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공략 LIVE-32화 (33/185)

032.

다그닥. 다그닥. 다그닥.

박영찬의 손가락 끝이 물결치듯 책상을 두드렸다.

그는 마치 크리스마스 선물을 고대하는 아이처럼 설레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게…… 얼마만인지 모르겠군."

연옥이라는 대형 길드의 주인이 된 이후, 아무것도 그의 흥미를 끌지 못했었다.

하지만 김상현. 그 남자는 달랐다.

무지막지한 재능을 가진 주제에, 막상 자신은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똑똑.

히죽거리던 그의 귀에 노크소리가 들렸다.

"들어오게, 어서 들어와."

양 손을 맞비비며 박영찬이 말했다.

스으윽.

문이 부드럽게 열리고, 비서가 들어와 허리를 깊숙이 숙였다.

"보고 드립니다."

"그래, 뭐라고 하던가?"

"거절했습니다."

박영찬이 미간을 좁혔다.

기대했던 대답이 아니었다.

그는 손으로 책상 위를 더듬거리기 시작했다.

"이유는?"

"아직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생각을 좀 해보겠다며, 큽!"

빡!

묵직한 타격음이 울리고, 비서가 이마를 부여잡은 채 휘청거렸다.

탁. 데구르르.

재떨이가 바닥에 떨어져 굴렀다.

박영찬이 집어던진 것이었다.

"내가 자네를 고용한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지?"

찢어진 비서의 이마에서 피가 주르륵 흘렀다.

"다른 헌터들보다 몇 배 많은 월급을 주고, 곁에 두는 이유가 무엇 때문이라고 생각하냐는 말이야."

비죽 올라간 박영찬의 입꼬리를 확인하고, 비서는 눈을 바닥에 내리깔며 대답했다.

"쓸모 있는 구석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

박영찬이 고개를 끄덕였다.

"쓸모가 있기 때문이야. 다른 쓰레기들과는 달리, 그나마 써먹을 곳이 있다는 뜻이지. 그런데."

거기서 말을 끊고 박영찬이 몸을 일으켰다.

저벅. 저벅.

비서에게로 다가선 그가 주먹을 높이 들어올렸다.

"그런데 네놈은!"

퍽.

"고작."

퍽.

"그 따위."

퍽.

"대답밖에!"

퍽.

한마디 할 때마다 한 방씩 주먹이 내리꽂혔다.

"내놓지 못하냔 말이야!"

"으윽!"

신음을 억누르던 비서가 결국 쓰러졌다.

그에 박영찬이 주먹을 내리더니, 무감각한 눈으로 비서를 빤히 쳐다보았다.

"음, 아니지. 아니야."

그런데 갑자기 박영찬의 기세가 갑자기 확 가라앉았다.

천천히 자리로 돌아간 그는 스르륵, 의자에 기대듯 앉았다.

"아직 다른 길드에 넘어가진 않았으니까. 음, 내가 자네랑 그렇게 이야기를 했었지? 다른 길드에 넘어가기 전까진 괜찮다고 말이야. 그렇지 않나?"

"예, 맞습니다."

급히 몸을 세운 비서가 힘차게 말했다.

그 모습에 박영찬의 미소가 부드럽게 변했다.

방금까지 분노를 쏟아내던 남자라곤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그래, 아무 길드에도 들어가지 않았어. 소속이 없단 말이지. 시간은 충분해. 그나저나, 정말 굉장한 친구 아닌가? 응? 자네도 봤지? 그 친구 재능 말이야."

"…예. 봤습니다."

"그래! 당연히 그래야지! 크하하핫! 아니, 자네 얼굴에서 피가 나잖은가. 가까이 오게."

그제야 눈치 챘다는 말투였다.

비서가 조심스레 다가서자 그가 수표를 한 장 꺼내 내밀었다.

"이런 얼굴로 가면 그 친구가 무어라 생각하겠나? 저급한 폭력배들처럼 보일 순 없지. 서둘러 병원이라도 다녀오게."

"넵. 그럼."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걸어 나가는 비서의 모습을 보며, 박영찬은 몸을 가볍게 떨었다.

"하아아. 계속 도망치게나. 내가 애태울 수 있게. 내가 더 즐거울 수 있게 말이야……."

***

"생각을 해본다고? 그렇게 말했어?"

"네."

"벌써 어디 제안 들어온 거 아냐?"

신대륙TV 최만덕 팀장은 불안하다는 얼굴로 말했다.

파트너 BJ를 시켜준다는데 그런 대답이 돌아왔다는 건, 분명 다른 수가 있다는 뜻이었다.

그때 부하직원이 말했다.

