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한제국은 순종하지 않는다-41화 (41/130)

41화. 노동자들의 피눈물

정선

“사장님, 이 곳 정선과 인근의 태백이 석탄의 주요 매장지로 밝혀졌습니다. 발견되는 탄의 종류는 무연탄입니다.”

“쯧, 무연탄도 나쁘진 않지만 유연탄이 전혀 나지 않을 줄이야.”

강원도에서 석탄을 확인하고 있던 프릭은 혀를 끌끌 찼다. 강원도에서 석탄과 철이 난다는 이야기만 듣고 채굴 독점권을 얻어냈지만 정작 채굴되는 석탄들은 무연탄이었다. 무연탄 역시 함선이나 기차의 연료로 많이 쓰였고 수요처도 적잖이 있었지만 무연탄으로는 제철소를 돌릴 수가 없었다.

‘다행히 철광은 있으니 제철소를 가까운 바다 쪽에 세우고 유연탄은 배로 들여와야겠군. 더 자세히 조사를 했어야 했는데 마음이 너무 급했어.’

프릭은 자신의 성급함을 후회했다. 주요 탄전 지대인 정선과 태백은 경원선과도 거리가 멀었기에 석탄을 판매하기 위해서는 배로 실어서 미국이나 일본으로 보내야 했다. 어쩔 수 없이 그는 인근의 동해 시에 항구를 건설하고 한성-정선-동해를 잇는 철로의 부설에 나서기 시작했다. 이왕 이리된 것 강원도를 자신만의 왕국으로 만들 생각이었다. 한국 정부에서 전폭적으로 모든 행정적 편의를 봐주고 있었고 얼마 전 한국-프릭 철강 주식을 매각한 자금도 전달되었기에 돈도 충분했다.

“탄광과 철광 인근의 지역과 철로를 부설하기 위해 필요한 부지들을 모두 사들이고 광산업자들을 모아라. 그리고 중국인 노동자들을 데려오고 센트럴 퍼시픽 사에 연락해 철로의 부설을 요청하도록.”

“예, 알겠습니다.”

프릭은 한국인 광산업자들을 모아 중간 관리자로 삼고, 값싸게 임금을 주고 부려먹을 수 있는 중국인 노동자들을 강원도로 대거 데려온 뒤 악랄하게 부려먹기 시작했다.

“어어! 거기 조심해!”

“으아악!”

“이 게으름뱅이들아 사고가 났다고 망설이지 말고 어서 일해라! 오늘 정해진 구간까지 철로를 부설하지 못하면 식사는 물론이고 임금도 없다!”

강원도의 산세는 험했다. 철로의 부설을 위해 노동자들은 무거운 자재를 짊어지고 산골짜기를 올라야 했고 철로를 부설하기 위해 산을 깎아내며 산사태도 지속적으로 발생했다. 하지만 프릭이 데려온 미국인 감독관들은 중국인 노동자들을 전혀 인간답게 대우하지 않았고 사고가 나도 아랑곳하지 않고 오로지 작업량을 채우는 것에만 열중했다.

“감독관님, 갱도가 제대로 지지되고 있는지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이 상태에서 발파 작업을 하면 위험합니다.”

“알게 뭐냐! 중국인 노동자들을 보내서 갱도를 계속 파 들어가고 폭약을 설치하도록 시켜라!”

‘젠장할, 할당량을 채우지 못하면 당장 왜 못 채웠냐고 지적이 들어오고 잘못하면 해고당하겠지. 일자리를 잃을 순 없으니 희생자가 좀 나오더라도 작업을 강행하는 수 밖에.’

할당량을 채울 것을 강요받던 한국인 중간 관리자들도 위험한 작업들에 민족이 다른 중국인들을 투입하는 것을 망설이지 않았다. 가뜩이나 정선과 태백의 탄광들은 노천 탄광이 아닌 갱도를 파고 들어가야 하는 탄광들이었기에 작업은 만만치 않았다. 그리고 그 결과, 희생자들이 끊임없이 나오기 시작했다.

“어제는 허씨가 크게 다쳤다는구만.”

“크흐흑, 어떻게든 먹고 살아보려고 한국까지 왔는데 불구가 되다니! 회사에서는 뭐라 하던가?”

“뭐, 일전에 다쳤던 다른 이들과 똑같지. 인근 지역에서 다른 일을 찾아보거나 아니면 중국으로 다시 내쫓기거나.”

