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화. 2차 극동 전쟁
성도
“의원들을 찾아라! 출구를 봉쇄해 한 놈도 빠져나가지 못하게 해라!”
1907년의 마지막 날, 일련의 병사들이 중화민국의 국회의사당을 포위하고 있었다.
“이게 대체 무슨 짓이냐!”
“놔라, 이 무도한 놈들! 국민의 대표인 우리들에게 대체 무슨!”
한 해의 끝을 마무리 짓기 위해 의사당에 모여있던 의원들은 아무런 대응도 하지 못하고 군인들의 손에 연행될 수 밖에 없었다.
군인들을 지휘하고 있던 황싱과 담인봉은 총통 집무실에서 굳은 표정으로 쑨원을 마주하였다.
“이게 대체 무슨 짓이냐, 황싱!”
“죄송합니다, 선생님. 하지만 나라의 운명이 경각에 달하였는데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습니다. 후세에 오명을 뒤집어 쓰더라도 중화민국의 미래를 위해 일어설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게 무슨!”
황싱의 말에 쑨원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강남 의회, 중국 공화국, 장작림 셋 모두 각자의 사정으로 내정에 바빠 외부의 위협이 없는데 나라의 운명이 경각에 처했다니?
담인봉 역시 황싱에 이어 입을 열었다.
“선생님, 저희는 도저히 지주 놈들의 행패를 지켜볼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중국 공화국이 둘로 갈라진 이때가 중국을 다시 통일할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이 기회를 놓치면 안 됩니다.”
“그러면 중국 공화국을 공격하자는 안건을 의회에 냈으면 되었잖는가. 나 역시 자네들의 뜻에 찬성했을 터인데. 그리고 지주들이 마음에 안 든다고 이렇게 힘으로 밀어붙이면 안 되네.”
쑨원의 답에 황싱은 표정이 다시 일그러졌다. 혹시나 했지만 쑨원은 역시나 지주들과의 타협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은 상태였다.
“선생님, 아직도 그 빌어먹을 작자들을 모르십니까? 그 작자들은 자신들의 배를 불리는 것 이외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중국 공화국과의 전쟁에 그 놈들이 찬성하시리라 생각하시는 것입니까?”
“…….”
따지듯이 묻는 황싱에게 쑨원은 아무런 답을 하지 못했다. 그도 알고 있었다. 시기가 아무리 좋아도 자신들이 비용을 분담해야 하는 이상 지주들은 전쟁을 반대하고 복지부동할 것이란 것을.
쑨원은 한숨을 내쉬며 담배를 하나 꺼내 물고 지친 표정으로 의자에 앉은 뒤 둘에게 물었다.
“휴, 이미 벌어진 일. 뒤엎을 수는 없지. 그래, 앞으로 어떻게 할 계획인가?”
“먼저 의회를 해산하고 군정을 선포할 생각입니다. 그리고 중국 공화국에 선전 포고를 한 후 국민들에게 저희가 전시 상황에 돌입하게 되었음을 알리고 징병을 할 계획입니다.”
“국내야 그렇다 쳐도 영국이나 독일이 그것을 가만 두고 볼 것이라 생각하는가?”
“독일은 이미 산둥에 주둔하고 있던 병력을 모조리 유럽으로 뺐습니다. 그리고 영국도 대다수의 전력을 유럽으로 보내 껍데기만 남은 속 빈 강정 상태입니다. 프랑스가 조금 신경 쓰이기는 하지만 저희가 대놓고 적대감을 드러내지 않는 이상 별다른 간섭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황싱이 자신감있게 향후 계획을 말하자 담인봉도 그를 거들었다.
“강남 의회는 겁쟁이들의 집합소고 장작림은 지방의 마적 떼에 불과합니다. 중국 공화국만 꺾는다면 대륙은 저희 중화민국의 깃발 아래 다시 뭉칠 것입니다.”
“……난 이제 모르겠네. 자네 둘에게 모든 것을 위임할 테니 어디 한번 뜻대로 해보게.”
‘저 둘의 뜻을 돌리는 것은 어렵겠구나. 그리고 오늘 쿠데타가 일어나기 전까지 내가 전혀 눈치채지 못했던 것을 보면 많은 이들이 둘에게 가담했나 보군. 후, 이미 내가 손쓸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났다. 이젠 지켜보는 수 밖에……’
아무리 말려도 소용없겠다는 것을 깨달은 쑨원은 모든 권한을 내려놓고 뒤로 물러나는 수 밖에 없었다.
