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화. 발상의 전환
뉴욕
“오늘 스테이크는 왜 이렇게 안 썰리고 또 육질은 왜 이리 질긴건가.”
존 피어폰트 모건은 집무실에서 늘 먹던 블랙 앵거스 프라임 등급의 버팔로 스테이크를 썰며 짜증을 냈다. 평소와는 다르게 오늘은 유달리 스테이크가 질겼다. 난도질하다시피 고기를 잘라 입에 넣어 질겅거리던 그는 이내 전년도 결산서를 훑어보기 시작했다.
“젠장할, 올해 장사는 영 글러먹었군. 음? 여기 쓰여져 있는 이 항목은 뭐지? 경……인……철도공사?”
예년만 못한 수익에 투덜거리며 서류를 훑어보던 모건은 읽는 도중 희한한 항목을 발견했다. 항목에는 경인 철도공사 배당금이라고 적혀있었다.
‘경인 철도? 이게 무슨 철도지? 나는 철도에 특별히 돈을 투자한 적이 없는데.’
한참을 고민해봐도 답이 나오지 않자 그는 비서를 불러 물었다.
“테일러, 이게 뭔지 아나?”
“아, 이 항목 말씀이시군요. 한국 공사가 배당금이라는 명목으로 전해준 금액입니다. 한국에 있는 경인 철도가 작년에 완공된 후 첫해부터 이익을 내서 그 금액을 배당해주었다고 합니다. 액수 자체가 그리 크지 않아서 제가 따로 주석이나 설명을 적지는 않았습니다.”
“액수가 문제가 아니라 배당률을 봐야지 이 멍청아! 첫 해부터 배당률이 10%나 나오는 사업을 주석도 안 달고 그냥 넘겨버렸단 말이야?”
테일러로부터 설명을 들은 모건은 꽥꽥거리며 난리를 치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심화되는 경쟁과 노동계의 끊임없는 쟁의로 인해 수익성이 저하되고 있어서 새로운 사업거리를 찾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줄어든 수익에 심통이 나 있던 모건은 액수가 작다고 가능성이 있는 사업을 무시하냐, 숫자 사이에 숨겨진 의미를 볼 줄 알아야 한다, 이러라고 월급을 주는 줄 아느냐고 애꿎은 비서를 갈궜다.
‘아니, 액수가 적은 항목에 주석을 달면 또 내가 이딴 사소한 것까지 확인해야겠냐고 난리치던 양반이……’
그의 야단을 맞으며 테일러는 속으로 궁시렁거렸지만 어쨌건 간에 모건은 그의 고용주였다. 소리를 지르던 모건은 어느 정도 진정이 됐는지 비서에게 한국에 대한 사항을 자세히 조사해오라고 명했다.
“사장님, 그럴 게 아니라 이번에 한국의 태자가 미국과의 우호를 증진하기 위해 방문한다 하는데 그때 그와 만나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그래? 언제 온다고 하나?”
“이번에 태프트와 함께 온다고 합니다.”
“그러면 한국 공사한테 연락 넣어서 약속을 잡도록. 태자와 이야기하는 것이 가장 빠르겠지.”
“알겠습니다.”
더 욕먹기 전에 자리를 떠나려던 그의 비서를 보고 뭔가가 생각난 모건이 다시 질문을 던졌다.
“그러고보니 테슬라 그 놈은 그 무선 전송인지 뭔지에 관한 보고서를 언제 가져온다고 하나? 그 망할 자식이 지금까지 나한테 연구비로 가져간 돈이 얼만데 아직까지 제대로 된 보고서 한 장 없다는 게 말이나 되나?”
“그…… 그게.”
‘젠장할. 보고서를 받긴 받았는데 보고서라기보다는 추가 자금 요청서에 가까워서 그냥 숨겨놓고 있었는데. 그걸 또 이 시점에 찾네.’
망설이던 테일러는 두 눈을 딱 감고 모건에게 어제 보고서가 왔다는 말과 함께 숨겨놨던 보고서를 전달했다. ‘자금과 시간을 조금만 더 주시면’이란 말로 시작하던 보고서를 읽던 모건은 금새 다시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해지기 시작했다.
