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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은 순종하지 않는다-123화 (123/130)

123화. 두 사람

한성

“기뻐하십시오! 저희와 일본의 연합함대가 영국의 극동 함대를 완파했다고 합니다!”

“하하하하. 영국 놈들도 별거 없군요.”

“그렇습니다. 일본과 힘을 합쳤다 하나 이제 우리 한국도 열강이 쉬이 볼 수 없는 강국이 되었습니다.”

전장에서 전해진 소식에 대전에 있던 모두는 웃음을 터뜨렸다.

“전장에 있는 모두에게 정말 잘해주고 있다는 치하를 전해주시오, 군부대신. 과인 역시 감개가 무량하오. 식민지로 전락할 뻔했던 이 나라가 10년 만에 아시아의 강국 중 하나로 성장했다니.”

이척 역시 기쁨을 숨기지 않고 드러냈다.

러시아로 인해 어차피 한판 붙어야 한다는 인식하에 일본과 동맹을 맺고 개전을 했지만, 사실 한국 정부는 당대 세계 최강국 중 하나인 영국과 맞붙는 것에 굉장히 큰 부담을 가지고 있었다.

러시아를 등에 업긴 했지만 전쟁에 패배할 경우 한국의 자주 독립은 다시는 꿈도 꿀 수 없는 처지로 굴러떨어질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유럽의 사정이 급해 동양의 전력을 극도로 축소했던 영국은 대영제국이라는 명성이 무색하게도 한일 동맹에 끊임없이 밀려나고 있었다.

영국은 개전한 지 열흘도 되지 않아 대만을 잃었고 2달 만에 홍콩을 내줬으며 이젠 광동도 지키기 버거워하고 있었다.

‘이대로 광동을 점령하고 강남 의회 전역을 일본과 함께 차지하게 된다면 우리도 당당히 독립을 외칠 수 있을 것이다.’

이척은 이번 세계 대전이 마무리되는 대로 한국의 자주 독립을 선포할 생각이었다. 러시아가 살짝 신경이 쓰이긴 했지만, 유럽에서 상당한 국력을 소모하게 될 그들은 아시아의 강국으로 떠오른 한국을 더이상 제어하지 못할 터였다.

“지상군의 파병 준비는 잘 되고 있소?”

“예, 폐하. 1진은 홍콩에 상륙을 완료하였고 이제 2진이 제물포에서 출발할 준비를 하고 있다 합니다.”

“잘 준비해서 일정에 차질이 없도록 하시오. 전황이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다 하나 종전이 되기 전까지는 끝난 것이 아니니 다들 끝까지 문제가 없도록 맡은 일을 잘 해주시오.”

“알겠습니다, 폐하.”

“그럼 오늘 회의는 여기까지 하겠소.”

회의를 마무리 지은 후 이척은 양성환과 이야기를 나눴다.

“장개석이 전역을 신청했다고?”

관전 무관단에서 돌아온 장개석은 얼마 있지 않아 전역을 신청하였다. 양성환은 전역을 만류했지만, 그의 뜻이 워낙 완강해 어쩔 수 없이 전역을 시켜야겠다고 결정한 상태였다.

“그렇습니다.”

“사유는?”

“개인적인 사정이라고 합니다만 아무래도 이번 매국 사건에 연루되어 진급이 좌절된 것이 큰 것 같습니다.”

“쯧. 정말 안타깝군.”

‘잘 품으면 우리 한국의 기둥 중 하나로 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이척은 손으로 탁자를 두드리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약간의 시간이 흐른 후 그는 다시 양성환에게 말했다.

“사정을 봐주고 싶지만, 군의 체계를 어지럽히면서까지 특별 대우를 해줄 수는 없는 법이지. 전역을 허락하시오.”

“알겠습니다.”

“하지만 그와 같은 인사를 이렇게 떠나보내는 것은 큰 손해라 생각되오. 강남 지방을 점령하고 나서 그를 앞세워 대리 통치하는 것은 어떻겠소?”

“대리 통치 말씀이십니까?”

“그렇소. 일본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나는 현실적으로 우리 한국의 국력으로는 저 멀리 떨어진 강남을 식민지배하기 어렵다고 생각하오. 그럴 바에야 우리 한국에 친화적이고 협조적인 이를 내세우는 것은 어떻겠소?”

한국은 일본과 맺은 약속에 따라 전쟁에서 승리할 경우 광둥성과 광시성을 지배하기로 되어있었다. 하지만 이척은 말도 다르고 민족도 다른데다가 한국에서 거리가 상당히 떨어져 있는 해당 지역을 지배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했다.

