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공략 LIVE-33화 (34/185)

033.

"알아서 해."

하수연은 딱 끊어서 말했다.

그에 조심스러운 질문이 돌아왔다.

- 그럼 들어가도 될까요?

"나한테 묻지 마."

- 그래도 수연 씨 덕에 시험도 본 거고…….

쩔쩔매는 반응에 수연이 한숨을 가볍게 내쉬었다.

"상관없어. 네 일이야."

그녀가 단호하게 말했다.

상현은 이번 시험 우수자들에게 주어지는 혜택.

즉 '연옥'에 들어갈 수 있는 권한을 받았고, 자신이 그렇게 해도 될지를 물어보고 있었다.

목소리가 조금 컸는지 주변 동료들이 호기심을 보이며 다가왔다.

"왜? 누구야?"

"상현 씨겠죠."

강영훈과 이지훈이었다.

두 사람은 상현의 시험 과정을 본 이후로 엄청난 관심을 드러내고 있었다.

특히 이지훈은 상현이 언제 방송을 하는지 매 시간마다 공지사항을 확인할 정도였다.

"맞아. 연옥에 들어가도 되냐고 물어봤어."

동시에 격한 반응이 터져 나왔다.

"야, 야, 그건 아니잖아. 바로 말려야지."

"수연 씨, 아무리 그래도 연옥은…!"

하지만 두 사람은 수연의 날카로운 눈빛에 급히 입을 다물어야 했다.

잔뜩 긴장한 상현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 연옥이 대체 어떤 길드…….

이미 들을 건 다 들은 것 같았다.

"……직접 알아봐. 끊을게."

- 자, 잠시만요! 수연 씨!

대충 얼버무리고 통화를 끊으려는데 상현이 다급하게 그녀를 멈췄다.

"왜."

- 저 이번에 열혈 팬들 모시고 정모 하거든요. 다른 분들은 쪽지 드렸는데, 회장님이셔서 제가 직접 말씀도 드릴 겸…….

"안 가."

수연이 싸늘하게 말했다.

기반을 마련해주는 것에서, 그녀의 역할은 끝난 것이었다.

적어도 충분히 성장할 때까진 시간을 주어야 했다.

- ……넵.

삑.

대답을 듣고 그녀가 통화를 끊어버렸다.

이지훈이 싱글싱글 웃으며 다가왔다.

"어디 가세요?"

"안 가. 정모라고 하던데."

"아, 그거요?"

"…?"

자신도 알고 있었다는 뉘앙스에 수연이 의아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이지훈이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말했다.

"저도 쪽지 왔더라구요. 이번에 방송국 옮기잖아요? 그 일 때문인 것 같던데, 잘은 모르겠네요."

"갈 거야?"

"가야죠. 재밌잖아요?"

"……."

수연이 시선을 떨군 채 생각에 잠겼다.

그 모습에 이지훈이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수연 씨는 안 가시게요?"

***

"…번에 김 부장이 그랬다니까!"

"아, 그래서… 놈이……."

"노래방! 노래방부터……."

밤의 번화가는 시끌벅적했다.

"스으읍, 하!"

상현이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뱉었다.

활기찬 밤공기에 상현 자신도 들뜨는 것 같았다.

아직 약속 시간까진 한 시간 정도 여유가 있었다.

"한우명가… 한우명가… 아, 저기네."

북적거리는 거리 중간쯤에서 상현은 미리 예약해둔 가게를 찾을 수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니 입구에 세워진 입간판이 보였다.

[금일은 휴업입니다!]

장사를 하지 않는다는 내용이었지만, 안은 언제라도 손님을 받을 수 있는 상태였다.

상현이 씩 웃으며 안으로 들어섰다.

바쁘게 무언가를 만지작거리던 사장이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손님, 죄송하지만 오늘은 저희가 장사를, 어?"

"사장님, 저 상현이에요!"

상현이 그렇게 말하는 순간, 사장이 화색을 띄며 반겼다.

"아! 상현 씨구나! 미안합니다, 얼굴을 제대로 못 봤네요. 방송 정말 잘 보고 있습니다."

"아우, 감사합니다."

사장이 건넨 손을 맞잡으며 상현이 고개를 꾸벅 숙여보였다.

상현이 오늘 하루 동안 가게 전체를 빌린 것이었다.

마침 사장이 방송의 팬이었고, 게다가 상현이 충분한 돈을 주었기에 쉽게 성사된 일이었다.

가벼운 인사치레를 마치고, 사장이 준비된 물건들을 건네었다.

[오크죽빵값]

[요가복입히자]

[일해라핫산]

[hsy1104]

[사랑해요!!]

