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9.
던전이 생겨난 이후, 가장 빠르게 조사에 들어갔던 미국 정부는 충격적인 사실들을 발표했다.
내부에 괴생명체들이 있다는 것.
또한 그들의 신체 일부를 분석해보니, 지금까지 전혀 없던 분자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것.
당연히 연구 가치가 무궁무진하다는 결론이 나왔고, 그 말은 곧 '매우 돈이 된다.'라는 의미였다.
속칭 헌터들이 생겨난 것도 그 무렵이었다.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는 경고를 무시하고 그들은 끊임없이 던전에 들어갔다.
당연한 일이지만, 정말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하지만 끝까지 살아남은 소수는 어마어마한 돈을 만질 수 있었다.
어느 순간부턴가 헌터는 하나의 직업으로서 사람들의 머릿속에 자리를 잡아갔다.
모든 국가가 공통으로 실시하는 자격시험도 생겼으며, 동시에 모든 헌터들은 국가에 신고를 해야 한다는 의무 역시도 생겼다.
그렇게 공식적으로 헌터라는 자격을 얻게 된 사람들은 조금이라도 안전해지고자 정보를 나누었고, 훨씬 쉽게 던전을 탐험할 수 있게 되었다.
그 결과물이 지금의 수많은 '헌터 길드'들이었다.
당연히 체계적인 포지션 분배와, 객관적인 등급 부여. 더불어 정보의 원활한 교류가 가능해졌고, 그 중 일부는 곧 급격한 성장을 이루어내며 일종의 기업 수준이 되었다.
그리고 국가와 길드의 수준을 막론하고, 모든 헌터 길드에서 가장 귀하게 여기는 포지션은 바로 '길잡이'였다.
비교적 안전해졌다곤 하지만 항상 위험요소는 존재했다.
길잡이란, 그런 문제들을 일찌감치 읽어낸 뒤 정확한 오더를 내려야만 하는 포지션이었다.
직접적으로 전투를 하는 포지션들은 기본적인 센스만 있다면, 아이템으로 능력치를 커버할 수 있었다.
하지만 길잡이들은 그런 게 불가능했기 때문에, 각 길드마다 한 명이라도 더 구하기 위해서 혈안이 된 것이었다.
'이 남자는…….'
겉으로 드러내진 않았지만 수연은 충분히 놀란 상태였다.
이미 공략이 완료된 던전이긴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B급이었다.
상현이 다 했다며 부를 때까지만 해도 큰 기대를 하지 않았었는데, 막상 와서 들어보니 거의 완벽하게 요점을 짚어내고 있었다.
대충대충 그려놓은 지도엔 꼭 필요한 부분들만 알기 쉽게 정리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위에 그려진 각종 기호들.
"이것들은 뭐야?"
수연이 의아해하며 물어보자 상현은 활기 넘치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 그건 추천 한 번 받고 간다는 뜻이고, 이 별 모양은 풍선 유도를 해야 하는 곳입니다. 또……."
활짝 웃으며 설명을 시작하는 상현.
던전을 진행함에 있어 필수적인 부분은 아니었지만, 모두 특별한 이벤트가 일어나는 부분이었다.
상현이 던전의 전체적인 흐름을 완벽하게 꿰고 있다는 증거였다.
주 목적이 전투가 아니라 하더라도, 도망이라도 치기 위해선 등장하는 몬스터들의 특성과, 던전의 구조 등을 면밀하게 조사해야했다.
상현은 그런 과정을 고작 몇 시간 만에 완벽히 해낸 것이었다.
'이건… 게다가 계획만 짠 게 아니라, 직접 실행으로 옮겼어.'
그게 핵심이었다.
뛰어난 길잡이의 필수 조건 중에는 과감한 결단력도 있었으니까.
"이런 식으로 하면 될 것 같은데요. 솔직히 확실하게는 모르겠습니다. 유튜브에는 C급 던전들밖에 없거든요. 아무튼 실제로 가게 된다면 준비할 게 좀 많을 것 같긴 한데… 그래도."
