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화. 프랑스의 역공
스트라스부르
“팔켄하인 장군님, 에피날에 있는 적들의 움직임이 이상합니다. 적들의 방어선이 조금씩 뒤로 물러나고 있고 전방에 보이던 병사들의 숫자가 상당히 줄어들었습니다.”
부관의 보고에 팔켄하인은 혀를 찼다.
“쯧. 아직 5군이 도착하려면 1주일 가량은 더 걸린다고 들었는데.”
우회한 독일의 4군과 5군은 포위망을 구성한다는 목적을 가지고 움직였기에 생각보다 전진 속도가 느렸고 느린 진군 속도는 프랑스가 그들의 움직임을 탐지하고 나서 어떻게 대응할지 충분히 고민할 시간을 주게 되었다.
“……지금 공세를 펼쳐서 적들의 발을 붙잡을까요?”
예정대로 5군이 도착하기 전에 프랑스 군이 에피날을 버리고 뒤로 물러나면 중립국까지 들쑤신 우회 작전을 펼친 의미가 없었기에 부관은 팔켄하인에게 적들의 후퇴를 막기 위한 공세를 펼칠지 물었다.
“됐네. 우린 할 만큼 했어. 지금 저들에게 공격을 가한다고 저들의 후퇴를 막을 수는 없네.”
고개를 저으며 부관의 물음에 퉁명스레 답한 팔켄하인은 품에서 담배를 한 개피 꺼내 입에 물며 투덜거렸다.
“멍청한 참모부 놈들. 실패할 것이 뻔한 작전을 끝끝내 들이밀었던 이유를 모르겠군. 진짜 나와 몰트케의 우려를 일축했을 때는 정말 다 뒤엎어버리고 싶었는데.”
“…….”
팔켄하인의 투덜거림에 주위에 있던 이들 모두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애당초 그들의 의견대로 포위망을 구성할 것이 아니라 에피날에 있는 적들을 요격하는데 중점을 뒀으면 최소한 적들에게 큰 피해를 강요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포위는 포위대로 실패하고 적들에게 타격도 못주며 최악의 작전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래도 낭시를 함락시킨 것은 다행입니다. 몰트케 장군께서 정말 큰 일을 해주셨습니다. 저희도 적들이 에피날에 구축한 방어선을 손쉽게 접수하였고요.”
“그나마 다행이지. 그 많은 병력과 포탄을 쏟아부었는데 성과가 하나도 없었으면 내가 루덴도르프 녀석의 골통을 부숴버렸을거야. 어쨌든 간에 적들이 물러나는대로 에피날을 접수하도록 하게.”
“Ja!”
독일은 프랑스 군을 한번에 포위해 섬멸하겠다는 초기의 목적은 달성하지 못했지만 낭시와 에피날을 돌파하고 그들을 고생시키던 적들의 방어선을 함락하며 작은 성과는 얻어낼 수 있었다.
그러나 얻은 것에 비해 잃은 것이 컸다.
독일은 중립국 스위스까지 침범하는 무지막지한 국가라는 오명을 뒤집어 썼고 유럽의 여러 국가들로부터 맹비난을 받으며 대부분의 국가들을 적으로 돌리게 되었다. 특히 네덜란드 왕국의 비난과 관계 단절 선포는 독일에게 굉장히 큰 손해로 다가왔다.
네덜란드는 스위스를 침공한 독일을 믿을 수 없는 국가라고 비난하며 완전한 관계 단절과 국경 폐쇄를 선포하였다. 이 탓에 독일은 네덜란드를 통해 이어지던 실낱같은 해상 수송로가 완전히 끊어졌고 그들의 해안에 숨어살던 해군들도 모조리 불러들여야 했다.
또한 쫓겨난 독일 함대는 영국 해군의 포위를 피하기 위해 독일 북서부 해안의 방위를 완전히 포기하고 덴마크를 돌아 킬에 입항하였는데 이로 인해 브레멘과 함부르크의 항구 기능이 완전히 마비 상태에 접어드는 등 독일의 스위스 우회 작전은 얻은 것보다 잃은 것이 훨씬 많았다.
결론적으로 독일의 행적은 전투에서 약간의 성과를 얻기 위해 전쟁에서 많은 것을 잃은 전형적인 소탐대실의 모습을 보인 꼴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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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조프르 원수로부터 브장송과 브술, 뇌프샤또를 중심으로 한 방어선을 새로 구축하겠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알겠다고 전하게.”