…열혈 팬들을 위해 준비한 목걸이 형태의 이름표들.

특히나 '회장'과 '부회장'의 이름표는 유독 화려하게 번쩍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중 하나는 상현 자신의 것이었다.

'BJ 김상현'이라 적힌 이름표를 당당하게 목에 걸고, 상현이 가게 앞에 딱 섰다.

손님을 맞을 시간이었다.

타다닥. 타닥.

주방에서 시원한 칼질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상현이 발뒤꿈치를 세우며 거리를 둘러보았다.

"슬슬 올 때가 됐는데……."

"이야아, 김상현이!"

그때 유쾌한 중저음 목소리가 옆에서 들려왔다.

힘차게 손을 흔드는 남자의 모습이 보였다.

"안녕하십니까!"

상현은 냅다 손을 내밀며 허리를 굽혔다.

"반갑다. 실제로 보니까 진짜 신기하네……."

"아하하핫. 저도 똑같은 사람인데요. 신기할 거 없습니다, 형님. 아, 혹시 닉네임이 어떻게 되세요?"

그에 남자가 난처하다는 듯 머리를 긁적였다.

"그, 참, 이럴 줄 알았으면 아이디 좀 바꾸고 올 걸 그랬다. 요가복…… 그, 그건데."

"아, 넵. 알겠습니다. 들어오시죠!"

상현이 이해했다는 듯 웃으며 이름표를 내밀었다.

"쪽지 받으셨죠? 이거 차고 계셔야합니다, 형님."

"……안 차면 안 되냐?"

남자가 소극적으로 저항했지만, 상현이 계속 들이밀자 어쩔 수 없다는 듯 목에 둘렀다.

"앉아 계시면 됩니다!"

그렇게 들여보내고, 곧 사람들이 한 명씩 도착했다.

그중에는 이주완 역시 있었다.

"와, 주완 씨! 연옥 들어가신 건 잘 됐어요?"

"그럼요. 상현 씨도 같이 오시면 좋았을 텐데……."

주완도 '일해라핫산'이라 적힌 이름표를 받아 들어갔다.

뒤이어 덩치가 좀 있는 남자가 슬렁슬렁 나타났다.

"강철의 혼입니다."

"아, 형님 안녕하세요!"

곧 그 역시 안으로 들어가고, 현재까지 모인 사람은 여덟 명.

그리고 오겠다는 의사를 밝힌 사람은 총 아홉이었다.

가게 안이 벌써 웃음소리로 시끌시끌한 걸 보니, 분위기는 나쁘지 않은 것 같았다.

'언제 오려나…….'

멀뚱멀뚱 서서 마지막 사람을 기다리던 와중, 어디선가 봤던 것 같은 실루엣이 눈에 들어왔다.

가늘게 뜬 눈. 항상 웃고 있는 것 같은 인상.

일전에 흑나비에서 봤던 이지훈이었다.

'저 새끼가 왜 여기 있어!'

상현이 기겁하며 몸을 돌렸다.

하지만 발소리가 점점 가까워지더니, 상현의 바로 뒤에서 멈추었다.

"상현 씨?"

"예에엡!"

기합을 내지르다시피 하며 상현이 뒤로 돌아섰다.

"반갑습니다! 여, 여긴 어쩐 일로 오셨어요?"

"아, 저. 아이디가…… '상현아구르자'인데. 상현 씨가 쪽지 보내신 거 아니에요?"

이지훈이 예의 싱글거리는 미소와 함께 말했다.

'맙소사, 열혈 팬이라고?'

상현은 급히 표정을 관리하며 이지훈을 안으로 데려갔다.

"……들어가시죠!"

"감사합니다."

"아, 지훈 씨. 그런데."

이지훈이 고개를 돌리자 상현이 이름표를 건네며 물었다.

"혹시 수연 씨는 안 오신다던가요?"

"네. 그렇게 들었어요."

"아……."

어색한 분위기에, 상현은 일단 지훈을 아무 자리에나 앉히고 자신은 중앙에 딱 자리를 잡았다.

박수소리가 이어지며 분위기가 한껏 달아올랐다.

이에 상현이 신발을 벗고 빈 테이블 위로 올라섰다.

"자, 형님들! 김상현 배! 열혈 팬 정모를 시작하겠습니다! 그리고 이미 말씀드렸듯이 야방 진행하는 식으로 할 예정이니! 얼굴 노출이 부담스러우신 분들은, 여기 이 가면을 써주시면 되겠습니다!"

그렇게 외치며 상현이 옆의 벽을 가리켜보였다.

그곳엔 각양각색의 가면들이 걸려있었다.

