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9.
바운티. 길드 건물 최상층.
이유진은 무표정하게 보고를 받고 있었다.
"진행 상황은 어때요?"
"팔렘 신전. 지금 혼자 공략중입니다."
"혼자라고 하셨나요? 아무도 없이?"
"예."
남자의 대답에 그녀가 입을 꾹 다물었다.
'정말 혼자 갔다고? 그럴 리가… B급이잖아. 허가증은?'
그 사실을 떠올리고 이유진이 다시 말했다.
"뒤에 조력자가 있을 거예요. C급 헌터가, 그것도 길잡이가 돌파할 수 있는 던전이 아니잖아요."
"저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지금까지 본 바로는, 정말 혼자 힘으로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남자 역시도 당황스럽다는 기색이었다.
이유진이 살포시 인상을 썼다.
"적어도 B급 헌터 한 명은 있어야 하잖아요. 그 남자 허가증으론 던전에 들어가지도 못해요."
"맞습니다. 분명 파티원이 있을 겁니다."
"그럼 혼자가 아니잖아요?"
"하지만 그 파티원이 아직까지 한 번도……."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는 거군요."
그녀의 표정이 흐트러졌다.
던전 입구만 열어주고, 뒤에 빠져있다는 의미인 것 같았다.
"진행 상황은요?"
"1번방 마무리하고 휴식중입니다."
그녀가 눈썹을 밀어 올렸다.
일이 흘러가는 방향이 예상과 너무 달랐다.
방을 마무리 했다는 건 열쇠를 얻었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그 열쇠를 가진 미믹은, 지독한 방어력으로 유명한 몬스터였다.
비전투 계열이 뚫을 수 있는 정도가 아니었다.
"지금 미믹을 잡았다는 말씀이세요?"
"잡지는…… 않았습니다."
남자가 애매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이유진이 되물었다.
"그게 무슨 뜻이죠?"
"잡지는 않았는데, 열쇠를 얻었습니다. 정말 죄송스런 말씀이지만……."
남자가 고개를 푹 떨구더니 말을 이었다.
"직접 영상을 보시는 편이, 나을 것 같습니다."
"제가…… 아."
이유진은 숨을 한 번 들이마시곤, 입을 닫았다.
그 편이 낫다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남자의 모습을 볼 때마다, 지난 시험의 결과가 자꾸 떠올랐다.
그리고 뒤따랐던 아버지의 반응도.
'김상현. 차라리 없애는 게 나을 지도 몰라.'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녀는 곧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아냐, 안 돼. 이건 길드장님의 방식이야. 나는…….'
거기서 다시 움찔했다.
이미 아버지보단 길드장님이라는 호칭이 익숙해져 버린 것 같았다.
안쓰럽다는 듯 쳐다보는 남자의 시선이 느껴졌다.
사실 바운티 길드원이라면, 그녀가 어떤 대우를 받는지 알고 있었으니까.
불쾌할 것도 없었다.
"영상……."
이유진은 비참한 기분을 느끼며 입을 열었다.
금방이라도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하지만 그건, 그녀의 아버지가 끔찍하게 싫어하는 행동이었다.
"틀어줘요."
"예."
방송을 보는 순간 기분이 더욱 가라앉을 게 분명했지만, 그럼에도 봐야했다.
대체 어떤 남자이기에 아버지가 그렇게 관심을 가진 건지.
딸이 받아야 마땅할 애정을 빼앗아 가는 건지.
직접 두 눈으로 봐야했다.
만약 이번에도 성공한다면, 아버지는 그녀 자신에게서 더욱 멀어질 게 분명했으니까.
팟.
준비를 마쳤는지 화면이 켜졌다.
저급한 광고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조용히 밖으로 나가는 남자의 모습이 보였다.
내심 고마움을 느끼며, 그녀가 영상에 집중했다.
곧 상현의 모습이 나타났다.
- 자, 일단 열쇠는 얻었고! 이제 넘어가기만 하면…….
무어라 말하고 있었지만, 그녀의 관심사는 멘트가 아니었다.
상현이 손에 쥔 황금빛 열쇠가 선명하게 보였다.
"정말이었어."
그녀가 중얼거렸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카메라가 흔들리고, 그곳에 나타난 건 얌전히 기다리고 있는 미믹이었다.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녀가 알기로, 팔렘 신전의 1번방은 저 미믹을 잡는 게 전부나 마찬가지였다.
"이게 대체……."
다시 화면이 이동했다.
그 중간에 어지럽게 흩어진 살점들이 보였다.
지저분하게 널브러진 고기 조각들.
그녀가 잔뜩 긴장한 순간 상현이 급히 외쳤다.
- 이거! 다시 말씀드리지만, 돼지고깁니다! 돼지고기! 절대 오해하시면 안 되겠죠? 제가 100그램 당 몇 천 원씩 주고 사온 돼지고깁니다! 꼭 기억하세요!
"풋."
이유진이 자신도 모르게 웃음을 터트렸다.
대체 던전에 고기를 왜 챙겨갔단 말인가.
이유 없는 행동은 아닐 터였다.