“적국들과 내통한 쑹자오런을 찾아라! 그리고 지금까지 정부의 정책에 협조적이지 않았던 지주들도 모조리 잡아들여!”
실권을 잡은 황싱과 담인봉은 군정을 선포하고 반대파인 쑹자오런에게 매국 혐의를 뒤집어 씌운 뒤 체포령을 내렸다. 그리고 전쟁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지주들을 무력으로 위압해가며 자산을 압류하고 반발할 경우 바로 체포하여 옥에 가두었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원세개의 잔당들을 무너뜨릴 때가 왔다. 조국의 아들들이여 중화민국의 깃발 아래 뭉치자!”
중화민국 정부는 전국에 징병령을 내려 젊은이들을 군대로 불러들였다. 사람들은 갑자기 정부가 전쟁 분위기를 만들고 전체적인 통제를 강화하자 불만을 내뱉었지만, 그럭저럭 정부의 방침을 따라갔다.
청의 압제에서 그들을 자유롭게 해주고 큰 경제적 어려움을 겪지 않게 해줬기에 아직 중화민국 정부에 대한 신뢰가 남아있었기 때문이었다.
전쟁 자금과 병력이 확보되면서 중화민국 수뇌부는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중국 공화국이 틈을 보이기만을 기다렸다. 그리고 그 기회는 금방 찾아왔다.
“단기서와 펑궈장이 상추(商丘) 인근에서 크게 충돌했다고 합니다.”
“누가 이겼다고 하나?”
“승패가 갈려지지 않고 양측 다 상당히 큰 피해를 입었다고만 들었습니다.”
“그래? 좋다, 그러면 중국 공화국에 선전 포고를 하고 병사들을 출진시켜라!”
“예, 장군!”
1908년 2월 중화민국군이 중국 공화국의 국경을 넘으며 2차 극동 전쟁의 포성은 울려퍼지게 되었다.
“장군, 모든 것이 순조롭습니다! 이 기세면 금방 놈들을 쓰러뜨릴 수 있을 것입니다!”
호북의 우한을 출발한 황싱 휘하의 1군은 내전으로 경비가 헐거워진 국경을 순식간에 돌파하였다. 단기서가 펑궈장을 치기 위해 주력 부대들을 모조리 끌어간 상태여서 이렇다 할 저항도 없었고 주민들 역시 대홍수에 이은 끊임없는 수탈로 중국 공화국에 환멸을 내고 있었기에 중화민국군을 기꺼이 반겼다.
“그래도 방심하지는 마라. 청나라 시절 북양군의 후신인 녀석들이니. 그리고 주민들에게 식량을 나눠주고 약탈을 엄금해라! 규율을 지키지 않는 놈은 엄히 처벌하고.”
“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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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난성 상추(商丘) 인근
“뭐라고? 중화민국 놈들이 국경을 넘어 합비로 진격 중이라고? 이 빌어먹을 놈들이! 으아아아!”
단기서는 숨을 헐떡이며 달려온 전령이 전한 말을 듣고 괴성을 내질렀다. 안 그래도 무너질대로 무너진 안휘의 경제 수행 능력을 감안해 기습적으로 펑궈장을 공격한 것도 무위로 돌아간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중화민국까지 밀고 들어오면 단기서 측은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다.
“후, 추태를 보여 미안하오. 다들 우리가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 의견을 내주시오.”
한참을 발광하던 단기서는 어느 정도 진정이 되자 모든 것을 내려놓은 목소리로 의견을 물었다.
그의 말에 숨죽이고 눈치만 보고 있던 이들이 하나 둘 말을 꺼냈다.
“우선 펑궈장과 화해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화해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그와 다시 힘을 합치지 않으면 우리 힘만으로는 중화민국을 막아내기 어렵습니다.”
“아예 장작림에게도 손을 내미는 것이 어떻습니까?”
“…….”
앞다퉈 펑궈장과 장작림 측에 손을 내밀자고 하는 신료들을 보며 단기서는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크게 실망했다.