상기된 얼굴로 상현이 설명을 마무리했다.
"꼭 한 번 가보고 싶은 곳이네요. 평소보다 시청자가 두 배는 더 들어오겠는데요? 아무래도 상위 던전이니까요."
아까만큼 자신감 넘치는 말투는 아니었지만, 어쨌든 가보고 싶다고 말하고 있었다.
상현이 입을 닫자 동료들이 수연을 바라보았다.
영입을 반대했던 영훈 조차도 상당히 놀랐다는 기색을 풍기고 있었다.
'집에 보내줄 거냐고 물었었지.'
상현이 쏘아대는 애처로운 눈빛을 보니, 아까 말하던 목소리가 떠오르는 것 같았다.
'실패했으면 일단 보냈겠지만…….'
원래는 성공하더라도 계약 제의만 건넨 후 천천히 진행하려고 했지만, 완벽하게 해내는 모습을 보고 나니 도저히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끝을 보고 싶다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A급. 언노운(Unknown)으로 가져와."
차오르는 충동에 수연이 결국 내뱉고 말았다.
동료들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리고 있었지만 상현은 아니었다.
비 맞은 강아지처럼 처량한 표정이었다.
이러다 자칫 의욕을 잃고 포기하기라도 하면 큰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보내줄 거야. 거짓말 아니야."
다시 한 번 말해주었으나 상현의 표정은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거짓말이 아니라는 확신을 심어주어야 했지만 마땅히 특별한 방법이 없었다.
"그리고 실패하더라도."
입술을 깨문 채 고민하던 수연은 결국 한마디를 덧붙일 뿐이었다.
"다른 녀석들이 건들지 못하겐 해줄게."
*** '맙소사.'
상현은 빼곡히 글씨로 들어찬 노트를 내려다보며 후회하고 있었다.
적당히 하려 했는데, 어쩌다보니 너무 열심히 해버리고 말았다.
'내가 이럴 줄 알았어.'
집에 보내 준다는 말을 곧이곧대로 믿은 게 문제였다.
지금도 보내 주겠다고 말하긴 했지만, 아까도 그랬었지 않은가.
아무리 생각해도 그렇게 해줄 것 같지가 않았다.
'아, 진짜 이러다 붙잡혀서 공략만 하고 있는 거 아냐? 다른 놈들이 노린다는 것도, 설마 지어낸 건 아니겠지?'
막연한 불안감이 들었다.
하지만 웃긴 건, 영상을 볼 생각을 하니 설레는 마음도 든다는 것이었다.
'지금 안 보면 평생을 가도 못 볼 테니까… 아, 망할. 왜 기대를 하고 그러냐, 이 등신아.'
A급 던전에 대한 정보만 해도 아주 비밀스럽게 다뤄진다.
그런데 그 뒤에 언노운이라는 단어가 추가로 붙었다.
아직 그 어떤 길드도 깨지 못한, 끝에 무엇이 있는지조차 모르는… 그런 곳에 달리는 명칭이.
솔직히 궁금하지 않을 리가 없었다.
상현은 머리를 싸매고 합리화를 하기 시작했다.
'그래. 어차피 봐두면 언젠가 쓸모가 있겠지? 방송하는 데도 써먹을 수 있을 거고. 음, 좋아.'
"생각 정리되면 말 해."
혼자 끙끙거리고 있는데 수연이 말을 걸어왔다.
상현이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들어보니 어느새 영상이 준비되어 있었다.
다들 상현이 시작하기만을 기다리는 눈치였다.
"죄송해요. 잠시만요."
그렇게 말하고 상현이 가볍게 스트레칭을 했다.
이어서 심호흡까지 큼지막하게 몇 번 하자 긴장했던 몸이 조금 풀리는 것 같았다.
한결 괜찮아진 기분을 느끼며 상현이 말했다.
"틀어주세요."
수연이 고개를 끄덕임과 동시에 영상이 재생되기 시작했다.
"와……."
상현이 감탄사를 터트렸다.