전방에서 전선을 뒤로 물리겠다는 보고가 전해졌지만 총리 클레망소는 당황하지 않고 오히려 조소를 띄웠다.
“멍청한 독일 놈들 같으니라고. 아군을 만들어도 모자랄 판에 전 유럽의 국가들을 적으로 돌리고 있군.”
그의 조소에 다른 장관들도 함께 독일을 비웃었다.
“하하. 그러게 말입니다. 벨기에에 이어 이번엔 스위스라니. 그 녀석들은 일단 상대를 물고 보는 미친 개인가 봅니다.”
“전선이 뒤로 밀리긴 했지만 네덜란드와 북유럽 국가들이 독일에게 적대적인 입장으로 돌변한 것은 우리에게 천군만마입니다.”
프랑스는 독일에게 낭시와 에피날을 넘겨준 것이 아쉽긴 했지만 그만큼 상대에게 피해를 강요했고 아군에 우호적인 국가들이 늘어난 것에 고무되어 있었다.
물론 그들이 군사를 동원해 전쟁에 참여하지는 않겠지만 독일군의 보급로와 활동범위를 좁히는 정도는 해줄 터였다.
“그런데 정말 스위스로 원군을 보낼 필요는 없겠나?”
“자존심은 쎈 놈들이라 그런지 아직까지 도움 요청은 없었습니다. 자기들 딴에는 본인들의 힘으로 독일을 몰아내려 하나 봅니다.”
“그 녀석들도 어지간히 꼴통이군. 우리 쪽에 붙으면 우리가 알아서 보호해줄텐데 말이야.”
“뭐, 어쩌겠습니까. 자신들이 사서 고생하겠다고 하는데요.”
클레망소는 스위스가 아직까지 자신들에게 도움을 청하지 않고 있다는 외무 장관 피숑의 말에 입맛을 다셨다.
스위스가 프랑스 편으로 붙으면 독일의 남부와 오스트리아의 서부를 찔러 그들에게 전선을 넓히는 것을 강요할 수 있었다. 특히 양면 전선으로 쩔쩔매고 있던 오스트리아 같은 경우 스위스를 통해 한 개 군 정도만 보내도 엄청난 부담으로 여길 터였다.
‘스위스의 은행에 보관되어 있다고 하는 어마어마한 양의 금괴들도 군자금 목적으로 꿀꺽할 수 있었을 것이고 말이야. 쩝. 아깝지만 어쩔 수 없지.’
스위스를 통해 우회할 생각을 버린 클레망소는 전쟁 장관 피카에게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그나저나 독일이 저렇게 중립국을 마음대로 지나다니는데 우리도 한 번 정도는 그래도 되지 않겠나?”
“음…… 지금 시점에서 전쟁에 휘말리지 않은 나라는 거의 없다고 봐도 되니 솔직히 상관없을 것 같습니다. 북유럽의 스웨덴이나 덴마크 정도가 비난을 좀 하겠지만 그 녀석들은 입으로만 떠드는 놈들이니 별로 신경 쓸 필요가 없을 겁니다.”
“그러면 지금 파리에 새로 편성된 군들을 벨기에를 통해 진군시켜 쾰른을 박살내는 것이 어떤가? 스위스를 통해 슈투트가르트를 쳤으면 제일 좋았겠지만 스위스 놈들이 뻐팅기니 어쩔 수 없지.”
“괜찮을 것 같습니다. 네덜란드가 사실상 저희 편을 들었으니 벨기에도 저희 편이라고 봐도 무방할 겁니다. 그리고 전쟁 초기에 독일군을 통과시켜준 놈들이니 이 기회에 편을 확실히 하라고 해야겠지요.”
“좋아. 그러면 계획을 한번 세워보게.”
“알겠습니다.”
독일이 계속 중립국을 활용해 우회를 하려 하자 프랑스 역시 전선 인근에 있는 국가들을 그대로 두고만 볼 수는 없었다.
그들은 벨기에를 경유해 독일 서부의 중심지인 쾰른과 도르트문트를 손에 넣고 더 나아가 북부의 브레멘과 하노버, 함부르크까지 점령한 뒤 베를린을 칠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해상을 영국이 꽉 잡고 있으니 보급은 걱정할 필요가 없었고 독일군 대다수는 슈투트가르트 인근에 있기에 적의 허를 찌를 수 있을 것이라는 구상에서 나온 계획이었다.
