다.
'저 녀석을... 어떻게 데려가지?'
단순히 확보해야할 대상이라고 생각했던 녀석이 엄청난 전투력을 뽐내고 있었다.
심지어는 전투계열 헌터가 한방에 날아갈 정도.
'제압하긴 어렵겠는데…….'
세 명의 파티원 모두 쟁쟁한 실력을 자랑했지만 이 시험장엔 상현의 파티만 있는 게 아니었다.
또한, 우여곡절 끝에 쿠키를 확보한다고 해도 문제였다.
이 주변의 모든 헌터들의 공격대상이 될 테니까.
'한 가지 더.'
시험장 중앙에 위치한 단 하나의 수레.
쿠키를 제압한 뒤 반드시 저 수레에 타고 가야만 점수로 인정한다던 시험관의 멘트.
그걸 감안해야 하니, 더더욱 골치가 아파왔다.
'그러면… 다른 파티가 확보하게 둔 다음, 그걸 빼앗는 편이 나은가?'
생각하며 상현이 파티원들에게 고개를 돌렸다.
"찬영 씨, 민혁 씨. 두 분은 수레 근처에서 대기해주세요."
"알았어."
"지금 구경만 하라는 거야? 나는 싸우고 싶다고!"
순순히 움직이는 게이 민찬영과는 달리, 박민혁이 발끈했다.
'…싸이코 길들이기도 추가해야겠네.'
이번 시험에서 해야 할 목록에 하나가 더 늘어난 것 같았다.
상현이 다시 타이르듯 박민혁에게 말했다.
"민혁 씨. 아까 그, 저 배신했던 여자 아시죠? 그 사람 때문에 동료분을 잃으셨다고 하셨잖아요."
"갑자기 그 얘기는 왜 하는 거야? 뭐… 그 녀석만 왔으면 저런 놈들 쯤, 가뿐했지. 망할. 저 여자 때문에!"
박민혁이 홱 손을 뻗어 상현을 배신했던 여자, 유혜림을 가리켰다.
"맞아요. 근데 아직 복수도 못하셨잖아요?"
"…그렇지."
"제가. 확실하게 복수할 수 있는 자리. 만들어 드릴게요."
"그럴 거면, 그냥 지금 가서 싸우면 되잖아!"
"주변에 다른 파티가 방해할 텐데요? 그래도 괜찮으시겠어요?"
"개 같은 소리 하지마. 누구도 방해 못해. 방해하는 놈도 부숴버린다."
"그게 몇 명이건?"
"몇 명이건!"
뭐 그런 소리를 하냐는 듯 날카롭게 받아치는 모습.
예상대로 흘러가는 상황에, 상현이 피식 웃었다.
"좋아요. 그럼 그 기회 지금 만들어 드릴게요. 조금만 기다리시면, 수레 쪽으로 그 여자가 갈 겁니다."
"어떻게 알아?"
"유혜림이란 여자를 비롯해서 파티원들. 능력치가 상당히 높았거든요. 과자를 차지한다면 아마 그 파티가 차지할 확률이 높아요."
"저 헌터들을 다 뚫고, 수레로 올 거라고?"
박민혁이 의아한 시선으로 물어오자 상현은 진지하게 말했다.
"물론이죠. 확실한 이유가 있어요. 다만 지금은… 혹시 누가 엿듣고 있을 수도 있으니. 일단 움직이시죠."
상현이 진지한 눈으로 바라보자, 박민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러자고."
'그런 거 없어…… 인마.'
"대신."
속으로 비웃던 상현이 움찔했다.
"네 말대로 되지 않으면 너부터 박살낼 거야."
"아… 음, 하하하… 다, 당연하죠."
"흠."
박민혁이 움직이자 옆에 있던 민찬영도 함께 수레로 향했다.
"후우우."
상현이 안도의 한숨을 쉬며 이마의 땀을 닦아냈다.
그에 시청자들의 채팅이 주륵 올라왔다.
