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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은 순종하지 않는다-54화 (54/130)

54화. 1차 극동 전쟁 (1)

베를린

“폐하, 원세개로부터 영국과 러시아가 한국과 일본을 움직여 청조를 도우려 한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그들이 직접적으로 개입하려는 것만 아니면 상관없지 않소?”

“그렇긴 하지만 전선이 확대될 것 같아 걱정됩니다.”

“그대들은 겁쟁이들이군. 어차피 우리 독일 제국이 세계를 지배하기 위해서는 영국과 러시아 둘 모두를 거꾸러뜨려야 하오. 원세개에게 전하시오. 영국과 러시아의 직접적인 개입은 우리가 막아줄 터이니 한국과 일본은 알아서 처리하라고.”

“……알겠습니다.”

빌헬름 2세와의 대담이 끝난 뒤 회의실을 나온 독일 제국의 신료들은 서로 우려를 표했다.

“보불 전쟁 이래 원수가 된 프랑스야 그렇다쳐도 영국과 이 이상 대립해야 할 필요가 있겠소? 영불 동맹을 와해시키기 위해 노력해도 부족한 판에 오히려 경계심만 심어주고 있잖소.”

“영국뿐만이 아니오. 세르비아 때의 일로 우리를 경계하고 있는 러시아까지 자극하는 일이오. 아무리 러시아가 외부 일에 개입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표했어도 폴란드 지역에 진출한 데 이어 중국에도 손을 뻗치려 하면 가만있지 않으려 할 텐데…… 총리 각하, 폐하께 다시 한번 이야기 해주실 수는 없겠습니까?”

“…….”

‘나라고 별 수가 있나. 황제라는 인간이 앞뒤 가리지 않고 여기저기 시비 걸고 다니는 걸 어떻게 하라는 건지.’

신료들의 우려를 들으며 독일 제국 총리 뷜로우는 난감한 얼굴로 콧수염만 쓰다듬었다. 외교관 출신인 뷜로우는 지금 돌아가고 있는 세계 정세가 결코 독일에 유리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황제인 빌헬름 2세의 뜻이 너무 완고했기에 딱히 수가 없었다. 잠시 생각을 정리한 뷜로우는 다른 신료들을 다독였다.

“이미 벌어진 일이고 상황이 이렇게까지 진행된 이상 우리 손을 떠난 일이오. 원세개를 한 번 믿어봅시다. 일이 잘 풀려서 그가 한국과 일본을 격퇴하고 중국을 손에 넣으면 동양에서 우리의 세력은 확대하고 영국은 위축시킬 수 있을 것이오. 그리고 애초 목표대로 영국이 동양에 신경을 쓰는 틈을 타 오스만 제국과의 연계를 강화하고 발칸 반도를 완전히 손

에 넣읍시다. 최근 들어 세르비아에서 저항세력이 준동하고 있고 요인 암살시도가 자주 일어난다고 들었으니 오스트리아 측과 협력해 그들을 뿌리 뽑아야 할 것이오.”

“알겠습니다.”

독일 제국은 원세개에게 영국과 러시아의 직접적인 간섭은 막아줄 것이니 애초 계획대로 청조를 멸망시키라는 뜻을 전했다. 한국과 일본이라는 패를 확보한 영국과 러시아 역시 원세개에게 직접적으로 중국의 일에 개입할 계획은 없다고 전하며 동양의 상황은 암묵적인 합의 속에 대리전으로 진행되는 양상을 띄게 되었다.

의견을 정리한 열강들은 북경에 진주하고 있던 병력들을 상해로 이동시켰고 걸림돌이 사라진 원세개는 곧바로 청조에 최후 통첩을 보냈다.

“황제의 퇴위와 공화정의 선포, 거기에 자신의 대총통 위 인정이라니. 하나같이 다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 아닌가!”

“만주족의 퇴거도 요구받았습니다. 화북 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만주족들이 정해진 기간까지 만주로 물러나지 않을 시 강제적으로 추방하겠다 합니다.”

최후통첩은 굉장히 고압적이었고 하나같이 만주족들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사항들만 적혀있었다. 혹시라도 원세개와 타협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던 서태후와 친왕들은 기대를 버리고 황실 친위대와 남아있던 팔기군을 끌어모으며 일전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한국과 일본에도 빠르게 출병을 요청하시오. 대가를 치르며 도움을 받기로 한 이상 더 망설일 필요는 없겠지.”

“알겠습니다.”