상현이 다시 말을 이었다.

"그리고 2차에선 방송 끌 테니까, 참고하시구요! 그럼, 시작할까요?"

눈을 찡긋하며 마무리를 짓자 사람들이 환호성을 터뜨렸다.

"상현이 멋있다!"

"갓상현이 클라스 있는 진행 좋아!"

잠시 후 모든 테이블에 술과 고기가 올라왔다.

지글거리며 맛있는 향이 퍼졌다.

'김상현'이라는 공통의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이라 그런지, 다들 즐겁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 상현이 방송을 준비했다.

[상현이 열혈 팬 정모^^]

혹시나 했지만, 최만덕 팀장은 다시 방송을 정지시킬 생각은 없는 것 같았다.

'열혈팬 정모 하는 거 보여주면 좀 안심하겠지?'

일반적으로 이런 모임에선 방송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상현은 일부러 최 팀장을 의식해서, 일부러 켜겠다고 한 것이었다.

리얼팟으로 옮기기 전까진 방송을 해야 했으니까.

[왜 19금걸엇음???]

[ㅋㅋㅋㅋㅋ우리 회장님 어디계시냐ㅋㅋㅋ]

[정모 개부럽네ㅋㅋㅋ재밌겠다ㅋㅋㅋ]

방송을 켜자마자 활발하게 채팅이 올라왔다.

몇 분도 지나지 않아 수천 명에 달하는 시청자들이 들어온 것이었다.

괜히 랭킹 1위가 아니었다.

자다 깨서 대충 밥만 먹는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3, 4천 명은 방송을 보고 있을 게 분명했다.

"자, 자, 형님들! 저 봐주세요!"

짝짝.

상현이 가벼운 박수로 사람들을 주목시켰다.

처음 쪽지를 보낼 때 허락을 받았기에, 상현이 곧바로 한 명씩 소개를 하기 시작했다.

"저희 열혈 팬 형님들을 소개합니다! 이쪽은 변호사! 검사! 판사…는 안계시고, 의사! 대기업 회사원! 그리고 헌터에……."

손가락으로 탁, 탁 지목할 때마다 사람들이 히죽 웃으며 고개를 꾸벅해보였다.

"그리고 이쪽, 웃음이 매력적인 분은! 저희 회장님과 같은……."

마지막으로 상현이 이지훈을 소개하던 순간, 누군가 상현을 툭툭 건드렸다.

가게 사장이었다.

"밖에 일행 분 오셨는데요?"

"네? 여기 계신 분들이 전부일 건데. 잘못 오신 거 아니에요?"

상현이 그럴 리 없다는 듯 반박하자 사장이 귀에 대고 속삭였다.

"타고 온 차 가격이 5억부터 시작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페라리 베를리……."

"넵! 바로 가시죠. 무조건 가야겠네요."

핸드폰이 내부를 찍을 수 있게 두고, 상현이 서둘러 밖으로 나왔다.

5억 원짜리 차를 타는 사람이라면, 모르는 사람이어도 아는 사람으로 만들어야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기다리는 건, 상현이 아는 여자였다.

"늦었어."

"…어?"

길게 늘어뜨린 검은 머리.

완벽한 굴곡을 드러내는 타이트한 옷차림.

무심하게 상현을 바라보는 눈빛.

A급 헌터이자 열혈 팬 회장인, 하수연이었다.

상현이 꺼벙하게 말을 건넸다.

"저는 안 오신다고 하셔서……."

"오면 안 돼?"

하수연이 무덤덤하게 받아치고, 상현이 기겁했다.

"당연히 됩니다! 잠시만요!"

파다닥.

안으로 달려 들어간 상현이 곧 'hsy1104'라고 적힌 이름표를 가져와 내밀었다.

"이 이름표 차주셔야 하는데요……."

"……."

조심스럽게 내민 손이 무색하게도 수연은 거부감 없이 이름표를 목에 걸었다.

상현이 그녀를 안으로 이끌었다.

"자, 자! 이쪽 보시죠! 저희 회장님, 하수연 씨를 소개합니다!"

상현이 그렇게 외치며 카메라로 하수연을 찍었다.

하지만 그녀는 눈길조차 주지 않고 자리로 가서 앉을 뿐이었다.

얼핏 예의 없다고 보일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일전에 방송에서 보여준 모습이 있었기에 채팅은 물론이거니와, 주변 사람들도 열광했다.

[걸크러쉬ㅋㅋㅋㅋㅋㅋㅋ]

[하...심장강탈자...사랑해요누나!!!]

