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공략 LIVE-35화 (36/185)

035.

한순간에 가라앉은 분위기.

모두 어이없다는 눈으로 청년을 바라보고 있었다.

"정말이라니까?"

청년이 억울하다는 듯 한 마디 덧붙였다.

그에 상현을 꼬드겼던 두 남자가 발끈하며 나섰다.

"지랄하네, 나이가 몇인데, 길드장이라고? 하, 참."

"장난칠 분위기 아니니까, 끼어들지 마시죠."

완전히 깔보는 태도였다.

그러나 다음 순간.

"이야, 이거 안 되겠네?"

청년이 그렇게 중얼거리더니,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동시에 두 남자가 눈을 부릅뜨더니 입을 확 닫았다.

"어때, 이래도 못 믿겠어?"

의기양양하게 웃어 보이는 청년.

그가 꺼낸 건, 자그마한 돌멩이였다.

크기는 기껏해야 손가락 두 마디쯤 될까 말까.

하지만, 단순한 돌멩이가 아니었다.

"빛나고 있잖아?"

자세히 보니, 돌멩이 '안에서' 자그마한 불꽃이 이글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상현은 그저 신기하게 그 모습을 지켜볼 뿐이었으나 두 남자는 달랐다.

빠드득!

연옥 소속의 남자는 이를 잔뜩 갈아붙이더니 그대로 사라졌다.

그리고 바운티는.

"죄송합니다."

"아, 죄송할 거 없고, 그냥 가세요."

"예. 실례했습니다."

허리를 깊게 숙인 다음, 뛰다 시피 하며 자리를 피했다.

그걸로 끝이었다.

그리고 단 둘이 남자, 길드장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청년이 태연하게 말을 이었다.

"우리 길드 들어와. 어차피 3대 길드 아니면, 네가 가고 싶은 던전은 못 가. 평생 C급만 돌다 끝낼 거야?"

상현은 고개만 휘휘 저을 뿐이었다.

그의 말이 틀리진 않았다.

하지만 이 자리에서 바로 수긍하긴 쉽지 않았다.

"하, 이거 참. 답답한 친구네. 말했다? 나는 네 방송이 좋아서 온 거라고."

"예, 그건……."

그 말이 상현의 마음을 조금 가볍게 만들었다.

성대원의 아이디는 '오크죽빵값'.

초창기부터 열혈 팬이었던 아이디였다.

그 이름이 채팅창에 보일 때마다, 오늘도 풍선을 주지 않을까 싶어 설렜었다.

상현이 방송을 계속 해나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되어준 사람.

"내일 연락해. 간다."

그때까지도 상현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시크하네.'

상현은 실없는 생각을 하며 바닥만 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때.

휘리릭. 탁.

날아들 듯 그가 다시 돌아왔다.

"아, 씨. 너 내 연락처 알아?"

"……아니요?"

"젠장. 당연하지. 이거 받아."

그는 명함 하나를 손가락에 끼우더니, 휙 날렸다. 동시에 멋지게 빗나갔다.

애매하게 구겨진 명함이 바닥으로 힘없이 떨어졌다.

"아, 나. 쪽팔리게."

"제가 주워드릴……."

"아냐, 남자란! 자기가 한 행동은 스스로 책임지는 거다."

그는 명함을 상현의 손에 얹어주고 손끝을 이마에 붙였다가, 탁. 앞으로 날렸다.

"연락하라고!"

"……."

주변에서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게 들렸다.

그도 그럴 것이, 충분히 시선을 끌만한 행동들이었다.

상현은 당황스러움을 떨치지 못한 채 택시를 잡아탔다.

'호롱… 호롱이라…'

그리고 집으로 돌아온 뒤에도, 상현은 한참이나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나서야 잠에 빠져들었다.

*** 뾰롱!

"끄으으……."

뾰롱! 뾰롱뾰롱!

끊임없이 들려오는 소리.

그냥 무시하고 자려 했으나.

뾰롱뾰롱! 뾰롱! 뾰롱!

귀청을 울리는 소리에 결국 상현은 인상을 한껏 찌푸린 채 눈을 떴다.

"뭐야아……."

투덜대며 옆을 돌아보니, 요정이 항아리에 들어갔다 나왔다 하며 계속 소리를 내고 있었다.

잠시 멍하니 그 꼴을 보고 있으니 헛웃음이 나왔다.