중국인 노동자들은 정해진 작업량을 채우지 못하면 임금과 식사를 받지 못했고 쓰러지거나 사고를 당할 경우 바로 해고 처리된 뒤 작업장에서 내쫓기거나 중국으로 돌려보내졌다. 받는 임금도 겨우 생활비를 충당할 정도였기에 노동자들의 아내들이나 아이들도 옷을 만들거나 수공예품을 만들어 돈을 벌어야 했다. 사람다운 대우도 받지 못하고 악랄한 노동 착취가 이루어졌지만, 절대적 약자이던 중국인 노동자들은 아무런 소리도 내지 못하고 일방적으로 당하는 수 밖에 없었다. 어차피 고향으로 돌아가봤자 그들을 반겨줄 이들은 아무도 없었고 왜 함부로 나라를 떠났냐고 관청에 끌려가 치도곤을 당하기나 할 터였다.

중국인 노동자들의 피눈물 속에 강원도는 한국 제일의 광공업지대로 변모해가기 시작했다. 후일 강원도민들은 도 각지에 프릭을 기념하는 동상과 공원을 세우고 그의 주도로 건설된 동해항과 경동선을 프릭항과 프릭선이라고도 부르며 프릭이 강원도를 위해 한 일을 기리게 되었지만, 중국계 주민들은 프릭이라는 말을 입에 담기 꺼릴 정도로 그의 악명도 함께 남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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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제안이 어떻습니까?”

미국에서 온 특명대사 코텔류는 이척에게 거액의 차관 공여와 대포를 비롯한 중화기 제작에 필요한 기술 제공, 학생들과 장교들에 대한 유학을 제의했다.

‘너무 좋은 조건인데 저들이 무슨 이유로 저러는거지?’

미국의 제안은 도저히 거절할 수 없을 정도로 매력적이었다. 벌리고 있던 일이 많은 한국 정부에 돈은 언제나 필요한 것이었고 무기 기술과 유학 제의 역시 한국이 부탁하고 싶었던 사항들이었다.

“잠시 대신들과 의논해봐도 되겠소?”

“물론입니다.”

“미국의 제안은 저희가 바라마지 않던 것들입니다. 더구나 반대급부 역시 매우 가볍습니다.”

“그렇습니다. 이렇게 좋은 조건을 거절할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대신들은 이구동성으로 미국의 제안을 받아들이자고 주장했다. 그리고 이척 역시 받아들이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고 있었다.

‘미국 기업들을 한국 기업들과 동일하게 대우해주고 아시아 시장 진출을 위해 세제 혜택과 정책적 지원을 해달라라…… 한국 경제가 미국에 예속될 가능성이 높긴 하지만 우리에게 미국 기업들과 경쟁할 능력을 갖춘 회사들이 거의 없으니 어쩔 수 없지.’

한국 경제가 많이 성장하고 기업들이 하나 둘 나타나고 있었지만 대부분의 민간기업들은 영세한 규모였다. 어차피 불평등 조약으로 인해 관세를 제대로 매기기 힘든 만큼 미국 기업들이 작정하고 한국 시장에 침투하기 시작하면 경쟁하기란 불가능했다. 그럴 바에는 미국 기업들을 한국으로 불러들여 그들이 던져주는 하청을 받아먹으며 조금씩 성장하는 것이 훨씬 나았다. 마음을 어느 정도 정한 이척은 코코프체프와 베블런에게 마지막으로 의견을 물었다.

“미국 기업들이 마구잡이로 들어와 한국 산업의 생태계를 파괴하는 것을 막기 위한 최소한의 견제 장치를 두는 것에 그들이 동의한다면 제의를 받아들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러시아 제국에 경제적으로 도움이 된다면 저 역시 반대하지 않겠습니다.”

“좋소. 그러면 미국의 제의를 받아들이도록 하겠소. 그리고 내가 이번에 태프트 은행장이 미국으로 돌아갈 때 같이 가서 그들과 우호를 더욱 증진하고 올 생각인데 어떻게들 생각하시오?”

이척은 동생인 이강을 못본 지도 오래되었으니 미국을 방문하여 동생도 만나고 미국과 우의를 다지며 한국과의 연결을 더 두텁게 할 생각이었다. 겸사겸사 얼마 전 이위종에게 연락을 받아 알게 된 테슬라를 설득해 한국으로 데려오고 학자들과 과학자들을 초빙할 생각이었다.

‘미국 금융의 황제인 모건과 석유왕 록펠러에게도 한국을 홍보해야겠지. 그들로부터 도움을 이끌어낼 수 있다면 성장을 더욱 가속화할 수 있을 것이다.’

“전하, 아직 후사가 없으신데 너무 무리한 해외 방문은 삼가주십시오.”

“그렇습니다. 저번 러시아 방문 때도 전하께서 자리를 비우시자마자 역도들이 들고 일어났지 않습니까.”

“병사들과 백성들뿐만 아니라 러시아 제국을 비롯한 모든 열강들이 나를 지지하고 있잖소. 그리고 청국과 일본 역시 잠잠한 상태이고 미국 정부가 나를 귀빈으로 대접해줄텐데 무슨 문제가 있겠소?”

