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0.
상현은 거의 패닉 상태였다.
'아니 씨발, 열쇠 어딨냐고!'
아무리 생각해도 뭐가 문젠지 알 수가 없었다.
심장이 뛰는 게 느껴지고, 호흡이 거칠어졌다.
쩌적. 쩌적. 쩌저저적.
그러는 와중에도 균열은 점점 커져가고 있었다.
그걸 확인하고 상현이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이럴 시간이 없어.'
냉정을 되찾아야 했다.
상현은 다시 그때 봤던 영상을 돌이켜보았다.
'파티가 대치하다가, 가서 물을 머리부터 뿌렸어. 그리고 오른쪽 발목에 열쇠가…… 잠깐.'
뭔가 알 듯 말 듯 했다.
'그때 가고일이 바라보고 있던 문이… 입구였나? 아냐, 망할! 출구 쪽 보고 있었어!'
순간 머리라도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아까 입구로 들어왔을 때의 가고일은 상현이 들어온 방향, 즉 입구를 쳐다보는 위치였다.
그 말은 열쇠가 있는 발목이 반대편이라는 뜻이었다.
"으아아아아!"
상현이 비명을 지르며 급히 몸을 움직였다.
"반대편이었습니다, 형님들! 맙소사!"
촥. 촥. 촥.
상현이 미친 듯 분무기로 물을 뿌렸다.
다시 껍데기가 벗겨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머리맡으로 돌가루가 마구 떨어지고 있었다.
가고일이 깨어나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곧 열쇠가 모습을 드러냈다.
"으랴압!"
상현은 열쇠를 낚아채고, 바로 출구를 향해 뛰기 시작했다.
이어서, 마치 가래가 끓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가고일이 깨어났다는 뜻이었다.
"구루루룩. 구루루룩."
"흐아아아아!"
그에 상현이 기합을 내지르며 속도를 올렸다.
'간격 1.3초. 왼쪽부터.'
그리고 몸을 살짝 낮추어, 언제든 구를 준비를 했다.
"구루루룩. 구룩. 구룩."
가고일의 울음소리가 짧게 끊어지다가, 아주 잠깐 멈추었다.
바로 지금이었다.
"푸엑."
무언가를 뱉어내는 듯한 소리.
상현이 왼쪽으로 몸을 날렸다.
"안 맞는다아아아!"
철퍽.
방금까지 있던 자리에, 녹색의 끈적한 액체가 떨어졌다.
파스스스슥!
미믹 때보다 더 빠른 속도로 녹아내리는 지면.
상현은 그 모습에 순간 굳었다가, 다시 튕기듯 몸을 날렸다.
극도의 긴장 상태라 그런지 바닥을 굴렀음에도 전혀 아프지 않았다.
'한 번 더. 오른쪽.'
다시 문을 향해 달리다가.
"구룩. 구룩. 푸엑!"
같은 소리와 함께, 이번엔 오른쪽으로 몸을 날렸다.
"피한다아아아!"
다시 지독한 연기가 피어올랐다.
두 번 피했으니, 빠져나가는 일만 남았다.
탓탓탓.
상현이 출구를 향해 전력으로 달렸다.
그리고 구멍에 던지듯 열쇠를 끼워 넣고, 돌렸다.
구르르르릉!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빨리, 빨리 열려라! 빨리!"
상현이 발을 동동 구르며 외쳤다.
그리고 다시 끔찍한 소리가 들려왔다.
"구룩. 구룩. 구룩."
상현은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자핏 공포심에 도망치게 될 지도 몰랐으니까.
'그럼 실패야.'
가고일이 움직이지 않고 독을 쏘는 건, 세 번까지였다.
그리고 그 이후엔 직접 달려들어 공격하는 식이었다.
무조건 이번에 나가는 수밖에 없었다.
구르르릉.
마침내 간신히 들어 갈만한 틈이 열렸다.
