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1.
3번방으로 향하는 통로 안.
박도진은 몸을 숨긴 채 상현의 뒤를 따르고 있었다.
"그러니까요! 제가 너무 긴장해서……."
유쾌한 멘트가 통로를 웅웅 울렸다.
쭉쭉 나아가는 게 걱정 따윈 조금도 없는 듯 했다.
'다음은 쉽지 않을 텐데.'
박도진이 생각했다.
팔렘 신전이 B급이라는 평가를 받은 데에는, 3번방이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3번방의 UEL(에너지 레벨 수치)이 압도적으로 높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3번방의 몬스터가 가장 강하다는 뜻이기도 했다.
'미믹이나 가고일 따위는 비교도 안 돼.'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바로 걱정이 뒤따랐다.
앞의 방들을 통과한 방식들은, 모두 그로선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것들이었다.
하지만 완벽하진 않았다.
미믹을 길들인다거나, 그런 미믹을 이용해 가고일을 잡아낸 건 예상치 못했던 일임에 분명했다.
이전까진 그런 변수들마저 훌륭히 이용해 내며 최상의 결과를 얻어냈다.
하지만 이번엔 다를 터였다.
앞의 방들처럼 쉽게 넘어갈 만한 곳이 아니었다.
'내가…….'
박도진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는 이미 상현의 실력을 충분히 확인한 상태였다.
또한 상현이 이 던전에 온 것은, 온전히 그 자신 때문이었다.
만약 다음 방에서 문제가 발생하고, 그로 인해 상현이 다치기라도 한다면.
박도진 자신은 물론이거니와 성대원 역시도 크게 실망할 게 분명했다.
'말려야 한다.'
내키진 않았지만, 그게 나을 것 같았다.
결심을 굳힌 박도진이 발을 뗐다.
저벅. 저벅. 저벅.
발걸음 소리가 거부감 때문인지, 유독 크게 느껴졌다.
그렇지만 망설일 시간은 없었다.
상현이 다음 방에 도착하기까진 고작 몇 걸음도 남지 않은 상황이었으니까.
거침없이 다가간 박도진이 상현의 팔을 탁 잡았다.
"으븝브!"
상현이 기겁하며 그를 돌아보았다.
눈가에 의문이 가득했다.
하지만 박도진은 무시하고, 단호히 말했다.
"돌아가는 게 낫습니다. 충분……."
"으에에에에! 에이이이!"
동시에 상현이 발작하듯 몸을 뒤틀었다.
핸드폰을 급히 두드리는 게, 마이크를 끄는 것 같았다.
어깨 너머로 얼핏 채팅이 눈에 들어왔다.
[파티원 있었네ㅋㅋㅋㅋㅋㅋㅋㅋ]
[사람목소리 맞지?ㅋㅋㅋㅋㅋㅋㅋ]
[검거완료! ㅋㅋㅋㅋㅋㅋㅋ]
정신없이 올라가는 채팅은 하나같이 상현을 의심하고 있었다.
폐를 끼쳤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도진이 자신도 모르게 반박했다.
"파티원 아닙니다. 저는 그냥 던전 입구만……."
"마이크 껐어요."
하지만 상현이 미간을 좁히며 말을 끊었다.
박도진이 머쓱하게 입을 오물거렸다.
상현은 고개를 절레절레 젓더니, 추궁하듯 말했다.
"아니, 방송 중에 이렇게 나오시면 어떡해요."
"죄송합니다."
"아뇨. 그보다. 돌아가는 게 낫다니.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상현이 혹시나 하는 얼굴로 물었다.
정말 무슨 일이 있나 하는 분위기였다.
그에 박도진이 자신감을 얻었다.
3번방의 위험성을 알려준다면, 그의 생각대로 될 것 같았다.
"제대로 모르시는 것 같아 말씀드립니다. 다음 방은 정말 위험합니다. 앞의 방 두 개를 합쳐도, 3번방만큼은… 안 됩니다."
박도진의 목소리가 조금씩 사그라들었다.
생각과는 달리, 말을 하면 할수록 상현의 표정이 조금씩 일그러지고 있었다.
그가 황급히 말을 덧붙였다.
"능력이라면 지금까지 보여주신 걸로도 충분합니다. 월광 소나타. 파티원으로서 같이 가겠습니다. 그러니 그냥 돌아가시는 게……."
그리고 말을 끝낼 무렵엔, 완전히 짜증스럽게 바뀌어있었다.
"하아아."
상현이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그리고 타이르듯 말했다.
"저기, 박도진 씨."
"예."
"이번 방에서 보여드려야 되는데, 돌아가자뇨? 아무 걱정 마시고, 그냥 지켜보세요."
상현은 쌀쌀맞게 말했다.
아무래도 박도진의 말이 먹힐 것 같지 않았다.
답답한 심정에 박도진이 받아쳤다.
"괜히 다치기라도 하면……."
"처음에 약속했던 거. 잊으셨어요?"