"나 깨우려고?"

상현의 목소리가 들리자 행동을 멈추는 요정.

상현이 슬쩍 손을 내밀자 바로 날아와 살폿 올라앉았다.

"후으음."

몸을 일으켜 앉은 상현은 요정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흠칫하며 부르르 떨었다.

"… 어제."

어제 있었던 일이 그제야 떠오른 탓이었다.

순간 꿈인가 싶었으나, 방 한켠에 버려진 길드장의 명함이 눈에 들어왔다.

'성대원'이라는 이름이 적당한 사이즈로 적혀있었다.

하지만 도무지 납득이 되질 않았다.

쭈욱. 꼴꼴꼴.

멍한 머리에 생수를 한 통 까서 마시며 상현이 중얼거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안 되는데."

20대 청년이 3대 길드의 수장이라니.

놀랍기도, 부럽기도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걱정스러운 면 역시 있었다.

아무래도 한 단체의 수장이라고 하면, 나이 지긋한 어른을 떠올리기 마련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상현의 마음은 이미 호롱으로 적지 않게 기울었다.

연옥, 바운티의 스카우터들이 싸우던 모습.

서로 거짓말을 하는 거라고 보긴 힘들었다.

마치 폭로전 같은 느낌.

즉, 바운티도 연옥도 모두 문제가 있다는 소리였다.

그렇다면 남은 건 호롱뿐.

게다가 어제 본 길드장의 이미지도 나쁘지 않았다.

그는 상현의 방송을 좋아한다고 말했으니까.

'갑자기 친해지려는 것도 아냐. 옛날부터 보던 사람이니까. 거짓말은 당연히 아닐 테고.'

다만 지나치게 가볍다는 느낌.

그게 조금 불안했다.

"모르겠다. 지금은 모르겠어."

상현은 한숨을 내쉬고 머리를 털어냈다.

지금처럼 복잡한 머리론 제대로 된 결정을 내릴 수 없을 것 같았다.

"일단 좀 쉬고. 가보고 결정하자."

그렇게 생각하고, 상현이 다시 침대에 누웠다.

***

"진심으로 그러셨습니까?"

"뭐가?"

성대원은 애써 시선을 피했다.

"말 돌리지 마시죠. 방송해도 된다고 하셨냐고 묻는 거잖습니까."

하지만 여자는 집요했다.

성대원은 슬쩍 그녀를 쳐다보며 말을 돌려보았다.

"이야. 날씨가 기가 막히는데?"

"길드장님."

길드장 직속 비서 김희원.

명목상으론 그랬지만, 길드 안에선 그저 비서뿐만이 아닌, 길드원 전체가 의지하는 누나에 가까웠다.

"날씨가 좋습니까? 하늘에 먹구름 가득한 이런 날씨가요? 장난치실 때가 아닙니다! 이거! 어떻게 하실 겁니까!"

'아아아, 비서를 잘못 뽑았어!'

성대원이 속으로 한탄했다.

재능도 솜씨도, 어디 가서 빠지지 않는 그녀였다.

특히나 외모까지 감안한다면, 그야말로 이상적인 비서였다.

깔끔하게 올려 묶은 금발.

타이트한 정장을 입어도 관능적일지언정, 야하진 않은 패션 센스.

그런 그녀의 유일한 문제는.

'능력이 너무 뛰어나다는 거지….'

한 치의 어긋남도 용납하지 못하는 성미였다.

그녀가 곧 얼굴을 가까이 들이대며 말했다.

"다시 한 번 여쭤보겠습니다. 방송해도 된다고 하신 겁니까, 안 하신 겁니까."

성대원이 삐걱대며 그녀를 쳐다보았다.

"해, 해도 된다고 하긴 했는데……."

"왜 그러셨습니까! 길드장이 그런 약속을 함부로 하시면 어떡합니까. 할 때 하더라도, 적어도 길드 내에선 완전히 공론화 시킨 다음에……."

아니나 다를까. 비서의 잔소리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아니, 그건, 그, 그때 그렇게 안 했으면 다른 길드에서……."

성대원이 소극적으로 변명했다.

하지만, 역효과였다.

"그게 각 길드에 얼마나 중요한 정보인지는 길드장님도 충분히 알고 계시면서! 도대체! 왜! 어째서!"