만주족과 청조에 충성하던 소수의 한족들은 서태후와 순친왕 재풍, 경친왕 혁광을 중심으로 뭉쳤고 이들은 황실 수비대장이던 장훈을 대장으로 삼아 북경과 천진을 지키며 일본과 한국의 응원군을 기다리기로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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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

“원세개 측에 지금 당장 청조에 대한 적대행위를 멈추지 않겠다면 참전하겠다는 통첩을 전달했습니다.”

“알겠소. 요식적인 행위에 불과하지만 어쨌든 간에 우리도 국제 질서에 편입되었으니 지킬 건 지켜야겠지. 원세개가 우리의 통첩을 받아들일 가능성은 없으니 바로 병력을 파병할 준비를 하시오.”

한국은 한창 파병 준비에 정신이 없었다. 이척 이하 한국 정부를 구성하고 있던 모든 이들은 일치단결하여 매일 같이 철야 업무를 하며 전쟁을 준비했다. 평소 다른 관리들과 사이가 좋지 않던 베블런까지 협조적으로 나서며 한국 정부는 내부의 잡음 없이 전쟁을 준비할 수 있었다.

“양성환 부장을 파병군 대장으로 진급시킨 뒤 병력의 총지휘를 맡길 생각이오. 홍범도 국장이 참장으로 참전하여 참모진을 이끌고 민종식 전 대신이 파병군의 사무를 담당하시오.”

“폐하, 러시아 병력들의 지휘는 누구에게 맡길 생각이십니까?”

“어쨌든 간에 의용군 명목으로 참전하는 것이니 우리 군 편제에 포함시키기는 어려울 것이고, 군부 대신에게 지휘관을 추천받아 맡기도록 하시오.”

“알겠습니다.”

“그리고 현재 복무하고 있는 병사들로만은 10만 명을 채우는 것이 어려우니 병력을 추가적으로 모집해야 할 것이오. 올해 작황이 엉망이라 유민들이 많이 발생했다 하니 그들을 우선적으로 모집하도록 하고 한국 내에 있는 중국인 노동자들에게도 이번 전쟁에 참전할 경우 호패를 발행해 한국 시민으로 인정해준다고 하여 인원을 충원해보시오. 그래도 부족

하다면 삼남 지방에서 사람들을 징집하시오.”

영국으로부터 막대한 전비를 지원받은 한국은 지방의 병력들을 한성으로 전부 소환하고 부족한 인원을 적극적으로 모집하였다. 그리고 군수공장의 규모를 대폭 확대하고 24시간 내내 쉼 없이 돌리며 소총과 기관총, 야포 등의 각종 무기와 전쟁 물자를 대량으로 생산하고 있었다. 제물포에 입항하는 서양 상인들에게도 협조를 받아 군량 매입 및 탄약과 화약

등의 소모품 비축도 빠뜨리지 않고 챙기며 보급에 문제가 발생할 여지도 최소화하고자 했다.

“폐하, 지금 당장은 재정 운용에 문제가 없지만, 전쟁이 장기화될 수 있으니 전시 채권을 발행하시지요.”

“알겠소. 한국 거래소를 통해 국민들에게 전시 채권을 발행하고 서양 상인들, 특히 영국과 프랑스의 상인들에게도 협조를 요청하시오. 영국 공사와 프랑스 공사가 미리 말을 해놨다고 하니 채권의 매각이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오.”

“저희는 언제 출병시켜야 하겠습니까? 일본은 이미 함대는 출항시켰고 육군은 다음 달에 1진을 산둥 반도에 상륙시킬 계획이라고 합니다.”

“청조에서 상황이 급하게 돌아가고 있다고 하니 선발대를 추려 바로 보내야 하지 않겠소? 중앙군과 의용군으로 참여하는 러시아 병력들을 우선적으로 톈진으로 보내도록 하고 이후 지방의 병력들과 새로 모집한 인원들을 조직하는대로 속속 출발시키시오.”

“알겠습니다.”

“준비 없이 갑작스럽게 발생한 전쟁이고 솔직히 이야기하자면 청조에 대한 국민들의 감정이 썩 좋은 편은 아니니 민심을 다독이는데도 신경을 써야 할 것이오.”

‘러일 전쟁 때 도움 받았던 것을 갚는다는 명분을 내세우긴 했어도 사람들에게 적극적인 공감은 받지 못하고 있으니 반드시 빠른 시간 내에 승리를 거두어야 한다. 승리를 거두어야만 사람들의 불만도 금방 잦아들 것이고 우리 한국이 자주 독립국으로 나아가는 첫 걸음을 뗄 수 있다.’

