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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은 순종하지 않는다-18화 (18/130)

18화. 체질 개선

스톨리핀의 개혁작업은 다른 신료들의 우려와는 달리 굉장히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처음에는 외국인이 대신을 맡는다는 소리에 어이없어하던 농민들은 자신들에게 토지를 분배해주고 세금을 간소화해주자 그 누구보다 열렬한 스톨리핀의 지지층이 되었다.

“재무대신님, 세제 개편과 경기도 지방의 토지 분배가 거의 다 마무리 되어 가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어서 충청도와 황해도 지역의 토지 분배를 시작하도록 한다. 큰 문제는 없었나?”

“지주들의 반발이 일부 있기는 했지만 농민들이 땅을 나눠준다는 정부의 방침을 열렬히 지지하여서 그럭저럭 진행되고 있습니다. 다만 지방의 관리들이 일부 농민들과 짜고 속이는 사례가 지속적으로 적발되고 있습니다. 중앙의 관료들을 파견하여 최대한 감찰하고 있지만 역부족입니다.”

“속이는 놈들은 걸리는 즉시 체포하여 강하게 처벌하도록 해라. 본보기로 몇몇 놈들을 총살하도록 하고 지방 관리들에게 자신들이 담당한 지역에서 그러한 문제가 발생할 경우 책임을 물린다고 전해라.”

“처벌 강도가 너무 가혹한 것 같습니다.”

“정부를 속이려 한 놈들에게 자비를 베풀어줄 필요는 없다. 그리고 지방관료에게는 해당 지역에 대한 책임을 질 의무가 있다.”

“……알겠습니다.”

“물론 처벌이 지나치게 가혹하면 지방관들이 반발할테니 가급적이면 경고로 해결하도록 하고. 개혁 자금에 부족함은 없나?”

“당장 지출되는 금액은 절반이고 다시 매각하여 회수하고 있으니 감당할만 합니다. 그리고 태자 전하께서 추가로 황실 내탕금의 상당 부분을 개혁 자금으로 내주셔서 아껴쓰면 어찌어찌 될 것 같습니다만 추후 지출될 신화폐의 금액이 조금 우려되긴 합니다.”

“그 부분은 그때 가서 생각해야겠지. 그리고 지방군들을 한성으로 불러들여 통폐합 하는 방안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가?”

“처음에는 일자리를 잃는 줄 알았던 병사들의 반발이 있었지만 경찰로 채용하겠다 하니 다들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백성들의 태자 전하에 대한 지지가 크고 재무대신님의 방침들이 자신들에게 이득이 되다보니 모든 사항이 순조롭습니다. 다만 권한을 크게 제약받은 지방 관료들이나 지주들이 많은 유림 쪽에서 불만이 조금씩 생기고 있는 모양입니다.”

“곧 그들에게도 당근을 던져줄 것이니 괜찮다. 개혁 작업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니 다행이군. 그리고 수군들도 그냥 원산항으로 전부 보내서 로체스트벤스키 제독에게 맡기고 배들은 전부 매각하여 개혁 자금에 보태도록. 시대가 어느 땐데 목재로 된 군함을 쓴단 말인가.”

“알겠습니다. 군부대신께 말을 전하겠습니다.”

“얼른 이야기만 전하고 와서 일하게. 지금 업무량이 엄청나게 쌓여가고 있으니.”

“……예.”

개혁을 원활히 진행하는 반대급부로 재무부와 내무부 관료들은 갈려나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수장인 스톨리핀부터 매일 밤 늦게까지 업무를 하고 가장 먼저 출근하자 울며 겨자먹기로 일을 하는 수 밖에 없었다. 그나마 스톨리핀이 관료들의 녹봉체계를 개편하며 이전보다 녹봉을 많이 올려줬기에 받아들이는 상황이었다.

지주들은 정부의 강제 토지 매입에 불만을 가졌지만 그래도 정부에서 어느 정도 제 가격을 치뤄 주고 있고 새로 발행될 화폐를 선점할 수 있다는 기대감에 받아들이는 모양새였다. 그리고 스톨리핀이 농업을 규제하는 대신 어업, 목축업, 광산업 등 각종 산업에 대해서는 규제를 혁파하며 권장하자 배를 사들여 선주가 되거나 사업에 지분을 투자하는 등 자본가로의 변신을 시도하였다. 하지만 권한을 강하게 제약받게 된 지방 관료들과 큰 손해를 보게 된 거대지주들은 개혁에 대한 불만이 점차 쌓이기 시작했고 그들을 대표하여 민씨 일족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영익아, 개혁을 해야 한다지만 지주들의 토지 소유를 제한하며 강제로 매입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이겠느냐? 그리고 지방 관료들을 너무 제약하면 그들이 어떻게 지방 행정을 할 수 있겠느냐?”

“숙부님, 저희 한국을 다시 일으키려면 뼈를 깎는 고통을 감내해야 합니다. 지금이 아니면 변화할 수 있는 기회가 없습니다. 불만이 많으시겠지만 나라를 위해 조금만 참아주셨으면 합니다.”

“너무 급격히 바꾸려 하면 탈이 나는 법이다. 재무대신이 한국의 사정을 잘 모르고 너무 일방적으로 몰아붙이는 것 같은데 네가 좀 나서주었으면 한다.”

“태자 전하께서 재무대신을 전폭적으로 지지하시니 제가 나서도 달라질 것은 없습니다. 백성들이 개혁을 환영하고 있고 지주들도 큰 불만 없이 받아들이고 있으니 숙부님께서도 정부의 방침을 따르시지요. 전하께서 저와 영환이, 종식이를 봐서 자산의 강제 압류도 안 하셨잖습니까?”