상현이 안으로 몸을 던져 넣었다.
파악! 푸스스스.
그와 동시에, 바로 뒤에서 무언가가 타들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간발의 차이였다.
가고일의 독이 벽을 때린 것이었다.
"후우우."
상현은 긴 한숨을 내쉬며 쓰러지듯 누웠다.
일단 방을 벗어난 이상 몬스터의 공격을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가고일은 다시 석상으로 변해 다음 헌터를 기다리게 될 것이었다.
그제야 여유를 되찾은 상현이 채팅창을 확인했다.
[와 ㅋㅋㅋ 개쩐다진짜 ㅋㅋㅋㅋㅋ]
[명불허전 갓상현ㅋㅋㅋㅋ]
[설계 지렸다 ㄹㅇㅋㅋㅋㅋㅋ]
채팅이 쉴 새 없이 올라오고 있었다.
위험했긴 했지만, 이 정도 반응을 얻어냈다면 손해는 아니었다.
"감사합니다! 형님들, 저 상현이에요. 지금까지 모두 계획대로……."
"그라라라락!"
웃으며 말하던 상현이 입을 닫았다.
가고일의 포효소리였다.
'뭐야. 공격 대상이 없을 텐데?'
순간 굳은 채 생각하던 상현이, 곧 누군가를 떠올렸다.
'박도진!'
그가 따라오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지 못했었다.
상현이 급히 몸을 일으켜 방 안을 들여다보았다.
하지만 눈앞에 보이는 거라곤 계단을 막 올라온 미믹의 모습뿐이었다.
'그럼 박도진은?'
탁탁.
그때 뒤에서 누군가가 가볍게 발을 굴렀다.
카메라는 그대로 방 안을 찍으며, 상현이 그쪽을 바라보았다.
"……?"
박도진이 태연한 얼굴로 서있는 게 보였다.
'아니, 대체 언제 온 거야? 잠깐, 이 사람 때문이 아니라면…….'
상현이 눈을 크게 뜨곤, 다시 방 안을 쳐다보았다.
그렇다면 가고일이 움직이기 시작한 이유가, 미믹 때문이라는 소리였다.
'몬스터가… 다른 몬스터한테 적의를 느낀다고?'
극도의 당황스러움 속에서, 두 몬스터가 싸우기 시작했다.
"크아아앙!"
"구루루룩. 구루루룩."
선공은 미믹이었다.
가고일을 향해 날카롭게 쏘아내는 혓바닥.
하지만 가고일은 가볍게 피해낸 후, 달려들어 날개로 미믹을 후려쳤다.
쾅!
미믹이 벽에 날아가 부딪혔다.
큰 소리와 함께 벽이 깊숙한 홈이 파였다.
'하, 이거 참.'
상현이 머리를 살짝 흔들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지는 몰랐다.
하지만 당장 중요한 건, 두 몬스터가 서로 싸우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포켓몬 실사판이냐 ㅋㅋㅋㅋㅋㅋㅋ]
[미믹이 지겟는데 ㅋㅋㅋ 이길라나ㅋㅋㅋㅋ]
[몸통박치기 시켜라 ㅋㅋㅋㅋㅋㅋㅋ]
시청자들이 지금 상황에 엄청난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사실.
또한 미믹이 이기길 원하고 있다는 사실.
그 두 가지가 상현을 움직이게 만들었다.
'아, 이거 졸지에 포켓몬 찍게 생겼는데?'
상현이 푸념하며 상황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분위기만 놓고 봤을 땐 가고일이 일방적인 우위를 점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상현은 조금 다르게 생각하고 있었다.
'실질적인 데미지는 얼마 안 돼. 미믹 방어력으로 충분히 버틸 수 있어. 하지만 독이라면 어떨지 모르겠는데. 그리고 가고일의 움직임. 공격을 무조건 피하려고 하고 있어.'
그때 가고일이 훌쩍 물러나는 게 보였다.
