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3.
호롱 길드장실.
"잘 풀렸네. 그렇지?"
성대원은 장난스럽게 웃으며 물었다.
하지만 퉁명스런 대답이 돌아왔다.
"성급하셨습니다."
김희원은 인상을 찌푸린 채 말을 이었다.
"만약 생각하신대로 풀리지 않는다면, 박도진 길드원이 어떻게 행동했을지 아시지 않습니까."
"그래도 결과는 좋았잖……."
"길드장님."
"네엡, 미안합니다."
딱딱한 대답에 성대원이 양손을 들어보였다.
그녀의 말이 옳았다.
괜히 우겨서 좋을 게 없었다.
하지만 그건 그거였고, 그녀의 생각을 듣고 싶었다.
"그래도 도진이가 넘어가긴 한 것 같지? 아까 전화했을 때의 반응을 보면."
굽히지 않고 물어오는 그의 모습에 김희원이 한숨을 폭 내쉬었다.
"…예. 그렇긴 합니다."
"역시 그렇지? 끄으으으으. 좋아. 문제 하나는 해결됐고."
쭈우욱.
성대원이 기지개를 펴더니 다시 그녀를 바라보았다.
거짓말처럼 진지하게 바뀐 분위기.
방금까지의 장난스런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미믹이 보인 행동은 어떻게 생각하지?"
상현을 공격하기는커녕, 따라다니며 마치 애완동물처럼 굴었던 녀석.
그 모습을 떠올리며 성대원이 질문했다.
"사례가 없진 않았습니다."
김희원도 자세를 가다듬고 대답했다.
처음 길드에 들어왔을 땐 이런 변화가 익숙하지 않았지만, 이제는 어느 정도 맞출 자신이 있었다.
"호오, 사례가 있다는 건?"
"아시다시피, 그런 시도를 한 헌터들은 꽤 있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 매개체를 통한 것이었죠."
"매개체?"
성대원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녀가 설명을 덧붙였다.
"아이템입니다. 몬스터의 적대감을 낮추거나, 사용자의 친화력을 극대화시키는 아이템. 예를 들면, 투르카의 뿔피리 같은 것들이죠."
"흠."
성대원이 의자에 몸을 기대었다.
잠시 생각하던 그가 말했다.
"대부분이라는 건, 다른 경우도 있다는 건가?"
"예."
"보고해 봐."
성대원이 검지를 둥글게 돌리며 말했다.
진지해졌을 때의 습관이었다.
스륵. 스륵.
챙겨왔던 서류를 몇 장 넘기고, 김희원이 내용을 읽어 내려갔다.
"헌터 자체가 매개체가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자체 친화력이 극도로 높은 경우입니다. 하지만 매우 희귀한 경우로, 가능성은 낮습니다."
성대원은 여전히 검지를 움직이고 있었다.
"상현이 적성검사 때 친화력 얼마나 나왔지?"
"김상현 길드원은 적성검사를 하지 않았습니다."
"아차."
그가 손가락을 딱 튀겼다.
상현은 흑나비의 지원을 받았고, 덕분에 검사를 치를 필요가 없었다.
그 사실을 떠올리고 성대원이 다시 물었다.
"언제 온다고 했지?"
"다섯 시까지 온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성대원이 시계를 확인했다.
오후 네 시.
한 시간 정도 여유가 있었다.
"오자마자 검사부터 시키자고."
"예."
"만약 상현이도 그런 케이스라면… 재밌어지겠군. 아, 잠깐."
성대원이 말을 멈추었다.
무언가 빠트리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생각이 날 듯 말 듯했다.
그리고 잠시 후, 끙끙대던 성대원이 질문했다.
"그거. 요정 항아리. 그 아이템이 그런 역할을 했을 가능성은?"
물어보면서도 큰 기대는 들지 않았다.
하지만 김희원의 대답은 예상과 달랐다.
"한 달 전이라면 전혀 없다고 말씀드렸겠지만… 지금까지의 상황을 봤을 땐, 일말의 가능성은 있습니다."
"그래?"
성대원이 의외라는 듯 눈썹을 치켜세웠다.
