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공략 LIVE-14화 (15/185)

014.

충격과 공포의 시간이었다.

상현은 모든 걸 잃었다는 표정으로 침대 구석에서 축 처져있었고, 수연은 다른 던전 관련 영상들을 열어보고 있었다.

그렇게 잠깐의 시간이 지났다.

상현이 입은 마음의 상처가 슬슬 회복될 무렵, 확인이 끝났는지 수연이 입을 열었다.

"방송은 일단 접는 게 좋아. 던전도 마찬가지고."

상현은 무슨 소리를 하는 건가 싶었지만 일단 순순히 대답했다.

"이대로 가다간, 결국 표적이 돼. 내가 어제 방송에 모습을 보인 것도. 혹시나 누군가가 보고 있을까봐 그런 거야."

상현은 고개를 푹 숙였다.

무슨 소린지 확 이해가 됐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딱히 할 것도 없었다.

"그래도. 저는……."

"왜 그렇게 집착하는 거야?"

"먹고 살아야 하니까요. 그리고 그만두기엔 너무 즐겁습니다. 매 순간 순간이요."

"그러다 죽을 수도 있어."

이어지는 수연의 질문.

그에 상현은 잠시 고민하다가, 씁쓸하게 웃었다.

"이미 죽었을 걸요? 이거 못 했으면요."

수연은 고개를 푹 숙인 상현을 바라보았다.

못 하면 죽었을 거라는 게, 사실 크게 공감되진 않았다.

그런 걱정을 한 적이 없었으니까.

하지만 어쨌든 문제는, 이 남자가 곧 몇몇 길드의 표적이 될 거라는 사실이었다.

'지금 가장 중요한 건…….'

수연이 잠시 고민하다가 결정을 내렸다.

결국 중요한 건 본인의 의사였다.

"이렇게 던전 가고, 방송하는 거. 재밌어?"

"예? 아… 재밌죠. 네. 방송하는 것도 그렇고, 던전 들어가는 것도 즐겁습니다."

대답이 돌아오자 수연이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그럼 헌터시험 준비해."

"…예?"

상현의 눈이 커졌다.

"자격만 따면 아무 문제도 없어."

"…저도 따고 싶긴 한데, 돈이 마땅치 않았거든요. 가서 실패하기라도 하면 그대로 없어지는 거니까요."

"C급. 날짜는 일주일 뒤. 시험료는 계좌로 보내놓을게. 저거 수리비도."

눈짓으로 벽을 가리키며 한마디 덧붙이는 수연.

상현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갑자기 시험이라고 하셔도… 그보다 일 년에 한 번밖에 기회가 없을 텐데요? 아직 몇 달은 남았을 걸요."

"그건 우리가 알아서 해."

단언하는 수연의 태도에 상현이 머리를 긁적였다.

수연이 한마디 추가했다.

"그리고. 방송도 켜."

"네? 그거 국가에서 관리하는 시험 아닌가요?"

"말했지. 알아서 한다고."

상현이 황당하다는 눈으로 질문하자마자 수연이 끊어버렸다.

여지조차 남기지 않는 반응에 상현이 떨떠름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갈게."

수연이 갑자기 툭 던지듯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에 상현이 허겁지겁 따라나섰다.

"가신다구요?"

어제부터 줄곧 붙잡아놓더니 시험을 보라는 말만 남겨놓고 간다는 게 납득이 되지 않았다.

순간 다른 의미가 있는 건가, 하고 생각하는 동안 수연은 이미 현관문 밖으로 나서고 있었다.

"내일 홈페이지 확인해. 일주일 뒤야. 까먹지 마."

수연은 그렇게 말하고 상현이 어찌할 새도 없이 문을 닫아버렸다.

쾅.

갑작스런 상황 변화에 상현은 멍하니 서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이었다.

수연이 충분히 멀어졌다는 확신이 든 순간.

"으아아아아! 자유다! 자유라고! 망하아아아알! 크하하하하하!"

상현이 기쁨에 미쳐 날뛰었다.