"구룩. 구룩. 구룩."
그리고 예의 그 목울음을 내더니.
"푸엑!"
끈적한 독액을 쏘아냈고, 미믹은 피하지 못했다.
치이이익!
주변의 땅이 뭉클거리며 녹아내렸다.
하지만 미믹에게는 특별한 변화가 보이지 않았다.
그 상태에서 미믹이 몇 번 깡총거렸다.
그러자 뒤덮었던 독액이 말끔히 벗겨졌다.
상현이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웃었다.
'코팅이라도 돼 있는 건가? 아무튼 데미지는 아예 안 입는 것 같은데. 그러면 느긋하게 작전을 짜도 되겠…….'
그때 가고일이 다시 독을 쏘아냈다.
마침 미믹 역시도 가고일을 공격하려던 참이었다.
그리고.
"크아아아아!"
미믹이 고통스럽다는 듯 몸을 마구 뒤틀었다.
벌린 입 안으로 독액이 들어간 것이었다.
상현은 벙 찐 얼굴로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아니, 왜? 오히려 안쪽이 더 안전한 거 아니었어?'
미믹의 몸체 내부는 모든 공격을 무시한다고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미믹이 보이는 행동은 그런 게 아닌 것 같았다.
궁금했지만, 이유를 알아낼 여유가 없었다.
시청자들이 잔뜩 달아올라 있었으니까.
[야 미믹 좀 도와주라ㅡㅡ]
[트레이너 뭐하냐ㅡㅡ 일 안하냐]
[지겠다 저러다가;; 좀 도와주셈]
슬슬 나서야 할 때였다.
상현이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일단 혓바닥부터 맞추게 해보자. 가고일이 피하는 덴 이유가 있겠지.'
방 안으로 슬쩍 들어섰지만, 두 몬스터는 서로를 견제하느라 상현에겐 관심조차 주지 않았다.
그리고 다시 미믹이 입을 벌린 순간.
"약간 아래로! 발보다 낮게 쏴!"
상현이 빠르게 외쳤다.
다행히 알아들었는지, 미믹이 각도를 확 낮추었다.
날카롭게 쏘아져 나가는 공격.
가고일은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상체를 숙였다.
상현이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구루룩!"
가고일이 휘청거리며 목울음을 흘렸다.
혓바닥이 날개를 정확히 맞춘 탓이었다.
날개는 마치 불에 탄 것처럼, 재를 날리며 바스러졌다.
가고일이 잔뜩 분노한 채 상현을 쳐다보았다.
하지만 방의 경계에 서있던 상현이 슬쩍 밖으로 이동하자, 자연스럽게 어그로가 다시 미믹에게로 넘어갔다.
'속도가 생각보다 빨라. 시선을 좀 분산시켜야…… 아.'
고민하던 상현이 곧 요정 항아리를 꺼내었다.
슬쩍 쓰다듬자 늘 그렇듯 요정이 쏙 튀어 나왔다.
"뾰롱아!"
그리고 그와 동시에, 시청자들이 환호했다.
[ㅋㅋㅋㅋㅋㅋ그가왔다!!!]
[갓뾰롱 등판요ㅋㅋㅋㅋㅋㅋㅋ]
[필살기 아니냐 거의ㅋㅋㅋㅋㅋ]
요정은 밖으로 나온 게 신났는지 마구 팔랑거리며 돌아다녔다.
상현이 그런 요정을 잡아, 문 안쪽을 보게 만들었다.
"뾰롱아, 저거 봐봐. 상자는 우리 친구. 쟤는 나쁜 놈. 이해했어?"
요정이 알았다는 듯 둥글게 날았다.
그에 상현이 지시를 내렸다.
"그래, 착하다. 그럼 가서, 저 나쁜 친구 좀 괴롭혀…… 허, 의욕이 넘치는데?"
