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공략 LIVE-23화 (24/185)

023.

은신처로 쓰일 만한 곳만 돌아다닌 지 한 시간 정도 지나서, 원명은 다른 파티를 발견할 수 있었다.

몬스터를 경계하는지 나무 사이로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을 확인하고 원명이 즉각 이유진에게 보고했다.

"찾으셨다고요?"

"예, 아가씨. 저쪽입니다."

원명은 파티원들을 이끌고 방금 발견한 장소로 향했다.

곧 그쪽에서도 사람이라는 걸 확인했는지 남자 한 명이 느긋하게 걸어 나왔다.

"아, 젠장. 뭐가 오기에 원숭인가 싶어서 긴장했습니다. 거, 그쪽도 잘 버티고 계신가봅니다? 근데 미안하지만 이쪽 자리가 좀 좁아서, 다른 곳 알아보셔야 하겠는데?"

상대방이 실실 웃으며 말을 걸어왔다.

원명은 그에겐 눈길조차 주지 않고 무신경한 얼굴로 유진을 돌아보았다.

"금방 처리하겠습니다, 아가씨. 잠시 빠져 계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처리?"

남자의 얼굴에서 웃음이 지워졌다.

김원명은 그에 개의치 않고, 이번엔 이유진 곁의 두 명에게 말했다.

"너희 둘은 아가씨 확실하게 지키도록."

"네."

"알겠습니다."

척. 척.

두 사람이 무기를 꺼내 들고, 그녀를 지키듯 섰다.

"지금 뭐 하는 겁니까?"

남자가 바짝 긴장한 채 몸을 살짝 낮추었다.

"너희가 가진 공, 내 놔."

"예?"

"좋게 말하는 건 한 번뿐이야. 지금 넘겨주면 다치진 않을 거다."

원명의 말투는 냉랭했다.

남자가 어이가 없다는 듯 웃으며 동료들을 돌아보았다.

"허, 참. 다치기 싫으면 공을 넘겨라? 이거 아주 날강도들이네?"

"지들 거 뺏겼다고 심보 좀 부려보겠다는 거 같은데… 그냥 무시해."

"저놈 처음에 감독관한테 불려나갔던 놈 아냐? 그 길잡이랑 비슷할 거 같은데. 자기 계열도 모르던 놈 있잖아."

남자들이 킥킥거리며 여유롭게 말을 받았다.

대표 격으로 나왔던 남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들으셨지? 댁들한테 줄 거 없으니 그냥… 컥!"

털썩.

느긋하게 말하던 남자가 옆구리를 부여잡으며 주저앉았다.

순식간에 다가선 원명이 큼직한 바디블로를 먹인 것이었다.

"끄윽… 끅……."

고통에 끙끙대는 남자의 모습에 나머지 세 명이 표정을 확 굳혔다.

원명이 단조로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말했지. 한 번뿐이라고."

"너 뭐야 미친 새끼야!"

상대 파티원들이 격하게 반응했다.

무기에 손을 얹고, 원명의 주위를 둘러쌌다.

"이러면 니네도 실격이야! 이 새끼야!"

"실격? 글쎄. 감독관이 '치명적인 상해'를 입혔을 때만 실격이라고 한 걸로 아는데."

원명이 씩 웃으며 말을 이었다.

"죽거나, 아니면 정말 크게 다치거나… 그런 것만 아니면 된다는 거지. 내가 너희들을 '매우 아프게' 때린다고 해서 문제가 되진 않을 텐데?"

"이 새끼가……."

"잠시만요. 이유라도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그때 조용히 상황을 지켜보던 다른 남자가 나왔다.

"그 정도 실력이시면 몬스터한테 뺏기진 않으셨을 것 같은데요. 왜 저희 공을 가져가려고 하시는 건지요."

"끄으으으."

처음 나섰던 남자는 아직도 바닥에서 신음을 흘리고 있었다.