그녀가 설명을 이었다.
"김상현 길드원이 가진 항아리는 이미 일반적인 요정 항아리 개체와 비교했을 때 상당한 차이점이 있습니다. 어떤 요인에 의한 건진 모르지만, 돌연변이를 일으킨 것 같습니다. 그리고 몇 가지 선례에 따르면……."
스륵. 스륵. 스륵.
다시 종이를 몇 장 넘기는 김희원.
성대원은 흥미롭다는 듯 눈을 빛내고 있었다.
그녀가 자료를 찾았는지 손을 멈추었다.
"돌연변이를 일으킨 아이템은 큰 폭으로 성장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등급 자체가 올라갈 정도는 아니고, 해당 등급에서 가장 뛰어난 정도라고 나와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케이프 길드의 블레이저가……."
그때 성대원이 손을 들어 말을 멈추었다.
"그럼 큰 의미 없잖아. 항아리는 C급이니까. 몬스터를 길들일 정도면 무조건 A급 아이템 아냐?"
"옳은 말씀이지만, 변수는 항상 존재합니다."
그 말에 김희원은 고개를 수긍하면서도, 혹시 모를 가능성을 제시했다.
성대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일단 상현이 적성검사부터 시켜보자고. 그건 그 다음 문제야. 그럼 미믹 건도 해결됐고…, 다음으로 넘어가 볼까?"
다시 그의 분위기가 확 가벼워졌다.
김희원은 호흡이 한결 편해진 걸 느꼈다.
마치 방 안의 공기 자체가 바뀐 듯 했다.
그리고 성대원이 슬쩍 질문을 던졌다.
"이번에 상현이가 얻은 거 말이야. 에너지 결정. 예산 계획에 없던 수익 아냐?"
"안 됩니다."
"아직 아무 말도 안 했는데?"
김희원의 단호한 대답에 성대원이 울상을 지었다.
하지만 김희원은 표정을 풀지 않았다.
"분배금 늘려주자고 말씀을 하시려는 거 아닙니까?"
"……."
안 봐도 비디오였다.
성대원은 상현을 대놓고 아끼고 있었다.
그리고 그가 원하는 건, 길드에서 떼어가는 수수료를 낮추자는 게 분명했다.
흑나비 같은 일부를 제외하고, 일반적인 길드의 이득 분배 방식은 다음과 같았다.
길드원이 던전에서 얻은 아이템을 모두 가져간 후, 세금을 지불하고 남은 금액의 절반을 '급여' 명목으로 다시 지급하는 형식이었다.
일단 아이템을 얻는 순간 '길드 소유'로 넘어가는 식이었고, 그래서 길드의 예산안이라는 건 길드원들의 공략 계획에 맞추어 유동적으로 짜는 것이었다.
물론 그런 시스템에 불만을 가진 헌터들이 많았지만, 그나마 유지되는 건 '모두'가 그렇게 한다는 전제 덕분이었다.
그런데 성대원은 그걸 어기자고 말하고 있었다.
"아무리 길드장님이라고 하셔도, 그건 월권입니다."
그녀가 꿋꿋하게 쐐기를 박았다.
그러자 우울한 얼굴로 성대원이 웅얼거렸다.
"어, 어차피 아무도 모르지 않을까? 게다가 이번에 상현이 아이템 연구도 해야 하고, 또……."
김희원은 횡설수설하는 그의 모습을 바라보다가 한숨을 폭 내쉬었다.
"하아. 길드 전체 예산은 변동이 없어야 합니다. 돈을 더 주고 싶으시다면, 다른 곳의 예산을 줄여서 주시죠."
성대원의 표정이 확 밝아졌다.
"그럼 줘도 돼?"
"이번 달 길드장님 용돈. 거기서 차감하면 되지 않습니까."
"……."
다시 어두워지는 얼굴.
그에 김희원이 샐쭉하니 한마디 덧붙였다.
"그래도…… 이번 달엔 이미 차감한 게 많으니, 거기서 제하도록 하겠습니다."
"정말?"
"이번 한 번뿐입니다. 그것도 기존의 절반만. 그 이상은 안 됩니다."