말하는 도중, 요정이 상현의 얼굴 앞으로 오더니 양팔을 마구 휘적거렸다.
그러다가 마치 근육을 자랑하듯, 팔을 위쪽으로 높게 뻗어 보이곤 그대로 휙 날아갔다.
'자기 세니까, 믿어라. 뭐 그런 건가?'
상현이 피식 웃으며 그 뒤를 따랐다.
두 몬스터는 치열하게 싸우고 있었다.
하지만 요정이 가고일 머리 주변을 빙글거리며 돌기 시작했다.
"구루룩!"
가고일은 거슬린다는 듯 손과 날개를 마구 저었지만, 요정을 스치지도 못했다.
그때 미믹이 슬쩍 입을 벌리는 게 보였다.
놓치지 않고, 상현이 빠르게 지시를 내렸다.
"다시, 아래로! 좀 더 아래! 지금!"
*** 이유진은 우울하게 화면을 쳐다보고 있었다.
미믹의 공격이 가슴에 적중했고, 이내 가고일이 쓰러졌다.
2번방마저 완벽하게 공략해 낸 셈이었다.
"어째서……."
그녀가 우울하게 중얼거렸다.
아버지도 이 영상을 보고 있을 게 분명했다.
그녀는 절대로 보지 못할, 흐뭇한 미소와 함께.
- 형님들 보셨죠? 이 정도면 완벽한 설계 아닙니까? 몬스터로 몬스터를 잡는다! 이이제이! 선인들의 지혜를 빌어…….
카메라가 휙 돌아가더니, 신나게 멘트를 날리는 상현의 얼굴이 잡혔다.
그 뒤엔 가슴에 구멍이 뚫린 채 가고일이 쓰러져 있었다.
잠시 후, 날개가 사라질 때와 같이 가고일의 몸이 천천히 바스러졌다.
그 자리엔 회색 결정 하나만이 남아있었다.
이유진은 소리를 꺼버렸다.
상현의 목소리를 더 듣고 싶지 않았다.
기분이 점점 가라앉았다.
아직 던전이 끝난 건 아니었지만, 실패할 거라는 생각하기는 힘들었다.
조금씩, 아주 조금씩 아버지가 그렇게 관심을 보이는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상현에겐 그녀가 갖지 못한 것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무엇보다도, 저 자신감.
저게 가장 부러웠다.
그리고 그에게 있어, 아버지의 애정은 그가 가진 수많은 것들 중 하나에 불과했다.
그녀에겐 가장 소중한 것이었음에도.
'내가 부족한 거였어. 나라도 길드장님처럼 행동했을 거야.'
이유진이 시선을 바닥으로 떨구었다.
막연히 하던 생각이었다.
하지만 실제로 보고 나니 확실하게 알 것 같았다.
질투할 것도 아니었고, 질투해서도 안 되는 종류였다.
이유진이라는 인간 자체의 문제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너무나도 부러웠다. 저 자리를 빼앗고 싶었다.
그도, 그녀 자신도 너무나 원망스러웠다.
왜 저렇게 못할까. 왜 이렇게 되어야 하는 걸까.
수많은 생각들이 끊임없이 떠올랐다.
시야가 흐려졌다.
어느 샌가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늘 꾸역꾸역 참아왔지만, 오늘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결국 이럴 거였다면…….'
그때 화면에 다시 상현의 얼굴이 나타났다.
환한 표정으로 무어라 말하는 모습이었다.
이유진은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키고 말았다.
- 그럼 다음 방으로 가보겠습니다! 부수입도 생기고, 정말 신나는 하루네요! 이게 다 형님들 덕분인 것 같습니다!
여전히 밝은 분위기.
상현은 어느새 2번방을 벗어나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하아아."
이유진은 물기어린 한숨을 내쉬었다.
더 이상 지켜보다간 잘못된 생각을 하게 될 것 같았다.
그녀는 방송을 끄고, 조용히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