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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은 순종하지 않는다-50화 (50/130)

50화. 새롭고 미래지향적인 관계

부르릉 웅웅 쿵쿵

철로 만들어진 한 거대한 사각형 모양의 차량이 검은 연기를 뿜어내고 요란한 소리를 내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드디어 움직인다!”

“개발부장님 성공입니다!”

“아직 시범운행이 완전히 끝난 게 아니니 다들 긴장을 풀지 마라!”

철로 된 거대한 전차가 성공적으로 움직이자 다들 환호성을 질렀지만 그들을 총지휘하던 개발부장 바실리 멘델레예프는 긴장을 풀지 못했다. 이번 개발까지 실패로 돌아가면 재무부가 분명 들고 일어날 것이었고 자신을 적극적으로 지원해준 이척에게도 면목이 서지 않았다. 굳어있던 그의 얼굴은 전차가 계속 이상없이 움직이자 서서히 풀리기 시작했고 마침내 시범 운행을 완전히 마치자 멘델레예프 역시 기쁨의 함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하하하. 정말 축하하네, 개발부장. 전차 개발을 성공적으로 이루어냈으니 분명 포상이 있을 것일세. 내 국왕 폐하께 보고할 때 자네의 공을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적도록 하겠네.”

보고를 받고 사무실에서 달려온 이용익이었다.

“아닙니다. 그동안 실패를 거듭하며 엄청난 비용을 소모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해 적극적으로 비호해주신 사장님 덕입니다. 그리고 계속된 실패에도 저를 끝까지 믿고 따라준 부원들의 노고도 많았습니다.”

“어허, 그게 어찌 내 덕인가. 국왕 폐하께서 자네를 끝까지 믿고 밀어주신 덕이지. 그리고 개발부 전원에 대해 분명 만족할 만한 포상이 있을 것이니 기대해도 좋을 걸세.”

처음 바실리 멘델레예프의 보고서가 올라왔을 때 너무 많은 개발비에 이용익은 제안을 반려하려 했지만 혹시나 싶어 이척에게 보고했었고, 이척은 보고서를 보자마자 기관총과 더불어 최우선 개발사항으로 추진하고 지원을 아끼지 말라고 명했다. 그리고 멘델레예프가 개발계획 초안을 작성한 지 4년이 지나 전차가 그 모습을 세상에 처음 선보이려 하고 있었다.

‘기관총에 이어 전차까지 발명이 완료되었고 미국으로부터 기술을 받아 야포 생산도 원활히 진행되고 있으니 자주 국방이 머지 않았다. 폐하께서 원하시는대로 우리 한국은 곧 자주 독립을 이루어내고 그 기세를 만방에 떨칠 수 있을 것이다.’

이용익은 얼굴에 가득한 미소를 지우지 못하고 전차를 계속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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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제국에서 우리 한국에 먼저 이렇게 특사를 파견해올 줄은 몰랐소.”

“하하, 즉위를 축하드립니다, 폐하. 그동안 별 일 없으셨습니까?”

이척이 즉위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일본에서는 즉위를 축하한다는 명목으로 가토 다카아키를 특사로 파견하였다. 이척은 거북한 속내를 숨기지 않고 다카아키를 맞이했지만 그는 유들유들하게 웃으며 말을 시작했다.

“…….”

‘그동안 가만히 있다가 갑자기 뜬금없이 찾아와 즉위를 축하한다고?’

이척이 탐탁치 않은 표정을 지은 채 침묵으로 응대하자 다카아키는 장황하게 말을 늘어놓으며 이척에 대한 아부를 하기 시작했다.

“태자 위에 계셨을 때부터 현명한 통치를 하셔서 한국의 국민들이 모두 폐하의 즉위에 기뻐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우리 일본 제국에까지 들려오고 있습니다. 일본 제국은 폐하의 영도로 한국이 근대화를 이루어내고 문명국가에 진입하는 데 성공한 만큼 한국과 적대 관계를 해소하고 새롭게 미래 지향적인 외교 관계를 구축하고자 합니다. 일전에 양국 사이에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기에 그동안 한국 측과 접촉을 망설였었지만 과거의 일은 과거의 일일 뿐이고 시간도 상당히 흘렀는데 이웃한 두 나라가 언제까지 적대해야겠습니까.”

