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공략 LIVE-21화 (22/185)

021.

상현의 자신만만한 선언에 동료들이 기대 가득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에 상현이 씩 웃으며 달리기 시작했다.

"일단 밖으로! 위치 안 좋아요!"

넓은 내부 보단, 좁은 입구에서 상대하는 편이 훨씬 나았다.

나머지 세 명도 허겁지겁 그 뒤를 따랐다.

달리며 돌아보니 몬스터들이 생각보다 느린지, 거리가 조금이 조금씩 멀어지는 게 보였다.

긴 팔을 질질 끄는 모습에 순간 따돌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곧 무언가가 퍼뜩 머리에 떠올랐다.

'아니야. 숲에 들어가는 순간 우리가 따라잡힌다.

처음 만났던, 정찰을 나왔던 녀석.

나무 위로 올라간 원숭이는 지금과는 비교도 안 되는 속도로 달아났었다.

이놈들도 마찬가지일 게 분명했다.

'차라리 동굴 안에서 싸우는 게 나을 수도……. 아니지. 그러다가 포위당하면?'

상현이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이건 시험이었고, 그러니 불가능한 문제를 출제하지는 않았을 터였다.

무언가 빠트린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원숭이들이 자신들에게 불리한 동굴 안에 거점을 잡은 이유. 그 이유를 알아야 했다.

파아앗!

하지만 생각할 틈이 없었다.

동굴 밖으로 빠져나온 상현은 환한 빛에 눈을 찌푸렸다.

"상현 씨!"

"아까 대치할 때 잡았던 포메이션으로 대기하세요! 호용, 영근, 주완 순입니다!"

영근의 다급한 부름에 상현이 바로 지시를 내렸다.

"넵!

"알겠습니다!"

"네!"

파티원들이 우렁차게 대답해왔다.

혼란스런 상황에서 그들에게 필요한 건, 명확한 지시였다.

"호용 씨 앞으로!"

처처척.

호용이 방패를 든 채 가장 앞에 서고, 영근이 가운데, 그리고 주완은 상현의 옆에 바짝 붙어있었다.

원숭이 울음소리가 점점 커지고, 그제야 대략적인 마릿수가 눈에 들어왔다.

"대충 봐도 30마리는 넘겠는데요?"

영근이 불안감을 담아 중얼거렸다.

사람 키의 절반 정도밖에 되지 않는 녀석들이었지만 이 정도로 몰려온다면 꼼짝없이 두들겨 맞을 수밖에 없었다.

'가만. 팔이 유독 길다고?'

빠른 이동속도와 비교적 긴 팔.

두 가지를 조합해보니 문득 어떤 추측이 떠올랐다.

'팔이 길다는 건, 공격 사정거리가 길다는 거야. 저 속도로 다가와서 공을 낚아채간다면… 못 잡아. 그래, 공을 뺏기 쉬운 구조였어. 그렇다면!'

상현은 몸을 돌린 채 항아리를 급히 쓰다듬었다.

뾰롱!

여전히 머리맡에 금색 공을 얹은 채로 튀어나오는 요정.

그 순간.

"끼끼꺅! 끄꺅!"

"끼익! 끽!"

설마 했던 추측이 들어맞았다.

원숭이들이 격하게 끽끽거리며 팔을 마구 내질렀다.

확실히 행동이 공격적으로 변했다.

'추측이 맞았어. 공에 반응하는 거야.'

상현은 요정에게서 공을 받아들고 좌, 우로 크게 휘둘러보았다.

그때마다 원숭이가 달려오는 방향이 큼직큼직하게 바뀌었다.

"아오!"

에라 싶어 상현이 동굴 안으로 황금빛 공을 힘차게 던져 버렸다.

"끼긱! 끼이이익!"

그러자 원숭이들은 마치 공을 주우러 가는 강아지처럼, 동굴 안으로 달려 들어갔다.

"…어?"

"상현 씨! 이게 무슨……!"

영근은 얼빵한 얼굴로 그 모습을 바라보고, 주완은 놀란 채 고함을 질렀다.

"이럴 줄 알았어."

하지만 상현은 개의치 않고 실실 웃기만 하고 있었다.