한국의 국민들은 정부에서 갑작스레 전쟁에 참여하여 청조를 도울 것이라는 발표가 나오자 어리둥절한 상태였다. 러일 전쟁 때 청조에서 받았던 도움을 갚는다는 것을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흉년이 든 가운데 전쟁에 참여한다하니 대다수의 사람들은 썩 내켜하지는 않았다. 그나마 영국이 지원해준 돈으로 미국에서 식량을 수입해 쌀값을 안정시키고 병사들

에게 봉급을 평소보다 2배 이상씩 주며 모집해 불만을 무마시키고는 있었지만, 전황이 불리하게 돌아가거나 고전하게 될 경우 굳건하던 이척의 인기가 무너질 가능성도 있었다. 그러한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빠른 시일 내에 승기를 잡아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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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례, 원세개 관저

“대총통 각하, 북경을 빠르게 점거한 뒤 청조를 멸망시켜 한국과 일본이 개입할 명분을 없애야 합니다.”

“알겠다. 병사들의 출진 준비는 오래전에 끝마쳤으니 바로 출병하면 되지 않나?”

스스로 대총통 위에 오른 원세개는 최대한 빠르게 북경을 점령한 뒤 청조를 멸망시키고 공화정을 선포해 전쟁의 명분을 없앨 생각이었다. 화북 지방의 한족들 대다수가 청조를 몰아내기를 원한다는 점과 청조에 비해 전력에서 절대적인 우위에 있다는 것을 이용하면 어렵지 않게 일을 빠르게 끝낼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원세개 역시 열강

들이 속속 개입해 일이 엉망이 되기 전에 속전속결로 상황을 마무리 짓고 싶었다.

“보급에 관한 부분이 제일 문제입니다. 일본 함대가 얼마 전 사세보를 출항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는데 그들이 해안을 봉쇄하면 육로로만 보급을 수행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저희가 보유하고 있는 함선들과 독일의 아시아 함대를 합쳐도 일본 함대를 꺾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으음…… 어쩔 수 없는 일 아니겠나. 해군 사령관 이정신에게 최대한 빠르게 전쟁을 끝낼테니 3달만 버텨보라고 하게. 그리고 농민들을 징발하고 수레를 최대한 확보해 보급준비를 하도록. 화북 지역의 한인들이 우리에게 협조적이니 큰 어려움은 없을 것일세.”

“알겠습니다.”

원세개는 이번 전쟁을 빠르게 끝낼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보급에 관해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그리고 이러한 결정은 1차 극동 전쟁에서 원세개에게 뼈아픈 실책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1차 극동 전쟁의 시작을 알린 것은 일본 함대와 청국 함대 간에 벌어진 칭다오 항 공방전이었다.

“가토 제독님! 저기 독일 아시아 함대와 청국 함대가 보입니다! 칭다오 항에 틀어박혀 안 나올 생각인 것 같습니다.”

“바로 군항을 포위하고 봉쇄할 수 있도록. 한 놈도 오가게 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어뢰정들을 준비시켜라!”

“하잇!”

일본 해군은 일전의 뤼순 항 해전 때처럼 항구를 포위한 후 어뢰를 쏠 준비를 했다. 그리고 러시아 함대의 결사적인 돌격에 피해를 입었던 것을 교훈 삼아 전면에 방호력이 튼튼한 순양함들을 배치하고 전함들도 바로 전투에 합류하기 쉬운 자리에 배치시키며 언제 저들이 뛰쳐나오더라도 바로 대응할 수 있도록 준비했다.

“신순성 함장님, 일본 함대에서 신호를 보내오고 있습니다. 칭다오 항을 포위할 생각인 것 같습니다.”

“알겠네. 저들의 신호에 따라 함선을 이동시키도록 하게. 그리고 그동안 열심히 훈련을 했어도 첫 실전에 병사들이 당황할 수 있으니 문제가 없도록 잘 지도하게.”

“옛!”

일본은 자신들만으로 청국 함대를 전멸시킬 수 있다며 한국의 도움은 필요 없다고 했지만, 한국 해군이 해전 경험을 쌓기 원하던 이척은 러시아 태평양 함대로부터 순양함 한 척을 사들여 일본 측에 합류시켰다. 처음 합류했을 때 일본 해군은 혹시나 한국 해군이 자신들의 발을 잡지는 않을까 염려했었지만, 신순성의 지휘하에 한국 해군은 별다른 문제 없이

가토 도모사부로의 지휘를 잘 따라가며 산둥 반도 해역에 이르를 수 있었다.

“제독님, 함선들의 배치도 전부 끝났고 어뢰정들 역시 사격 준비가 완료되었습니다.”

“좋다, 그러면 군항을 향해 어뢰를 쏘라고 명해라!”

“하잇!”

자리를 잡은 일본 함대가 어뢰를 발사하기 시작하며 칭다오 항 공방전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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