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한제국은 순종하지 않는다-53화 (53/130)

53화. 나뉘어지는 중국

워싱턴

“부통령일 때보다 일이 훨씬 많군. 이러다 업무에 치여 죽겠어. 어디보자, 일단 최우선으로 처리해야 될 사항은 내각의 조직인 것 같고. 그리고 민주당 녀석들이 계속 물고 늘어지기 전에 대선에서 쟁점이 되었던 스탠더드 오일 사 해체에 관한 건도 빠르게 처리해야겠군.”

1904년 미국 대통령 선거는 시어도어 루스벨트의 손쉬운 승리로 마무리 되었다. 민주당 주자였던 윌리엄 제닝스 브라이언이 록펠러와 모건 등 여러 재벌들의 전격적인 해체를 주장하며 깜짝 돌풍을 일으키긴 했지만 미국-스페인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동양으로의 진출을 성공적으로 이루어내며 미국의 위신을 드높였던 윌리엄 매킨리의 인기를 등에 업은 루스벨트를 이기지는 못했다.

“부통…… 아 죄송합니다, 대통령 각하. 매킨리 전임 대통령과 인사를 나누실 시간이 되었습니다.”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되었나? 알겠네. 어서 가도록 하지. 그리고 다음부터는 호칭에 신경을 쓰도록.”

“알겠습니다.”

업무에 바쁜 그에게 새로 비서실장으로 선임된 코텔류가 다가와 전임 대통령이었던 매킨리와 인사를 해야한다고 알렸다. 임기는 끝났지만 매킨리의 인기는 여전했고 얼마 전까지 자신의 상관이었던 만큼 루스벨트는 그에게 마지막까지 예의를 갖출 생각이었다.

“대통령이 된 것을 축하하네. 이제 루스벨트 대통령이겠군.”

“감사합니다. 그나저나 제가 부통령으로 있다가 대통령이 된 것인데도 인수인계 받아야 될 사항들이 굉장히 많군요.”

“하하. 원래 다 그런거 아니겠나. 내각의 구성은 잘 되어가고 있나?”

“그럭저럭 마무리되어 가고 있습니다. 퇴임하신 뒤 무엇을 하실 계획이십니까?”

“뭐, 늙은이가 딱히 할 게 있겠나. 아내의 건강이 영 좋지 않으니 기후가 온화한 플로리다 쪽으로 가서 아내를 간호하며 조용히 신앙생활을 할 계획이네.”

“문제없이 편히 지내실 수 있도록 조치하겠습니다.”

“고맙네.”

대화를 나누고 나서 매킨리는 짐을 마저 정리하기 위해 방을 나갔고 루스벨트는 다시 집무실로 돌아와 누구를 장관으로 선임할지 생각하기 시작했다. 한참을 고민하던 와중 비서실장 코텔류가 다시 집무실로 들어와 저녁 시간이 다 되었다고 알림과 동시에 동양에서 보고서가 새로 도착했다고 말했다.

“대통령 각하, 동양에서 또 문제가 생길 모양입니다. 네이글 은행장이 새로 보고서를 보내왔습니다.”

“지금 업무를 인수인계 받고 내각을 조직하느라 정신이 없으니 해당 안건에 대해서는 다음에 이야기 하도록 하지.”

“……예, 알겠습니다.”

‘전쟁이 터질 모양인 것 같던데…… 에라, 모르겠다. 일단 보고는 했으니 내가 더 할 수 있는 건 없다. 네이글 은행장한테는 적당히 한국에 협조하며 자잘한 사항들은 알아서 처리하라고 해야겠다.’

“오늘 저녁 메뉴는 뭔가?”

“아, 오늘은 주방장이 메인 메뉴로 버팔로 스테이크를 준비했다고 합니다. 요리사 한 명이 새로 들어왔는데 버팔로 스테이크를 기가 막히게 잘 만든다더군요.”

“버팔로 스테이크? 알겠네. 그리고 저녁 식사 후에 운동을 하러 갈 생각이니 남은 업무들은 내일 이야기하자고 사람들에게 전하게.”

“알겠습니다.”

‘바쁘다면서도 운동 시간은 꼭 챙긴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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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

탁자 주위에 4명의 사람이 앉아 있었다. 영국 공사 존 조던, 한국 국왕 이척, 한국 내무대신이자 러시아의 극동 지역 외교를 담당하던 코코프체프, 일본 외무대신 가토 다카아키가 그들이었다.

