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5.
'6구역까지 이렇게 스트레이트로 날아온다고?'
생각과 동시에 상현이 말했다.
"이건 너무하지 않습니까, 형님들? 예?"
몬스터 무리엔 하피뿐만이 아니라, 심지어 곤충형 몬스터까지 있었다.
[메뚜기떼 매서운거보소ㅋㅋㅋㅋ]
[하피면 웃통 까고있는거 아니냐?ㅋㅋㅋㅋ 19금 안걸어도됨?ㅋㅋㅋㅋㅋㅋ]
[웃통 미친새끼야ㅋㅋㅋㅋㅋ]
"아니, 형님들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어이없다는 얼굴로 말하다가, 상현이 입을 닫았다.
시청자들에게 상황을 설명할 이유도, 시간도 없었다.
그저 기대하는 장면을 보여주면 그만이었다.
"망하아아알."
상현이 머리를 부여잡고 생각을 쥐어짰다.
그리고 그때, 채팅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뾰롱이 타고 날면 되는 거 아니냐?]
"……!"
상현이 눈을 크게 떴다.
요정이 골랐던 반지.
그걸 왜 생각을 못했나 싶었다.
"뾰롱아!"
상현이 날아다니던 요정을 잡아, 얼굴을 마주보았다.
그리고 입술을 쭉 내밀고 바람을 후 불었다.
"푸우우우!"
"뾰롱?"
요정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에 상현이 급히 덧붙였다.
"아까 한 거! 바람 부는 거 할 수 있겠어? 이렇게! 푸우우우!"
그제야 요정이 알았다는 듯 양 손을 딱 부딪쳤다.
그리고 녀석이 뺨을 크게 부풀렸다.
하지만.
"어부부부!"
픽.
헛바람이 상현의 얼굴을 가볍게 스쳤다.
요정이 당황하더니, 다시금 볼을 부풀리고, 내쉬었다.
그러나 이번에도 픽.
코가 간질간질한 바람만이 나올 뿐이었다.
상현의 얼굴이 굳었다.
"쿨타임……."
아이템마다 있는, 재사용 대기시간이 분명했다.
방법이 사라졌다는 생각에 다리의 힘이 풀렸다.
그러나 바로 이어서.
"끼야아아아!"
하피의 날카로운 울음소리가 귀를 찔렀고, 상현이 번뜩 고개를 마구 흔들었다.
'이렇게 된 거…….'
어차피 실패한다고 죽는 것도 아니었다.
조금 쪽팔리긴 하겠지만, 그저 다음 시험을 준비하면 되는 일.
상현의 눈에 빛이 돌아왔다.
'답은 있어. 답은… 무조건 있다. 이건 시험이니까.'
극악한 난이도에, 운조차 더럽게 없는 상황이지만 어쨌든 해결책은 있을 터였다.
밑에선 오크를 비롯한 녀석들이 마구 날뛰고 있었고, 공중엔 하피 따위가 포진한 상황.
결국 둘 중 하나를 돌파하는 수밖에 없었다.
'내려가는 건 안 돼. 그럼 두 배를 상대하는 거고, 차라리 하피가 낫겠어. 한 놈만 상대하는 편이… 좋아, 그럼.'
방금까지 주춤했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상현은 어깨를 쫙 피고, 양 팔을 벌린 채 하피를 마주보았다.
그런 와중에도 카메라는 자신에게 향한 채, 상현이 가슴을 쿵쿵 두드리며 소리쳤다.
"와봐! 자식아, 와보라고!"
[돌아버린것인가ㅋㅋㅋㅋㅋ]
[얘 갑자기 왜이러냐?ㅋㅋㅋㅋ]
[실성했네 이새끼ㅋㅋㅋㅋ]
힐끔 보니 생각보다 반응이 좋았다.
기분 좋게 차오르는 긴장감 속에서, 상현이 하피를 노려보았다.
"끼이이익! 끼야아!"
방금 전 외침에 자극받은 하피가 새된 울음소리를 내지르며 날카로운 발톱을 세웠다.
거친 날갯짓에 불어오는 바람이 느껴졌다.
아직은 선두의 하피 한 놈뿐, 다른 몬스터들은 거리가 꽤 있었다.
'다른 놈들까지 오면 늦어.'
어떻게든 이 녀석 선에서 마무리를 지어야 했다.
새의 몸체에, 여성의 상반신.
하지만 말이 그렇다는 것일 뿐, 오히려 흉물스러운 모습이었다.
