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공략 LIVE-34화 (35/185)

034.

그 시각. 바운티. 수뇌부 회의실.

김원명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머리를 옆으로 깔끔히 빗어 넘긴 남자.

바운티 길드장은 탁자를 손가락으로 두드리며 차갑게 물었다.

"그래서 지금 어떻게 되고 있다고?"

"표적에 접근하겠다고 합니다."

"다른 길드에서도 움직이고 있을 거다. 최대한 빨리. 결과 얻어내라고 전해."

"……."

길드장의 요구에 그는 대답 대신 묵묵히 고개를 숙여보였다.

그리고 잠시 후, 한 호흡 들이마신 뒤, 김원명이 말했다.

"하지만 길드장님. 그 녀석 때문에 아가씨가 이번 시험에서……."

"잠깐."

표정 하나 변하지 않은 채 길드장이 말을 끊었다.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지? 분명 시간이 없다고 했을 텐데."

"그 녀석 말씀입니다. 이번 시험에서 공을 다 모았던……."

"1개월 감봉."

길드장이 무표정을 유지하며 말했다.

"부족하다면 계속 해 봐."

김원명이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길드장님."

"2개월 감봉에, 한 달간 던전 출입 금지."

하지만 말을 채 꺼내보기도 전에 길드장이 다시 끊어버렸다.

반론은 허락하지 않겠다는 태도였다.

"언제 갈 거지?"

울컥.

김원명이 이를 악물었다.

매번 볼 때마다 느꼈던 것이었다.

길드장에겐 감정이 없는 것 같았다.

'뱀 같은 새끼.'

열이 확 올랐다.

기왕 이렇게 된 김에, 끝까지 가보자 싶어 입을 연 순간.

"아, 참고로 다음번엔 그냥 퇴출이야."

"…가보겠습니다."

김원명은 침울한 얼굴로 회의실을 나서야 했다.

길드장 이덕영은 한 번 한 말을 되돌리는 법이 없었다.

분명 그가 한 마디라도 더 꺼냈다면, 그 자리에서 바로 퇴출시켰을 터였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그녀는 다시 혼자 남게 될 게 분명했다.

이제까지 늘 그래왔듯이.

"당신 딸이잖습니까……."

차마 이덕영에게 하지 못했던 말을 김원명이 잘근잘근 씹었다.

길드 바운티. 오로지 이익만을 추구하는 지독한 집단.

그 집단의 우두머리 아래서 자랐음에도, 이유진은 아직까지 여린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제기랄."

그녀만 아니었다면 진작 길드를 떠나고도 남았을 것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그걸 허락하지 않았다.

김원명은 다시 욕을 중얼거리곤 바로 연락을 넣었다.

"나야."

- 어, 푸하하학! 야! 잠깐 전화 좀 받고 올게! 친구다, 친구!

통화 너머에서 유쾌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그에 또 괜스레 기분이 나빠졌다.

- 예. 나왔습니다.

하지만 순식간에 차분히 깔리는 목소리.

김원명은 감정을 조금 가라앉히고 말했다.

"상황은?"

- 연옥 둘, 흑나비 둘 있습니다. 호롱 소속은 확인되지 않습니다. 일단 곧 자리 옮길 것 같습니다.

"흑나비에서 왔다고?"

김원명이 의아하다는 듯 되물었다.

이주완이 있었기에, 연옥의 개입은 예상했던 일이었다.

하지만 흑나비는 왜 왔단 말인가.

- 하수연, 이지훈. 둘 다 A급입니다.

"목적은?"

- 파악되지 않습니다. 초대를 받아서 왔다곤 하는데, 확증은 없습니다.

"알았다. 상황 바뀌는 대로 보고하도록."

- 알겠습니다. 야아아! 김상현이! 전화 끝…….

말이 끝나기 무섭게 다시 왁자지껄한 소음이 들려왔다.

삑.

김원명은 전화를 끊고, 한숨을 푹 내쉬었다.

"하……."

김상현. 그 덜떨어진 녀석이 길드장의 관심을 받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딸은 아버지에게 칭찬 한마디가 듣고 싶어 그렇게 애를 쓰는데도, 아버지란 작자는 단 한 번도 돌아봐주지 않았다.