“새롭고 미래지향적인 외교 관계를 원한다는게 정확히 어떤 뜻이오? 단순히 국교의 정상화를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닌 듯 한데.”

“그렇습니다. 저희는 이번에 한국과 외교관계를 정상화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양국 간 동맹을 체결하자는 제안을 하려 합니다.”

“……이런 말하기 미안하지만 한국과 일본은 불과 5년 전에 전쟁을 치루었고 그 이후에도 적대관계를 계속 이어온 적성국 사이요. 동맹이라는 핑계로 우리에 대한 야욕을 드러내려는 것인지 의심스럽소.”

“하하, 물론 그렇게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 동맹 제의는 일방이 우위에 선 것이 아닌 서로 대등한 관계에서 체결하는 동맹이 될 것입니다. 동맹을 핑계삼아 한국에 내정을 간섭하거나 무언가를 강요하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고 각 국은 서로 자주적으로 나라를 운영하되 공동의 목표를 지향하는 것을 희망합니다.”

“…….”

‘이것들이 미쳤나? 우리 나라를 식민지로 삼겠다고 러시아와 전쟁까지 치뤘던 녀석들이 갑자기 이렇게 대등하게 동맹을 맺자 한다니?’

일본의 제안에 순간적으로 당황한 이척은 말을 잇지 못했고, 다카아키는 그의 침묵을 긍정의 표시로 여겼는지 일본과 동맹 관계를 체결했을 때 한국이 얻게 될 이득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한국이 러시아의 보호국이기에 함부로 동맹을 체결하기 어려운 것은 저희도 잘 알고 있습니다. 이번 기회에 저희의 도움을 받아 러시아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저희는 러시아에 대한 한국의 독립투쟁을 돕기 위해 병력과 함대를 파병할 의향이 있고 전비 마련을 위한 차관 제공과 무장을 위한 기술 제공도 아끼지 않을 생각입니다. 마침 러시아가 혼란에 빠져 있으니 저희의 도움을 받으시면 독립하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솔직히 우리를 돕겠다는 그대들의 제의를 믿기 힘들구려.”

“물론 그러실 수 있습니다. 양국 간 관계를 고려했을 때 저희의 이러한 갑작스러운 제의가 잘 믿겨지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런 만큼 저희는 신뢰를 보여드리기 위해 국왕 폐하만 괜찮으시다면 폐하와 천황 폐하의 따님과의 혼인을 추진하려 합니다. 결혼동맹이면 믿으실 수 있지 않겠습니까?”

“…….”

연신 계속되는 일본의 파격적인 제의에 이척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과거의 침략자가 5년 만에 태도를 이리 바꾸어 우호적으로 혼인동맹 제의까지 하는 경우는 외교관으로 오랫동안 일했던 자신의 전생 기억까지 다 뒤져봐도 찾아보기 힘든 선례였다. 심지어 그 나라가 국력이 우위에 있으면 더더욱 그랬다.

“……너무 갑작스러운 제의라 조금 고민을 해 보겠소.”

“알겠습니다. 하지만 저희의 제의는 진심이고 이번에 두 나라가 함께 손을 잡으면 진정한 열강으로 부상하여 아시아의 패권국이 될 수 있을 것이니 긍정적으로 고려해주셨으면 합니다.”

“알겠소.”

다카아키를 내보낸 후 이척은 생각에 잠겼다.

‘저 놈들이 뭘 잘못 먹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제의만 놓고 본다면 충분히 매력적이긴 한데. 러시아가 혼란에 빠져있는 이 때가 독립하기에 좋은 시기이기도 하고 일본의 지원까지 약속 받으면 극동 총독부 정도는 어렵지 않게 제압할 수 있을테니. 그리고 혼인 동맹이면 저쪽에서도 최대한의 진심을 내보인 것 같은데 제의를 받아들일까?……’

이미 역사는 바뀔대로 바뀐 상태였다. 니콜라이 2세가 권력을 잃었기에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할지도 불확실하고 러시아 제국이 실제로 붕괴할 것인지도 확실하지 않은 이상, 지금 시점에 독립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았다. 일본이 동맹으로서 독립 전쟁에 참전하고 경제적 이해관계가 있는 미국의 지원을 받으며 제물포항의 무역에서 큰 지분을 차지하고 있는 영국이 유럽 방면의 러시아 전력을 견제해준다면 필히 독립할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이척은 이내 얼마 전 봤던 올가의 편지와 한국에 기생하고 있는 두 밥충이들을 떠올렸다.

