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2.
이지은이 차에서 내려 건물을 올려다보았다.
상현의 집은 그녀의 기준에선 정말 허름한 곳이었다.
입구에 경비도 없었고, 전체적인 디자인 역시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것들은 조금도 상관없었다.
저 안에는 상현이 있었으니까.
그때 그녀의 매니저가 말을 걸어왔다.
"정말 혼자 갈 거야? 나도 그냥 같이 있는 게 낫지 않을까? 무슨 일 생길지도 모르고……."
"괜찮아요. 어차피 방송도 켜져 있잖아요?"
그녀가 상냥하게 웃어 보였다.
"그, 그렇지? 그래. 방송 잘하고! 오빠도 방송 보고 있을게. 파이팅!"
남자의 표정이 풀어졌다.
앙증맞게 남자가 팔을 굽혀 보였다.
그에 이지은이 한 번 더 살짝 웃어주곤,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곧 그녀의 표정이 바뀌었다.
'정말 마음에 안 들어. 자기가 귀엽다고 생각하는 건가?'
하지만 드러낼 순 없었다.
남자에 관한 생각은 금세 머리에서 지워졌다.
그리고 계단을 하나하나 오를 때마다, 방송에서 보았던 상현의 모습이 떠올랐다.
막연한 상상이 이어졌다.
실제로는 어떤 사람일까.
무엇을 좋아하고, 어쩌다 방송을 하게 된 걸까.
그리고 곧 그녀가 문 앞에 도착했다.
"후우우."
가볍게 숨을 내쉬고.
똑똑똑.
그녀가 문을 약하게 두드렸다.
두근거리며 기다리자, 곧 상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예에에엡! 갑니다!"
그녀가 양손을 맞쥐었다.
탁탁탁.
달려오는 소리에 이어.
띠리릭- 철컥.
문이 열리고, 상현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오, 오셨어요?"
긴장한 채 잔뜩 굳어버린 상현.
그에 이지은이 수줍게 웃어 보였다.
"안녕하세요! 지으닝… 으, 좀 창피하네요. 이지은입니다!"
상현의 얼굴이 더더욱 굳었다.
불안한 듯 좌우로 흔들리는 시선.
"어, 넵. 일단… 네. 들어오시죠."
제대로 눈도 마주치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이지은이 내심 실망했다.
방송에서 보인 것처럼 당당하게 그녀를 반겨주길 바랬는데.
'그래도… 이 정도면 양호하잖아? 아예 치근대는 사람보단 나으니까.'
그녀가 애써 그렇게 생각하며 들어섰다.
곧 방 안의 광경이 보였다.
나름 치웠다는 느낌이긴 했지만, 역시나 그녀의 기준엔 맞지 않았다.
그 분위기를 읽었는지 상현이 머쓱하게 웃었다.
"아하하. 조, 좀 지저분하죠? 그, 마실 거라도……?"
"저는 아무거나 괜찮아요!"
"넵, 그러면."
상현이 냉장고로 향하더니 곧 주스를 한 잔 따라와 건네었다.
"감사합니다."
그녀가 웃으며 잔을 받아들었다.
상현이 앞에서 우물쭈물하자, 그녀가 질문했다.
"지금 방송 켜두신 상태죠?"
"아, 네. 잠깐 자리 비운다고 하고… 마이크랑 캠만 꺼놨어요."
"음……."
그럴 거라 생각하긴 했지만 조금 아쉬웠다.
상현과 이야기를 더 나누고 싶었으나 방송중이라면 자리를 오래 비울 순 없었다.
슬슬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에 그녀가 잔을 내려놓았다.
그때 상현이 말했다.
"와, 근데 정말 예쁘시네요. 방송국 사진 보긴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그 한마디에 이지은이 움찔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녀가 지금만큼 돈을 번 것도, 외모 덕분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래서인지, 그녀는 예쁘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거부감이 들었다.
외모가 자신의 전부 같았으니까.
단순한 인사치레라면 괜찮았겠지만, 지금 상현의 표정을 보면 그런 건 아닌 듯 했다.
눈을 빛내며, 시선을 약간 아래로 내리는 상현.
몸매를 훑는 듯한 느낌에 이지은은 불쾌함을 느꼈다.
'…이 사람도.'
결국 남자들은 다 똑같은 것 같았다.
그때 상현이 말했다.
"그거, 목걸이. 얼마예요?"
"네?"
"목걸이요. 많이 비싼 거겠죠?"
이지은은 당황하며 상현을 바라보았다.
갑자기 목걸이라니.
그에 상현이 머쓱하게 웃으며 말했다.
"내일 어머니 만나거든요. 그런 거 하나 사드리고 싶은데… 사본 적이 없어서 가격 같은 걸 몰라요. 인터넷에 많긴 하던데, 그래도 뭐가 좋은 건지 모르니……."
상현은 잔잔하게 웃고 있었다.