“해군력은 걱정 마십시오. 이미 북양해군과 남양해군의 존재는 유명무실해진 상태고 남아있는 녀석들도 각 세력별로 찢어진 상태이니 산둥 반도에 주둔 중인 독일의 함대가 합류한다 치더라도 저희가 충분히 감당 가능합니다. 문제는 육군입니다. 아시다시피 북양군의 수가 꽤 됩니다. 한국에서는 얼마나 동원하실 생각입니까?”

가토 다카아키는 자신감을 내비쳤다. 영국의 아시아 함대를 제외하면 극동에서 가장 강한 해군력을 보유하고 있던 것은 일본 제국이었다.

“우리 한국은 7만 명 정도를 동원할 생각이오. 러일 전쟁에 참여했던 병사들도 있고 그동안 러시아 무관들에게 꾸준히 훈련을 받은 이들이 주축을 이루게 될 것이니 숙련도는 걱정하지 마시오.”

“한국에 주둔한 러시아 육군들도 전역시킨 후 의용병 형식으로 참전시킬 생각입니다. 그들이 합류하면 병력 숫자가 그보다는 조금 많을 겁니다. 일본은 육군을 몇 명이나 파병할 생각입니까?”

“저희는 6만 명 정도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러일 전쟁에서 육군이 피해를 워낙 심하게 입었었기에 이 이상은 동원하기 어렵더군요.”

“크흠.”

말을 마친 가토 다카아키는 코코프체프를 살짝 원망하는 듯이 쳐다봤고, 다카아키의 시선에 괜시리 불편해진 코코프체프는 헛기침을 했다. 둘의 사이가 어색해지자 곧바로 영국 공사 존 조던이 나섰다. 과거의 일에 얽매여 지금 진행되는 회담을 그르칠 수는 없었다.

“원세개의 북양군과 그에게 동조하는 이들의 병력이 20만을 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말씀하신 병력 규모로는 조금 어려울 수 있으니 한국에서 조금만 더 동원을 해주시지요. 10만 명 정도 동원해주시면 안됩니까?”

“인원은 어떻게 충원한다 하더라도 물자와 비용이 문제요. 한국 은행장 찰스 네이글이 전시 채권을 매입하기 곤란하다는 의사를 표시했소. 7만 명을 동원하는 것도 우리로서는 모든 여력을 끌어모은 것이오.”

본국으로부터 명확한 지침을 받지 못한 찰스 네이글은 한국의 전쟁 수행에 협력은 하겠지만 적극적인 지원은 어렵다는 뜻을 표했다. 이척의 대답을 들은 존 조던은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예상보다 돈이 더 들 것 같았다.

“좋습니다. 그러면 저희가 부족한 만큼 물자와 비용을 더 지원하도록 할 테니 어떻게든 10만 명을 동원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젠장할, 한국 놈들 바가지 씌우는 건 알아줘야 한다니까.’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최대한 노력해보겠소.”

동원할 병력 규모가 합의되자 이윽고 넷은 전후 각자 어떤 이권을 가져갈 것인지에 대해 논의하기 시작했다.

“산둥 반도 지역에 대한 조차권과 장쑤성 지역의 이권은 저희가 가져가겠습니다.”

“우리는 요녕성(요동 반도 지역) 지역을 병합하기를 원하오.”

“러시아는 중앙아시아의 신장 위구르 지역을 가져가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안휘성과 허베이성의 이권을 가져가는 것으로 하지요.”

“나머지 사항들은 전쟁이 마무리 되고 중재 과정에서 다시 이야기 하는 것으로 할까요?”

“그렇게 합시다.”

그렇게 비밀스런 4자 회담이 끝난 뒤 한국과 일본은 청조에 도움을 주겠다는 의사를 표시했고 발등에 불이 떨어져 있던 청조는 둘의 제의를 반갑게 받아들이며 모든 조건에 동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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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례, 원세개 관저

“최근 들어 드는 생각인데 굳이 만주족을 멸절시킬 필요까지야 있겠소? 그냥 입헌군주제를 시행한 뒤 내가 실권을 쥐어도 될 것 같은데. 어차피 새로 황제 위에 오른 푸공(pugong)은 1 살배기 어린아이잖소.”