“이, 이 망할 자식이 분명 내가 기술에 대해 잘 모른다고 사기치는 게 분명하구나! 그동안 그렇게 돈을 많이 가져가 놓고서 뭐가 어쩌고 어째! 에디슨이건 테슬라건 발명가라는 놈들은 죄다 사기꾼이라니까!”
모건이 다시 분노를 뿜어내기 시작하자 테일러는 슬그머니 자리를 피했다. 오늘 같은 날 모건의 집무실에 더 머물렀다간 자기한테도 불똥이 튈 것 같았다. 한참을 열을 내던 모건은 자리에 놓인 버팔로 스테이크가 식어가는 것을 발견하고 일단 식사부터 마무리지을 생각에 다시 스테이크에 칼질을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내 질긴 육질에 다시 고함을 지르며 테일러를 불러 오늘 주방장은 뭘 한거냐며 버팔로 스테이크를 다시는 내오지 말라고 난리를 쳤다. 테일러에겐 굉장히 힘든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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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경
“한국이 무섭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인천이 동양 최대의 항구가 된 이후 상인들이 모두 그쪽으로 몰려가고 있습니다.”
“상업뿐 아니라 농업과 공업 부분의 성장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한국의 무기 산업이 점차 중국 시장을 잠식해 들어가고 있고 농업 생산량도 저희를 맹추격하고 있습니다. 거기에 이번에 초대형 제철소까지 건설한다 합니다.”
한국에서 내쫓긴 일본은 식민지로 삼을 수 있었던 한국을 잃은 것을 아쉬워하긴 했어도 그들이 자신들의 경쟁자가 될 것이라고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한국이 러시아의 보호국이 된 만큼 점차적으로 러시아에 예속되며 그저 그런 식민지 국가가 될 것이라 봤지만, 전쟁 이후 실권을 잡은 이척이 미국과 경제적으로 협력하고 영국 상인들을 끌어들이며 근대화를 이루어내기 시작하자 일본 내각은 한국의 성장을 경계의 눈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견제를 해야하지 않겠습니까? 바로 옆에 신경 써야 하는 국가가 생기는 것은 절대 저희에게 좋지 않습니다.”
“러시아가 혼란에 빠져 있는 지금이 한국의 성장을 막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과거처럼 함대를 한반도 인근 해역에 진주시켜 무력으로 위협을 가해 누가 우위에 있는지 보여줘야 합니다.”
내각 대다수의 의견은 한국에게 일본의 우위를 보여주어 그들이 허튼 생각을 하지 못하게 해야한다는 것이었다. 러일 전쟁의 패배로 정권의 주도권은 문관들에게 있었지만, 그들 역시 필요하다면 무력을 사용해야 한다는 주의였다. 하지만 외교 관계를 중시하던 일부 온건파는 무력의 사용에 반대했다.
“러시아가 혼란에 빠져 있다 하나 저번 전쟁에서 봤듯이 우리가 그들을 상대하기에는 많이 부족합니다. 그리고 산둥반도에서 독일과 조금씩 마찰이 발생하고 있는 이 때 새로운 적을 만드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미국 공사의 말에 따르면 미국이 한국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고 한국을 통해 아시아에 접근하려는 전략을 가지고 있다 합니다. 그리고 한국의 태자가 이번에 미국 순행을 갈 정도로 두 나라가 급속도로 가까워지고 있는데 이런 상황에서 한국을 잘못 건드렸다가는 미국과 대립하게 될 수 있습니다.”
사이온지 긴모치에 이어 총리 자리에 오른 고무라 주타로는 사람들의 의견을 들으며 고민에 빠졌다.
‘한국이 여기서 더 치고 올라오지 못하도록 억누르기는 해야겠는데 무력을 이용하면 당장 러시아와 맞서야 하고 미국에게도 밉보일 것이고…… 그렇다고 경제적으로 압박하자니 이미 서양 상인들이 전부 인천으로 몰려가서 쓸 수 있는 방도가 없고…… 어렵구나……’
그때 외무대신 가토 다카아키가 의견을 냈다.
“굳이 한국과 적대할 필요는 없지 않겠습니까?”