고작 한 방 맞았을 뿐인데, 양 쪽의 아득한 실력 차이가 드러났다.

"음, 어차피 떨어질 놈들인데. 알려줘도 상관없겠지?"

원명은 미간을 모으며 잠시 고민하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그저 다음 시험을 위해서다. 공을 많이 모을수록 이후에 유리한 조건을 받을 수 있거든."

"유리한 조건…이요?"

"너희 같은 놈들은 어떻게 꾸역꾸역 올라가더라도, 어차피 떨어지게 돼있어. 결국 디딤돌 역할을 하게 되는 건 마찬가지란 소리다."

"…다 무기 들어. 저놈, 그냥 우리 다 조질 생각이다."

누군가가 이를 악물고 말했다.

"맞는 말이야. 하지만 알았다고 해서."

원명은 양 주먹을 들어 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동시에 상대방을 향해 튕기듯 날아갔다.

"바뀌는 건 없다!"

"씨발, 막아!"

"크흑!"

남자의 외침이 무색하게도, 바로 다음 순간 방패를 들고 있던 남자가 나가떨어졌다.

이번에도 방금과 같은 바디블로였지만, 남자들의 눈엔 무언가가 휙 지나간 걸로만 보였다.

"두 놈 남았는데, 더 버틸 거냐?"

원명의 질문에 남자가 이를 악물며 분노를 터트렸다.

"이게 얼마짜리 시험인데… 그렇게 쉽게 포기하겠냐, 이 새끼야?"

"그것도 그렇지. 금방 끝내주마."

원명이 수긍하고는 다시 달려들었다.

스스슥, 빡!

묵직한 소리와 함께 또 한 명이 허물어졌다.

한 주먹에 하나씩.

남자들은 무기를 휘둘러볼 틈조차 없었다.

한순간에 혼자 남아버린 남자는 몸을 부들부들 떨며 악을 써댔다.

"이런 씨발! 왜 하필 우리한테… 크억!"

다시 마무리 한 방.

한 파티 전체를 반 시체로 만들어놓고, 원명이 여전히 단조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원명이 여전히 단조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공. 어느 놈이 가지고 있지?"

"…씨발."

대답 대신 원망 가득한 눈총만이 돌아왔다.

원명은 어깨를 으쓱해 보이고 쓰러진 남자들에게 다가섰다.

"어쩔 수 없군. 만약 숨겨놨다면, 지금 말하는 게 좋을 거다. 적당히 고통만 주는 방법은 너희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많거든. 가령 어깨를 뽑아버린다던가……."

우드득!

직접 보여주겠다는 뜻인지, 그의 손에 잡힌 남자의 몸에서 끔찍한 소리가 났다.

"끄아아아아악!"

남자가 거세게 몸부림치며 저항했지만 원명은 손을 놓고 남자의 다리를 세게 걷어찼다.

빡!

"끄하악… 이 씨, 씨발 새끼야!"

남자가 고통에 비명을 지르는 사이, 원명은 그의 주머니를 뒤져 공을 꺼냈다.

"흠. 가지고 있었군."

"안 돼! 개새끼야!"

"이 돈이 무슨 돈인데!"

"제발 돌려주세요! 어차피 합격하신 거잖아요!"

남자들이 비명을 지르며 매달리다시피 했지만, 원명은 들은 체도 하지 않고 여자에게 돌아갔다.

"끝났습니다, 아가씨. 바로 다른 놈들 찾으러 가시면 될 것 같습니다."

"…수고했어요. 저 사람들은 어떻게 하죠?"

"그냥 두셔도 상관없습니다. 어차피 저 상태면 곧 몬스터한테 잡힐 테니까요."

"그런 의미가 아니에요."

이유진은 그렇게 말하고 눈앞의 남자들에게 다가갔다.

즉시 원명이 그녀의 앞을 가로막았다.

"위험합니다."