그리고 그 눈은, 분명 목걸이를 보고 있음에도 어딘가 다른 곳을 보는 것 같았다.
'어머니를… 생각하는 건가?'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이 남자만큼은 다를지도 몰랐다.
이지은이 말했다.
"일단 방송부터 할까요? 목걸이는 천천히 알려드릴게요. 시청자들 기다릴 텐데."
"아차. 넵. 바로 가시죠."
그에 상현이 정신을 차리고, 그녀를 자리로 이끌었다.
자리에 앉은 상현은 바로 모니터로 시선을 돌렸다 정신을 차리자마자 부끄러움이 밀려들었다.
그녀가 쳐다보고 있다는 생각에 행동 하나하나가 신경이 쓰였다.
'마, 마이크 버튼이… 이거였나? 아니지. 이건 캠이니까…….'
혼란스러운 움직임.
도무지 어떻게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질 않았다.
'왜 이렇게 예쁘냐고!'
상현이 내심 한탄했다.
사진은 보고, 방송 다시보기까지 보면서도 상현은 그녀의 외모가 조금 다를 거라 예상했다.
외모로 먹고 사는 여캠의 특성상, 대부분 카메라 각도와 조명으로 거의 '변신'을 한다고 알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이지은은 아니었다.
사슴 같은 눈망울에, 청초한 검은 머리.
게다가 다소곳하고 예의바른 행동까지.
사진으로 봤던 것과 거의 차이가 없었다.
'넘어가겠다! 아니지, 이미 넘어갔어! 어? 이미 넘어갔다고!'
상현은 속으로 비명을 지르며, 어떻게든 방송 준비를 마쳤다.
"어, 시작할까요?"
제대로 눈도 바라보지 못하고, 비스듬히 고개를 돌린 채 상현이 말했다.
그에 그녀가 웃으며 가까이 다가왔다.
"네, 그래요."
'흐아아아아…….'
상현이 정신적으로 비명을 지르고, 제목을 적어 넣었다.
[김상현 * 지으닝 합동방송!]
상현이 조심스레 말했다.
"이거 어떠세요?"
"잘하셨네요."
"네. 그럼 가겠습니다. 넵."
싱긋 보이는 미소에 상현이 벌벌 떨며, 카메라와 마이크를 켰다.
동시에.
주르르르륵.
폭발적인 반응이 밀려들었다.
화면이 켜지자마자 시청자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게 보였다.
[둘이 사귐?ㅋㅋㅋㅋㅋㅋ]
[뭐냐 갑자기ㅋㅋㅋㅋ]
[상현이 왤케 굳어있냐ㅋㅋㅋㅋㅋ]
두 사람의 모습에 온갖 채팅이 올라왔다.
상현이 합방 계획을 숨긴 탓도 있었고, 이지은의 이름값도 한몫했다.
이지은은 옆에서 부드럽게 웃고 있을 뿐이었다.
상현의 방송이라 배려해 주는 것이었지만, 상현은 경직된 몸으로 눈동자만 이리저리 굴리고 있었다.
늘어난 시청자는, 어느새 3만 명에 육박했다.
던전이 아님에도 어마어마한 수였다.
언제까지고 이렇게 있을 순 없었다.
"흐으읍! 하!"
상현이 크게 심호흡을 하더니.
"반갑습니다, 형님들! 그럼…… 2부 방송 진행하겠습니다! 오늘의 컨텐츠! 미녀 BJ와 합방! 바로 옆에 계신 이분은, 아시다시피!"
멘트를 치기 시작했다.
바로 손끝으로 이지은을 가리키는 상현.
아무런 약속도 되지 않은 행동이었지만, 그녀 역시 프로였다.
이지은이 고개를 살짝 숙여 보이곤, 수줍게 웃었다.
"안녕하세요! BJ지으닝입니다!"
양손을 가볍게 흔들며 인사하는 모습.
그에 시청자들이 채팅을 마구 올리며 환호했다.
['지은이충신' 님께서 별풍선 333개를 선물하셨습니다. 8,331번째로 팬클럽이 되셨습니다.]
[미친ㅋㅋㅋㅋ합방 클라스보소ㅋㅋㅋ]
['곰탱이' 님께서 별풍선 1,253개를 선물하셨습니다.]
[누나 사랑해요!!!!]
채팅 사이사이에 풍선이 쏟아지는 게 눈에 들어왔다.
드문드문 이지은의 극성팬들이 날뛰는 게 보였지만, 다른 채팅에 묻혀 제대로 보이지도 않았다.
상현이 다시 멘트를 이어갔다.
"우리 형님들! 지은 씨 보러 오신 형님들! 모두 와주셔서 감사하고, 반갑습니다! 풍선도 정말 감사하구요! 오늘 하루 정말 즐겁게! 방송 진행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씩 웃으며 이지은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참고로 오늘 받은 풍선은, 그대로 지은 씨께 드릴 생각입니다!"