상현은 대놓고 보라는 듯 카메라를 녀석에게 들이밀었다.
갈색 깃털로 수북한 하피의 몸체가 화면에 적나라하게 잡혔다.
[왜 못생겼냐ㅡㅡ]
[안본눈삽니다ㅋㅋㅋㅋㅋ]
[환상이....깨졌어....]
기대한 반응에 상현이 피식 웃었다.
시청자들이 욕하는 소리가 귀에 들리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리고 그걸 보니, 시원하게 소리를 지르고 싶다는 욕구가 마구 차올랐다.
사아아아.
하피가 이를 드러내는 걸 보며, 상현이 표정을 와락 굳혔다.
'온다!'
"끼야아아아!"
거의 근처까지 날아든 녀석이, 사납게 울음을 내질렀다.
날카로운 발톱과, 묵직한 날개.
그리고 살벌한 분위기를 읽고, 상현이 몸을 움츠렸다.
스카카카칵.
분명 날개를 흔드는데, 쇠를 깎는 듯한 소리가 났다.
점차 좁혀오는 거리를 보며 상현이 이를 악물었다.
"하피! 새의 하반신과! 인간의 상반신을 지닌! 그 다음은 모르겠고! 무엇보다도……!"
스카카카카칵!
녀석이 묵직한 날개를 휘두르며 날아들었다.
절로 오금이 저려왔다.
하지만 상현은 움직이지 않고, 그 모습을 똑바로 마주보았다.
[안피하냐 미친놈아ㅋㅋㅋㅋ]
[포기한거임???]
올라오는 채팅.
그리고 마침내, 육중한 날개가 눈앞까지 들이닥친 순간.
"다리에 감각기관이 없습니다아아아!"
외치며 상현이 몸을 확 낮춰, 녀석의 공격을 피했다.
"끼이익?"
그리고 대상을 잃은 녀석이 당황한 틈을 타, 그대로 하피의 발을 잡아챘다.
스칵!
방향을 잘못 잡았는지 날카로운 발톱에 피부가 찢겨 피가 터졌다.
시청자들이 경악하는 게 보였지만, 상현은 대답하지 못했다.
'안 아파! 홀로그램이다!'
어차피 시험이 끝나면 원래대로 돌아올 상처였다.
바로 이어서.
슈아아아아!
하피가 날아오름에, 상현의 몸이 붕 떠올랐다.
"으읍……!"
비명이 터지려는 걸 상현이 꾹 눌렀다.
그리고 다음 순간.
띠링!
익숙한 소리와 함께 메시지가 나타났다.
- 내 사전에 포기란 없다!
- 당신은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기지를 보였습니다.
- '체력 시스템'을 완벽히 이해했습니다. 지금부터 당신의 체력은, 시계 옆에 표시됩니다.
- 종료까지 남은 시간 11:10:17 (6구역)
- 사망까지 남은 체력: 82% '미친, 완전히 게임이잖아!'
생각과 동시에 몸이 거칠게 흔들렸다.
하피가 방향을 확 틀어 버린 탓이었다.
"후우우우."
상현이 길게 숨을 내쉬었다.
지금 상현은, 하피의 발을 잡은 채 공중을 날고 있었다.
밑으로 죽 늘어선 빌딩들이 보였다.
'이대로 좀 더 가서… 적당히 고도가 낮아지면.'
상현이 머리를 굴렸다.
깃털이 피부를 대신하는 하피의 특성상, 지금 녀석이 느끼는 건 날갯짓이 조금 무거워졌다는 정도일 터였다.
그리고 먹잇감을 잃었으니, 다른 사냥감을 찾아 돌아다닐 터였고.
상현은 숨죽인 채 기다리다가, 적당한 곳에서 뛰어내리면 그만이었다.
[팔 괜찮냐??? 팔??]
[미친 피나는거봐라ㅡㅡ 괜찮냐진짜]
걱정스러운 채팅이 올라왔지만 상현은 대답하지 않았다.
소리로 눈치 챌 수도 있었으니까.
요정도 분위기를 읽은 건지, 양 손으로 자기 입을 꼭 막은 채 뽈뽈대며 상현 곁에 떠있었다.
그런데.
'…왜 안 움직여?'
갑자기 하피가 움직임을 멈추더니, 제자리에서 날갯짓만을 반복했다.
그리고 갑자기, 몸을 마구 흔들어댔다.
"……!"
상현이 눈을 부릅뜨고 손에 힘을 꽉 주었다.