"근데 팀장님, 저는 솔직히 잘 모르겠는데요. 아무리 1위라곤 하지만, 어차피 잠깐이고. BJ 하나 없다고 해서 저희가……."

"닥쳐 봐."

삐빅.

상현이 방송을 시작했다는 알림이 떴다.

최만덕은 부랴부랴 키보드를 두드렸다.

그런데 제목이 심상치 않았다.

[상현이 중대 공지사항입니다!!]

"야, 김 대리. 너 바로 최이브한테 연락 넣어."

"최이브요?"

"아니다, 김연빛한테 해. 김상현이랑 합동방송 부탁한다고 연락 넣어. 빨리!"

"…알겠습니다."

김 대리는 당최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이었지만, 일단 자리로 돌아가서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후, 저 등신 같은 새끼."

중얼거리며 방송에 들어가 보니 상현이 미안하다는 분위기로 멘트를 치고 있었다.

- ……해서 아마 플랫폼을 옮기게 될 것 같아요. 그래서…….

"씨팔! 김상현 방송 정지시켜!"

반전은 없었다.

최만덕은 직권을 이용해 급히 상현의 방송을 정지시켰다.

"야, 김연빛 뭐래!"

"알겠답니다. 금방 준비하겠다는데요."

"바로 데리러 간다고 해. 김상현 집으로 내가 직접 갈 테니까."

"네? 아, 알겠습니다."

얼빵한 직원의 모습을 뒤로 하고, 최만덕은 사무실 밖으로 급히 나섰다.

***

"이럴 줄 알았어."

상현은 투덜대며 아이스크림을 입에 물었다.

방송이 도중에 꺼질 거라는 건 충분히 예상한 바였다.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어쨌든 타 플랫폼을 광고하는 의미였으니까.

'그래도 이렇게 빠를 줄은 몰랐는데.'

이해하지 못할 건 아니었지만, 리얼팟과 아직 아무런 계약을 하지 않았기에 당장 방송할 곳이 없었다.

시청자들과 소통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하니 몸에서 힘이 쭉 빠졌다.

[서비스 이용이 정지된 방송국입니다.]

혹시나 싶어 들어가 보았지만, 방송국 홈페이지 역시 이용할 수 없게 되어 있었다.

"흐아아아암."

길게 기지개를 켜고 상현은 몸을 던지듯 침대 위에 올랐다.

기왕 이렇게 된 거 며칠 푹 쉬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간만의 휴식이었으니까.

'내일 다른 던전 공략할 준비나 좀 하고…….'

그렇게 생각하던 순간.

띠리링! 띠리링!

현관 벨소리가 울렸다.

'이 시간에 올 사람이 있나?'

"누구세요?"

"택배입니다!"

상현이 고개를 갸웃했다.

"저 택배 받을 거 없는데요?"

"김상현 씨 아니세요? 헌터협회에서……."

덜컹!

상현이 급히 문을 열어젖혔다.

"저 맞습니다. 내용물이 뭐죠?"

"바람의 요정 항아리라고 적혀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아이템을 택배로 보낼 거라곤 생각을 못했네요."

"저희가 헌터 인력을 고용해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어요. 아, 여기 서명 좀 해주시겠어요?"

헌터 택배기사란 말에 어이가 없어 피식 웃음이 났지만, 더 묻지는 않았다.

스스슥.

상현은 대충 서명하고 상자를 받았다.

그리고 돌아서려는데 택배기사가 상현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택배비 주셔야 되는데요. 착불이라서……."

"아, 얼마죠?"

상현이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아까 슈퍼를 다녀와서 잔돈이 좀 있을 터였다.

하지만.

"120만 원이요."

"예?"

"아이템 배송이라서요. 아무래도 인건비 때문에 다른 택배랑은 가격 차이가 좀 있죠?"

"…엄청난 차이네요."

"이래 봬도 C급 헌터니까요."

당당히 말하는 택배기사를 향해 상현은 멍한 얼굴로 핸드폰을 꺼내었다.

모바일 뱅킹을 하기 위해서였다.

부욱! 부우욱!

택배기사를 보내고, 상현은 투덜거리며 포장을 뜯었다.

"하, 나쁜 새끼. 착불이 뭐야, 착불이."

- 며칠 안으로 보낼 거다. 행정상 처리할 게 있어서 시간 좀 걸려.

감독관이 그렇게 말할 때만 해도, 설마 이런 식으로 보낼 줄은 몰랐었다.

그러나 불만도 잠시, 일주일간 수족처럼 가지고 다녔던 항아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곧바로 옆구리를 슥슥 쓰다듬자, 뾰롱!