동시에 이지은이 화들짝 놀라며 손을 마구 내저었다.
"아, 아니에요! 상현 씨 거죠! 제 방송도 아닌데요!"
그에 상현이 크게 웃음을 터트리더니, 바로 멘트를 이었다.
"푸하하핫! 그럴 생각… 이었으나! 이렇게 마음씨가 고우신 관계로, 제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반으로 딱!"
말하며 상현이 책상을 손날로 내려쳤다.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크ㅋㅋㅋ오졌다ㅋㅋㅋ]
[대본아니냐 이거?ㅋㅋㅋㅋㅋ]
[능수능란한거봐라ㅋㅋㅋㅋ]
채팅을 보며 상현은 여유롭게 방송을 진행하기 시작했다.
그에 이지은의 눈빛이 살짝 바뀌었으나 상현은 눈치 채지 못했다.
"우선 저랑 합방하게 되신 계기부터 들어볼까요?"
자연스레 이어가는 방송.
이지은이 수줍게 웃으며 멘트를 받았다.
"이번에 몬스터가 나왔을 때……."
'방송하기 전이랑 너무 다르잖아?'
동시에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까까지의 얼빵하던 상현은 어디에도 없었다.
아무런 합도 맞추지 않았음에도, 상현은 필요한 질문을 정확한 타이밍에 던져주고 있었다.
편하게 따라가기만 해도 방송 진행은 물 흐르듯 순조로웠다.
[상현이방송 오랜만에보는데ㅋㅋㅋ 날아올랐네ㅋㅋㅋㅋㅋ축하한다 상현아!!]
[ㄹㅇ;원탑급임 지금]
[누나 너무 이뻐요!!!]
시청자들의 반응 역시도 상당히 호의적이었다.
보통 남, 여 BJ가 합방을 할 땐 한쪽 팬들이 공격적으로 나오는 경향이 있었음에도, 거의 없다시피 했다.
상현이 채팅을 읽으며 활짝 웃었다.
"맞습니다! 정말 예쁘시죠? 저도 공감합니다. 그리고 방송…… 아! 저 첫 방송 때 와주셨던 분이죠? 너무 반갑습니다! 제가 닉네임 다 기억하거든요! 이게 다 형님들 덕분입니다!"
영락없이 들뜬 어린아이였다.
이지은은 왠지 모를 흐뭇함에 상현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상현의 멘트가 이어졌다.
"그래서 이번에 어머니 선물도 하나 사드리려구요. 물론 이건, 제가 반! 우리 시청자 형님들이 절반! 부담하신 거나 마찬가집니다! 다시 한 번 감사드리면서……."
"선물은 어떤 거 사가시려구요?"
그때 이지은이 멘트를 걸어왔다.
아까 목걸이라고 들었음에도, 상대방이 멘트를 칠 수 있도록 받쳐주는 것이었다.
그에 상현이 히죽 웃으며 말했다.
"멋진 목걸이! 하나 사갈 생각입니다. 마침 여기 지은 씨가 하고 계신 거 보이시죠, 형님들? 이거 괜찮지 않습니까?"
상현이 목걸이를 손으로 가리켰다.
채팅이 주르륵 올라왔다.
[넘 비싼거아님???]
[지은이가 쓰는거면 개비쌀거같은데ㅋㅋㅋ]
[상현이 진짜 날아올랐네ㅋㅋㅋ]
상현이 이지은을 돌아보았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지금 가격을 물어볼 셈이었다.
방송에 나가기 부담스러운 가격일지라도, 적당히 속여서 말하면 될 테니까.
상현이 눈을 빛내며 말했다.
"아, 지은 씨. 그 가슴이 얼마라고 하셨죠?"
"네?"
순간 정적이 흘렀다.
이지은이 눈썹을 치켜세우는 게 보였다.
무언가 잘못되었긴 한데, 그게 무언지 느껴지지가 않았다.
상현이 멍한 얼굴로 말했다.
"제가 방금 뭐라고 했죠?"
[미친ㅋㅋㅋㅋㅋㅋㅋㅋ]
[영정각이다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
[뉴스출연각 날카롭다ㅋㅋㅋ]
일그러진 이지은의 표정과, 미친 듯 올라오는 채팅.
그걸 확인하고 나서야 상현이 정신을 차렸다.
필사적인 외침이 터져 나왔다.
"으아아아아! 그게, 그게 아니라! 목걸이! 목걸이가 얼마냐고 물어본……!"
"상현 씨."
이지은이 말했다.
텁. 살벌한 목소리에 상현이 입을 닫았다.
그리고 조용히 이지은의 말을 기다렸다.
그녀가 말했다.
"구석 가서 손들고 계세요."
"옙."
스르륵.
대답과 동시에 상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조용히 뒤로 물러나 두 손을 들었다.
상현이 이지은의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
"잘못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