하지만 흔들림은 점점 거세졌고, 결국.
스르륵.
손에서 힘이 풀렸다.
천천히 떨어지기 시작하는 몸에 상현이 얼굴을 확 구겼다.
스아아아아.
삽시간에 가속도가 붙었다.
바람이 몸을 마구 때렸다.
그런 와중에도 상현은 비명을 지르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쿵! 데구르르륵.
상현이 옆구리부터 바닥에 부딪혔다.
눈앞이 껌뻑이며 순간 붉은 빛으로 바뀌었다가, 다시 돌아왔다.
역시나 이번에도 고통은 없었다.
- 사망까지 남은 체력 34% '망할!'
구르듯 상현이 몸을 일으켜 주위를 홱홱 둘러보았다.
건물의 옥상.
아까 몬스터들에게 둘러싸였던 건물과는 두 블록 정도 떨어진 곳이었다.
"끼이이익!"
그때 하피가 상현을 발견했는지 울음소리를 냈다.
곧바로 상현이 몸을 돌렸다.
'건물 안으로!'
빠르게 날아드는 하피를 뒤로하고, 상현이 문 안으로 몸을 던져 넣었다.
쾅!
문이 거칠게 닫히고, 이어서.
콰콰쾅! 콰쾅!
철문이 충격에 마구 흔들렸다.
하피가 몸으로 들이받은 게 분명했다.
덜덜 떨리는 문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상현이 숨을 몰아쉬었다.
"후욱. 후욱."
채팅창은 터져나갈 듯 했다.
상현이 억지로 호흡을 고르고, 말했다.
"이거, 후, 형님들, 이것도 홀로그램… 홀로그램입니다. 실제로 다친 거 아니구요, 아프지도 않습니다."
그렇게 대충이나마 진정시키고, 상현이 방금의 상황을 되새겼다.
'하피는 저런 성향이 아냐.'
오크 따위의 지상 몬스터들과 마찬가지로, 이번의 하피 역시 상현이 아는 것과는 완전히 다르게 행동했다.
'그럼… 아무것도 확신을 못한단 소린데.'
던전을 공략하고, 영상을 보면서 익힌 정보들.
그런 것들이 모두 어긋났다는 의미였다.
잠시 벽에 기댄 채 숨을 돌리고.
"형님들, 일단 밖으로 가보겠습니다. 아까 그 녀석들이 지금 뛰어오고 있을 테니까요."
그리고 그대로 계단을 내려가려다가, 멈칫했다.
방금 몸을 부딪친 걸 마지막으로, 문 밖에선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설마…….'
일반적인 하피라면 그대로 다른 사냥감을 찾아 떠났을 터였다.
하지만 이 녀석은 달랐고, 그 말은 건물 입구에서 기다릴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충분히 말이 돼.'
어쩌면, 한번 위협한 후, 바로 입구로 날아갔을지도 몰랐다.
오래 고민할 틈이 없었다.
맞은편 옥상에 있던 지상 몬스터들도 지금 몰려오고 있을 터였다.
"후우."
심호흡을 한번 하고, 상현이 발소리를 죽여 문으로 다가섰다.
그리고 잠시 귀를 기울여보았다.
"……."
역시나, 아무 소리도 없었다.
예상이 맞아떨어진 것 같았다.
[뭐하냐??? 다시 나가는거임??]
[몬스터 딴데 간거임?]
올라오는 채팅을 보며 상현이, 문손잡이를 쥐었다.
그리고 철컥.
손잡이를 돌림과 동시에.
콰콰콰쾅!
거센 충격이 문을 강타했고, 그에 상현의 몸이 뒤로 쿵 밀려났다.
상현이 경악하며 옥상 문을 바라보았다.
철문은 여전히 굳게 닫혀있었다.
아까 문을 잠갔다는 사실을 잊은 덕분이었다.
하피가 후려친 자국에, 엉망으로 일그러진 상태.
"이게 무슨……."
어처구니가 없어 말도 나오지 않았다.
[기다리고있던거임?ㅋㅋㅋㅋㅋ]
[우리하피 지능 미쳐~~~]
[얘는 새대가리아니네ㅋㅋㅋ똑똑한거봐라ㅋㅋㅋ]
시청자들도 경악했다.
아무리 일반인들이라도 상현의 분위기와 상황을 보면 충분히 알 수 있는 일이었다.
마치 상현이 다시 나오길 기다린 듯 덤벼드는 타이밍.