"어우, 당연하지! 그게 어디야. 상현이 이 녀석, 엄청 좋아하겠는데?"
성대원은 아이처럼 해맑은 얼굴이었다.
김희원은 픽 웃곤 시선을 시계로 돌렸다.
곧 상현이 올 시간이었다.
*** 상현은 박도진과 함께 길드에 도착했다.
길드에 소속된 이상 던전 공략을 마쳤다는 보고와, 아이템 정산 절차를 밟아야 했다.
"길드장실로 바로 가요?"
"예."
상현의 질문에 박도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대부분 관련 부서에서 업무를 마치고 돌아가는 식이었지만, 두 사람은 성대원의 호출을 받았기에 직접 그에게 보고를 해야 했다.
곧 길드장실이라는 명패가 눈에 들어왔다.
똑똑똑.
상현이 노크하며 말했다.
"김상현입니다."
"들어와."
스르륵.
문은 부드럽게 열렸다.
"안녕하세요."
상현이 고개를 꾸벅해보였다.
며칠 전과 하나도 바뀌지 않은 모습.
"잘 봤다. 고생했어. 일단……."
성대원은 책상에 앉은 채 김희원에게 눈짓을 보냈다.
"바로 검사부터 진행하자고."
"예? 검사요?"
상현이 어벙하게 되물었다.
그에 성대원이 씩 웃으며 말했다.
"적성검사."
"아니, 적성검사라니… 저는 이미 길잡이로……."
"가시죠."
어느새 다가온 김희원이 상현을 잡아끌었다.
상현은 영문도 모른 채 그녀에게 끌려갔다.
그리고 방 안에는 성대원과 박도진만이 남았다.
"우리는 이야기 좀 할까? 일단 앉자고."
성대원이 슥 눈치를 보며 말했다.
그러나 박도진은 별 반응 없이 자리에 앉았다.
그에 성대원이 고개를 갸웃했다.
'뭐지? 분장 안 했나?'
자신의 조언대로 했다면, 분명 지금쯤 화를 내고 있어야 했다.
상현에게 놀림을 받았을 게 분명했으니까.
하지만 박도진의 행동은 너무나 태연했다.
'그럴 리가 없는데.'
성대원이 조심스레 그를 쳐다보았다.
늘 지시에 철저히 따르던 박도진이었다.
안 했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이 무미건조한 반응은 뭐란 말인가.
"어땠어?"
결국 성대원이 먼저 운을 뗐다.
그에 박도진은 진지한 얼굴로 대답했다.
"길드장님의 말씀대로였습니다. 멋대로 판단하고 의심한 점. 사과드리겠습니다."
그리고 고개를 깊게 숙이는 그의 모습.
성대원은 더더욱 어처구니가 없었다.
"불만은 없고? 설마 저번처럼 파업을 하겠다거나……."
"그럴 일 없을 겁니다."
박도진이 단호히 말했다.
그런 다음 숨을 깊게 들이쉬더니, 잠깐 눈을 감았다가 떴다.
그러고 나서 말을 이었다.
"그는… 충분히 제가 믿고 따를 만한 사람입니다."
"……."
성대원이 입을 쩍 벌렸다.
지금까지 박도진의 입에서 저런 말이 몇 번이나 나왔던가.
"어, 어, 그래. 잘 됐네."
성대원은 어버버하며 대답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궁금해 미칠 지경이었다.
하지만 박도진의 모습은 방송이 끝날 때까지 나오지 않았었다.
그렇다고 박도진은 물론이거니와, 상현에게 물어볼 수도 없었다.
말하는 순간 장난을 쳤다는 게 들킬 테니까.
'그래, 뭐……. 일이라도 잘 풀린 게 어디야.'
괜한 아쉬움에 성대원이 입맛을 다셨다.
*** 길잡이용 적성검사는 상황을 던져주고, 해결책을 요구하는 식이었다.
판단력, 결단력 등 각 능력별로 분류 문제들이 분류되는데, 한 가지 항목을 마칠 때마다 해당 능력치가 수치화되어 화면에 나타나는 식이었다.