"위험하지 않아요. 저 사람들이 저한테 위협이 될 수준인가요? 아니면 제 실력이 저 사람들에게 당할 정도라고 무시하는 건가요?"

"실수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원명이 곧 물러섰다.

이유진은 살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됐어요. 당신은 시험만 잘 치러내면 돼요. 이제부터라도 정확히 선을 긋도록 하세요."

"끄으으……."

그러는 동안 네 명의 남자는 공을 뺏긴 채, 고통과 서러움에 표정을 잔뜩 구기고 있었다.

한 남자는 눈물마저 질질 흘려대고 있었다.

방금 어깨가 뽑힌 남자였다.

"씨발… 왜 우리한테……."

"아이템 팔아도 2천이 손해야. 그 돈이면…차라리 오지 말 걸."

다시 덤벼든다고 해도 승산이 없다는 걸 깨달은 것이었다.

대체 무슨 수를 쓴 건지, 주먹 한 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몸에 힘이 들어가질 않았다.

그런 남자들을 보며 여자가 입을 열었다.

"미안해요."

"좆까! 꺼져!"

"얼마나 씨발! 잘 되는지 보자! 개 같은 새끼들!"

하지만 돌아오는 건 악의로 가득 찬 눈길과, 원색적인 욕설뿐이었다.

이유진은 한숨을 내쉬고 원명을 돌아보았다.

"제 명함 주세요."

"아가씨, 하지만……."

"또 두 번씩 얘기해야 하나요?"

그녀의 눈꼬리가 살짝 치켜 올라갔다.

원명은 두말 하지 않고 품에서 금박을 입힌, 화려한 명함을 꺼냈다.

이유진은 그걸 받아 남자들에게 한 장씩 건네었다.

"바운티 길드에 임원으로 있는 이유진입니다."

"하, 씨팔."

"…있는 놈들이 더하다더니."

"능력이 없어 보인다 했더니, 역시 뒷배가 있었어. 그럴 줄 알았지."

악담이 쏟아졌다.

심지어는 명함을 받자마자 집어 던져버리는 사람도 있었다.

"이것들이……."

"가만 계세요. 이분들은 화 낼 권리가 있어요."

원명이 발끈하며 한 걸음 나섰지만, 유진이 손을 들어 멈춰 세웠다.

"결국 떨어질 거라고 하더라도, 경험을 쌓을 기회조차 뺏은 건 사실이에요. 아닌가요?"

"…말씀하신 게 맞습니다."

원명이 살짝 고개를 숙였다.

분위기가 묘하게 흘러가자, 대장 격으로 보였던 남자가 파티원들에게 속삭이듯 말했다.

"니들. 지금부터 입들 다물고 있어."

"야! 지금 상황이……."

"닥치라고! 씨발! 닥치고 있어. 이빨 보이지 말라고! 진짜 죽고 싶어?"

헌터시험을 준비하면서 눈칫밥만 몇 년을 먹어왔다.

지금 저 여자는 분명 자신들을 시험에서 떨어트렸지만, 호의 역시도 갖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저한테 말씀하시죠."

"…본론부터 말씀드릴게요."

유진이 말했다. 남자는 긴장한 채 주먹을 말아 쥐었다.

자그마치 바운티의 임원진이라고 했다.

그렇다고 배경을 업고 날뛰는 멋모르는 여자애인 것도 아닌 듯했다.

그리고 이럴 때는, 가만히 있는 게 최선이었다.

"개인적인 차원에서 보상금을 지급하겠습니다."

'역시!'

남자가 속으로 탄성을 터뜨렸다.

하지만 거기서 그의 동료가 이를 갈며 태클을 걸어왔다.

"끽해야 몇 백……."

빡!

"좀 닥치고 있어! 계속 말씀해주시죠. 죄송합니다."

남자는 재빨리 뒤통수를 후려치고 다시 고개를 숙였다.