팔다리를 마구 흔들며 몸부림치던 상현은 나는 듯 컴퓨터 앞으로 뛰어갔다.

절로 콧노래가 흘러나왔다.

시험을 준비하라고 한 영문을 몰랐지만, 어쨌든 말한 내용을 보아하니 적어도 일주일간은 볼 일이 없을 것 같았다.

"일단 공지부터 써놓을까."

서둘러 방송 게시판에 들어가 보니 수연에 대한 의문이 절반, 방송을 언제 키냐는 글이 절반이었다.

[상현이 초심 ㅇㄷ?]

[내가 봤을때 100퍼센트 게스트 아님.]

[방송 키자, 상현아ㅡㅡ]

'방송 처음 켰을 땐 글 하나만 달려도 행복했었는데…….'

갑자기 확 달라진 분위기에 감회가 새로웠다.

상현은 싱글싱글 웃으며 공지사항을 적어 넣었다.

[방송일정 안내]

일주일 뒤에 헌터 자격시험 보러갑니다. 거기서 킬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거기서 어떻게 켜냐구요? 다 방법이 있습니다. ㅋㅋㅋ 그때 뵙겠습니다!!!

그리고 작성 완료를 누르려는데 뭔가 빠트린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흠… 뭔가, 아!"

상현은 고개를 가볍게 흔들며 내용을 조금 추가했다.

[ps. 무슨 일이 생겼다는 게 ㅠㅠ 자격이 취소됐던 겁니다, 형님들! 그래서 못 켰던 거예요. ㅋㅋㅋ]

지금까지 던전을 돌았었는데, 자격시험을 이제야 본다고 하면 논란거리가 될 게 분명했다.

"음, 음. 좋아. 이 정도면 되겠지?"

더 이상 추가할 내용은 딱히 없는 것 같았다.

이젠 받은 풍선을 돈으로 바꿀 시간이었다.

상현은 풍선 관련 항목을 눌러, 받은 풍선이라는 메뉴로 들어갔다.

곧 풍선 개수가 화면에 떴다.

[내가 선물 받은 풍선: 134,227개]

"이예아!"

반사적으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원래 환전 비율은 6:4였지만, 베스트 BJ가 되면서 7:3으로 올라갔다.

거기서 원천징수 3.3퍼센트를 제하고 나자 900만 원 초반대의 환전 예상액이 나왔다.

이전 것들까지 포함해 보니 다음 주에 받을 금액이 1천5백만 원에 이르렀다.

"후, 이거 들어오면… 고기도 좀 먹고, 옷도 좀 사고!"

즐거운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던 와중, 핸드폰이 가볍게 울렸다.

상현은 광고성 문자인가 싶어 그냥 무시하려다가, 괜스레 찜찜한 기분에 핸드폰을 가져와 확인해보았다.

가볍게 터치하니 모르는 번호에서 온 문자메시지가 화면을 채웠다.

[두신은행]

입금: 130,000,000 입금자명: 하수연

"아, 뭐야. 보이스피싱 같은……."

터무니없는 금액이 입금되었다는 내용에 툴툴거리던 상현이 곧 하수연이라는 이름을 확인했다.

그리고 또다시 핸드폰이 울리며 새로운 메시지가 떴다.

[3천 수험료. 나머지 벽 값 해.]

상현의 입 꼬리가 씰룩거리며 올라갔다.

문자 한 방에 그간 쌓였던 온갖 불만들이 눈 녹듯 사라져버렸다.

크흐흐, 하고 웃으며 상현이 중얼거렸다.

"내가… 정말 화가 많이 났었는데… 진짜로 가만 안 두려고 했는데……."

목소리가 점점 커지더니 끝내는 외침에 가까워졌다.

"특별히! 용서해준다! 어? 내가! 크하하핫! 돈 때문은 아니고! 용서해주겠다 이거야!"

상현이 기쁨에 방방 뛰며 소리쳤다.

*** 헌터자격시험.

A, B, C의 세 단계로 나뉘는 이 시험은 응시료만 해도 수천만 원에 이른다.