다시 상현이 멘트를 치기 시작했다.
- 아, 요즘 포켓몬 하신다고 속초 많이들 가시지 않습니까, 형님들?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그냥 이렇게 고기 몇 근 챙겨서 던전에 오시면!
거기서 상현이 돼지고기를 힘차게 던져버렸다.
- 가랏! 물어와!
그리고 그 장면에서.
이유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시험에서 봤던 장면이 오버랩되었다.
방송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달려오는 원숭이를 향해 공을 던지던 상현.
아버지는 그 장면을 보며 만족스러워 하고 있었다.
- 졌더군.
그녀가 들어갔을 때 아버지가 했던 말이었다.
한마디를 끝으로, 그는 다시 흐뭇하게 화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쓸쓸히 돌아나가던 그녀 자신.
이유진은 양 손에 얼굴을 파묻었다.
미칠 것 같았다.
"제발……."
그녀가 신음하듯 말했다.
"제발 실패하게 해주세요."
***
"그럼… 슬슬 다음 방으로 넘어가 볼까요?"
상현이 미믹을 힐끔힐끔 쳐다보며 말했다.
'아, 이거 데려가야 하나? 도움이 될 것 같긴 한데…….'
미믹은 배가 부르면 공격하지 않는다는 정보.
돼지고기를 충분히 먹인다는 계획은 들어맞았지만, 이렇게 따라다닐 줄이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아니, 애초에 뭐로 뛰는 거야?'
미믹은 깡충거리며 상현을 따라다니고 있었다.
팔다리조차 없는 상자가 '뛰어다니는' 모습은 아무리 봐도 적응이 되질 않았다.
'아, 망할. 어쩌지?'
일단 이런 행동을 보인 이상, 원래부터 알고 있었다는 듯 행동해야했다.
시청자들이 그러길 원했으니까.
하지만 너저분하게 흩어진 고기조각들.
만약 미믹이 장난이라도 친답시고 물어뜯는 날엔, 상현 역시 저 꼴이 날게 분명했다.
'…너무 위험해. 두고 간다. 괜히 변수 만들면 손해야.'
상현이 결정을 내렸다.
그리고 문으로 다가서는데, 채팅이 주르륵 올라왔다.
[쟤도 데려감?ㅋㅋㅋㅋㅋ]
[보고있으니까 귀여운데ㅋㅋㅋㅋㅋ]
[데려가면안됨?ㅋㅋㅋ]
상현은 열쇠를 구멍에 끼워 넣으며 말했다.
"아이, 형님들! 포켓몬스터도 안보셨습니까? 지우가 눈물을 머금고 버터플을 놔주던! 그 감동적인 장면을 모르시는 겁니까? 저는 어쩔 수 없이! 미믹을 위해서 혼자 가도록 하겠습니다!"
그르르릉!
헛소리를 중얼거리던 와중 문이 열렸다.
깡! 깡!
미믹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뒤를 따랐다.
"친구야, 잘 지내! 어차피 저 위로 가면, 너만 위험해질 거야. 그럼… 안녕! 크흡!"
그렇게 외치며 달려 나가려던 순간.
쇄애애액!
뻗어져 나온 혓바닥이 앞을 막았다.
치이이익! 치이이익!
침이 떨어지며 바닥을 녹였다.
"그르르륵."
위협적인 울음소리에 상현이 천천히 고개를 뒤로 돌렸다.
미믹은 그 상태로 가만히 기다리고 있었다.
상현이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화났어?"
"그르르륵."
하지만 여전히 화난 듯한 울음소리만이 돌아왔다.
그에 상현이 고기 한 덩이를 꺼내, 툭 건네었다.
스슥.
미믹이 고기를 삼키더니, 이내 신난다는 듯 팔짝팔짝 뛰었다.
다 먹기를 기다린 후 상현이 입을 떼었다.
"가, 같이 갈까? 괜찮겠어? 정말 위험할 텐데. 그냥 여기 남아있는 게……."
스르륵, 미믹이 혀를 꺼냈다.
상현이 황급히 손을 내저었다.
"아하하! 당연히 같이 가야지! 가자고! 그래! 설마 내가 친구를 버려두고 가겠어?"
그제야 미믹이 입을 닫았다.
"조, 좋아! 가자! 바로 2번방으로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형님들."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아니, 말도 알아들어? 몬스터 아냐?'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상현과는 달리, 시청자들은 오히려 그런 상황을 즐기고 있었다.
[버터플 아니라잖아ㅋㅋㅋㅋㅋㅋㅋ]
[응~ 데려가야돼~ ㅋㅋㅋㅋㅋㅋ]
[태세전환 개웃기네ㅋㅋㅋㅋㅋㅋㅋ]
빼도 박도 못할 분위기였다.
상현 자신의 안전을 위해서나, 방송을 위해서나 결국 데리고 가야했다.
'아후…….'
정신적인 한숨을 내쉬며 상현이 출구로 빠져나갔다.
그리고 텅 비어 버린 1번방 내부.
저벅. 저벅. 저벅.
방 한 구석. 눈에 띄지 않는 자리에서 지켜보던 박도진이 슬그머니 걸어 나왔다.