‘만주 정도라면 몰라도 광둥과 광시라니. 두 지역의 인구와 넓이를 생각하면 한국은 먹는 순간 그대로 체한다.’

해당 지역을 지배하기 위해서는 군대를 보내고 관리를 파견하는 등의 투자를 해야 했다. 그뿐만이 아니라 자금을 투자해 기반 시설을 세우고 행정 체계도 세워야 했다.

하지만 한국에는 그럴 여력도 없었고 그렇게 해야 할 정도로 두 지방이 가치 있는 지역도 아니었다. 이척은 차라리 그 지방에 장개석을 수반으로 하는 괴뢰국을 세운 뒤 적당히 경제 영토로 삼을 생각이었다.

‘어차피 민족도 다르니 시간이 흐르면 독립을 하겠다고 설치겠지. 그렇다고 일본에 넘겨주면 일본이 너무 커질 것이고. 한국에 우호적인 국가를 하나 세우고 홍콩과 마카오 정도만 직접 통치하는 것으로 하자.’

양성환은 이척의 말에 잠시 생각을 하는 듯 하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제가 한번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좋소. 그리고 러시아 극동 사령부에서 치안 유지 목적으로 병력을 요청했다고 들었는데.”

“그렇습니다. 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 러시아 전역의 병사들을 있는 대로 긁어모으고 있어 치안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병사들도 부족한 실정이라고 합니다.”

“알겠소. 적당히 병사들을 파견하도록 하시오. 그리고 말이오. 내 생각인데 한동안 극동 사령부는 우리 병사들에게 의지할 것 같소. 이 기회를 이용해 우리의 영향력을 확대하시오.”

“예, 폐하. 10년 전 폐하께서 세우신 목표를 이룰 때가 점점 더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너무 무리할 필요는 없소. 바이칼 호까지만 가면 충분하오. 그 이상으로 확대할 필요는 전혀 없소. 괜히 덩치를 너무 키워봤자 경계심만 살 뿐이니.”

“알겠습니다.”

이척과 이야기를 마치고 나온 양성환은 장개석을 불렀다.

마지막으로 설득을 해보고 안 되면 이척의 제안을 이야기하기 위해서였다.

“장 정위.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죄송합니다, 군부 대신 각하. 저를 여기까지 이끌어주셨던 은혜는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런던에서 있었던 일 때문에 그러는가? 자네에게 아무런 책임도 묻지 않겠다고 내 분명히 이야기했잖는가.”

“그 일 때문만은 아닙니다. 일전부터 한국에서 많은 것을 배운 뒤 제 조국에 이바지할 생각이었습니다. 그 시기가 조금 일찍 당겨진 것뿐입니다.”

“조국이라니. 자네의 조국은 한국인데 무슨 소린가?”

“……죄송합니다. 군부 대신 각하와 폐하께서 저와 제 가족에게 한국 시민권을 주고 저를 끌어안으려 노력하신 바는 잘 알고 정말 감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아무래도 중국인인 것 같습니다.”

“……알겠네. 어쩔 수 없지. 전역을 허락하겠네.”

“감사합니다.”

“그런데 내 자네에게 한 가지 제안할 것이 있네.”

면담을 마치고 나온 장개석은 품에서 담배를 한 대 꺼내서 폈다.

‘괴뢰국의 총통이라……’

양성환으로부터 전쟁이 끝난 이후 광둥과 광시 지방에 새로 정부를 구성하고 그 수반으로 취임하지 않겠냐는 제안을 들은 장개석은 그 자리에서 수락을 하였다.

항상 야심으로 가득해 있던 그에게 한국 정부의 제안은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이었다.

‘그런데 왜 나를 이렇게 밀어주는 것이지?’

장개석은 제안을 수락하면서도 한편으로 한국 정부가 왜 자신을 이리 밀어주는지 의문이 들었다. 그가 중국 출신으로 한국군에 임관한 1호 장교이긴 했지만, 그것만으로는 이유가 부족했다.

“모르겠군. 어쨌든 이리 밀어주는 것을 거절할 이유는 없지.”

그는 담배를 발로 비벼 끄며 서남쪽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마오쩌둥은 잘 지내고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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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서성 난창

“아버지, 나라가 망하면 아무것도 남지 않습니다. 가산을 아끼지 않고 풀어 사람들을 모으고 그들을 무장시켜야 합니다!”

“이놈이 집안을 들어먹으려고 작정을 했구나! 내가 평생 고생하며 모은 재산이고 이 재산을 모으기까지 나라가 내게 해준 것은 하나도 없었다. 오히려 세금으로 뜯어만 갔지. 내가 왜 나의 재산을 내야 하느냐! 닥치고 방으로 들어가거라!”