대신들은 우려를 표했지만 이척은 그의 뜻을 밀어붙였다. 고종의 건강도 크게 나빠져서 곧 왕위에 올라야 할 것 같았기에 이번 미국 방문이 마지막 해외 방문이 될 것 같았다.

“전하께서는 미국 방문이 처음이시지요?”

“그렇소.”

‘전생에서는 몇 번 가봤지만 현생에서는 처음이니. 1900년대의 미국은 어떤 모습일 지 모르겠군.’

이척과 태프트는 배 위에서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제 조국이지만 미국은 100년 전만 해도 황무지였습니다. 하지만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이끌어낸 위대한 건국의 아버지들과 끊임없는 개척정신은 그 황무지에서 미국이란 국가를 탄생시켰지요. 그리고 지속적으로 이민자들을 받아들이며 오늘날의 모습을 갖출 수 있었습니다, 하하.”

태프트는 자랑스럽게 미국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자유민주주의를 위한 조지 워싱턴의 독립투쟁기, 흑인 노예를 해방시키고 연방의 분열을 막아낸 링컨, 본격적으로 미국의 산업혁명을 이끌어낸 클리블랜드까지. 태프트의 이야기를 들으며 이척은 전생에서는 잘 몰랐던 미국의 일화 여러 가지도 알 수 있었다.

“정말 클리블랜드 대통령이 그랬단 말이오?”

“그렇습니다. 그분은 민주당 출신이지만 그 누구보다 공화당의 주장과 잘 맞으셨죠.”

“흥미롭구려. 그런 것을 보면 그대들은 신기하오. 같은 당 안에서 내분이 발생해도 결국에는 다시 합쳐지고 그 당명을 꾸준히 유지하니 말이오. 그리고 전직 대통령들이 퇴임해도 그들의 영향력이 여전하며 지속적인 존경과 지지를 보내는 것도 그렇고.”

“대통령 직에 선출된 것은 국민의 선택이 아니겠습니까. 그들의 선택을 존중해야겠지요. 그러고보니 한국도 민주주의로 나아갈 생각은 없으십니까? 물론 왕실이 존재하니 저희와 같은 공화정보다는 영국식 입헌군주제를 도입해야겠지만 말입니다.”

“……음, 아직은 잘 모르겠소.”

‘민주주의라…… 언젠가는 도입될 수 밖에 없는 흐름이겠지만…… 내 생전에 도입할 수 있을까? 민주주의가 도입되면 분명 지역별로, 계파별로 나뉘며 끊임없이 싸워댈텐데 격랑의 시대를 헤쳐나가기에 민주주의라는 정치체제는 너무 비효율적이다. 그리고 후일 분명 만주를 집어삼키게 되면 그곳의 중국인들에게도 한국 국적을 부여해야 할텐데 다수결이라는 명분으로 오히려 한국인들이 불이익을 당하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태프트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이척은 민주주의에 대한 고민에 빠졌다. 전생에 본인이 외교부 과장 직에서 잘렸던 것도 결국에는 여론의 눈치를 본 정부 때문이 아니었던가. 그리고 한국의 부흥이라는 사명감을 갖고 나름대로 사심없이 나라를 운영해나가려 하던 이척은 기존의 세족 출신들이나 지방의 지주들이 민주주의로 선출되었답시고 자신들의 이익을 외치게 될 꼴도 보기 싫었다.

“멍!”

진돗개 한 마리가 짖으며 그에게 몸을 부비자 이척은 상념에서 벗어났다.

“복실아! 거기서 그러면 안돼!”

파블로프의 조수인 윤일선은 미국 심리학회에 발표하기 위해 데려가던 복실이가 하늘 같은 태자 전하의 옷을 침으로 더럽히는 것을 보고 기겁하며 이척에게서 빠르게 떼어냈다.

“태자 전하께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아니다, 괜찮다.”

복실이는 윤일선의 제지에도 불구하고 이척에게 자꾸 달라붙으려 하더니 이내 옆에 있던 태프트의 주위를 돌며 킁킁거렸다.

“Oh, 덩치가 꽤 있는 puppy 군요.”

한성에서 애완견으로 진돗개 한 마리를 키웠었던 태프트는 복실이가 달라붙었어도 당황하지 않고 쓰다듬었다.

“죄…… 죄송합니다. 제가 교육을 잘못시킨 탓입니다.”

“괜찮단다. 이 녀석을 보니 한성에 놓고 온 몰리가 생각나는구나.”

“하하. 개의 눈에는 일국의 태자도 외국인도 한 명의 소년도 다 동일한 사람으로 보이는 것 같구나.”

뿌우웅

배 위에서 해프닝이 벌어지고 있는 것도 모른 채 배는 파도를 가르며 미국을 향해 힘차게 내달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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