"…그 명함으로 연락 주시면, 아이템 판매 금액과는 별개로, 시험 응시료 3천만 원과 위로금 조로 천만 원. 총 4천씩 각각 개인 계좌로 지급해 드릴 겁니다."

"……!"

남자들이 눈을 부릅떴다.

시험 응시료 3천만 원이 다시 돌아오고, 게다가 거기에 천만 원을 추가로 준다고 했다.

파격적인 조건이었다.

아이템까지 판매한다고 치면, 사실상 시험에 탈락하고서도 2천만 원가량의 이득을 보는 셈이었다.

"진심…이십니까?"

더더욱 공손해진 태도로 남자가 물었다.

그에 유진이 굳은 얼굴로 대답했다.

"거짓말 치는 걸 좋아하진 않지만, 불안하시다면 지금 녹음을 하셔도 좋아요."

"녹음? 좋아! 그럼 지금……."

"좀! 닥치고! 있어! 너는!"

빠악! 빡!

남자가 거칠게 동료를 두들겨 패곤, 한껏 밝아진 얼굴로 질문했다.

"바운티에 소속되신 분이 그럴 리가 없죠. 믿겠습니다. 하지만 하나 좀 여쭤 봐도 될까요?"

"말씀하세요."

"처음부터 이런 제안을 하셨다면 저희도 크게 저항하지 않았을 텐데요. 저희 감정도 상하지 않고, 그… 어, 아가씨의 시간도 아끼셨을 겁니다. 왜 이제 와서 이렇게 하시는 건가요? 아, 절대 불만이라는 게 아니라, 그냥 궁금해서 그렇습니다."

"…그건."

유진이 살짝 원명을 돌아보았다.

"돈으로 샀다간, 점수 못 받습니다."

원명이 대답하고, 손가락을 세워 하늘을 가리켜보였다.

"감독관이 지금도 모니터링 하고 있을 겁니다. 지금 아가씨처럼 '호의'로 주시는 건 상관이 없지만, 그게 공을 '산다는' 형태가 되어선 안 됩니다."

"음, 들으셨죠? 그렇다고 하네요."

유진이 다시 남자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남자는 웃는지, 우는지 모를 얼굴로 허탈한 웃음을 흘렸다.

"…알겠습니다. 그럼 저희가 어떻게 하면 될까요?"

"시험을 포기한다고 외치세요. 보상은 이번 시험이 끝나고 나서, 그 명함에 적힌 곳으로 연락 주시면 돼요."

"감사합니다!"

다시 고개를 숙여 보이고, 그는 곧 파티원들을 끌어 모았다.

"하자. 응? 어차피 텄잖아?"

"씨발. 아무리 그래도 이런 식으로 끝내기엔……."

"그럼 돈도 포기하던가."

"…그건 아니지."

잠깐의 저항이 있었지만, 금세 꺾였다.

의견이 모이자 남자가 크게 소리쳤다.

"시험 포기합니다! 꺼내주세요!"

"저희 파티 시험 포기하겠습니다!"

훅.

곧 몇 초도 채 지나지 않아, 대치했던 파티의 모습이 사라졌다.

유진은 그 모습을 신기하다는 듯 바라보고 있었다.

"아가씨. 이제 가시죠. 앞으로 두 개는 더 모아야 합니다."

원명이 부르자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요. 이번엔 방금처럼 너무 과격하게 하지 마세요. 상대하기 힘들 거라는 정도만 보여줘도 충분해요."

"…하지만 아가씨. 무의미한 지출입니다."

원명이 불만을 드러내자 유진이 살풋 웃으며 말했다.

"제가 그런 '무의미한 지출'을 해선 안 되는 위치인가요?"

"…아닙니다. 말씀하신대로 하지요."

원명은 고개를 절레절레하고는, 곧 다시 걸음을 옮겼다.

이유진.

바운티에 들어오자마자 임원 자리를 꿰찬 여자.

그녀의 정체를 알고 있는 원명으로선 그저 무슨 말이건 수긍하는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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