"……."

성대원은 시무룩하게 바닥만 내려다보았다.

사실 김희원이 하는 말이 정론이었으니까.

길드장이라고 해도, 해선 안 되는 일이 있는 법이었다.

정확히는 길드장이기 때문에 조심해야 하는 일.

그런 식의 특혜는 기존 길드원들의 분위기를 망칠 여지가 있었다.

"아시겠습니까!"

그런데 성대원은 멋대로 그런 허가까지 내주고 만 것이었다.

"아시겠냐구요!"

"알아. 알아. 안다고… 그런데…."

성대원이 흘끔 눈치를 보며 말했다.

"정 그러면 C급만 돌리면 되지 않을까?"

"평생 C급만 돌 거냐고 물어보셨다면서요!"

"아니, 그러니까. 그건 내가 술 취해서 헛소리 한 걸로…… 으아아아! 미안! 미안해!"

성대원이 기겁하며 손을 마구 내저었다.

그녀의 손이 책상 위의 서류로 향한 탓이었다.

[길드 예산안]

길드 자금 사용처를 정리해둔 서류였다.

그리고 그 안엔.

"이, 이번 주엔 꼭 사야할 게 있다고! 제발!"

성대원의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한 항목들 역시 들어있었다.

스슥. 스슥. 스슥.

하지만 그녀는 거침없이 항목들 위에 선을 죽죽 그어나갔다.

"다음 달로 미루시죠. 일단 한정판 게임. 안 됩니다. 특대 피규어? 하… 정말. 이것도 다음 달에 사세요. 그리고……."

"자, 잠깐만!"

성대원이 서류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녀가 저렇게 말 한 이상, 정말 용돈을 주지 않을 게 분명했다.

하지만 김희원은 여유롭게 그의 공격을 피해냈다.

"이거랑, 이거, 이것도 전부 다음달에……."

"미안하다니까아!"

쾅. 쿠당탕.

결국 성대원이 몸을 날려 서류를 뺏어냈다.

하지만 이미 상당량이 다음 달로 넘어간 상황이었다.

"크읍……."

성대원이 눈물을 삼키며 다시 자리에 앉았다.

하지만 김희원은 싸늘하게 그 모습을 내려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때 그녀가 말했다.

"길드장님."

"으, 응?"

성대원이 잔뜩 움츠러든 자세로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그녀는 성대원의 책상 앞, 바닥을 가리키고 있었다.

"저것들. 수리해야 하지 않을까요?"

"응? 대체 뭐가… 으아아아!"

가리킨 방향을 확인한 성대원이 비명을 질렀다.

팔다리가 떨어져 나간 피규어들이 마구 널브러져 있었다.

"아, 안 돼. 얘네들은 내 소울이라고! 맙소사! 루피이이이!"

성대원이 손을 부들부들 떨며 잔해를 그러모았다.

그런 그의 귀에, 다시금 끔찍한 소리가 들렸다.

스슥. 스슥. 스슥.

"이것도. 그리고 하, 또 피규어라니. 이것도 다음 달에……."

어느새 서류를 채간 비서가 항목들 위에 선을 그어대고 있었다.

"자, 잠깐!"

성대원이 튕기듯 몸을 일으킨 순간.

똑똑.

"길드장님, 손님 오셨습니다."

구원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어! 어서 들어……."

"어느 분이시죠?"

막 들어오라고 말하려는데 김희원이 재빨리 가로챘다.

"김상현 씨라고 하십니다."

"사전 예약 잡힌 거 아니죠? 지금 길드장님 업무상 바쁘시니까, 잠시 대기하시라고 전해주세요."

"아냐! 나 하나도 안 바쁘… 지 않지. 바쁘지. 암."

꿈틀.

김희원의 살벌한 눈초리에 성대원이 급히 말을 바꾸었다.

"프흡, 네. 알겠습니다."

이미 이런 꼴을 여러번 본 듯, 문 밖의 길드원은 웃음소리와 함께 멀어졌다.

스슥. 스슥. 스슥.

"……!"

안타깝게 문만 바라보고 있던 성대원은 귓가에 들려오는 소리에 소름이 돋았다.

김희원이 또다시 펜을 마구 그어대고 있었다.

성대원이 필사적으로 몸을 날렸다.

"갸아아악!"