하지만 합격하는 즉시 해당 등급의 헌터로서 자격증을 발부받을 수 있으며, 언제든지 던전에 들어갈 수 있는 권한이 생긴다.

C급 헌터만 해도 억대 연봉 정도는 손쉽게 벌다 보니 어마어마한 응시료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높은 경쟁률을 자랑하는 시험이었다.

그리고 합격한 이들은 곧바로 유능한 길드에 들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 했다.

혼자서는 던전에 갈 수 없으니 파티원이 필요했는데, 유능한 길드일수록 뛰어난 동료를 쉽게 구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보니 다들 조금이라도 쉽게 길드에 들어가고자 시험에서 높은 점수를 받으려 애쓰곤 했다.

또한 C급 시험의 경우는 각 국가에서 관리했지만, 그 다음 단계부터는 국제헌터연합에서 주관했다.

응시료가 무지막지하게 비싼 것은 물론이거니와, 난이도 역시 급격히 치솟았다.

그래서 헌터들의 약 80퍼센트가량은 C급에 머물러 있었고, 나머지는 대부분 B급이었다.

결국 A급 헌터라는 자격을 얻는 건 극소수였다.

하지만 일단 자격을 얻게 되면 추가적인 특권이 주어졌다.

바로 각 국가의 연합지부장을 언제든 만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지부장님 만나러 왔어요."

수연은 안내데스크로 다가가 자격증을 제출했다.

곧 직원이 공손하게 고개를 숙여보였다.

"연락 넣겠습니다."

잠깐의 전화통화 후 금세 답이 돌아왔다.

수연은 직원의 안내를 받아 지부장실로 향했다.

스으윽.

가볍게 밀자 두꺼운 나무문이 부드럽게 열렸다.

동시에 거대한 근육질 덩치가 튀어 나오며 수연을 반겼다.

"오, 이게 누구야! 어서 들어와, 어서!"

"꺼져."

거의 껴안을 듯 다가오는 남자를 피하며 수연이 싸늘히 말했다.

하지만 남자는 뭐가 그리도 좋은지 계속 껄껄대며 웃고 있었다.

"역시! 이래야 우리 수연이지. 커피라도 한 잔 줄까? 자주 좀 오라니까. 왜 이리 늦게 왔어."

"됐어. 용건부터."

엉겨드는 남자를 계속 쳐내며 수연이 자리에 앉았다.

"너무하잖아! 그래도 커피 한 잔 마실 여유는 있지 않아?"

"용건, 부터, 할게."

끊어 말하는 수연의 목소리가 가볍게 떨렸다.

그에 근육질의 남자가 곧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

"알았어, 알았어. 뭐 급한 일이라도 있나보네."

들떴던 남자의 얼굴이 좀 진정된 듯 했다.

수연은 이제야 대화를 할 수 있겠다고 생각하며 입을 열었다.

"이번에 북미 쪽. 어떻게 됐어?"

"…안 좋아. UEL이 거의 3천이야. 당장은 괜찮겠지만 이러다간 언제 터질지 모르겠다."

"어렵겠네."

남자의 표정이 상황이 좋지 않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UEL(Unidentified Energy Level). 미확인 에너지 수치의 약자로서, 던전에서 흘러나오는 성분 불명의 에너지 농도를 나타내는 용어였다.

던전 입구에서 측정한 수치가 높을수록 상위 던전으로 기록되는 식이었다.

일반적으로 2천 초반대가 A급 던전이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갑자기 수치가 확 상승한 것이었다.

남자가 다시 말을 이었다.

"만약에 무슨 일이라도 터지면, 감당 안 될 걸? 사람들 혼란 장난 아닐 거야. 윗대가리들은 그것도 모르고 계속 숨기는 데만 급급해."

남자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속칭 '윗분'들은 혹여나 자신들의 지위가 위협받을까 두려워, 아무런 변화도 바라지 않는 것 같았다.

수연은 그 모습을 가만히 보다가, 느긋하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주일 뒤에 추가시험 준비해 줘. C급으로."