‘다들 자신들의 안위에만 관심이 있구나. 저런 이들을 데리고 나라를 운영해나갈 생각을 했다니…… 나의 불찰이다. 피를 뿌리더라도 글러 먹은 놈들을 모조리 씻어내고 나라를 쇄신했어야 하는 것인데……’
사실 단기서가 처했던 환경은 그 누가 왔더라도 헤쳐나가기 어려웠었다. 비협조적인 동료, 끊임없이 발목을 잡는 부하들, 천재지변 등 보통 사람이었으면 지나친 스트레스로 인해 의지가 꺾여도 벌써 꺾여버렸을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에서도 강인한 의지로 어떻게든 자신의 뜻을 펼치려 했던 단기서였지만, 도저히 답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 맞닥뜨리자 그 역시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후, 나의 행보는 여기서 끝이겠구나. 이젠 모든 것을 내려놓고 은거해야 할 시기인 것 같군.’
생각을 정리한 그는 한결 편안해진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대들의 의견을 받아들이겠소. 펑궈장 측에 사람을 보내시오. 중화민국 녀석들이 분명 그쪽에도 쳐들어갔을 테니 우리의 화해 제안을 거부하지 않을 것이오. 그리고 나는 이제 모든 권한과 직책을 내려놓고 쉴까 하오. 다들 펑궈장을 중심으로 뭉쳐 중화민국을 꺾고 중국 공화국을 지켜나가면 좋겠소.”
단기서가 전격적으로 자리에서 물러나 은거를 선택하자 남은 이들은 펑궈장에게 달라붙었다. 펑궈장은 단기서의 휘하에 있던 이들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 썩 내키지는 않았지만, 그들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중화민국을 막아낼 수 없다는 부하인 우페이푸의 충언을 받아들였다.
그렇게 다시 뭉친 중국 공화국은 전열을 정비하여 중화민국과 맞붙었지만, 내전으로 전력을 깎아먹고 대홍수로 전쟁 수행 능력이 많이 떨어져 있었기에 좀처럼 전황을 뒤집지 못했다.
서안
“이대로 가면 중국 공화국은 금방 무너질 겁니다.”
“매번 되도 않는 핑계를 대면서 우리에게 시비를 걸던 녀석들이 망해가고 있다니 통쾌하군.”
서안에서 두 세력의 전투를 지켜보던 장작림은 중국 공화국이 무너지고 있다는 소식에 속이 시원했다.
작년 단기서와 펑궈장이 연합하여 그를 공격했을 때 장작림은 자신의 왕국이 무너질 수 있다는 공포에 질렸고 하필이면 왜 가만있는 자신을 공격하는 것이냐며 둘을 엄청나게 씹어댔다.
다행히 두 세력의 손발이 맞지 않아 큰 피해 없이 공격을 막아낼 수 있었지만 안온한 지역 맹주를 꿈꾸는 그에게는 어려운 시간이었다.
“이참에 우리도 중국 공화국을 공격해 영토를 늘리는 것은 어떠한가?”
“전하, 저는 오히려 그들을 도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뭐? 놈들이 우리에게 어떻게 나왔었는지 알면서도 그런 말을 한다는 거냐?”
부하인 한린춘의 말에 장작림은 어이가 없었다. 그가 호인(好人)이라 하나 악연으로 얼룩진 이들을 도울 정도로 호구는 아니었다.
“전하께서 공화국 놈들과 좋지 않은 기억을 가지고 계신 것은 알고 있지만, 저들과 우리는 순망치한의 관계입니다. 중화민국이 중국 공화국을 무너뜨리면 그 총부리를 어디로 돌리겠습니까? 강남 의회는 영국의 지배를 갖고 있고 청나라는 러시아와 밀접한 이해관계를 갖고 있습니다. 그러면 결국엔 저희가 그들의 다음 목표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크으음.”
장작림은 금세 한린춘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알 수 있었다.
‘한린춘의 말대로 중국 공화국이 무너지면 곧바로 우리가 다음 차례가 되겠지. 녀석들은 공공연히 중국인들이 하나의 나라로 뭉쳐야 한다고 외치고 있으니. 더구나 아직까지 우리에게 적극적으로 손을 내미는 열강도 없고……’
하지만 이해하는 것과 받아들이는 것은 엄연히 달랐다. 장작림은 순순히 자신의 왕위와 왕국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일단은 우리 진(秦)의 방침에 대해서는 조금 더 생각해 보도록 하지. 저쪽이 손을 내밀지도 않았는데 우리가 굽히고 들어갈 필요는 없으니. 대신에 중화민국과의 국경지대에 병력들을 집결시켜 그들에게 압박을 가하도록 하게.”
“예, 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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