***

"죄송합니다. 잠시만 기다리시라고 하시네요."

"아뇨, 미리 말씀도 안 드린 제 잘못이죠."

상현은 살짝 기죽은 채로 대답했다.

호롱 길드의 사옥은 몹시 화려했다.

물론 따지기로는 흑나비 건물이 훨씬 대단했지만, 그땐 워낙 경황이 없었던 탓에 제대로 보질 못했다.

'그 나이에 길드장이란 말이지?'

청년의 말이 거짓은 아닌 모양이었다.

신기하긴 했지만, 거짓말이 아니라면 그걸로 충분했다.

무엇보다도 그는 상현에게 호의를 가지고 있었으니까.

"들어가시면 되세요."

잠시 기다리니 안내직원이 다시 다가왔다.

"감사합니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성대원이 잔뜩 흐트러진 차림새로 손을 들어 올렸다.

"왔냐."

"아, 넵. 안녕하세요."

기운이 다 빠진 기색이었다.

'뭐, 뭐야? 설마…….'

순간 묘한 상상이 든 나머지 상현이 옆의 비서를 쳐다보았다가, 바로 시선을 내리깔았다.

살벌하기 그지없는 눈빛이었다.

'왜, 왜? 내가 무슨 실수라도…….'

그렇게 생각하는 사이 성대원이 자세를 고쳐 앉았다.

"일단 어제 말했던……."

그리고 그가 말을 시작하려는데, 옆의 비서가 스르륵. 웬 서류를 집어 들었다.

그에 성대원이 움찔하며 입을 다물었다.

'……응?'

"말씀 많이 들었어요. 길드장님 직속 비서, 김희원입니다."

그리고 그 대신 직속비서라는 사람이 인사를 해왔다.

"안녕하세요."

묘한 상황에 상현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녀에게선 상현이 범접하기 힘든 분위기가 철철 흘러나오고 있었다.

기품이 있다고 해야 할지, 프로답다고 해야 할지.

"자, 자. 일단 앉아. 앉아서 얘기하자고."

성대원이 자리를 가리키며 허허 웃었다.

상현이 꾸벅하고 딱 앉으려는 순간.

"원래라면."

비서가 갑작스레 말을 걸어왔다.

"예?"

"이런 식의 길드 가입은 허용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길드장님의 권한으로."

거기서 그녀가 성대원을 돌아보았다.

그의 표정이 한순간 창백해지는 게 보였다.

"특별한 경우인 것으로…… 처리할 겁니다. 그리고 방송 문제는."

"네."

상현이 주먹을 말아 쥐었다.

"어제 저희 길드장님이 실언을 하신 모양인데, 죄송스런 말씀이지만. 던전에 카메라를 들일 수는 없습니다."

"어, 음. 크흠."

성대원이 손가락을 꼼지락대며 헛기침을 했다.

'저 새끼, 저거. 길드장 아닌 거 아냐?'

상현이 그런 그를 미심쩍게 쳐다보았다.

분위기를 보아하니 일이 잘못 돌아가고 있는 모양이었다.

'어째 비서가 권한이 더 세 보이는데? 약점이라도 잡힌 건가?'

꽤나 가능성 높은 추측이었다.

잠시 고민하던 상현이 입을 열었다.

"그러면… 그냥 길드 안 들겠습니다."

"예?"

김희원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어쩔 수 없죠. 그냥 길드 안 들고, 혼자 하는 수밖에요."

스윽.

상현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비서가 책상을 탁 두드렸다.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알고 계신 겁니까?"

"알아요."

"길드 없이. 초보 헌터가 활동을 하는 건 정말 힘들어요."

그녀의 어조가 조금 나긋나긋해졌다.

마치 철없는 동생을 타이르는 듯한 말투였다.

"그런데도 그만두시겠다고요?"

"예."

상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길드장님이 허락하신 게 아니었다면, 오늘 오지도 않았을 거예요."

"그러시다면……."

김희원은 여전히 이해하지 못한 표정이었지만, 일단 보낼 생각인 것 같았다.

성대원은 초조한 듯 몸을 움찔대고 있었다.

그리고 막 상현이 고개를 꾸벅한 순간.

무언가 생각났는지 그가 괴성을 지르며 상현에게로 달려들었다.

"으야아아! 야야야! 잠깐, 잠깐만!"

김희원이 흠칫하며 물러섰다.