"네 딸이잖아… 개자식아."

김원명이 우울하게 중얼거렸다.

***

"자, 형님들! 이제 방종하겠습니다!"

상현이 끝까지 밝게 웃으며 방송을 마무리했다.

"흐아."

핸드폰을 내려놓으며, 상현은 무너지듯 주저앉았다.

정말 진이 다 빠지는 기분이었다.

멘트 치랴, 열혈들 드립 살려주랴, 그러면서도 술도 한 잔씩 주고받았으니.

정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그래도 2차는 좀 널널하겠는데?'

슬슬 마무리하는 분위기였다.

테이블에 고개를 박고 있는 게 두 명. 허공에 주먹질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또 두 명.

술병들이 어지럽게 마구 널려있고, 가게 밖에선 웩웩대는 소리가 들리는 게 나머지도 상태가 영 좋지 않아 보였다.

그나마 멀쩡한 건 이지훈과 하수연. 둘 뿐.

'쟤네는 취하지도 않나보네…….'

고개를 내젓고, 상현이 택시를 불렀다.

오늘 자리를 마련한 건 상현 자신이었으니, 만취한 사람들을 챙기는 건 그의 몫이었다.

"형님. 들어가셔야 되겠는데요?"

"야아아아, 임마아, 나는 하나도 안, 취했, 크어어억!"

그대로 머리를 떨구고 코를 골아대는 남자.

상현은 피식 웃으며 한 명씩 날라 차에 태웠다.

"도와드릴게요."

"감사합니다."

이지훈이 다가와 한 팔 거들었다.

처음으로 그가 조금 고맙게 느껴졌다.

그때 누군가가 혀를 잔뜩 꼬아 말했다.

"야아아, 상현아! 우리 이제 어디 가냐! 좋은데, 가냐! 좋은데? 어?"

"에이, 형님. 오늘은 저희 즐겁게 이야기도 좀 하고 그래야죠. 좋은 술집으로 모실게요."

"에이이이, 너무하다."

"아하하하… 가시죠! 사장님, 잘 먹고 가요!"

남은 사람은 여섯.

막 가게 밖으로 나서려는데 누군가가 상현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흠칫하며 돌아보니 하수연이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수연 씨?"

"난 갈게."

상현이 얼빵하게 부르자 그녀는 한마디 툭 내뱉곤 멀어졌다.

"가시게요? 조금 더 놀다 가시… 음. 피곤하신가?"

대답조차 없이 그대로 걸어가는 모습에 상현이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이지훈을 바라보았다.

그도 가려나 싶었는데, 오히려 싱글거리며 계속 따라오고 있었다.

'쟤는 왜 안가…….'

상현은 내심 투덜대며 다음 장소로 향했다.

"야하하하!"

"마셔! 어? 어깨춤이… 뭐더라? 아무튼 인마!"

"우리 상현이가 말이야! 어? 난 처음부터……."

상현은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았다.

술 좀 깰 겸 노래주점을 잡았더니, 언제 취했냐는 듯 되살아난 사람들.

완전히 개판 5분 전이었지만, 룸 식 노래방의 주인도 별다른 제지는 하지 않았다.

난장판을 피워도 오히려 올 때마다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상현아! 술이 없다!"

"술! 술! 으갸아아!"

"예에엡! 사장님! 발렌타인 17년… 아니, 21년산으로 주시죠! 두 병!"

"네에엡!"

"우리 BJ 최고다! 푸헤헤헥!"

이미 여기서만 양주를 몇 병째 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열혈팬 한 명이 갑자기 다가오더니.

턱.

뜨끈한 손을 잡아왔다.

"으아아, 형님! 저는 여자가 좋습니다!"

반쯤 풀린 눈에 상현이 기겁하며 물러났다.

"미친놈아! 나도 여자가 좋아! 그건 그렇고."

고함치던 남자의 분위기가 삽시간에 바뀌었다.

"너 자격증도 다시 땄는데, 길드는 안 들어가냐?"

"네? 길드요?"

