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
남부터미널 부근.
상현은 던전 입구에서 방송을 준비하고 있었다.
'마지막이다 상현아. 딱 한 번만 해보고, 안 되면 접자고!'
떨리는 손으로 상현이 제목을 적었다.
[몬스터 직캠 - 맨손으로 던전 탐험하기. 리얼 장비 하나도 없이 들어갑니다.]
그리고 방송 시작.
일주일 전부터 공지를 띄워놓긴 했지만, 사람이 얼마나 들어올지는 모를 일이었다.
'100명은 들어오려나. 씨팔, 목숨을 걸었는데 그 정돈 와줘야지.'
한 명, 두 명, 세 명.
서서히 들어오는 사람들을 확인하고 상현이 출입관리 직원에게 다가갔다.
"던전 들어가려고요."
"C급 이상인 헌터만 들어갈 수 있습니다. 몇 급이세요?"
"C급이요."
태연하게 말하며 상현이 허가증을 꺼냈다.
이 순간을 위해서 일찌감치 준비해놓은 위조품이었다.
직원은 설렁설렁 확인하고는 종이와 인주를 내밀었다.
"여기 지장 찍어 주시고요, 들어가시면 됩니다. 파티 없으시죠?"
"네."
죽어도 문제를 삼지 않겠다는 내용의 각서였다.
지장을 찍고, 상현이 던전 안으로 들어서며 동시에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자, 형님들! 저 약속 지키는 사람입니다. 지금 몸에 아무것도 없는 거 보이시죠?"
상현이 활기차게 말했다.
현재 들어온 시청자는 26명.
생각보다 많은 수는 아니었지만 채팅창 하나만큼은 폭발하기 직전이었다.
[BJ님 ㄹㅇ던전임?]
[상현아 너 진짜 장비 하나도 없냐?]
[와 이 새끼ㅋㅋㅋ 미친 새끼네ㅋㅋㅋㅋ]
상현이 카메라를 돌려 던전 내부를 비추었다.
"보이시죠? 남부터미널 쪽 던전입니다. 그리고 말씀드렸다시피…."
다시 자신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카메라로 훑는 상현.
"장비 정말 하나도 없습니다. 확인하셨죠? 지금 보신 분들! 이따가 다른 형님들 오시면 인증 좀 부탁드립니다. 도망치면서 보여드릴 순 없잖아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너 그러다 죽어 친구야!]
[친구들도 불러야겠다 ㅋㅋㅋ 어이가 없네ㅋㅋㅋ]
긍정적인 반응과, 급격히 올라가는 시청자 수.
"지금 57분 보고 계신데, 추천이랑 즐겨찾기 한 번씩만 부탁드립니다!"
이 정도라면 가능하다.
그런 확신이 들었다.
물론 살아남아야 한다는 전제가 있었지만.
"형님들, 이제 출발하겠습니다. 역루트로 3번방부터 돌 거구요, 제목 그대로 한 바퀴 돌고 빠져 나오는 게 목표입니다."
그렇게 말하고, 상현이 오토바이 헬멧을 꺼내들었다.
"아, 참고로 말씀드리는데 이거 아이템 아닙니다! 보시면 아시겠지만 정말 그냥 오토바이 헬멧이에요. 이걸 왜 꺼냈느냐 하면,"
핸드폰을 헬멧에 끼워 넣는 상현.
이것 역시도 미리 준비해온 것이었다.
"이렇게 하면 형님들도 화면 계속 보실 수 있고, 저도 형님들 채팅 읽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도망칠 때도 화면을 보여주기 위한 상현의 장치였다.
잘못 걸리면 일단 전력으로 도망쳐야 했으니까.
게다가 채팅창을 살짝 내려서 언제 어디서든 읽을 수 있게 했다.
[ㅋㅋㅋㅋㅋㅋ착한 헬멧 ㅇㅈ한다.]
[합리적이네ㅋㅋㅋㅋ]
[이러다 정말 위험해질 거 같은데....]
가볍게 몸을 풀고 나서, 상현이 마지막으로 외쳤다.
"백 두 분 보고 계십니다, 형님들! 추천이랑 즐겨찾기 한 번씩만 부탁드릴게요! 진짜 출발합니다!"
짜릿한 느낌이 몸을 스치고 지나갔다.
어느새 시청자는 백 명을 넘어서고 있었다.
의욕이 마구 샘솟는 걸 느끼며 상현이 3번방으로 들어섰다.
"츄르륵, 취이익."
"카륵!"
경계선을 넘자, 바로 오크들의 소리가 들렸다.
본능적인 두려움에 상현이 몸을 낮췄다.
"형님들, 3번방 들어왔습니다. 지금 오크들 소리 들리시죠? 너무 무섭습니다, 형님들……."
상현이 속삭이듯 말했다.
[와;; 이 새끼 진짜 들어갔네]
[ㅋㅋㅋㅋㅋ와]
[미친... 진짜 들어간 거임?]