[상현이 이제 삼수생이냐?ㅋㅋㅋㅋㅋㅋㅋㅋ]

[지켜야된다고 했지않음?ㅋㅋㅋㅋㅋㅋ]

[저만 믿으세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채팅창에는 온갖 질문들이 쏟아지고 있었다.

상현은 동굴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숲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일단 정비부터 좀 할까요? 너무 갑작스런 상황이라 경황이 좀 없었네요."

"아니 저희 공이……."

"언제 다시 나올지 몰라요. 가서 제가 설명 드릴게요. 저만 믿으시면 된다고 말씀 드렸잖아요?"

"……."

파티 전체의 분위기가 축 가라앉았다.

초반에 후끈 달아올랐던 기대감은커녕 배신감마저 느끼는 표정들이었다.

하지만 상현은 그러거나 말거나 우선 자리를 잡는 데에만 신경을 쓰고 있었다.

거리가 조금 있는, 나무 사이로 동굴이 내려다보이는 곳을 확인하고는 상현이 바닥에 털썩 앉았다.

"상현 씨, 조금 전에 그 공……."

"잠시만요."

호용이 바로 질문하려 했지만, 상현이 손을 저어 제지시켰다.

그리고는 핸드폰 카메라를 파티원 전체를 비출 수 있는 위치에 놓았다.

"자, 우리 형님들도 궁금하실 테니까! 바로 설명 해드리겠습니다! 방금 그 원숭이들. 숫자 보셨죠? 수십 마리에요. 수십 마리. 싸웠으면 저희 무조건 박살나는 각입니다. 그래서 공 포기하고 정비부터 하려는 거구요."

"……."

"그래도 저도 나름 방어력은……."

무기를 쥔 주완의 손에 힘이 살짝 들어갔다.

호용은 어색한 얼굴로 반박하려 했다.

상현은 어깨를 으쓱하고 말을 이었다.

"호용 씨가 약하다는 말이 아닙니다. 아무리 저런 놈들이라도, 난전으로 들어가면 한 명쯤은 치명상을 입지 않겠어요? 그럼 실격. 그리고 그 대상은 아마도."

상현은 자신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가, 영근에게로 방향을 틀었다.

"저나 영근 씨가 될 거예요. 저는 전투계열이 능력치가 거의 없다시피 하고, 영근 씨는, 속도 쪽이죠?"

"네. 맞습니다."

"저희 둘이 실격당하고 나면 주완 씨랑 호용 씨 둘만 남아요. 그 상태로 끝날 때까지 버틸 수 있으세요?"

"……."

호용이 입을 굳게 다물었다.

무슨 말인지 확실히 이해한 것 같았다.

"전력이 손실되기 전에 퇴각하는 게 제일 좋아요. 동굴 안은 좁아서 난전이 되겠지만, 동굴 밖은 더 엉망진창이 될 걸요? 저놈들 원숭이에요. 아까 나무 탈 때 속도 보셨죠? 얼마나 빠른지?"

"음……."

상현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제부턴 어떻게 하죠? 일단 공은 줘버렸고. 이대로 가면 시험 탈락인데?"

주완이 물었다. 이제 상현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제가 처음에 말씀 드렸을 텐데요?"

"뭘요?"

"이 시험은 공을 지키는 게 목적이 아니라, 마지막 순간에 들고 있어야 한다는 거요."

"…설마."

주완의 분위기가 미묘하게 바뀌었다.

파티원들의 눈동자가 정신없이 돌아갔다.

"제 생각엔, 우린 방금 1단계를 넘은 겁니다. 아마 이것 자체가 시험인 것 같아요. 그리고 저는 선택을 했고요."

"공을 넘겨주는 선택?"

"아뇨. 지키는 게 아니라 빼앗는 쪽을 선택한 거죠."

"…그쪽이 훨씬 쉽겠군요."

주완도 씨익 웃었다.

상현은 가볍게 손뼉을 치며 사람들의 주의를 모았다.

"자, 다들 한 가지 생각해보세요. 저 원숭이들. 아까 제가 공 던졌더니 바로 안으로 들어가는 거 보셨죠? 저게 정상적인 상황일까요?"

"아니겠죠."

"그렇죠. 제가 보기에, 저 원숭이는 시험의 일부예요. 애초에 진짜 몬스터가 아니라고 하기도 했잖아요? 그럼 우린 뺏긴 공을 다시 돌려받기만 하면 됩니다. 사흘 안에만."