익숙한 소리와 함께 요정이 튀어 나왔다.

"야아아! 뾰롱아!"

반가운 마음에 상현이 소리치자 요정도 알아들었다는 듯 좌우로 하늘거렸다.

마치 춤이라도 추는 것 같은 모양새에 흐뭇한 미소가 절로 피어났다.

상현은 요정의 양팔을 가볍게 잡고 좌우로 흔들었다.

"뾰롱, 뾰롱뾰롱, 뾰롱!"

그렇게 헛소리를 중얼거리며 한참을 놀고 있는데, 또다시 벨이 울렸다.

띠리링! 띠리링!

"누구세요!"

상현은 요정을 어깨에 얹고, 대뜸 문부터 열었다.

그곳엔 웬 아저씨와 여자가 서있었다.

그리고 그 여자는, 상현이 아는 사람이었다.

"어? 김연빛?"

작년 신대륙TV 우수상을 수상한, 가장 눈에 띄는 신인이었던 BJ 김연빛.

그녀가 나긋나긋 웃으며 인사를 해왔다.

"안녕하세요? 어머, 얘가 뾰롱이구나!"

"어븝. 아, 어, 안녕하세요. 네."

상현이 멍청하게 반응하며 옆의 남자를 바라보았다.

그에 남자가 명함을 내밀었다.

"갑작스럽게 찾아뵈어 죄송합니다. 신대륙TV 최만덕 팀장입니다. 다름이 아니오라, 아까 방송하신 내용을 보고 급히……."

"일단 들어오시죠."

상현은 두 사람을 자리에 앉혀놓고, 냉장고에 대충 보관하던 주스를 세 잔 따라왔다.

그리고 요정을 옆에 내려놓은 다음, 상현이 말했다.

"말씀하세요."

"우선 저희가 김상현 씨께 기대하고 있는……."

곧 팀장이 장황하게 말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하지만 결국 결론은 다른 회사로 넘어가지 말아달라는 내용이었다.

그에 상현이 리얼팟에서 제시한 조건들을 나열했으나 오히려 그는 그 이상도 해줄 수 있다고 말했다.

상현이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그때랑 말씀하시는 게 너무 다르시네요."

"예? 언제 말씀이시죠?"

"어제 전화하셨을 때요."

"어제라고 하시면… 아."

퉁명스러운 상현의 태도에 최 팀장은 머리를 부여잡았다.

"뭐라고 하던가요?"

"아, 뭐… 파트너 BJ 신청 안 하냐고 해서요. 생각 좀 해보겠다니까 '저희가 이렇게 하는 거 흔하지 않은데요.' 이런 식으로 말씀하시더라고요. 그리고 전화 끊어버리시던데."

"정말 죄송합니다. 제 부하직원인데,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대신 사과드리겠습니다."

팀장이 머리를 깊게 숙였다.

상현이 급히 손을 내저었다.

"에에이! 그러지 마세요. 괜찮습니다. 저는 그냥 이번에 다른 데서 한 번 해보려고……."

갑자기 팀장이 고개를 홱 들더니, 상현에게로 상체를 기울였다.

"혹시 합동방송 생각 없으십니까?"

"예? 합방요? 아뇨, 딱히 계획은 없습니다. 할 사람도 없……."

상현이 설마 하며 김연빛을 쳐다보았다.

그녀가 상현의 곁으로 다가왔다.

"저랑 하기 싫으세요?"

곧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속삭이더니, 순식간에 상현과 팔짱을 낀 상태가 되었다.

"크흡!"

당황스런 분위기에 상현이 헛기침을 뱉으며 급히 고개를 반대편으로 돌렸다.

그에 최만덕 팀장이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옆에 계신 김연빛 씨뿐만 아니라, 다른 BJ분들도 말씀만 하시면 언제든지 저희가 소개시켜 드릴 수 있습니다."

"저랑 합방 안 하실 거예요?"

물컹!

팔에 김연빛의 가슴이 닿았다.

부끄러움과 분노. 두 감정이 동시에 차오르면서 상현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이러려고 여캠을 데려온 거야?'

상현이 발끈하며 말을 쏟아내려던 순간.

덜컹.

현관문이 열렸다.

"…어?"

동시에 세 사람이 그쪽을 쳐다보았다.

요정이 문을 연 것이었다.

"뾰롱아?"

상현이 요정을 불러보았지만, 쫄래쫄래 김연빛에게로 날아들 뿐이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꺄아아! 이거 놔! 왜이래!"

요정이 김연빛의 머리채를 잡더니, 낑낑대며 현관 방향으로 끌어당기기 시작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