이 정도 지능이라면 B급 던전의 필드보스. 혹은 A급 몬스터는 되어야 가능한 일이었다.
B급 자격시험이라곤 생각할 수 없는 난이도.
'이건… 진짜 뭔가 있어. 뭘 놓치고 있는 거지? 아, 설마… 소리로 아는 건가? 내가 말하는 소리로?'
문득 떠오른 추측.
지능이 올라갔다면, 상현이 말하는 내용을 이해하는 것일지도 몰랐다.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슬쩍.
뒤를 돌아본 다음, 상현이 외쳤다.
"이거 도저히 안 되겠는데요? 일단 1층으로 내려가겠습니다! 차라리 바깥으로 도망가는 편이……!"
외치며 상현이 마구 발을 구르며 계단을 반 칸쯤 내려갔다.
그리고 서서히, 발소리를 줄여나갔다.
마치 점점 멀어지는 듯한 분위기를 만들고, 상현이 탁… 멈추었다.
그리고 아무 말도 없이, 최대한 소리를 죽인 채 상현이 문으로 다가갔다.
잠금 장치는 풀지 않은 채.
철컥.
문손잡이를 돌린 순간.
콰콰쾅!
어김없이 들이닥치는 하피의 공격.
상현이 황급히 물러나며 눈썹을 밀어 올렸다.
'소리도… 아냐?'
상현의 눈동자가 바쁘게 움직였다.
'소리에 반응하는 게 아니라면… 내 위치를 다 알고, 언제 다시 나올지도 알아. 근데 소리가 아니라고?'
생각하며 상현이 띄워놓은 지도를 확인했다.
다른 길잡이들은 어떤가 싶어 보니, 각자 건물에서 얌전히 자리를 잡고 있었다.
조금도 움직이지 않는 모습.
지금 이렇게 미친 듯 뛰는 건, 상현 자신뿐이었다.
'나만 이런 거라고? 왜? 나랑 저 사람들이 뭐가 달라서… 아니지.'
상현이 인상을 굳혔다.
다른 거라면 있긴 했다.
바로, 방송을 하고 있다는 점.
'설마…….'
반신반의하면서도 상현이 움직였다.
상현은 옆에 띄웠던 지도를 꺼버리고, 최대한 자연스레 핸드폰을 비스듬히 돌렸다.
그리고 다시 문으로 다가서서, 손잡이를 돌렸다.
철컥.
이번엔 아무 반응도 없었다.
'소리'로 듣는 게 아닌, '영상'을 보고 있는 거라면 말이 됐다.
상현은 이번에도 잠금장치를 풀지 않았으니까.
당혹감이 확 차올랐지만 애써 내색하지 않고, 상현이 고개를 갸웃하며 멘트를 쳤다.
"어, 형님들? 반응이 없는 걸 보니까, 이젠 진짜 간 것 같죠? 그럼 진짜로… 나가볼까요?"
이어서 상현이 이번엔 잠금장치를 푸는 시늉을 한 다음, 문손잡이를 돌렸다.
그리고 이번엔.
콰콰쾅!
문으로 전해지는 거센 충격!
상현이 경악했다.
'씨팔! 방송이었어?'
설마 했는데, 아무래도 추측이 맞아떨어진 것 같았다.
대체 어떻게 된 건진 모르지만, 정황상 몬스터들은 상현의 방송을 통해 정보를 얻고 있었다.
잠금장치를 푸는 시늉을 하자마자 달려드는 녀석.
상현이 즉시 계단으로 몸을 날렸다.
"일단 밖으로! 밖으로 가겠습니다! 저 녀석, 계속 저기서 지킬 생각인 것 같아요!"
타다다닥.
아무 말도 없이 한 층 정도 내려간 순간.
상현이 자연스레 검지를 움직여 카메라를 가렸다.
그 상태로 더 나아가지 않고.
"후우우. 빨리……."
타닥. 타닥. 타닥.
제자리에서 발을 굴렀다.
그러기를 한참.
"거의 다 내려왔네요! 2층이니까……!"
외치며 마이크까지 꺼 버렸다.
달리던 와중에 실수로 마이크를 끈 거라는 뉘앙스를 풍기고.
이어서 바로 몸을 돌려, 옥상으로 미친 듯 뛰었다.
눈앞에 마구 구겨진 철문이 보였다.
'이것도 아니면, 그냥 불합격하고 만다!'
상현이 그대로 문을 열고, 밖으로 몸을 던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