[쿨씨크ㅋㅋㅋㅋ 개쩐다ㄹㅇ;;;]

"우리 회장님 멋져요!!"

거의 축제 분위기였으나, 그런 와중 흠칫하며 시선을 돌리는 남자가 있었다.

상현이 그에게로 다가섰다.

"크하하핫, 형님! 왜 긴장하시고 그러세요!"

"아, 아니야!"

'요가복입히자'라는 이름표를 허둥지둥 가리는 모습에 다시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때 하수연이 '요가복'을 정확히 바라보며 말했다.

"안 입어."

연이어 웃음소리가 들리고, '요가복'의 귓불이 시뻘게졌다.

"죄, 죄송합니다."

"크헥헥!"

"푸하하하핫! 아우, 그러게 왜 그러셨어요!"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상현이 멘트를 마구 날리며 방송을 이어갔다.

조금씩 분위기가 무르익어갔다.

그때 '참교육갓상현'이란 이름표를 찬 남자가 다가오더니 상현에게 웬 기계를 내밀었다.

"상현아! 이거 해보자! 컨텐츠야, 컨텐츠!"

"이게 뭐죠?"

묘한 생김새였다.

어린 아이들 장난감 같은 느낌이었는데, 위에 손바닥을 얹으라는 듯 자국이 나있었다.

[ㅋㅋㅋㅋㅋㅋㅋㅋ저거 그거아니냐?]

[거짓말탐지기네ㅋㅋㅋㅋㅋㅋ]

[강제 진실게임하게생김ㅋㅋㅋㅋㅋㅋㅋ]

오히려 시청자들이 먼저 알아보았다.

상현이 급히 반응하려 했지만, 열혈 팬들이 빨랐다.

탁. 정신을 차려보니 손이 어느새 기계에 묶여 있었다.

"으어어, 혀, 형님들!"

가볍게 저항해보았지만,

"가만있어! 으흐흐흐, 우리가 방송 한번 살려줄 테니까……."

"이 쉑… 어딜 감히! 순순히 받아들이란 말이야!"

전혀 소용이 없었다.

물론 확 뿌리치면 가능은 하겠지만, 이들은 열혈 팬이었다.

'방송도 재밌긴 하겠고…….'

그렇게 생각하며 체념하는데, 곧 '요가복입히자'가 상현의 앞에 마주앉았다.

살벌한 미소를 띠고 있는 게, 아까의 복수라도 하겠다는 것처럼 느껴졌다.

"BJ 님, 이제 질문해도 될까요?"

"…넵."

마른 침을 꿀꺽 삼키며 상현이 대답했다.

남자가 씩 웃으며 입을 열었다.

"김상현은 모태솔로다! 예, 아니오로 대답하시죠!"

질문을 듣고 상현이 피식 웃었다.

이 정도 수준은 예상했던 범위 안이었다.

"에, 에이. 제가 설마 지금까지……."

"예, 아니오로!"

"아닙니다!"

상현이 당당하게 외치고, 삐빅-!

램프에 빨간 불이 들어오며 경고음이 울렸다.

"푸하하하핫!"

"으헥헥헥!"

사람들이 배를 잡고 웃고, 채팅도 별반 다를 바가 없었다.

"이, 이거 기계가 잘못됐습니다!"

상현이 억울하다는 듯 말하자 다음 질문이 들이닥쳤다.

"그럼 확인 한번 해보죠! 김상현은 시청자에게 항상 고마움을 느낀다!"

"예!"

띠리링-!

녹색 불이 들어왔다.

목덜미에서 식은땀이 삐질삐질 흘렀다.

이주완이 킬킬대며 말했다.

"상현 씨, 이거 기계에 문제 있는 겁니까? 그러면 시청자한테 전혀 고맙지 않다는 그런 말씀이신 거죠?"

"아니 그런 의미가 아니라,"

"아, 시청자들은 그냥 돈줄이……."

"에헤이! 무슨 말씀이십니까! 당연히 항상 감사하고 있죠!"

상현이 기겁하며 양 손을 내저었다.

이번에는 '오크죽빵값'이 장난스레 웃었다.

"그럼 기계가 틀린 게 아니라는 거네?"

의도가 빤히 보이는 질문이었지만, 상현이 눈물을 머금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기계는… 정확합니다…!"

채팅창은 터져 나갈 듯 했다.

[팩트폭력ㅋㅋㅋㅋㅋㅋㅋㅋ]

[미친ㅋㅋㅋㅋ개웃기네ㅋㅋㅋㅋㅋ]

[아재들 왤케 유쾌함ㅋㅋㅋㅋ]

이번에는 남자가 하수연을 힐끔 보더니, 다음 질문을 던졌다.

