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화. 요동도
요하
길게 뻗어있는 강을 보며 스탠다드 오일에서 파견나온 탐사대의 대장 스티브는 투덜거렸다.
“환장하겠군. 요하 유역이 이렇게 넓을 줄이야.”
그는 유정 탐사단을 이끌고 요하를 탐색하고 있던 중이었다. 요녕성 지역이 한국에 편입된 직후 이척은 록펠러에게 유전 지대를 확보했다는 편지를 썼고 편지를 받은 록펠러는 먼저 탐사단을 보내 석유가 정말로 있는지 확인하도록 시켰다.
“그러게 말입니다. 그래도 인력 지원이 충분히 이루어져서 다행입니다.”
“쯧. 우선은 퇴적층이 있는 하류 부근에 사람들을 집중적으로 투입해 탐사 작업을 진행하도록 하게.”
20세기 초의 유정 탐사는 기술이 많이 발달하지 못해 상당히 원시적인 방식이었다. 우선 과거 검은 물이 나왔다고 한 기록 및 농부들의 말을 토대로 인근 지역을 훑은 뒤 석유가 있을 법한 퇴적층을 파헤쳤다.
그리고 파 들어간 지층에서 나온 광물의 성분을 조사해 석유의 흔적이 있는지 조사를 한 후 계속 시추를 할지 말지를 정했다. 광물에 석유의 흔적이 존재해도 계속 파들어갔을 때 실제로 석유가 나오지 않는 경우가 있었는데 그런 경우에는 인근의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겨 시추공을 다시 뚫어보는 작업을 반복해야 했다.
그런 과정을 지속적으로 거치다가 한 시추공에서 석유가 뿜어져 나오면 그제서야 본격적으로 유전 개발이 이루어졌다. 문제는 비용 때문에 탐사과정에서 시추공의 깊이를 깊게 파는 경우가 드물었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불행히도 요하 유전은 지표면에서 약 1000미터 깊이에 있었다.
깡
“젠장할! 땅이 얼어서 곡괭이가 제대로 박히지 않아!”
“구덩이를 도대체 몇 번을 파는 건가?”
“저 놈들의 머리를 열어보고 싶군. 어떻게 하면 땅 속에 검은 물이 있다고 생각할 수 있지?”
“이거 이러다 땅 다 버리겠네.”
여러 차례 자리를 바꿔가며 시추공을 뚫던 노동자들은 불평했다. 그들로서는 땅 속에 검은 물이 있을 것이란 탐사단의 말을 도통 믿기 어려웠고 애먼 땅을 계속 파헤치는 헛짓거리에 자신들이 왜 동원되어야 하는지도 알 수 없었다.
“캡틴, 노동자들의 불만이 높아지고 있고 탐사 비용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습니다. 결단을 내려야 합니다. 철수할 것인지 아니면 조금 더 깊게 파볼 것인지.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는 아무런 소득을 얻지 못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스티브는 부하의 말에 고심에 빠졌다.
‘철수가 어렵지는 않다. 그냥 한국의 국왕이 거짓말한 것 같다고 본사에 보고하면 되니. 문제는 저들이 다른 회사를 불러 탐사를 계속했을 때 유정을 발견하느냐인데……’
탐사가 아예 실패로 돌아가면 별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그가 걱정하는 것은 그들이 철수했을 때 실제로 이 지역에서 유전이 발견되느냐였다. 자신들이 석유가 없다고 판단해 철수했는데 추후 유전이 발견된다면 그 후폭풍은 꽤나 클 터였다.
한성에서 출발할 때 한국의 국왕이 자신만만하게 꽤 큰 규모의 유전이 발견될 것이라 호언장담을 했기에 더 고민이 되었다.
“지금 우리가 몇 미터 까지 탐색을 하고 있지?”
“대략 300미터 정도입니다.”
“그러면 500미터 까지 파보도록 하게.”
“알겠습니다.”
스티브는 이척의 말을 믿고 조금 더 깊게 파보기로 결정하였다. 그리고 500미터 까지 파들어갔을 때 암석층에서 마침내 석유가 존재한다는 증거를 발견할 수 있었다.
“광물에서 석유의 흔적이 발견되었습니다!”
“됐다! 해당 지역을 집중적으로 파도록 해라!”
수십개의 천공을 뚫은 끝에 마침내 발견된 석유의 흔적에 탐사대는 환호하며 곧바로 흔적이 발견된 지역을 집중적으로 파들어가기 시작했다.