"어. 그냥 궁금해서. 길드만 잘 들어가도 돈이 몇 배로 뛴다던데."

"음, 들어가긴 가야하는데, 아직 어디로 갈지는 모르겠어요."

상현이 대수롭지 않게 말하자 남자가 고개를 크게 저었다.

"인마, 그러면 안 되지! 형이 말이야, 옛날에 어? 인마, 회사를 잘 골라서… 이렇게 말하면 좀 꼰대 같겠지? 장난이고, 정보 필요하면 좀 줄게. 그쪽 관련 지인들이 좀 있다."

"프흐흐."

상현이 피식거리며 웃었다.

1차 때부터 지금까지 여전히 유쾌한 사람이었다.

"아시는 정보가 뭔데요?"

쪼르르르.

술을 한 잔 따라주며 묻자 남자가 곧 설명하기 시작했다.

"뭐, 추천한다고 하면 일단 흑나비지. 어째 너도 아는 사이 같다만, 아, 정말 아는 사이냐?"

"어… 네."

애매한 표정으로 대답하는 상현.

남자는 고개를 갸웃하고 다시 말을 이었다.

"뭐, 그럴 수도 있지. 아무튼. 쟤네는 사실 어지간한 길드랑은 급이 달라. A급 이상만 받거든?"

그가 이지훈을 슬쩍 가리켜보였다.

그건 상현도 아는 사실이었다.

상현이 고개를 끄덕이자 남자가 계속 말을 이었다.

"거기 빼면 3대 길드가 있지. 어디어딘지 알아?"

"아뇨."

"연옥, 바운티, 호롱. 이렇게 세 군데가 있는데……."

남자가 가까이 다가오더니 속삭이듯 말했다.

"연옥이 압도적으로 조건이 좋아. 신입 대우만 따지면 업계 최고라고 할 수 있지."

"흠……."

상현이 고개를 끄덕거린 순간.

"에헤이!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재밌게 하십니까?"

다른 남자가 다가왔다.

처음 말하던 사람은 어색하게 웃으며 화제를 돌리려 했다.

"아, 그냥 특별한건 아니고요……."

"그럼 저도 이야기 좀 합시다! 야, 상현아."

"네."

"너, 길드는 안 들어 가냐?"

그리고 그가 내뱉은 말은 방금 남자가 했던 것과 완벽히 같은 내용이었다.

"…예?"

"길드 들긴 할 거 아냐. 형이 정보 좀 있으니까……."

똑같은 레퍼토리.

이번의 남자가 추천한 길드는 바운티였다.

즉시 먼저 앉아있던 남자가 즉각 반발했다.

"에이, 흑나비 빼면 연옥이 제일 낫죠!"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당연히 바운티지."

"솔직히 바운티는 분위기가 너무 삭막하잖아요. 특히 길드장. 그 밑에서 잘 지낼 수 있겠습니까?"

"뭐요? 아니 그렇게 치면 연옥도……."

둘은 거의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그리고 점점 격해지더니, 말싸움에 가까워졌다.

상현은 그 상황이 어이가 없어 머리를 긁적거렸다.

눈치를 보아하니 이주완과 이지훈은 재밌다는 듯 지켜보고 있었다.

"두 분, 헌터세요?"

상현이 질문했다.

동시에 두 사람이 입을 꽉 다물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뿐, 곧 당당하게 말하기 시작했다.

"그래 B급이다. 연옥 소속이고, 까놓고 말해서 너 우리 길드로 데려가려고……."

"야. 내가 이런 말까지 할 생각은 없었는데, 연옥 저기, 통나무 장사 하는 새끼들이야. 길드원이 쓸모가 없어지잖아? 그럼 바로 반병신 만들어서 쫓아낸다고."

"토, 통나무……."

"이 자식이. 바운티는 씨팔, 뭐 다르냐, 이 새끼야? 돈 되는 거면 수단방법 안 가리고 덤벼드는 새끼들이!"

대놓고 싸우기 시작하는 남자들.

'바운티… 랑 연옥?'

상현은 슬그머니, 이주완도 끼어드는 건가 싶어 돌아보았다.