"우리 회장님은 좋은 사람이다!"

"그건 당연히!"

말하며 상현이 하수연을 돌아보았다.

그녀는 자신에게 돈을 보내준 것뿐만 아니라, 시험까지 치르게 해주었다.

상현이 당당하게 대답하려던 순간, 흑나비에서 강영훈을 두들겨 패던 기억까지 떠오르고 말았다.

"좋은 분입니다!"

삐빅-!

"흐아아아악! 이거, 기계가… 잘못된 건 아니지만! 아무튼 이건!"

말하며 그녀를 다시 돌아보니, 확 싸늘해진 눈빛이 느껴졌다.

하지만 요가복 남자는 쉴 틈 없이 상현을 밀어붙였다.

"김상현은! 오늘 회장님 몸매를 전체적으로 훑었다!"

"절대 아닙니다!"

삐빅-!

반사적으로 대답했으나 기계는 붉은 빛을 뿌렸다.

동시에 뒤에서 서늘한 기운이 스멀스멀 덮쳐왔다.

"좋았어?"

싸늘한 한마디에 상현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상현이ㅋㅋㅋㅋㅋㅋㅋㅋㅋ]

[사망플래그 또세우네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ㅁㅊㅋㅋㅋㅋㅋㅋㅋ]

채팅을 보며 덜덜 떨고 있는데, 이번엔 '강철의 혼'이라는 남자가 다가오더니 싱글거리며 입을 열었다.

"김상현은 회장님과 MT를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질문을 듣는 순간 상현의 전신에 소름이 돋아났다.

"에헤이! 형님! 에이! 제가 설마… 흐아아아아!"

파바밧! 덜컹! 쿵! 덜그럭!

상현이 격하게 몸을 움직여 떨쳐내더니, 자리에서 도망치기 시작했다.

"잡아! 잡아!"

"우헥헥헥! 푸하핫!"

"어딜 도망가! 이쪽이다!"

웃음이 터지고, 사람들이 상현을 마구 쫓아왔다.

덜컹! 쿵! 더러럭!

의자가 넘어지고, 바닥에 뒹굴고, 유리병을 깨먹을 뻔한 끝에 상현은 결국 붙잡혀 자리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힐끔 뒤를 보니 하수연의 눈빛이 싸늘하게 식어버린 게 보였다.

"에이, 형님들… 그래도 그… 아하하……."

척.

상현이 애써 꿈틀거리며 저항해보았지만, 억센 손아귀가 상현의 손을 기계 위에 올려두었다.

"다시 묻겠습니다."

남자가 눈을 가늘게 뜨며 질문을 던져왔다.

"김상현은 회장님과 MT를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그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숨을 죽인 채 결과를 기다렸다.

하다못해 채팅조차도 올라오는 속도가 확연히 느려져 있었다.

그에 상현이 이를 악물며 외쳤다.

"아닙니다! 아니…!"

하지만.

삐빅-! 삐비비빅-!

기계가 미친 듯이 울었다.

상현의 얼굴이 하얗게 질리고, 하수연이 한마디 중얼거렸다.

"그랬단 말이지."

"아, 아닙니다! 저는,"

삐빅-!

"이런 못된 기계! 아니다, 이 악마야! 아니라고!"

삐빅-! 삐비비빅-!

한창 탐지기랑 싸우고 있는데 갑자기 '요가복' 남자가 정말 궁금하다는 듯한 얼굴로 말했다.

"아니 근데, MT 가는 게 그렇게 잘못된 거야? 요즘 대학생들은 다 가잖아? 뭐 다른 의미라도 있어?"

"…예?"

상현이 얼빵하게 되물었다.

이게 무슨 소리란 말인가.

하지만 곧 다른 사람들도 비슷한 말들을 하기 시작했다.

"하긴, 그냥 같이 놀고 싶다는 거 아닌가?"

"격하게 저항하는 걸 보니까… 아예 다른 쪽으로 생각한 것 같은데?"

"호오, 이거 우리 BJ가 아주 못된 생각을 하고 있었구먼?"

"……."

상현이 입을 쩍 벌렸다.

[ㅋㅋㅋㅋㅋㅋ아재들 능수능란한거보소ㅋㅋㅋ]

[코너까지 몰림ㅋㅋㅋㅋㅋㅋ]

[와ㄹㅇ선동 개쩔어욧ㅋㅋㅋㅋㅋㅋㅋ]

"갸아아아악!"

결국 상현이 절규하며 머리를 쥐어뜯고, 다른 이들은 그 모습을 보며 낄낄거렸다.

즐거운 분위기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