“아직도 석유가 뿜어지지 않습니다.”
“더 깊게 파도록 해!”
석유의 흔적은 발견했지만 시추 과정은 쉽지 않았다. 그들은 끊임없이 시추관을 밑으로 밀어넣었지만 석유는 통 뿜어져 나올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깊이에 비례해 끊임없이 상승하는 비용에 탐사대장 스티브의 얼굴은 꺼멓게 죽어가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엄청난 초기 비용이 들어간 이상 반드시 석유를 발견해야만 했다.
‘제발…… 제발 석유가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나는 돌아가자마자 해고 당할거야……’
700
800
900
끊임없이 파 들어가도 석유가 나오지 않자 탐사대는 회의를 열었다.
“캡틴, 저희가 가진 기술로 2000미터 까지 팔 수 있긴 하지만 그 깊이에 유정이 있다면 채산성을 도저히 맞출 수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앞으로 2-300미터 내로 석유가 나오지 않는다면 이번 탐사는 완전한 실패입니다.”
“……앞으로 딱 200, 200미터만 더 파들어가도록 한다. 그래도 석유가 나오지 않는다면 이번 탐사는 실패로 보고 모두 철수하도록 한다.”
마지막으로 200미터만 더 파보기로 결정한 그들은 기도를 하며 시추관을 밀어넣었다. 그리고 다행히도 신은 그들의 기도에 응답했다.
펑
푸슈슉
“나…… 나왔다! 나왔어!”
1천 미터를 살짝 넘겼을 때 시추관을 타고 검은 황금이 뿜어져 나왔다. 그 광경을 본 탐사대장 스티브는 자신도 모르게 무릎을 꿇고 기도를 올렸다.
“오, 신이시여! 감사합니다!”
석유의 존재가 확인되고 유전 발굴에 성공했다는 소식을 들은 한국 정부 역시 환호성을 질렀다. 국혼에 이은 겹경사였다.
“폐하의 안목에는 그저 감탄할 따름입니다.”
“내가 분명 있을 것이라 하지 않았소, 하하. 근시일 내로 석유가 생산되기 시작할테니 한국 거래소 거래 종목에 석유 역시 추가하도록 하시오.”
“알겠습니다.”
한국 정부는 요하의 유전 일대를 국가에 수용한 후 스탠다드 오일과 합작으로 한국 석유공사를 세운 후 석유 채굴 사업을 시작했다.
“자네도 이번에 석유 공사에 취업했나?”
“그렇다네. 농사짓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을 주는데 안 가는게 바보지.”
“하하. 맞는 말이야. 우리 지역에 일자리가 많이 생기다 보니 지린성이나 하북성 쪽에서도 많이들 건너온다더군.”
“타지 사람들이 우리 지역에 계속 들어오는 것이 썩 반갑진 않지만 그래도 같은 중국인이었으니 좀 봐줘야지. 그리고 일할 능력이 있는 사람이면 나라에서도 딱히 안 막잖나?”
요하 유전이 발견되고 본격적으로 석유가 생산되기 시작하자 석유 공사는 블랙홀처럼 요동도의 노동자들을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회사는 농사를 지을 때보다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다고 사람들을 유혹했고 그 유혹에 넘어간 농민들은 농사를 짓기보다 석유 산업과 관련된 일을 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비운 자리는 타지에서 들어온 노동자들이 차지했다.
“뒤에 있는 자의 나이가 57이라고? 그렇게 안 보이는데? 그리고 딸린 식구가 10명이나 된다라……”
“정말 57 맞습니다. 그리고 제 큰 아들과 작은 아들도 20대입니다.”
국경에서 이주 공사에 소속된 감독관이 의심스럽다는 눈으로 일행에 섞여 있던 노인들을 바라보자 식구들을 이끌던 가장은 아직 어려보이는 두 아들까지 20대라고 주장하며 필사적으로 그의 가구가 노동할 능력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 했다.
“흐으음…… 어렵구만……”
그럼에도 감독관의 날카로운 눈매가 풀리지 않자 그는 조그만 주머니를 몰래 그에게 건넸다.
“저…… 여기……”
“커흐흠. 좋네. 딸린 식구는 많지만 아들이 둘이나 되니 승인하겠네. 대신 토지 소유는 금지이고 가족들 모두 2년 내로 이주 공사의 시험을 통과해야 하네.”