"저. 혹시."

영근이 손을 들고 물었다.

"끝까지 저 원숭이들한테 공을 못 뺏으면요?"

"그럼 다른 파티에게서 빼앗아야죠."

상현이 대답했다.

생각도 해 보지 못한 대답에 영근도 효용도 얼굴이 굳었다.

"당연하지 않습니까. 이 시험이 얼마짜린데요? 영근 씨는 3천만 원이 우스워요? 호용 씨는?"

"아뇨."

"그런 건 아니지만……."

"다들 각오 단단히 하세요. 이거 3천만 원짜리 시험입니다. 장난 아니에요."

한 명, 한 명 상현이 눈을 맞추곤, 쐐기를 박았다.

"이 시험은, 지금부터 시작입니다."

파티원들이 고개를 끄덕거리며 상현의 말을 받아들이는 모습이 보였다.

'됐어. 아직은 여유 있어.'

이 파티의 구심점은 상현 자신이었고, 최대의 강점은 길잡이에 대한 무조건적인 신뢰였다.

[상현아 핸드폰 팔아볼 생각 없냐?ㅋㅋㅋㅋㅋㅋ]

[그럴듯하다ㅋㅋㅋ 말 개잘하네ㅋㅋㅋㅋㅋ]

[이시대의 참리더 인정하겠습니다ㅋㅋㅋㅋㅋ]

다행스럽게도 시청자들의 반응 역시 긍정적으로 돌아섰다.

"아우, 감사합니다! 형님들 우리 상현이 힘내라고 추천이랑 즐겨찾기 한 번씩만 부탁드립니다! 딱 추천 6천 개만 깔끔하게 부탁드립니다! 화력 한번 보여주세요!"

상현은 일단 그렇게 말하곤, 영근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영근 씨. 아까 어그로 어쩌다가 끌리신 거예요?"

"아, 딱 들어가는데 걔네들이 나오고 있더라구요. 코너에서 마주쳤습니다."

"역시."

아까 원숭이들이 보인 행동을 봤을 때, 저놈들의 목표는 공을 획득하는 것인 게 분명했다.

그대로 덤볐으면 공도 얻고, 상현의 일행 역시도 실격시킬 수 있었을 터였다.

하지만 원숭이들은 공을 얻자마자 아무 미련 없다는 듯 즉각 돌아갔다.

'일종의 시스템이거나, 아니면 공을 지킨다고 정신이 없는 것일 수도 있고.'

하지만 원숭이가 어떻든 상현의 파티는 공을 빼앗아와야만 했다.

상현이 영근에게 지시를 내렸다.

"영근 씨, 정찰 한 번 더 가주세요. 이번엔 아마 어그로 안 끌릴 겁니다. 그냥 가셔서 몬스터 반응만 살피고 돌아오시면 돼요."

"넵."

아무런 망설임 없이 동굴로 향하는 영근.

그 모습을 잠시 비추다가, 상현이 남은 두 사람을 향해 카메라를 돌렸다.

"지금 영근 씨가 돌아오고 나면, 가장 먼저 해야 할 게 있어요."

"네."

"말씀하세요."

호용과 주완이 바로 상현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에 상현이 다시 자신에게로 카메라를 돌렸다.

"일단 이 시험장의 지도를 얻을 겁니다."

"…예?"

"그런 아이템이 있나요?"

주완이 정말 놀랐다는 표정으로 물어왔다.

"있죠. 근처에 있어요."

말하며 상현이 채팅을 확인했다.

[미니맵 키는거네ㅋㅋㅋ]

[비전좀 키고 하자구요!!ㅋㅋㅋㅋㅋㅋㅋ]

[와 그럼 시작할때 지도부터 얻고 시작하지 그랬냐 개아쉽네;]

기대했던 반응이었다.

상현은 손을 들어 올리더니, 검지를 세워 머리를 톡톡 짚어보였다.

"여기 있잖아요. 여기다 기록하면 됩니다."

***

"어. 아직 시험 제대로 파악한 놈들은 두 팀 정도? 그게 다야."

3번 감독관, 강진은 의자를 뒤로 젖힌 채 책상에 발을 올려놓고 있었다.

