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공략 LIVE-7화 (8/185)

007.

회의실에 적막이 흘렀다.

상현을 둘러싼 헌터들의 표정이 굳었다.

"유튜브를 좀 보셨다, 라."

"푸하하하핫! 이거 엄청 재밌는 놈인데?"

"음……."

저마다의 반응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상현은 오로지 단 한 명에게만 주의를 기울이고 있었다.

칼을 들이댄 채 싱글거리는 남자, 이지훈이었다.

'미친놈아, 일단 제발 칼 좀…….'

식은땀이 목을 타고 흘렀다.

상현은 지훈이 입을 열기만을 기다렸다.

그냥 아무런 말도 없이, 무턱대고 찔러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오금이 저려왔다.

"지금 그 말을 믿으라는 건가요? 거기 올라온 영상들이라고 해 봐야, 단편적인 토막 영상들이 다예요. 겨우 그런 것들을 보고 공략을 짜냈다는 말씀이세요?"

그는 계속 싱글거리며 말을 걸어왔다.

다행스러운 건, 목에 겨눈 칼이 느슨해졌다는 정도뿐인데, 그런 상황에서 웃고 있으니 오히려 살벌하게 느껴졌다.

'그럼 나보고 어쩌라고!'

상현은 말 그대로 돌아버릴 지경이었다.

애초에 뭔지도 모르는 걸 무슨 수로 내놓는단 말인가.

하지만 눈앞의 지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다.

"아무래도 끝까지 말씀 안 하실 것 같은데…… 어쩔 수 없죠. 나중에 정말 살해당해도 저는 몰라요. 뭐, 집까지 안전하게 가실 수는 있으려나……."

지훈의 웃음이 짙어졌다.

그리고 조용히 내려놓는 칼날.

겨우 숨을 내쉰 상현이 다급하게 외쳤다.

"보, 보여드릴게요!"

"뭘요?"

"공략하는 거요! 지금! 여기서!"

상현이 필사적으로 외쳤다.

그러자 이지훈이 고개를 돌리고 동료에게 의사를 물어보는 게 보였다.

허락이 떨어지자 그는 즉시 칼을 품에 집어넣고는 어딘가로 향했다.

쿵! 쿵! 쿵! 쿵!

심장이 미친 듯 뛰었다.

상현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목에 손을 가져갔다.

피가 살짝 묻어나왔다.

'이 새끼들이 말한 거, 다 사실일 거야.'

보아하니 죄다 고위급 헌터인 것 같은데, 이들이 굳이 그런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었다.

방금 칼을 꺼냈던 남자는 물론이거니와, 웃으며 지켜보던 남자도, 근엄하게 팔짱을 끼고 있던 남자도 마찬가지였다.

"야, 너 진짜 거짓말 아냐?"

생각을 수습 할 틈도 없이 다른 남자가 말을 걸어왔다.

몹시 즐거워하는 얼굴이었다.

"아니에요."

대답하는 상현의 목소리가 가볍게 떨렸다.

"그럼 다행인데, 솔직히 나도 잘 안 믿기거든. 만약 거짓말이면…… 너 정말 죽을 걸?"

"……."

"아무튼 좋아. 잘 해보라고. 혹시 알아? 니가 정말 우리 팀에……."

"거기까지 해."

남자의 말을 끊은 건 하수연이었다.

"김지광 씨, 강영훈 데리고 탐색 좀 가주세요."

"알았다."

"아, 왜! 왜 그러는데 또!"

"시끄러워."

지시가 떨어지자 그대로 끌려 나가는 영훈.

무어라 투덜거리는 소리가 들리다가, 문이 닫히니 곧 잠잠해졌다.

소란스럽던 분위기가 조금이나마 진정되었다.

상현은 서둘러 상황을 정리해보았다.

'하수연… 이 여자가 대장이야. 아까 그 자식이 칼을 집어넣기 전에도 하수연이 고개를 끄덕였어. 이번엔 볼 것도 없고. 내가 미쳤다고 이런 여자를… 아니지. 안 왔어도 위험한 건 마찬가지였을 테니까. 망할.'

상현이 힐끗 보니 수연은 다리를 꼰 채 웬 서류를 읽고 있었다.

'그리고… 방금 시끄럽던 남자. 분명 마지막에 우리 팀이라고 했어. 내가 들으면 안 되는 내용이겠지. 하수연이 거기서 막았으니까. 우리 팀이라. 대체 무슨…….'

"저 왔어요!"

뭔가 알 듯 말 듯한 순간, 지훈이 돌아왔다.

한손에 USB를 든 채였다.

"어디 거야?"

"우람노스 신전이요!"

"……그럼 두 번째 방만 틀어."

"넵!"

뭐가 그리 신나는지 지훈이 활기차게 대답했다.

그런 뒤 USB를 꼽고, 기계를 만지작거리는 지훈.