깎아지른 듯한 절벽을 타고, 몇 명의 사람들이 빠른 속도로 내려가고 있었다.
보고만 있는데도 손발이 저릿해질 정도의 스릴감이 느껴졌다.
엄청난 높이였지만 바닥까지 내려가는 데에는 채 1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다.
- 위치 잡아.
- 전방 200미터 부근이야.
- 상태는?
- 자고 있다.
사람들은 지치지도 않았는지 곧바로 대화를 주고받고 있었다.
곧 싸우게 될 몬스터에 관한 이야기 같았다.
상황이 정리된 건지 화면이 다시 나아가기 시작했다.
- 변동사항 있으면 말 해줘.
- 알았다.
나무가 듬성듬성 자라있는 숲을 지나자, 넓은 황무지가 눈에 들어왔다.
시야를 가리는 것들이 깔끔히 없어졌다.
그리고 카메라에 잡힌 건.
거대한 드래곤이었다.
'…미친.'
입이 쩍 벌어졌다.
어지간한 건물 정도는 가볍게 제칠만한 크기에, 빛을 받아 반짝거리는 붉은색 비늘.
그리고 무엇보다도. 숨을 내쉴 때마다 입가에서 간헐적으로 뿜어져 나오는 불꽃.
기겁하며 상현이 물었다.
"설마 저거랑 싸우는 거예요?"
"싸워야지 그럼. 안 싸우게?"
"그렇긴 하네요."
틱틱거리며 영훈이 받아치자 상현이 머쓱하게 대답했다.
그러는 사이 카메라는 조금씩 전진하고 있었다.
그 사실을 깨닫고 상현은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말아 쥐었다.
금방이라도 드래곤이 덮쳐들 것만 같았다.
하지만 꽤나 근접한 거리까지 다가갔음에도 드래곤은 그저 웅크려 있을 뿐이었다.
무언가가 이상했다.
'뭐지? 자는 거야?'
의문이 떠오르는 상황.
선두의 남자가 멈춰서며 오른팔을 들었다.
일종의 수신호인 것 같았다.
모두가 무기를 꺼내 들고, 정해진 포지션대로 자리를 잡았다.
그 모습을 확인한 남자가 손을 다시 내리자, 즉시 화살 한 발이 드래곤을 향해서 날아갔다.
슈아아아- 깡!
그대로 튕겨 나오는 화살.
비록 데미지는 입히지 못했지만 효과는 확실했다.
- 크르륵.
엎드려있던 드래곤이 몸을 일으키며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마침내 녀석이 완전히 배를 드러내자.
- 지금!
남자의 외침이 들리고, 온갖 스킬들이 화려한 빛을 뿌리며 날아갔다.
콰콰콰쾅! 콰쾅!
스킬이 복부에 정확히 명중하며 짙은 폭연이 일어났다.
- 잡았나?
- 아니야. 다시 준비!
짤막한 대화가 끝나고.
- 크롸롸롸롸롸!
가려진 시야 너머에서 드래곤의 포효가 터져 나왔다.
곧 날개를 펄럭이는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연기가 한 번에 걷혀나갔다.
카메라가 위쪽으로 향했다.
금세 날아오른 드래곤은 허공에서 입가를 오물거리고 있었다.
- 브레스다! 모여! 스크롤 찢는다!
다급한 남자의 외침에 사람들이 신속하게 모여들었다.
화아아아아-!
귀청을 찢는 폭음과 함께 화염이 짓쳐드는 순간.
팟.
빛무리 비슷한 게 보이면서 영상이 끊어졌다.
"와……."
상현은 완전히 멍한 상태였다.
어느 순간부터는 메모조차도 하지 않으며 영상에 몰입하고 있었다.
"어때?"
수연의 목소리가 정신을 깨웠다.
"예? 아……."
긴장한 채 사람들이 대답을 기다리는 게 느껴졌다.
이따금 침 삼키는 소리만 들렸다.
상현은 흩어진 생각들을 억지로 긁어모았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한 가지 결론밖에 나오질 않았다.
"이건 안 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