프랑스의 계획을 전해들은 영국은 중립국인 벨기에를 넘는다는 말에 조금 떨떠름해 하기는 했지만 이 길이 전쟁을 빨리 끝낼 수 있는 길이라는 그들의 설득에 넘어가 작전을 승인했다.
영국의 동의를 얻어낸 프랑스는 콩피에뉴에 새로 편성한 15개 사단을 집결시켰고 그들을 지휘할 이로 페르디낭 포슈를 낙점했다.
“무거운 짐은 전부 다 버리고 몸을 최대한 가볍게 하고 움직일 것이다.”
“최대한 가볍게 한다면 어느 정도까지인지 알수 있겠습니까?”
“개인 무장과 열흘 정도 먹을 식량만 준비하도록. 식량도 대부분 통조림 위주로 준비하도록 하고.”
쾰른과 도르트문트 공격이라는 중임을 맡은 프랑스 4군 대장 페르디낭 포슈는 휘한 장교들에게 오로지 열흘 분의 식량과 기본 무장만 갖추고 움직일 준비를 하라고 명했다.
“야포나 기관총은 전부 다 놓고 간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렇다. 기관총과 야포는 전부 배로 운송한다. 네덜란드가 우호적인 중립을 취한다 했으니 중화기는 전부 칼레에서 배로 싣고 로테르담에 내린 뒤 거기서 아헨으로 운송시켜 받는다. 네덜란드의 도로와 교통은 굉장히 발달되어 있으니 우리 일정에 맞게 무기를 받는 데에는 지장이 없을 것이다.”
꿀꺽
포슈의 과감한 말에 자리에 모인 이들은 모두 절로 침을 삼켰다.
해상으로 보급을 받는 일이 드문 일은 아니었지만 전장 인근에 도착해서 보급 물자를 받겠다는 것은 그들에게 한번도 해본 적이 없는 도전이었다.
포슈는 장교들의 반응에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이번 작전의 성패는 우리가 벨기에 영역을 얼마나 빠르게 지나는 지에 달려 있다. 멍청한 독일 놈들처럼 모든 장비를 바리바리 싸들고 움직였다가는 실패할 수 밖에 없다. 콩피에뉴에서부터 샤를루아, 리에주를 거쳐 우리의 1차 공략 목표인 아헨까지는 370 KM 이다. 이 거리를 1주 내로 주파하려면 이 수 외에는 없다.”
그는 1주일 내로 벨기에의 영역을 주파해 아헨에 다다라야지만 기습을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 봤다.
‘우리가 아무리 은밀하게 기동해도 벨기에의 영역을 넘어가는 순간 움직임을 들킬 수 밖에 없다. 2일에서 3일이면 우리의 움직임에 관한 정보가 독일군에 들어가게 될 것이고 그들이 움직이겠지. 그렇게 되면 트리어에 있는 놈들의 1군이 움직일 것이다. 트리어에서 아헨까지는 120 KM, 4일 거리. 1주 내로 아헨에 도착하고 3일 내로 그곳을 함락시켜야만 방어를 어느정도 구축한 상태에서 적들을 맞을 수 있다.’
포슈의 말을 듣던 누군가가 손을 들어 질문했다.
“보급은 그러면 계속 네덜란드를 경유해 받으실 생각이십니까?”
“그렇다. 이건 비밀이지만 네덜란드가 곧 참전을 선언할 것 같다. 같은 동맹이 되는 만큼 후위가 끊기거나 할 걱정은 안해도 된다.”
“벨기에 측도 저희에게 붙기로 했습니까?”
포슈가 네덜란드가 프랑스 편에 붙기로 했다는 말을 하자 얼굴에 화색을 띈 누군가가 다시 또 손을 들어 물었다.
“아니. 벨기에 측은 아직 모르겠군. 외교부 쪽에서 여러 경로를 통해 접촉을 한다는 말은 들었지만 확답을 못 받았다고 했다. 그쪽은 아직도 독일과 직접적으로 맞부딪히는 것에 대해 꽤나 부담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아쉽군요. 벨기에가 저희에게 붙는다고 했다면 작전이 더 쉬웠을 것인데.”
“그래도 우리의 통과를 막지는 않겠다고 하니까 반쯤 넘어온 것으로 봐야겠지. 또 질문이 있는 사람 있나?”
“없습니다!”
“그러면 다들 부대로 돌아가 필요한 물품을 추리도록 해라. 작전 결행은 올해 8월로 생각하고 있고 다시 한번 이야기하지만 몸은 최대한 가볍게 해야 한다!”
“Ou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