출진 준비를 다 갖춰놓은 뒤 북경 입성에 대해 서양 열강들에 허락을 구하러 다니고 있던 원세개는 영국과 러시아가 일본과 한국을 움직여 청조를 도우려 한다는 이야기를 듣자 곧바로 태세를 전환하려 했다. 일본과 한국 둘이서만 움직인다면 콧방귀도 안꼈을 일이지만 그 뒷배들은 무시할 수 없는 존재들이었다.

“장군, 이미 저희의 대의를 중원 전역에 알린 상황입니다. 이 상황에서 다시 만주족과 타협을 시도하면 장군에 대한 한족들의 신뢰는 땅에 떨어질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리고 청나라의 틀 안에서는 모든 실권을 쥐신다 해도 한계가 있습니다. 서태후를 비롯한 만주족 친왕들이 사사건건 간섭하고 방해하며 각하를 몰아낼 기회만 노릴 것입니다.”

원세개가 청조를 멸망시키는 것을 망설이며 그들과 타협할 수 있다는 뜻을 내비치자 휘하 부관들과 그에게 합류한 입헌파들은 그를 만류했다. 만주족의 몰살을 명분으로 내걸었는데 이 시점에서 그것을 뒤집을 경우 터져나올 한족들의 반발을 수습하기란 불가능했고 정치적으로도 재기하기 어렵게 될 터였다. 만주족 역시 자신들을 몰살하려 했던 원세개에게 절대 신뢰를 주지 않을 것이기에 이 시점에서 타협하는 것은 최악의 선택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설득에도 불구하고 원세개는 좀처럼 결단을 내리지 못했다.

“영국과 러시아가 어찌 나올지 알 수 없잖나. 한국과 일본 쯤이야 북양군 만으로 감당 가능하지만 그 뒤에 있는 이들의 생각이 중요한 것이니.”

“저희들끼리 논의해서 답이 나올 수 있는 사항이 아니니 독일에 의사를 타진해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알겠네. 그리고 영국 공사와 러시아 공사에게도 한 번 뜻을 물어보도록.”

‘젠장할. 다 무너져가는 청조쯤이야 어렵지 않게 멸망시킬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이런 문제가 생길 줄이야. 그리고 일본이야 그렇다 쳐도 한국 놈들까지 우리를 우습게 보고 기어오르는구나. 중국의 지배자가 되면 한 번 손을 봐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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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경

“쑨원 선생님. 저희 쓰촨 사람들과 강남 사람들은 원세개도 청조도 싫습니다. 청조와 원세개가 갈라진 틈을 타서 저희들만의 나라를 일으켜야 합니다.”

일본에 망명해 있던 황싱은 그와 마찬가지로 쓰촨에서 탈출한 이들을 규합하고 강남의 유력자들과 접촉하며 독립 운동을 준비하고 있었다. 광서제의 사망 이후 청조와 원세개가 서로 사활을 건 싸움을 시작하자 그는 이번 기회에 독립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였고 자신들에게 힘을 실어줄 것을 쑨원에게 요청했다.

“……황싱, 이번 기회가 천재일우라는 점에는 동의하네. 하지만 꼭 그렇게 나라를 갈라야만 하겠나?”

“하나로 합치는 것은 나중에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나라를 뒤바꾸는 것은 지금이 아니면 어렵습니다. 그리고 화북 사람들은 원세개가 저희에게 안겨줬던 고통을 외면하고 그 빌어먹을 놈을 지지하고 있잖습니까.”

“……알겠네. 한 번 영국과 프랑스에 접촉해보겠네.”

요청을 받은 쑨원은 망설였지만, 우선은 한인들만의 독자적인 정부를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는 황싱의 설득에 넘어갔고 영국과 프랑스에 강남 지방을 중심으로 민주 공화정을 세우고 싶다는 의사를 표시하였다. 영국은 혹시나 원세개가 한국과 일본을 물리쳤을 경우를 대비한 패를 손에 쥘 수 있다는 생각에 자신들이 청조와 맺은 모든 조약을 준수한다는 조건으로 쑨원이 새로 세우려 하던 정부를 인정해 주기로 하였고 프랑스 역시 윈난과 광시 지역에 대한 이권을 보장해주는 조건으로 베트남에 주둔해 있던 인도차이나 총독부를 통해 무기와 자금을 지원해주었다. 쑨원을 중심으로 강남 지방이 뭉치며 중국의 판도는 크게 청조, 원세개 그리고 쑨원을 중심으로 한 강남세력, 이렇게 세 세력으로 나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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