그 모습을 보며 상현이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우람노스 신전이라…… 던전 이름이겠지? 잠깐만, 어째 익숙한데?'

그사이 준비를 마쳤는지 벽에 큼지막한 영상이 떠올랐다.

지훈이 옆으로 다가와 앉았다.

"C급 던전이고, 들으셨겠지만 두 번째 방만 보여드릴 거예요. 혹시 더 궁금한 거나, 필요한 거 있어요?"

"아뇨 딱히…… 아, 종이랑 펜 하나만 주실 수 있을까요?"

"당연하죠! 바로 갖다 드릴게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서랍을 뒤적거리더니, 금세 돌아오는 지훈.

아무리 생각해도 아까 보여준 모습과 매치가 되지 않았다.

'확실히 미친놈이야. 아니면 이중인격이거나.'

상현은 물건들을 건네받으며 그렇게 생각했다.

지이이잉. 지이이잉.

그때 주머니에서 핸드폰이 울렸다.

전화가 온 모양이었다.

"더 필요한 거 없으시죠? 이제 시작할까요?"

"……네."

상현은 대충 대답하고, 슬그머니 핸드폰을 꺼내 발신자를 확인했다.

[죽빵형님]

팬클럽 회장이었다.

"자, 잠시만! 잠시만요!"

상현이 다급하게 외쳤다.

이제 막 재생시킨 영상이 멈추었다.

"왜 그러세요?"

"전화 한 통만 받을게요! 꼭 받아야 되는 전화예요!"

상현은 그대로 시선을 돌려 간절한 눈빛으로 수연을 바라보았다.

"어떻게 할까요? 수연 씨."

역시나 지훈이 수연에게 의사를 물었다.

상현의 생각대로였다.

어떤 일이건 결정권은 저 여자에게 있었다.

"그렇게 해."

허락이 떨어졌다. 상현은 신속히 전화를 받았다.

"넵, 회장님! 네? 아, 먹튀라니요…… 아닙니다……. 방송 켜야죠. 네. 아, 회장님 지금은 제가 좀…… 정말 중요한 일이 있어서요. 네? 정모요? 정모 해야죠! 네, 하겠습니다. 고깃집…… 네, 찾아놓겠습니다. 회장님이 쏘신다고요? 이야, 역시 클라스 있으십니다! 네. 네. 연락드리겠습니다. 넵! 쉬세요. 회장님!"

전화가 끊어졌다.

받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며 핸드폰을 내려놓는 순간, 주위의 싸늘한 시선이 느껴졌다.

특히 수연의 표정에선 짜증마저도 느껴지고 있었다.

"죄, 죄송합니다. 제가 이제 막 방송이 뜨는 참이라, 열혈 팬 관리를 잘 해야 해서요… 이거 잘 못하면 한 명씩 떠나시거든요……."

"열혈 팬이 뭔데요?"

부드럽게 웃으며 지훈이 물었다.

"아, 풍선 많이 쏘신 형님들이요. 게다가 회장님이셔서 어쩔 수가 없었……."

상현은 입을 닫았다.

이지훈이 허리춤으로 손을 가져가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싸이코 새끼…….'

그곳엔 아까 상현에게 들이댔던 나이프가 걸려 있었다.

"사실 저는 상현 씨가 거짓말을 한 거였으면 좋겠어요. 요즘 너무 심심했거든요. 어차피 주변 연결점들 찾아보면 결국엔 나올 테니까요."

지훈의 말에 상현은 자세를 고쳐 앉으며 식은땀을 흘렸다.

생각해 보면 그 '일부 헌터들' 안에 이들이 포함 될 수도 있다는 뜻 아닌가.

"이제 시작해도 될까요?"

지훈의 말에 상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긴장시키지 말고 영상이나 틀어."

"아, 죄송해요. 화이팅!"

수연이 재촉하자 지훈이 윙크를 해보였다.

'일단은 어떻게든 인정받는다.'

상현이 두려움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누구 하나 멀쩡한 사람이 없는 것 같았다.

무슨 수를 쓰더라도 상현 자신이 말한 게 거짓이 아니라는 걸 증명해야 했다.

곧 영상이 재생되기 시작했다.

상현은 이를 악문 채 눈앞의 화면에 집중했다.

영상은 헌터 여섯 명과 가고일 석상 하나가 대치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아무런 설명도, 대화도 없었다.

한 명이 석상에 투명한 액체를 뿌리자 돌이 벗겨지며 가고일이 깨어났다.

그리고 한참 열심히 싸운 끝에 가고일이 쿵하고 쓰러졌다.

그걸로 끝이었다.

완전히 핵심 전투 장면만 담긴 영상이었다.

남자가 다가와 카메라를 정리하는지 화면이 잠깐 흔들리다가 이내 꺼졌다.