"너, 너! 그거 가져왔어? 시험에서 쓰던 아이템! 그거 가져왔냐고!"

"……요정이요?"

"그래! 그거!"

"네, 가져왔는데요."

"꺼내!"

필사적인 외침이었다.

상현은 당황하면서도, 일단 가방을 뒤져 항아리를 꺼내었다.

"아, 김 비서! 잠깐만! 저거 보고 결정해!"

그러는 사이 성대원은 김희원에게 질질 끌려가고 있었다.

악을 쓰며 발버둥치는 성대원.

그 모습을 보던 상현이 항아리를 슥 쓰다듬었다.

뾰롱!

요정이 튀어나왔다.

성대원이 요정을 향해 손을 마구 내지르며 외쳤다.

"김 비서! 김 비서! 저것 좀 봐!"

"대체 뭐 길래 그러시는……."

다음 순간.

김희원이 입을 멍하니 벌리더니, 손에서 힘을 풀었다.

"그때 그 아이템……."

그리고 성큼성큼 다가오더니 요정을 잡고 들여다보는 김희원.

거의 반쯤 넋이 나간 표정이었다.

그때 길드장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옷을 툭툭 털더니, 상현에게 다가왔다.

"이야, 나름 준비성 철저한 녀석이잖아? 아이템을 들고 다니다니. 아무튼 빨리 와. 시간 없어. 후딱 사인하고, 도장 찍고 하자고."

"아니, 이게 대체……."

"시간 없어."

상현이 벙찐 표정으로 물었으나, 성대원은 단칼에 끊어버렸다.

뒷일은 일사천리였다.

계약서를 확인한 후 지장을 찍고, 간단한 설명을 듣고, 길드원임을 증명하는 반지를 받는 데까지 걸린 시간은 고작 10여분.

"나는 네 방송이 정말 좋아서 데려온 거라니까? 그리고 우리 비서가 조금… 어, 독특해서. 미안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조용히 밖에서 처리했을 텐데."

다 끝난 직후 투덜거리는 그의 모습에 상현은 막연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제 저도…… 어, 길드원이 된 건가요?"

"응."

"방송도 할 수 있는 거구요?"

성대원은 무슨 소리를 하냐는 듯 대답했다.

"당연히 해야지! 전속 파티원들이나, 이런저런 혜택 같은 건 천천히 알려줄 테니까, 일단 그렇게만 알고 있어. 오래 걸리진 않을 거다. 그 종이 뒤에 대충 있는 거 봤지? 그것부터 읽고."

"네."

상현은 종이를 뒤집어 항목들을 다시 하나하나 읽기 시작했다.

"와……."

어마어마한 내용들이었다.

무료, 혹은 염가에 아이템을 제공하고, 개인 능력치 성장을 위한 커리큘럼뿐만 아니라, 각자의 성향에 따라 팀원을 분배하는 등등 한둘이 아니었다.

감탄을 흘리며 한참 읽어나가던 와중.

"길드장님?"

"음?"

살벌한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려왔다.

소름이 오소소 돋아 성대원을 쳐다보니, 그 역시 얼굴이 시퍼렇게 질려 있었다.

요정도 겁에 질린 듯 팔랑거리며 상현에게로 날아들었다.

비서가 말했다.

"지금, 뭐 하셨습니까?"

"어, 어? 우리 길드원 한 명 받았지. 아주 유능한 친구라서, 음, 앞으로 길드에 정말 큰 도움을 줄 수 있……."

화르륵.

"어?"

비서의 손에 불꽃이 일었다.

성대원이 벌떡 일어나더니, 뒤로 몇 걸음 물러났다.

"지, 진정해! 손님! 손님이 와 계시잖아! 너 비서잖아!"

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성대원이 다급히 말을 덧붙였다.

"연구! 아이템 연구해야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빌려다 줄게!"

"……연구?"

비서가 멈칫하고, 성대원이 희망을 느낀 듯 환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필요 없어."

화륵. 화르륵. 푸화아아악 활활 타오르는 불꽃.

성대원이 즉각 비명을 지르며 몸을 날리고.

"끄아아아아아!"

비서가 그 뒤를 쫓았다.

"거기 서, 이 자식아!"

'헌터란 사람들은…….'

멀찌감치 떨어져 그 모습을 바라보던 상현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