"저는 약속 지키는 사람입니다. 지금부터 제가 하는 거 잘 보세요. 장비 없어도 충분히 던전 탐사! 할 수 있습니다."
바로 이어 오리걸음으로 나아가기 시작하는 상현.
이 던전의 구조는 이미 눈 감고도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일주일동안 죽어라 그것만 외웠으니까.
'정면 45도 전사 두 마리, 그 옆에 주술사 한 놈 있고, 지나가면 일반 다섯 마리.'
다시 한 번 되새긴 후, 조금 전진하자 시야에 오크 셋이 들어왔다.
손에 들린 글레이브가 빛을 받아 번쩍거렸다.
"총 세 놈이네요. 이제 여기를 어떻게 지나가야 하냐면,"
심장이 미친 듯 뛰었다.
이론상으론 완벽했지만 만의 하나라는 건 항상 있는 법이었으니까.
'걸리면 씨팔, 뒤지는 거야.'
상현이 돌을 집고 타이밍을 재기 시작했다.
그리고 오크들의 시선이 반대편으로 향하는 순간.
슈우우, 빡!
집어던진 돌멩이가 오크 전사의 머리를 때렸다.
"취이익! 츠륵?"
맞은 녀석이 얼빵하게 주변을 둘러보았으나 상현은 이미 몸을 숨긴 뒤였다.
금세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돌아가는 오크.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이 미친ㅋㅋㅋㅋ 개멍청하네ㅋㅋ]
[이걸 돌멩이가 하드캐리ㅋㅋㅋ]
채팅을 확인한 상현은 다시 타이밍을 쟀다.
또 한 번 날아가는 돌멩이.
빡!
아까 맞았던 녀석이었다.
"츠라라락! 크륵! 췩!"
뒤통수를 부여잡으며 두리번거리는 녀석.
콧김을 푸륵거리던 오크의 시선이 옆의 동료에게서 멈췄다.
퍽!
그대로 동료를 후려치는 오크.
"취이이익!"
졸지에 공격 당한 녀석이 광분하며 날뛰었다.
예상대로 흘러가는 상황에 절로 웃음이 나왔다.
"형님들, 마무리 하겠습니다."
상현은 마지막 돌멩이를 집어 카메라에 한 번 비춘 다음, 그대로 남은 한 마리에게 던졌다.
"취에에에에엑!"
격한 콧소리와 함께 싸움판에 가세하는 오크의 모습을 확인하고 나서 상현이 말했다.
"이런 식으로 지나가시면 됩니다. 정말 쉽죠?"
그리곤 태연자약하게 오크들 곁으로 지나갔다.
저들끼리 싸우기 바쁜 나머지 옆에 인간이 지나간다는 사실조차도 모르는 것 같았다.
'됐어, 이제 일반 다섯 마리만 지나가면 3번방은 끝이다.'
한 고비는 넘겼다는 생각에 마음이 여유로워졌다.
채팅창 반응을 힐끗 보니 미처 다 읽기 힘들 정도로 채팅이 쏟아지고 있었다.
[씹오졌다 ㄹㅇ]
['BJ 미친놈' 님께서 풍선 100개를 선물하셨습니다. 55번째로 팬클럽이 되셨습니다.]
['ㅋㅋㅋㅋㅋ' 님께서 풍선 333개를 선물하셨습니다. 56번째로 팬클럽이 되셨습니다.]
[님들 이거 무슨 방송임? 진짜 던전 맞아요?]
중간 중간 풍선이 터지는 것도 보였다.
금액은 크지 않았지만 사람들이 즐거워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게다가 무엇보다도 중요한 건.
'미친, 8백 명이라니. 이런 식이면 2천… 아니, 3천 명도 찍을 수 있어!'
상현의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하지만 일단은 나머지 관문들부터 해결해야했다.
"지금 8백 분 넘게 보고 계십니다. 추천과 즐겨찾기 한 번씩 부탁드리구요. 아직 많이 남았으니까 끝까지 즐겁게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상현은 감정을 애써 가라앉혔다.
'출구 바로 직전 다섯 마리.'
침착하게 목표를 머릿속에 정리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거대한 바위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 바위 밑에 오크들이 있었다.
"저 바위를 출구라고 부릅니다. 저걸 기준으로 건너편을 2번방이라고 부르거든요. 아무튼,"
숙였던 몸을 일으켜 세우는 상현.
"여기서 저것들을 무조건 잡아야 한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을 텐데!"
갑작스런 외침소리에 놀란 오크들이 상현에게 곧장 달려오기 시작했다.
"취이익! 취르르륵!"
"그럴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여기선 이렇게!"
그러나 상현은 도망치기는커녕 오히려 오크들을 향해 마주 달려 나갔다.
[이거 자살방송이냐?]
[뭐해 미친놈아!!]
사람들이 경악하는 순간.
금방이라도 오크와 부딪힐 듯 달리던 상현이 방향을 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