[애보는거보소ㅋㅋㅋㅋ]
[저거 싸이코임??? 왜저럼???]
[조련사 수준ㅋㅋㅋㅋㅋㅋ]
"아, 음. 성격이 워낙 불같은 분이셔서… 일단 민혁 씨는 그렇다 치고, 시청자 형님들 궁금하실 테니까 간략하게 설명이라도……."
"저는 어떻게 할까요?"
멘트를 좀 쳐보려는데 이주완이 훅 다가와 얼굴을 들이밀었다.
분명 질문을 하고 있음에도 그의 얼굴은 카메라를 바라보고 있었다. 게다가.
"안녕하세요! 이주완입니다!"
손까지 흔들어주며 화면에 나오는 걸 즐기는 모습.
"……."
상현이 인상을 찌푸렸다가, 곧바로 풀었다.
성대원이 한 말이 있어, 가급적이면 방송에서 무게감을 주지 않으려 했는데 이젠 어쩔 수 없었다.
방송에 모습을 확실히 드러낸 이상, 정말 아무렇지 않다는 듯 가는 수밖에 없었다.
상현이 카메라를 돌려, 두 사람이 한 번에 잡히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더없이 환한 얼굴로 멘트를 이었다.
"특급 게스트! 이주완 씨를 소개합시다!"
"반갑습니다, 여러분!"
자연스레 멘트를 이어받는 이주완.
그에 시청자들의 열렬한 호응이 돌아왔다.
[졸라반갑네ㅋㅋㅋㅋ]
[오빠!! 웃는게 너무 귀여워요!!!]
[어~ 주완이 오랜만이고~]
[다른 두명은 어디갔냐??? 영근인가 걔]
"영근 씨랑, 호용 씨는 아쉽게 떨어지셨다고 합니다. 같이 계셨으면 이번에도 화끈하게 캐리해드렸을 텐데요. 아쉽지만… 아, 일단 이어서!"
두 사람의 얘기는 짧게 치고, 상현이 카메라로 쿠키 방향을 찍었다.
"이번 시험! 간략하게 설명 드리고 가겠습니다! 우선 저 앞에 보시면, 치열하게 싸우는 거 보이시죠?"
카메라를 살짝 확대하니 헌터들의 모습이 더욱 자세히 보였다.
"하! 호! 호잇!"
"끄아아악!"
주먹을 날리다 얻어맞고.
"저 자식부터 막아!"
무지갯빛에 바닥을 구르고
"막을 수가… 흐어어억!"
허공을 날아다니는 모습까지.
줄줄이 당하는 헌터를 보자니 헛웃음이 흘러 나왔다.
더구나 상대가, 동네 매장에서나 볼법한 '쿠키'라는 사실이 더더욱 기분을 묘하게 만들었다.
상현이 멘트를 이었다.
"저기서 열심히 싸우는 쿠키! 저 친구를 데리고, 저쪽! 어, 한 500미터 되겠는데요? 아무튼 행복한 과자 마을로 넘어가기만 하면 됩니다! 단 그 전에."
잠시 그 장면을 비추던 상현이 카메라를 홱! 꺾었다.
바로 근처의 허름한 수레 방향이었다.
"다만, 이 녀석 안에 태워서 가야한다는 규칙이 있죠. 어때요, 정말 간단하죠? 아, 주완 씨?"
대충 설명을 마침과 동시에 상현이 이주완을 불렀다.
그가 여전히 태연한 미소를 띠며 다가왔다.
"넵."
"이 주변. 탐색 한번 해주세요."
"탐색이요?"
상현이 바글거리는 헌터들과 길잡이들을 가리켰다.
"숫자 보이시죠? 이 시험장에 들어온 건, 총 30명이었어요. 아웃 당한 사람들을 감안해도 26명은 되어야 하죠. 근데 지금은."
"스무 명밖에 없네요."
"맞아요. 그게 뭘 의미하는 걸까요?"