“아버지!”

“왕가야, 마오쩌둥 저 녀석을 데리고 가라!”

“예, 어르신.”

아버지가 부른 하인에 의해 강제로 자신의 방에 들여보내진 마오쩌둥의 속은 답답했다.

‘나라가 위기에 처했는데 다들 제 한 몸 살기 급급해하고 아무도 희생을 하지 않으려 한다니. 이 상황이 정말 역겹구나.’

그가 영국에서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영국 극동 총독부는 한일 동맹의 공격을 받게 되었다. 순식간에 대만이 그들의 손에 넘어가고 홍콩 앞바다에서 벌어진 해전에서 영국 함대가 수장당하자 강남 의회의 운명은 바람 앞의 촛불이 되었다.

나라가 위기에 빠지자 마오쩌둥은 사재를 털어 의용병을 조직하여 적들에 맞서 싸우려 했다. 하지만 그러한 그의 시도는 아버지인 마오이창의 반대에 곧바로 부닥치게 되었다.

마오이창은 전쟁의 불길이 코앞으로 다가오자 가산을 정리해 안전한 곳으로 도망칠 궁리부터 했다. 물론 그렇게 한 것은 마오이창뿐만이 아니었다. 대부분의 지주나 자본가들은 자신들의 자산을 휴대하기 용이한 귀금속으로 바꾸는데 한창이었다. 그 바람에 강남의 금값이 때아니게 폭등하고 있었다.

“이 나라는 무언가 잘못되었어. 의회제를 표방하고 있지만 껍질을 한꺼풀 드러내면 봉건제 국가다. 그것도 지배층의 정신이 썩어빠지고 망조가 들은! 사람들의 정신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뜯어고쳐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 전쟁을 바탕으로 내가 나라를 바꿀 권력을 가져야겠구나.”

혈기 넘치던 나이이던 마오쩌둥은 자신마저 아버지나 다른 지주들처럼 손 놓고 나라의 멸망을 지켜볼 수 없다고 결심했다.

그날 밤, 그는 아버지가 모아놓았던 귀금속을 털어 집을 나섰다.

집을 나선 그는 인근 도시인 지안(吉安)에서 귀금속을 판 후 그 돈으로 무기를 사들이고 사람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이 나라를 지킬 의기 있는 이들을 모으고 있소!”

의병들을 모으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대다수의 민초들은 총을 본 적조차 드문 이들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지안에는 한때 영국에서 그와 함께 수학한 이들이 몇 있었고, 마오쩌둥은 그들의 도움을 받아 수백의 의용군을 조직할 수 있었다.

“고맙네, 리쭝런.”

“별 것 아니네. 사실 총독부에서 우리 아버님께 모집하라고 할당한 병사들의 수가 있었네. 그래서 아버님을 설득하기가 수월했어.”

“그래도 자네 아버님께서 자금과 병사들을 내게 모아준 데에는 자네의 도움이 컸지.”

“하하. 의기를 품고 나라를 위해 일어선 친우와 함께 하지 못하는 내 스스로가 부끄러울 따름일세.”

“흐흐. 자리는 언제든지 남아있네.”

“알겠네. 조금만 기다리게. 나도 주위를 정리한 후 때를 봐서 자네에게 갈테니까.”

“고맙네. 그럼 담에 보세나.”

그렇게 지안에서 일단의 무리를 모은 마오쩌둥은 광저우로 향하며 때로는 지주들에게 부탁하고 때로는 그들을 협박하여 점점 세를 불려갔다.

광저우에 도착했을 때 그의 무리는 어느새 수천까지 불어나게 되었다.

“우리를 돕기 위해 왔다고? 정말 환영하네!”

영국 총독 오스틴 체임벌린은 그렇게 도착한 마오쩌둥을 두 팔 벌려 환영했다. 안 그래도 홍콩의 방어에 실패하며 꽤 많은 전력을 잃어 병력 보충이 절실했던 상황에서 수천의 의용병을 모집해 온 마오쩌둥은 그에게 구세주처럼 느껴졌다.

체임벌린은 그 자리에서 마오쩌둥을 강남 의회의 의용군 대령으로 임명하였다. 파격적인 임명에 당황해하는 그에게 체임벌린은 그와 같은 이를 대우해주지 않는다면 누구를 대우해주냐고 말하며 다시 한번 감동을 주었다.

그렇게 마오쩌둥은 나라를 바꿀 힘을 쥐는데 한 걸음 다가설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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