박도진이 입을 닫았다.
약속이라니.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란 말인가.
"안 도와주기로 하셨잖아요? 저 도는 거 놓치지나 마시고, 처음부터 끝까지 정확히 보세요."
박도진이 입을 쩍 벌렸다.
기가 차서 말이 나오질 않았다.
"하지만 이번엔 경우가……."
잠시 무어라 우물거리던 박도진이 다시 반박하려 입을 뗐으나.
"저 이제 방송 수습 좀 해야 되니까. 화면에 나오실 거 아니면 좀 빠져 주실래요?"
상현은 절대 굽히지 않겠다는 태도였다.
"김상현 씨."
"방송 켜야 돼요."
상현은 손바닥을 딱 펴 보이며 박도진을 막았다.
단호한 분위기였다.
그리고 할 말 끝났다는 듯, 다시 태연히 멘트를 치는 상현.
"아, 형님들! 사람은 맞는데, 제가 C급이잖아요? 그래서 던전 입구만 열어주실 길드원 한 분 모셔온 겁니다. 에이, 저 거짓말 안 하죠! 방송요? 아, 방송에 얼굴 나오는 거 싫다고 하셔서……."
그 모습에 박도진은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런 박도진을 뒤로 하고, 상현은 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었다.
'요 녀석아, 대단하지?'
실실거리는 웃음이 절로 나왔다.
하지만 곧 상현이 마음을 다잡았다.
아직 던전은 끝나지 않았고, 긴장을 풀 때가 아니었으니까.
[ㅋㅋㅋㅋㅋ아닌거같은데]
[진짜 그냥 길드원 맞음?]
[뒤에서 몬스터 잡아주는거 아니냐 ㅋㅋㅋㅋ]
아직 시청자들은 그를 의심하고 있었다.
하지만 장난스러운 분위기였고, 상현은 여유롭게 받아칠 수 있었다.
"에이, 형님들! 저 모르십니까? 상현이에요! 제가 조작 같은 거 할 사람으로 보이세요?"
[ㅇㅈㅋㅋㅋㅋ]
[그건ㅇㅈㅋㅋㅋ]
고작 몇 마디에 채팅 분위기가 다시 상현에게로 돌아왔다.
"감사합니다! 아무튼… 일단 설명을 좀 드리고 갈 텐데."
잠깐 숨을 들이쉰 다음, 상현이 말을 쏟아냈다.
"전체적으로 뚫린 구조입니다. 꽤 넓어요. 그리고 지붕을 지탱하는 기둥이, 아주 큰 기둥이 네 개! 또, 몬스터는… 안으로 들어가서 우측 기둥에 수호병 셋! 그리고 정면 좌측 기둥에 둘! 정면엔 수호기사 한 놈이랑, 수호병 세 마리가 있죠."
상현이 다시 숨을 골랐다.
"후, 그러면 열쇠는 어디 있느냐? 정면. 수호기사를 지나면 제단이 하나 있거든요? 그 위에 얌전히 놓여 있을 겁니다. 그 친구를 챙겨서, 우측 벽에 있는 출구로 빠져 나가면… 마무리!"
카메라를 돌리고, 상현이 여유롭게 웃어보였다.
"어때요, 정말 쉽겠죠?"
[뭔소린지 잘 모르겠는데ㅋㅋㅋㅋ]
[어쨌든 어렵다는 소린듯ㅋㅋ]
[ㅇㅈㅋㅋㅋㅋㅋㅋ]
그 반응에 상현이 다시 멘트를 추가했다.
"정리 한번 해드릴게요. 총 몬스터는, 체인메일을 입은 수호병 여덟 마리랑, 거대한 대장급 몬스터! 수호기사가 한 놈 있죠. 말을 타고 다니는데, 그 말도 덩치가, 어휴! 아무튼, 제가 가진 전력은… 미믹이랑 뾰롱이! 그리고, 도망치는 거 하나는 기가 막히는 김상현!"
팟. 팟. 팟.
미믹, 요정, 그리고 상현 자신의 모습이 카메라에 순서대로 잡혔다.
"하지만……."
상현이 거기서 검지를 세워 좌우로 저었다.
"이번엔 이 친구들의 도움 없이 깰 예정입니다. 어떻게 할지 궁금하지 않으세요?"
상현이 이를 드러내며 활짝 웃었다.
"지켜보시죠."
***
"자리에 앉아 있습니다. 보이시지 않습니까."
박도진은 우울하게 말했다.
하지만 전화 너머, 성대원은 유쾌하게 대답했다.
- 잠깐 쉬었다 간다며? 카메라에 안 잡혀.
"아. 죄송합니다. 그냥 앉아있습니다."
박도진은 그렇게 말하고, 답답하다는 듯 말을 이었다.
"멈춰 주십시오. 3번방. 정말 위험한 거 아시지 않습니까. 저는 이미 돕지 않겠다는 약속을 했습니다."