바로 앞 벽에는 총 열 개의 화면에, 각 파티의 상황이 실시간으로 비춰지고 있었다.

또한 그 오른쪽에는 전체적인 지도와 각 파티 및 특정 포인트의 변동 사항이 실시간으로 표시되고 있었다.

"너희도 그러냐? 하긴, 우리가 이거 한 두 번 하는 것도 아니고……. 기대해봤자 크게 의미 없다는 거, 너도 알잖아?"

- 그렇긴 하지. 대충 사이즈 보니까 세 팀 정도 붙겠다, 우리는.

전화 상대는 또 다른 집결지를 담당하는 감독관이었다.

제2시험장 내부엔 총 세 개의 집결지가 있었다.

상현이 갔던 곳이 3번이었고, 그 외에 두 개의 집결지가 더 있는 것이었다.

"우리 쪽도 비슷해. 무조건 붙을 것 같은 놈들은 두 팀. 그리고 많이 재밌어 보이는 녀석들 한 팀. 이 정도다."

- 재밌어 보인다니?

의아하다는 반응이 돌아왔다.

강진은 다시 상현 일행의 화면을 크게 키우고, 말을 이었다.

"공을 벌써 뺏겼어."

- 그게 뭐가 재밌다는 거야?

"웃긴 건 뺏기면서 알아낸 게 너무 많다는 거지."

- 좀 알아먹게 말 해봐.

강진이 큭큭거리며 웃었다.

"저 길잡이. 화면 보이지? 그냥 공을 지키려 드는 게 아니라, 시험의 의도를 읽었어. 그리고 우리 앞에 있는 지도. 저걸 머릿속으로 그리고 있다."

- …네가 미친 거야, 아니면 그놈이 미친 거야?

"크하하하핫!"

강진이 결국 폭소를 터트렸다.

자신도 이 이야기를 들었더라면, 똑같은 반응을 보였을 것이었다.

"원숭이 거점이 다섯 개라는 거, 그 원숭이들이 공을 하나 얻으면 이동을 안 한다는 거. 그뿐만 아니라 각 지형적 포인트들까지 전부 다 꿰고 있더라. 더 재밌는 건, 둘러보면서 한 번 슥 돌아다닌 게 전부라는 거지."

- 그게 가능해? 혹시 그 길잡이 길드 소속으로 들어온 거야?

강진이 농담을 하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는지, 상대의 목소리가 확 가라앉았다.

그에 강진이 헛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어. 맞아. 흑나비 쪽이다. 그리고 연옥 소속도 한 놈 있는데, 그놈은 아무런 움직임도 없어. 길잡이. 저 녀석은 아무것도 몰라. 내가 장담하지."

- 미친… 네 말대로라면 굉장한 놈인데? 가급적이면 다음 시험까지 와서 나도 좀 봤으면 좋겠어.

"게다가 아이템은 뭐 골랐는지 아냐?"

- 뭔데.

"요정 항아리. 내가 지금까지 저딴 거 고르는 새끼는 처음 봤다."

- 하. 제발, 꼭 올라오길 빌어야겠네.

진심이 담긴 목소리에 강진이 또다시 웃음을 터트렸다.

"아무튼, 고생하고. 다음 시험에서 보자고. 앞으로 이틀 남았다."

- 오냐.

삑. 전화를 끊고 강진이 나른한 숨을 내쉬었다.

아까 전화했던 1번 감독관도, 방금 전화한 2번도 참가자들의 수준은 지금까지의 시험과 수준 차이가 거의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강진 자신이 담당한 3번은 꽤나 흥미로운 구도가 잡혀가고 있었다.

처음엔 솔직히 짜증만 났었지만, 이제는 슬슬 기대가 되는 게 사실이었다.

주완이란 놈이 힘을 왜 쓰지 않는 건지는 몰랐지만, 어쨌건 다른 두 명이 조금만 더 강했다면 여유롭게 합격했을 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런 만큼… 이걸 뚫어낸다면, 그림이 완전히 달라지겠는데?'

강진은 그렇게 생각하고 화면을 돌렸다.

그의 흥미를 끄는 또 다른 파티였다.

'레이디와 기사. 거기에 시종 둘이라.'

바운티 소속 파티의 모습이 화면에 나타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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