"엥?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보여줄게. 설명하기 귀찮아."

쌀쌀맞은 수연의 태도에 남자가 아랫입술을 쭉 내밀었다.

수연은 개의치 않고 남자의 책상으로 다가가 컴퓨터를 만지기 시작했다.

남자는 조금의 거부감도 느끼지 못하는지 팔짱을 낀 채 가만히 보고 있었다.

곧 화면에 상현의 영상이 떠올랐다.

울부짖는 강의 미로 구간이었다.

스피커를 통해 상현의 목소리가 방 안에 울려 퍼졌다.

- …됩니다! 이제 여기서 어려워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 우선 왼쪽으로! 그리고, 오른쪽! 여기서 고개를 살짝 숙여주신 다음, 돌멩이 두 개씩! 탓탓!

- 좌! 좌! 우! 좌! 우!

끊임없이 소리치며 현란히 움직이는 상현의 모습.

곧 미로를 빠져나가며 영상이 끝났다.

"어때?"

수연이 말했다.

남자는 한심하다는 듯 혀를 차다가 대답했다.

"이거 개인방송이야? 헌터라는 놈이 뭐가 아쉬워서 저러고 있대?"

"민간인이야."

"뭐?"

남자가 경악하며 컴퓨터 화면과 수연을 번갈아가며 휙휙 바라보았다.

거기에 수연이 덧붙였다.

"던전 들어간 것도 저게 두 번째야."

"그게 말이 돼? 민간인이 무슨 수로?"

예상대로의 반응이었다.

그녀조차도 처음 봤을 때 비슷한 느낌을 받았으니까.

"게다가."

대답 대신 수연이 말을 추가했다.

"이번에 언노운도 저 남자가 공략했어."

"…미친."

남자가 양 손으로 머리를 쓸어 넘겼다.

복잡해 보이는 표정이었다.

사실 이해가 안 되는 게 당연했다.

다시 남자가 입을 열었다.

"그래서. 이 녀석 키우려고? 하긴, 그럴 만하다. 시험 준비 하려면 노인네들이랑 또 한판 해야겠구먼. 아무리 매년 재탕이라지만……."

그때 수연이 끼어들었다.

"새로운 내용으로 해줘. 사람들이 봐도 거부감 없는 내용으로."

"무슨 소리야?"

"그 안에서 방송 키게 할 거야."

단언하듯 말하는 수연의 목소리에 남자가 인상을 살짝 찌푸렸다.

"아무리 너라도 그건……."

"갑자기 일이 터지면. 사람들이 혼란스러워 할 거라고 했지?"

"……."

"개인방송이야. 공영처럼 규제가 심하지도 않아. 그런 곳에서 헌터들이 모습을 비춘다면. 인식이 어떻게 바뀔지 생각해."

뭔가 깨달았다는 듯 남자가 입을 크게 벌리곤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잘만 살리면 오크를 봐도… 멧돼지 정도로 여기게 되겠네. 무슨 말인지 알았어. 내가 그 영감탱이들 멱살을 잡아서라도 하게 해주지."

남자는 수긍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잠깐의 침묵이 흐르고, 수연이 일어나려는 기색을 보이자 남자가 다시 입을 열었다.

"천재라는 건 알겠어. 그런데 왜 그 정도로 집착하는 거야? 천하의 하수연 씨가."

"……."

"그 일 때문이야? 너희 아버지……."

그 순간 수연이 싸늘한 기세를 드러내며 말했다.

"더 말하지 마."

"미안."

남자가 두 손을 들어 올리며 순순히 사과하자 수연이 몸을 살짝 떨었다.

"길잡이만 있었어도. 안 돌아가셨을 거야."

"…그래. 그땐 포지션에 대한 개념이 없었지."

축 가라앉은 분위기에 남자가 애써 밝게 질문을 던져왔다.

"아무튼, 그 녀석을 키우겠다는 거지?"

"일단은 지켜볼 거야."

수연이 잠깐 눈을 감았다가, 뜨며 말했다.

"알아서 A급까진 올라오게 만들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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