하지만 그는 다가오기는커녕 실실 웃으며 잔만 비우고 있었다.

"이것 때문에 열혈 다신 거예요?"

얼추 상황을 파악한 상현이 씁쓸하게 물었다.

그러고 보니 이 둘 모두, 이번 열혈 팬 정모 공지를 한 후에 풍선을 선물한 사람들이었다.

"맞아. 그딴 방송보다 돈 훨씬 많이 벌 수 있으니까……."

"저 친구들보단 우리 연봉이 훨씬 높을 거다."

연옥 소속이 말하며 계산대로 가더니 순식간에 자기 돈으로 계산을 마쳤다.

그에 바운티 소속의 남자는 코웃음을 치더니, 가게 주인을 불렀다.

"하, 사장님! 여기서 제일 비싼 술이 뭡니까?"

"술은 많죠."

"제일 비싼 걸로 주십쇼. 얼마든 상관없으니까."

"그러시면……."

곧 사장이 척 봐도 고급스럽게 생긴 병을 들고 돌아왔다.

"얼맙니까?"

"450짜리인데, 50빼고 400에 드리겠습니다."

"됐습니다. 그냥 그 가격에 주십쇼."

"에이, 형님!"

상현이 급히 말렸지만, 가게 주인은 순식간에 병을 오픈해 버렸다.

"괜찮아, 마셔! 바운티는 이 정도라고!"

그에 상현이 시선을 살짝 떨구었다.

'헌터만 네 명인가… 이래서야 굳이 2차를 온 이유가 없잖아…….'

다른 둘 중 한 명은 한심하다는 듯 쳐다보고 있었고, 또 한 명은 테이블에 고개를 박고 코를 골아대고 있었다.

'그래도 돈은 정말 많이 버나보네…….'

자기 방송을 보고 온 게 아니라는 섭섭함과, 돈을 얼마나 버는지 보고 느껴진 부러움.

두 가지 감정이 교차했다.

하지만 그때.

"방송한다고 고생할 필요 없다니까?"

"그건 당연한 거고! 아무튼 우리랑 해! 계약서도 준비 해왔으니까!"

두 사람의 말에 상현이 질문했다.

"거기 들어가면, 방송 못 하나요?"

"응? 당연히 못하지. B급부턴 어지간하면 정보노출 안 시키니까."

그 대답에 상현이 결정을 내렸다.

"그럼 저 길드에 안 들어가려구요."

"뭐?"

"그냥 혼자 C급이나 좀 돌면 되죠, 뭐."

상현이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왜!"

"뭔 소리야, 갑자기!"

두 사람이 격하게 반발했다.

그에 상현은 엎어진 열혈 팬 한 명을 챙겨, 대충 자리에서 일어났다.

"정모는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제가 샀어야 하는데, 죄송해요."

"아니, 이것까지만 들어보라니까?"

"정하고 가라고!"

두 사람이 발끈했지만, 상현은 못 들은 척 무시했다.

"잠깐만."

이번엔 다른 사람이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술만 홀짝이던 청년.

그가 입을 열었다는 게 신기한 나머지 상현을 포함한 모두가 그를 돌아보았다.

가벼운 옷차림이었지만, 손목에 걸친 시계를 보면 재산이 꽤 있는 것 같았다.

다음 순간, 청년이 손을 쭉 뻗어 검지로 상현을 정확히 가리켰다.

"난 네 방송이 좋아!"

"……감사합니다."

상현이 얼빵하게 고개를 꾸벅 해보였다.

청년이 말을 이었다.

"그리고 갈 곳 없으면, 우리 길드로 와."

"네?"

"내가 호롱 길드장이니까. 방송도 시켜주지."

충격적인 발언에 모두가 입을 쫙 벌렸다.

곧 몸을 일으킨 청년이 상현에게로 저벅저벅 다가왔다.

그리고 똑바로 눈을 마주보며 말했다.

"너. 내 동료가 돼라."

"…예?"

상현이 입을 쩍 벌렸다.

곧 청년이 멋쩍게 웃었다.

"아, 미안. 이거 꼭 해보고 싶었거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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