또한 모든 항목들은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었는데, 예를 들어 '결단력'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더라도, '판단력'이 떨어진다면 큰 폭으로 점수가 떨어지는 것이었다.
잘못된 판단을 밀어붙이는 결과가 나오기 때문이었다.
그런 복잡한 구조를 가지고 있음에도, 이 검사표는 헌터연합에서 공식적으로 길드에 제공하는 것들이었기에 신뢰도가 상당히 높았다.
상현은 마지막 문제를 풀어내고, 고개를 들었다.
"다 했어요."
"페이지 넘겨드리겠습니다. 이번이 마지막. 판단력을 평가하는 문제들입니다."
김희원이 바로 말하며 화면을 바꾸었다.
상현은 다시 머리를 부여잡고 문제를 풀기 시작했다.
곧 방금 시험의 결과가 화면에 출력되었다.
100점 만점에 92점. 그리고 점수 옆에 몇 줄의 주석이 추가로 달려 있었다.
놀라운 결과이긴 했으나, 예상했던 바이기도 했다.
'자격시험에서 보여준 게 있으니.'
헌터자격시험.
그 첫 단계에서 상현은 숲 전체를 머릿속에 그리고, 지형지물을 적절하게 이용했다. 어지간한 능력으로는 감당할 수준이 아니었다.
'괜찮네.'
그녀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는 친화력을 확인하고자 데려온 것이었지만, 이쯤 되면 지금까지 나온 결과만으로도 장비 이용료는 충당할 수 있었다.
길드에 있어 가장 중요한 자산은 뛰어난 길드원이었으니까.
김희원은 다시 상현의 뒤로 다가가 문제풀이를 지켜보았다.
방금 막 풀었는지 화면이 바뀌면서 다음 문제가 떠올랐다.
[왼쪽과 오른쪽. 두 개의 길이 있다. 왼쪽 길은 30분이면 통과할 수 있고, 오른쪽은 2시간이 걸린다. 잘못된 방향을 선택하면 죽는다. 어느 쪽으로 갈 것인가.]
문제는 선택을 요구하고 있었다.
양자택일의 문제인데, 힌트라고는 고작 시간이 전부.
'조금은 고민해야 할 걸?'
김희원은 그렇게 생각하며 지켜보았다.
하지만 상현은, 조금의 망설임조차 없이 답을 적어 넣었다.
[안 간다.]
그리고 대수롭지 않다는 듯 문제를 넘겨버리는 상현.
지켜보던 김희원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이 정도면 판단력 역시 높은 점수를 받을 게 분명했다.
'길드장님이 좋아하시겠군.'
생각하는 사이에도 상현은 쭉쭉 문제를 풀어나가고 있었다.
역시나 얼마 지나지 않아 마지막 페이지가 나왔다.
"어, 끝났네요?"
"옆으로 이동하시면 됩니다."
김희원이 상현을 옆의 기계로 이끌었다.
이제 문제풀이는 끝난 셈이었다.
다음엔 친화력, 감응력 따위의 선천적인 능력을 기계로 확인할 차례였다.
아주 잠깐이면 끝나는 과정이었지만, 검사 직후에 극심한 피로를 느끼기 때문에 문제풀이를 먼저 시킨 것이었다.
철컥. 칙. 칙.
곧 준비가 끝났다.
"이거 위험한 거 아니죠?"
"아닙니다."
살짝 겁에 질린 듯한 상현을 확인하고, 그녀가 기계를 가동시켰다.
위이이이잉.
기계가 정신없이 돌아갔다.
시간은 기껏해야 1분 정도였다.
철컥.
기계가 멈추었다.
상현은 지친 듯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어우, 죽겠네. 이거 그냥 앉아만 있었는데도 엄청 힘드네요?"
상현이 투덜거렸지만 김희원은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그녀는 결과가 나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앞서 보여준 모습에 기대감이 증폭된 탓이었다.
'저런 재능에, 친화력까지 타고난 사람이라면…….'
잠시 후.
팟.
결과표가 화면에 떠올랐다.
동시에 김희원의 입이 천천히 벌어졌다.
그녀가 어처구니없다는 듯 멍하니 중얼거렸다.
"이게 무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