상현이 질문하고, 이주완이 그곳을 쳐다보며 나직이 말했다.
"빠져나갔군요."
"예."
상현은 말을 이었다.
"비슷한 생각을 하는 길잡이들이 있는 것 같아요. 저 쿠키, 정공법으로 제압하긴 힘들거든요. 분명 다른 장치. 숨겨진 장치가 있을 겁니다."
"확실히……."
상현이 눈에 힘을 주었다.
"그게 아마 이번 시험의 마스터키가 될 겁니다. 보세요. 또 한명… 날아가죠?"
상현이 쿠키의 공격에 허공으로 떠오른 헌터 한 명을 가리키며 말했다.
"역시 당신은……."
이주완은 사람들을 가리키는 상현의 손이 아닌, 얼굴을 바라보았다.
"예?"
"아닙니다."
상현이 자신을 바라보자 대충 얼버무리곤, 이주완이 질문을 던졌다.
"제가 가면 상현 씨 혼자 남을 텐데, 괜찮으시겠어요?"
"네. 어차피 제가 목표가 될 이유가 없으니까요. 그리고 설령 누가 쿠키를 얻는다고 해도, 저기 두 분 있으니까 버틸 순 있을 겁니다."
"그렇겠네요."
수레 앞에서 두 눈에 잔뜩 힘을 준 박민혁과 민찬영이 이주완의 눈에 들어왔다.
파바밧.
곧 그가 몸을 날렸다.
삽시간에 멀어지는 속도에 상현이 혀를 내둘렀다.
'아무리 생각해도 평범한 C급은 아냐.'
이주완이 들고 있는 아이템 중 이동속도 관련은 단 하나뿐.
하지만 그럼에도 저런 속도를 내고 있는 것이었다.
윗입술을 비죽 내밀며 상현이 고개를 갸웃했다.
이제 상현이 할 건, 변수와 숨겨진 정보들을 하나라도 많이 찾아내는 것뿐이었다.
그래야 이주완이 돌아왔을 때 본격적으로 움직일 수 있을 테니까.
상현이 사람들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입을 열었다.
"자, 형님들! 추천! 즐겨찾기! 한 번씩만 부탁드리겠습니다. 일단 주완 씨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 볼까요?"
그리고 그에 이어, 전체적인 흐름을 살피기 시작했다.
*** 스아아아앗-!
공기 가르는 소리가 귀를 스쳤다.
이주완은 쉴 새 없이 주위를 훑으며 달려 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주변은 알록달록한 색감의 놀이기구들 뿐, 특별히 눈에 띄는 건 없었다.
"흐으음……."
이주완이 잠시 멈추었다.
상현이 문제를 해결할 실마리를 찾으라고 했으니, 분명 어딘가에 무언가 숨겨져 있을 터였다.
그리고 그 역시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고.
'아무래도 마스터 키란 게 아이템인 거 같은데… 어디 있는지 대체 알 수가 없으니.'
시험장이 워낙 넓다보니 발견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렇다면 목표를 수정해야 했다.
'다른 헌터들을 털어볼까?'
고민하던 도중.
스아아아-!
스아아아아-!
'두 놈 포착.'
조금 떨어진 곳에서 빠르게 달려가는 헌터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방금까지도 다른 파티가 탐색하는 걸 보긴 했지만, 특별히 관심을 갖진 않았었다.
'이번엔 꽤 빨라, 거기다…….'
우선 속도.
헌터들은 이주완을 상회하는 속도로 달려가고 있었다.
"…호오?"
짧은 감탄사가 자연스레 흘러나왔다.
잠시 고민하던 이주완이 뺨을 긁적였다.
그리고 곧이어 땅을 박차고, 그들의 뒤를 따랐다.
'저 녀석들…… 뭔가 아는 눈친데?'
곳곳에서 정신없이 돌아다니는 테디베어와 온갖 인형들.