"몬스터를…… 길들였다고?"
어지러이 널린 고기조각들을 내려다보던 그가 중얼거렸다.
터무니없는 일이었다.
비슷한 경우조차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이런 정보는 길드에도 없어. 대체 어디서. 설마 뒷배가 있는 건…… 아니지. 그건 아니야.'
가벼워 보일지언정, 성대원은 그렇게 호락호락한 사람이 아니었다.
거기서 박도진이 생각을 접었다.
아직 두 개의 방이 남아있었다.
판단은 나머지 공략을 보고 나서 해도 늦지 않았다.
그도 출구로 빠져나와 상현의 뒤를 따랐다.
그리고 펼쳐진 어두운 복도.
이제 막 들어온 박도진과는 달리, 상현은 복도의 중간 부분을 지나고 있었다.
상현이 느긋하게 멘트를 치기 시작했다.
"일단 1번방은 끝났습니다, 형님들. 이제 2번방으로 갈 텐데요. 어, 이번에 상대할 녀석은 자그마치…… 후, 아닙니다. 가서 보여드리죠."
끔찍하다는 듯 상현이 말을 얼버무렸다.
시청자들의 기대감이 잔뜩 올라가는 게 느껴졌다.
'좋아. 들어가기 전에 추천부터 받고, 열쇠 챙기고. 여기서 풍선도 좀 받아야 하나?'
상현은 두 가지 방법을 두고 고민하기 시작했다.
풍선을 챙기면서, 리스크를 감수하는 것.
다른 하나는 빠르게 지나가며 웃음 포인트로 쓰는 것이었다.
'문제는 변수가 생겼다는 건데.'
상현이 미믹을 힐끗 돌아보았다.
미믹은 낑낑대며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으음, 안전하게 가는 게 낫겠다.'
그 모습을 보며 상현이 결정을 내렸다.
무리해선 좋은 결과를 얻어낼 수 없었으니까.
곧 2번방의 입구에 도착했다.
상현이 심각한 어조로 말했다.
"…형님들. 큰일 났습니다."
[???? 또뭔일임???]
[뭔데??????]
[왜???]
거기서 상현이 목소리 톤을 가볍게 확 바꾸었다.
"아이, 형님들! 지금 1만7천 명이나 보고 계신데, 추천이 만 개밖에 없어요! 자, 전에 한 번 드렸던 질문입니다. 상현이를 저 안으로 집어넣기 위해서 필요한 게 뭘까요?"
그리고 상현이 채팅에서 관심을 껐다.
추천은 궁금한 시청자들이 알아서 누를 터였고, 지금부턴 준비를 해야 했다.
'가고일 한 놈. 정면. 발목 부근에 열쇠. 변수는 미믹. 여차하면 그냥 두고 가면 돼.'
탁. 탁.
생각하며 준비해온 것들을 꺼냈다.
분무기와, 2리터짜리 생수 한 통.
'그냥 패스하고, 3번방에서 풍선 땡기는 게 낫겠어.'
분무기에 챙겨온 물을 채워 넣고, 추천을 확인했다.
한 3천 개 가량 오른 것 같았다.
"추천 감사합니다! 바로 갑니다!"
상현이 방 안으로 달려갔다.
뻥 뚫린 천장에서 강한 빛이 내리쬈다.
방 중앙에 떡하니 자리한 가고일 석상.
상현은 주변을 한 바퀴 돌면서 카메라로 그 모습을 찍었다.
도마뱀과 새를 섞어놓은 듯한 얼굴.
길게 뻗어있는 꼬리.
활짝 펼친 두 날개에는 가시 따위가 빼곡히 돋아있었다.
"이번에 상대할 녀석은… 바로 가고일! 아주 무지막지한 녀석이죠! 물론 생긴 것도 정말 끔찍하지만요. 그렇지 않습니까?"
[ㄹㅇ... 근데 이러면 못싸우지않음?]
[그냥 석상아니냐??]
[이젠 돌덩어리랑 싸우시네ㅋㅋㅋㅋ]
예상대로의 반응이었다.
상현은 씩 웃으며 분무기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그냥 돌이라구요? 아닙니다. 보시죠!"
촥. 촥. 촥.
석상의 발목에 물을 마구 뿌렸다.
"깨어나라 악마야! 으아아아아!"
파지지직. 파지지직.
염산이라도 뿌린 듯 돌 표면이 저적거리며 갈라졌다.
그리고 가고일의 갈색 피부가 드러났다.
혈관 몇 가닥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가고일이 깨어난다는 증거였다.
이제 열쇠가 모습을 보일 차례였다.
하지만.
"없어!"
상현이 다급하게 외쳤다.
발목 전체가 훤히 드러난 상태.
분명 있어야 할 부분에, 열쇠가 없었다.
쩌적. 쩌적. 쩌저저적.
이미 상체까지 균열이 조금씩 일어나고 있었다.
시간이 조금 더 지나면 완전히 깨어날 게 분명했다.
상현은 당황을 감추지 못하고 외쳤다.
"좆 됐습니다, 형님들. 열쇠가 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