“아이고. 물론입니다. 꼭 통과하도록 하겠습니다.”
끊임없이 쏟아지는 이주민들로 인해 관리의 숫자가 부족해지자 요동도 관찰사 김윤식은 어쩔 수 없이 중국인들을 관리로 다시 임용해 노동자들의 이주를 감독하도록 시켰다.
하지만 그것은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격이었다. 관리로 임용된 이들은 이주를 신청한 이들을 엄격히 관리하기보다는 뇌물을 받고 기준에 미달하는 이들의 입국을 허용하는 일이 많았다.
“거기 누구냐! 모두 손들어!”
“헉!”
“밀입국자로군!”
“제발…… 제발 한 번만 봐주십시오. 가산을 전부 정리하고 와서 돌아갈데도 없습니다.”
“쯧…… 이봐. 그냥 넘어가세. 어린 아이들까지 체포하긴 좀 그렇지 않나?”
“그래도 저들이 걸리면 우리가 경을 치게 될 걸세.”
“걸릴 일이 뭐가 있겠나? 한국인 관리들은 석유 산업에 온 신경을 쏟느라 다른 일은 챙기지도 못하고 있고 중국인 관리들은 자기들 뱃속 채우느라 혈안이 되어 있는데. 그리고 저 친구들 잡아가봤자 쓸데없는 일 만든다고 타박 밖에 더 받나?”
“……에이! 나도 모르겠네. 어서 지나가도록 해라!”
밀입국하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재수없게 한국군에게 걸리면 꼼짝없이 추방당하거나 옥으로 끌려가 강제 노동형을 선고받았지만 중국 병사들은 그들을 눈감아줬다.
고작 1년 전만 해도 같은 나라의 사람이었던 것도 있었고 밀입국하는 이들을 잡아가도 포상을 받기는커녕 바빠 죽겠으니 알아서 적당히 처리하라는 말만 듣기 때문이었다.
“왜…… 왜…… 돈을 이것……밖에 안준다 해……?”
“닥치고 주는대로 받아. 아니면 관청에 신고를 해줄까?”
“알……알겠다……”
밀입국한 이들은 법의 보호를 전혀 받지 못해 모두가 기피하거나 위험한 일에 종사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 점을 악용한 고용주들은 그들의 월급을 떼먹거나 실컷 부려먹다 내쫓았다.
한국 본토에서는 강원대폭동 이후 외국인 노동자의 권익 보호에 조금씩 관심을 가져가고 있었지만 요동도는 관청에서 관리해야 할 일들이 너무 많아 이주 노동자들의 처우에 전혀 신경을 쓸 수가 없었다.
초창기의 강원도처럼 이주 노동자들은 정말로 극악한 환경에서 일을 해야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끊임없이 몰려들었다.
러시아가 완전한 통제를 하지 못하고 있던 지린성 지역에서는 마적들이 날뛰며 사람들을 약탈하고 있었고 청조의 지배 하에 있던 하북의 백성들은 개혁과 배상금을 마련하기 위한 무거운 세금에 신음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재산을 전혀 축적할 수 없고 하루하루 생존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삼아야 했던 두 지역에 비해 제대로 된 대가를 받지 못해도 안전은 보장되던 요동도가 사람들에게는 훨씬 나았다.
요동도에 이전부터 머무르던 중국인들과 새로 이주한 이들은 모두 자신의 자식들이 한국어를 문제없이 말하게끔 가르치고 한국 문화에 익숙해질 수 있게 노력했다.
“이놈 자식! 爸爸(Ba Ba) 가 아니라 아빠다!”
“아…… 아바.”
“제대로!”
“아바빠!”
그들이 그렇게 했던 이유는 한국어가 능숙하면 관청에서 대우가 달라지고 더 좋은 일자리를 구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출세하기 위해서는 초등학교에서 우수한 성적을 보여 본토의 고등학교나 대학교를 가야했는데 상급학교 진학을 위해서는 자연스런 한국어 구사 능력을 갖추고 한국 문화에 익숙해야만 했다.
한국 정부는 요동도에 있던 중국인들이 한국의 품 안에 머무르지 못할까 걱정했지만 그들은 한국 본토와 다르지만 중국과도 확연히 다른 정체성을 띄게 되었고 후일에도 별다른 문제 없이 한국에 계속 속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