이제껏 발견한 헌터들은 뭔가 찾기 위해 인형들 사이로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두 헌터들의 방향은 전혀 다른 방향, 거기다 나아가는 동선도 직선이었다.
주변엔 잠깐의 시선조차 주지 않는 모습을 보니 더욱 그랬다.
'갑자기 술래잡기라.'
이주완이 히죽 웃으며 속도를 올렸다.
그리고 얼마간 달리던 이주완의 시야에 일곱 가지 색의 회전목마가 들어왔다.
시험장 외곽에 있는 관람차로 향하는 방향인 것 같았다.
그리고 그걸 느낀 순간.
스아아아아-!
달려가던 사람들의 속도가 급격히 빨라졌다.
"이건……."
이주완이 고개를 갸웃했다.
말도 안 되는 변화였다.
이전까지의 속도는 C급 헌터들이라 할지라도, 아이템에 의존하면 낼 수 있는 정도.
하지만 지금은 이주완조차 여유를 부리다간 놓칠 정도였다.
"…재밌겠는데?"
그가 히죽 웃으며 중얼거렸다.
탓. 파아앗!
이주완은 상체를 뒤로 기울였다가, 그대로 튕기듯 쏘아져 나갔다.
스스스스슷.
주변 건물이 흐릿하게 보일 정도의 속도.
하지만 이주완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쭉쭉 나아가고 있었다.
점점 거리가 좁혀질수록 기대감이 물씬 피어올랐다.
'뭘 찾는 건지… 가보면 알겠지.'
시선이 뜸해지는 시험장 외곽.
그곳에 접어들어서야 헌터들은 비정상적으로 속도를 올렸다.
그리고 곧.
탁. 타다닥.
그들이 멈추었다.
그에 이주완도 즉시 멈추고, 상대의 반응을 살폈다.
터덜. 터덜. 터덜.
헌터들이 옆에 있는 천막으로 들어서는 게 눈에 들어왔다.
'저기구나.'
이주완이 생각하는 것과 동시에.
타. 타르륵.
바닥의 돌멩이를 걷어차 소리를 냈다.
파바밧! 파밧!
두 사람이 곧바로 튀어나오며 경계 태세를 취했다.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앞으로 나와."
"아니면 조용히 돌아가도 좋다. 그쪽이 서로한테 편할 테니까."
두 사람의 목소리가 동시에 들려왔다.
잔잔하게 깔리는, 자신감 가득한 말투였다.
"프핫!"
그러나 이주완은 오히려 웃음을 터트리곤, 태연스레 그들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두 사람 모두 삭막한 표정으로 이주완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이주완이 그 눈빛을 받아치자, 왼쪽의 남자가 입을 열었다.
"우릴 왜 따라온 거지? 아니. 질문을 정정하겠다. 어떻게 따라온 거냐?"
이미 평범한 헌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 태도에 이주완이 히죽 웃었다.
반신반의 했었는데, 막상 마주하니 확실하게 느껴졌다.
"냄새가 굉장히 진하네요?"
이주완이 눈을 반달 모양으로 만들었다.
그리곤 마치 향긋한 향을 즐긴다는 듯, 숨을 깊게 들이마시더니 남자들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
그에 그들이 흠칫하며 뒤로 한 발 물러났다.
"다가오지 마라. 경고는 한번 뿐이야."
다급하게 흘러나오는 목소리.
하지만 이주완은 개의치 않고 계속해서 다가갔다.
그리고 입을 열어, 천천히 말했다.
"사냥개. 검은 송곳니."
"……!"
남자들의 표정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이주완이 말한 검은 송곳니.
뒷동네 세력 중, 사냥개 소속의 무력집단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얼마 전 사건으로 완전히 박살났다는 점이었다.
이주완이 능글맞은 얼굴로 말을 이었다.
"사냥개가 무너졌다더니… 밥그릇 다툼이 심하긴 한가 봐요? 뒷동네 주민 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