- 그냥 도와주면 되잖아?
큭큭대는 성대원의 목소리가 돌아왔다.
박도진이 짜증을 담아 대답했다.
"약속을 했지 않습니까."
- 그놈의 약속은……. 어이구, 도와주고 싶어요?
아이를 어르는 것 같은 말투였다.
박도진은 불쾌함에 인상을 찌푸렸으나, 딱히 따지고 들진 않았다.
성대원은 충분히 그렇게 할 자격이 있었으니까.
다시 성대원이 말하기 시작했다.
- 어지간히 마음에 들었나보네. 흐으음. 뭐, 좋아. 잘 들어봐.
"예."
박도진이 긴장했다.
나름 길드장이 하는 말이니, 실언은 아닐 터였다.
곧 성대원이 진지한 어조로 말했다.
- 원피스 봤지? 루피가 동료를 구할 때…….
"하아아."
절로 신음이 터져 나왔다.
박도진이 이마를 부여잡고 말했다.
"장난칠 여유 없습니다."
- 너무 단호한 거 아냐? 그래도 길드장인데…….
성대원이 앓는 소리를 했지만, 박도진은 신경 쓰지 않았다.
애초에 분위기를 풀고자 습관적으로 던지는 말장난이었다.
역시나, 곧 진지하게 가라앉았다.
- 약속은 어길 수 없다. 그런데 도와주고 싶다. 맞지?
"그냥 멈추는 방법도 있습니다."
- 무슨 핑계로? 위험하다고? 내가 보낸 건데, 이제 와서 갑자기? 너 같으면 믿겠어?
"……."
질문 세례에 박도진이 입을 다물었다.
성대원의 말이 옳았다.
"그냥 보내란 말씀이십니까."
- 그러면 말이야, 이런 건 어때?
다시 웃음기가 서리는 목소리.
- 잘 들어봐. 어차피 인간형 몬스터잖아? 그러니까, 아예 네가 아니라, 다른 존재로…….
장황한 설명이 이어졌다.
듣는 박도진의 얼굴은 구겨졌다가, 펴지고, 다시 일그러지길 끊임없이 반복했다.
설명이 끝나고 박도진의 시선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가 양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알겠습니다."
*** '이 사람 어디 갔지?'
상현이 계속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박도진에게 보여주기 위해 들어온 던전인데, 아무리 찾아도 그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삐졌나?'
피식 웃음이 터졌다.
그 거대한 체구가 툴툴대는 모습이 떠오른 탓이었다.
그리고 잠시 후.
고민하던 상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금 박도진이 공략하는 걸 못 본다고 하더라도, 나중에 영상으로 확인하면 되는 일이었다.
"자, 슬슬 가볼까요?"
상현이 엉덩이를 툭툭 털며 말했다.
[드디어 가네ㅋㅋㅋㅋ]
[진짜 혼자할거임? 뾰롱이 없이?]
[초심컨텐츠임?ㅋㅋㅋㅋㅋㅋ]
시청자들의 질문이 이어졌다.
"당연한 거 아닙니까, 형님들? 약속인데요."
바로 대답하며 상현이 입구 근처로 다가섰다.
한눈에 들어오는 내부 구조.
그르륵 대는 수호병들이 눈에 들어왔다.
체인메일을 걸치고, 그 위에 붉은 역십자가가 그려진 옷을 입은 녀석들.
손에 들린 롱소드가 움직일 때마다 빛을 반사하며 번쩍거렸다.
"휘유!"
내심 무섭다는 듯 휘파람을 불며 상현이 말했다.
"저거 보이시죠? 저 친구들이 제가 말했던 수호병입니다. 이야, 저기 한 대 맞으면…… 어우, 뼈도 못 추리겠는데요? 그리고 저기 정면에. 말 탄 친구."
상현이 카메라를 방의 중앙으로 돌렸다.
수호병의 두 배에 가까운 덩치.
무기 역시도 덩치에 걸맞은 거대한 랜스였다.
게다가 녀석이 타고 있는 말은 온 몸을 철갑으로 두르고 있었다.
'어우, 스쳐도 사망이겠는데?'
그렇게 생각하며 상현이 멘트를 이었다.
"저 친구가 이 방 대장입니다. 수호기사라고 했던 거 기억나시죠, 형님들?"
[말이랑 싸워도 지겠는데ㅋㅋㅋㅋㅋㅋ]
[무기가 상현이보다 크잖아 ㅋㅋㅋ]
[이걸 혼자돌겠다고??? 미친거아니냐ㅋㅋㅋㅋ]
연달아 올라오는 채팅.
시청자들은 몹시 들떠 있었다.
'추천 좀 받고… 아니지.'
상현이 생각을 접었다.
괜히 띄워놓은 분위기만 망칠 수 있었다.
"자, 형님들! 그럼……."
상현이 상체를 살짝 낮추고.
"바로 가겠습니다!"
방 안으로 몸을 날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