“그게 무슨 말이오, 외무대신. 한국은 우리의 잠재적인 적성국이잖소.”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때입니다. 한국에 대한 전략을 바꿔 그들과 대립하기보다는 차라리 한 편으로 만듭시다. 한국과 우리가 힘을 합치면 이 아시아에서 우리와 맞설 세력은 없으니 같이 아시아의 패권을 잡으면 되지 않겠습니까? 두 나라가 힘을 합치면 열강들도 저희를 쉽게 무시하지 못할 것입니다.”
가토 다카아키는 한국을 견제하기보다 차라리 함께 힘을 합쳐 아시아의 주도권을 쥐자는 의견을 내놓았다. 외교통이던 그는 유럽의 열강들이 서로 편을 나눠 대립하고 있는 이 때가 영국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고 아시아에서 일본의 세력을 키울 수 있는 절호의 시기인 만큼 괜히 한국을 견제하느라 국력을 소모하기보다는 그들과 힘을 합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말도 안되는 소리 마시오. 그들을 견제해도 모자른 상황인데 동맹제의를 하자니!”
“그렇소. 한국과 우리는 전쟁을 치른 지 이제 겨우 5년 밖에 안된 사이잖소.”
“다들 흥분을 가라앉히고 조금만 생각해보십시오. 저들을 저희에게 자발적으로 협력할 수 있게 만들 수 있다면 굳이 저들과 대립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기 위한 가장 좋은 수단은 동맹입니다. 한국이 근대화되었다고는 하나 아직 저희에 비하면 많이 부족하니 그들과 동맹을 체결하여 연합한다면 자연스레 저희가 주도권을 쥐게 될 것입니다. 독일 제국 같은 경우에도 오스트리아 제국과 동맹을 체결한 뒤 그들을 자신들의 뜻대로 움직이고 있잖습니까.”
“외무대신의 말에도 일리는 있습니다. 독일 제국이 하는 일을 저희가 못할 이유는 없습니다.”
“한국의 태자가 우리를 물 먹였던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이가 갈리지만 과거의 일에 언제까지 매여 있을 수는 없지요. 저는 외무대신의 의견에 찬성합니다.”
다카아키의 말에 대신들은 처음에는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냐고 하였지만 점차 그의 설득에 넘어갔다. 당장 바로 옆에 중국이라는 뜯어먹기 좋은 나라가 있는 만큼 한국에 집착하여 국력을 낭비하기보다는 그들을 끌어들여 아시아의 패권국으로 부상하자는 다카아키의 말은 그럴 듯 했다.
“하지만 한국은 러시아의 보호국이 아니오? 우리와 동맹을 체결하는 것을 러시아가 분명히 반대할텐데.”
“지금 러시아의 정국이 어지러우니 한국을 꼬드겨 그들이 독립운동을 하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한국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 미국도 분명 한국의 독립을 지지해줄 것입니다. 일이 잘 풀리면 그들을 동맹으로 삼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러시아에 대한 방파제로도 삼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냥 동맹을 제의하겠다고 하면 그들이 쉽사리 받아들이지 않을테니 혼인 동맹을 제의하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마침 마사코 내친왕께서 결혼 적령기가 되셨습니다.”
여러 제안이 나온 뒤 고무라 주타로가 의견을 정리했다.
“그러면 여러 대신들의 의견을 종합하여 한국의 태자가 미국에서 돌아오는대로 특사를 파견해 외교 관계를 복구함과 동시에 러시아로부터 독립하도록 부추기고 혼인 동맹 제의까지 하도록 하겠소. 특사로 누구를 보내는 것이 좋겠소?”
“제가 꺼낸 이야기이니 제가 가도록 하겠습니다.”
‘전쟁이 끝난 지 벌써 4년이나 되어가고 있고 언제까지 한국과 대립할 수는 없다. 우리 상인들도 인천항에 많이 드나들며 한국과 외교 관계를 복원해달라는 요청이 들어오고 있으니 이번에 제대로 관계를 회복해야겠다.’
쓰네노미야 마사코 나이시노
메이지 덴노의 10번째 자녀이자 6번째 딸입니다. (메이지 덴노가 자식복이 엄청났더군요.) 원 역사에서는 쓰네히사 다케다 친왕과 결혼하여 1남 1녀를 낳았다고 합니다.(결혼 후 다케다 친왕비로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아들이 731 마루타 부대에 연관되어있었다는 이야기가 있네요. 물론 황족이어서 무죄방면 되었다고 합니다 ㅂㄷㅂ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