‘러시아가 어떻게 될지 짐작하기 어렵지만 이대로 가면 로마노프 황가는 분명 몰락한다. 올가가 나와 결혼할 의사를 밝혔으니 정략결혼을 통해 로마노프 황가의 정통성을 한국으로 가져온다면 황가에 충성하는 코자크인들과 극동 총독부를 단숨에 먹어치울 수 있다. 그리고 지금까지 쌓인 정이 있는 태평양 함대와 한국 주둔 러시아군을 몰살시키는 것도 썩 내키지 않고. 굳이 위험을 감수하느니 그냥 적당히 거절하고 국교만 정상화하는 것으로 하자.’

한참을 고민하던 이척은 결정을 내린 후 다카아키를 불러 자신의 뜻을 전했다. 다카아키는 아쉬워하긴 했지만 그래도 국교를 정상화한 것에 만족한다며 돌아갔고 이척은 이렇게 이번 일을 마무리 지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바로 옆에 있는 청에서 초대형 사건이 발생하며 한국과 일본은 러시아와 영국의 권유로 일시적 연합을 하게 되었다. 한 제국이 황혼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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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금성

“소첩, 오늘은 꼭 폐하와 같이 밤을 보내야 하겠습니다!”

“그만 좀 내 방에서 나가시오!”

광서제의 정비이던 융유황후 예허나라씨는 남편의 고함에 이를 악물며 그를 노려보았다.

“도대체 왜 저와 합궁을 거부하시는 것입니까. 소첩과 폐하께서는 백년가약을 약속한 부부이잖습니까.”

“닥치시오! 그대와 내가 결혼을 한 것은 오로지 후당(서태후)의 뜻이었소. 내가 그대를 좋아해서 결혼한 것이 절대 아니었단 말이오! 그리고 진비를 그리 투기하여 결국에는 죽음으로 내몰았으면서 나에게 애정을 바라는 것은 너무하지 않소?”

“제가 진비를 박대했던 것은 맞지만, 그것은 그 요망한 년이 폐하의 성총을 흐렸기에 그리한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태후마마의 뜻을 따랐기보다는 이 나라의 지존을 모시고자 했던 마음이 강했을 뿐입니다. 폐하께서 그리 말씀하시니 소첩, 서운함을 감출 수가 없습니다.”

“듣기 싫소! 정 그대가 나가지 않겠다면 내가 직접 내보내 주겠소!”

몇 차례 나갈 것을 권고했음에도 황후가 나갈 기미를 보이지 않자 분기가 차오른 광서제는 그녀의 머리를 직접 잡아채 방 밖으로 끌어냈다.

“아악! 폐하! 소첩에게 이리 대하실 수는 없는 일입니다!”

예허나라는 광서제에게 눈물을 지으며 읍소하였지만 그는 황후의 얼굴을 쳐다보지도 않고 그녀를 끌어낸 뒤 방문을 쾅 소리 내며 닫아버렸다. 닫힌 방문을 바라보던 예허나라는 모멸감에 몸을 떨며 입술을 앙다물었다.

‘명줄이 경각에 달한 것도 모른 채 나를 이리 대하다니. 폐하, 폐하께서는 정말 잘못된 선택을 하신 것이고 오늘의 일을 저승에 가서도 후회하게 되실 것입니다.’

서태후의 측근이자 청 제국의 황후로서 궁녀들을 통솔하던 그녀는 만주 친왕들과 서태후가 꾸미는 음모를 알고 있었다. 그녀는 오늘 함께 밤을 보내며 남편의 뜻을 돌리고 서태후에게 용서를 구하라 충고할 생각이었지만 자신을 이리 대하자 광서제에게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한 줄기 애정마저 떨어져 나가는 것을 느꼈다.

“황후 마마, 괜찮으십니까?”

“내 몸에 손대지 마라, 이 비천한 것들아!”

주위의 궁녀들이 예허나라를 부축하기 위해 다가왔지만, 광서제의 외면으로 자존심에 상처를 받았던 그녀는 그들에게 소리지르며 혼자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침전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날 밤이 지나고 광서제는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그리고 이를 계기로 청의 정국은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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