"어때요? 한 번 더 보여드릴까요?"

이지훈의 목소리가 들렸다.

상현은 그때까지도 노트에 메모를 휘갈겨 쓰고 있었다.

마지막 문장을 적고 나서 상현이 고개를 저었다.

"아뇨, 된 것 같습니다."

'아놉 신전이랑 비슷한 구조였어.'

상현은 그렇게 확신했다.

처음 볼 때부터 굉장히 낯익은 느낌이었는데, 보다 보니 확실히 기억났다.

며칠 전 봤던 던전과 상당히 비슷한 구조였다.

"어떻게 할까요? 수연 씨."

"김지광 씨랑 강영훈 데려와."

"넵."

수연의 말이 떨어지자 이지훈이 득달같이 달려 나갔다.

회의실이 조용해진 틈을 타 한참 머리를 굴리고 있는데, 수연이 갑작스레 입을 열었다.

"정말 그걸로 되겠어?"

"네?"

수연은 서류에서 시선을 떼고 정확히 상현을 바라보고 있었다.

"더 안 봐도 되겠냐고."

"……네. 괜찮습니다."

"스스로가 한 말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어. 우리는 시간이 없거든."

상현은 무어라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마침 사람들이 돌아왔다.

아까 말한 탐색이라는 게, 멀리까지 나가는 건 아닌 모양이었다.

"여, 재밌는 놈! 다 했다며?"

"음."

"자, 자. 진정들 하시고. 수연 씨, 바로 시작할까요?"

다시금 분위기가 번잡해졌다.

"시작해."

수연이 허락하고, 자신부터 상현 근처로 자리를 옮겼다.

나머지 세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기대감에 빛나는 시선들을 마주하니, 마치 교단에 선 선생님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우선."

상현이 두 장의 종이를 잘 보이도록 펼쳤다.

한 장엔 메모들이 빼곡히 적혀 있었고, 다른 페이지엔 간략하게 그려놓은 그림이 있었다.

"여기서."

던전의 입구를 펜으로 짚으며 상현이 설명을 시작했다.

"추천이랑 즐겨찾기를 받아야 합니다. 이 방 같은 경우엔, 일단 들어가고 나면 멘트 치기가 쉽지 않거든요."

"추천이랑…… 뭐?"

"즐겨찾기요. 원래 공략 시작하기 전에 받아야 해서요."

방금 들어온 남자가 인상을 찌푸리며 물었지만 상현은 대충 설명하고 넘겼다.

막상 공략을 시작하니 방송이라도 킨 듯한 기분이 들었다.

다음으로 상현이 석상을 짚었다.

"그리고 이 녀석은 물을 뿌리면 깨어나거든요? 근데 아까 영상에서처럼 확 뿌리면 절대 안 돼요. 그럼 무조건 죽습니다. 분무기를 하나 챙겨 간 다음, 이놈 발목에다만 살살 뿌려야 돼요. 물론 그 전에."

상현이 절대 잊어선 안 된다는 듯 검지를 치켜세웠다.

"미션을 유도해서 하나라도 받아놔야 합니다. 완전히 깨우면 몇 개, 이런 식으로요. 그리고 사실 깨우긴 깨워야 하는 게, 안 그러면 재미가 없거든요."

"미션은 또 뭔데?"

또 같은 남자였다.

"아, 뭐 해내면 풍선 몇 개 준다거나 하는 거 있잖아요. 일단 끝까지 좀 들어보세요."

"……너."

상현이 자신도 모르게 짜증을 섞어 받아쳤다.

그에 남자가 발끈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만 둬."

하지만 즉시 수연이 제지하는 바람에 남자는 그대로 자리에 앉아야 했다.

지도에 집중하던 상현은 그 모습을 미처 보지 못했다.

다시 펜을 움직여 출구 쪽을 짚는 상현.

"결국 여기로 나가야 하는데, 그 전에 얼마나 재미를 뽑아내느냐가 관건이란 말이죠. 아까 발목에만 물을 뿌린 이유가 뭐냐면, 다들 아실 테지만…… 거기 열쇠가 있어요."

손목을 움직이며 문을 따는 시늉을 하는 상현.

그 모습에 지훈이 의외라는 듯 감탄했다.

"그걸 보셨다고요?"

"네? 아, 반짝반짝 하던데요?"

상현은 오히려 태연하게 되물었다.

사실 아눕 신전과 같은 구조였기에 알 수 있었지만, 지금은 그런 말을 할 때가 아니었다.

"아무튼 그 열쇠를 먼저 얻은 다음에, 딜을 하는 거죠. 물을 뿌리면 이 몬스터가 깨어나는데, 뭐 없습니까, 하는 식으로요. 결국 여기가 가장 중요한데."

상현이 일부러 뜸을 들인 뒤, 다시 입을 열었다.

"풍선을 최대한 땡겨야 합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