“크흠……”

민씨 척족으로서 권세를 이용하여 재물을 긁어모아 거대지주가 된 민두호였다. 그는 일본이 한성에 진주해있는 동안 그들에게 알랑거리며 이득을 봤었기에 이척이 돌아오자마자 자산을 압류하려 했지만 이척을 도운 민씨 일족들의 탄원으로 거액의 자산을 국고에 납부하고 넘어갈 수 있었다.

민영익은 축재에 지나치게 몰두하는 민두호를 썩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호자 항렬에서 유일하게 남은 이였기에 이척에게 선처를 부탁했었다. 하지만 그때의 일은 잊은 채 이득만 보려고 하는 그에게 슬슬 질리려 하고 있었다.

“대신에 상공업에 대한 제한을 크게 완화하지 않았습니까? 곧 러시아 뿐만 아니라 미국과도 활발한 교류를 할 생각이니 상업에 뛰어드시면 지금보다 더 큰 이득을 얻으실 수도 있을 겁니다.”

“크흠…… 어쩔 수 없다니 알겠다.”

민두호는 불편한 심기를 내비치며 헛기침을 하며 돌아갔다.

“빌어먹을, 양놈들이 우리 한국에 대해 무엇을 안다고 저리 나댄다는 말이냐! 태자의 총애만 믿고 아주 자기들 멋대로 날뛰는구나.”

집으로 돌아온 민두호는 자신의 아들 민영휘에게 불만을 토했다. 그동안 청국과 일본에 붙어가며 권세를 유지했었지만 러시아가 전쟁에 승리를 거두자 활동을 삼간 채 조용히 지내려 했었던 그였다. 그런데 태자가 자신에게 재산의 상당부분을 뜯어간 것으로도 모자라서 강제로 토지를 매입하려드니 분노가 치솟았다.

“아버님, 청국에서 온 쉬스창 위원에게 이야기를 꺼내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상업과 경제에 관한 부분은 청국 상무위원과 협의를 하기로 조약에서 정했으니 그를 끌어들이면 개혁을 조정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다행히 제가 청국에 머무는 동안 그와 친분을 쌓았으니 한 번 가서 이야기 해보겠습니다.”

“오, 그것 참 좋은 생각이구나. 어서 가서 이야기를 꺼내보거라. 서예와 그림을 좋아한다하니 집에 있는 그림 몇 점을 가져가고.”

“예, 아버님.”

“훌륭하오. 이게 바로 그 흥선대원군의 석파난이오?”

“그렇습니다.”

“가져온 난과 그림들은 감사히 받겠소. 헌데 나를 찾아온 이유가 무엇이오?”

“아시다시피 지금 저희 한국에서 개혁을 진행중입니다. 근대화를 위해서는 마땅히 진행해야하는 일이겠지만 속도가 너무 빨라서 많은 이들이 힘들어하고 있습니다. 상무위원께서 이러한 저희의 우려를 태자 전하께 전달해주셨으면 합니다.”

“크음……”

쉬스창(서세창)은 속으로 괜히 뇌물을 받았다는 후회를 하였다. 자신이 한국에 상무위원으로 파견되기는 했지만 청의 정국이 매우 혼란스러워서 아무런 훈령을 받지 못한 지 2달이 넘어가고 있었고 제대로 무언가를 논의하지도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본인도 그냥 명함만 걸쳐두고 가끔 찾아오는 청국 상인들의 편의만 약간씩 봐주며 뇌물을 적당히 받아먹고 서예와 그림을 그리며 조용히 지내고 있었다. 정권을 쥐고 있는 이척도 그러한 그를 소 닭보듯 하고 있었기에 별다른 왕래도 없었고 러시아 고문들과는 더더욱 친분이 없었다. 그런 그에게 민영휘가 찾아와 어려운 부탁을 하자 난감했다.

‘일단 받아먹었으니 말이나 한 번 꺼내봐야겠군. 이번에 화폐 개혁을 한다하니 그 이야기를 꺼내면서 살짝 말을 하면 되겠지.’

“크흠, 알겠소, 내가 그대의 우려를 태자 전하께 한 번 말해보리다.”

“감사합니다, 상무위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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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과 재무를 스톨리핀에게 맡긴 뒤 이척 본인은 교육제도와 관료선발 방법을 개편하는 것에 집중하였다. 인구는 단기간에 늘릴 수 없는 만큼 한국의 생산력을 늘리기 위해서는 나라를 최대한 효율적으로 운영하고 개개인의 생산성을 높이는 수 밖에 없었고 그렇게 하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실무능력을 갖춘 관료들을 양성하고 개개인의 교육수준을 높이는 것이었다.

“전하, 관료들을 뽑는 방법을 바꾸신단 말씀이십니까?”

“그렇소. 현재의 추천 방식은 실무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소. 더구나 부정부패로 얼룩져서 뜻있는 이들은 임관을 포기하는 경우도 많지 않소?”

“허나 현재의 선발제도를 한번에 바꾸면 부작용이 클 것입니다.”

“그래서 현행 제도를 향후 3년간은 유지하되 뽑는 인원들은 점차 줄여나가고 새로이 시험을 만들 생각이오. 시험의 명은 고등고시로 하고 외국어, 사법, 재무, 행정 등의 분야에서 실제 업무에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을 위주로 문제를 출제하시오.”

“하지만 그러한 학문들을 가르치는 곳이 현재 저희 한국에는 별로 없습니다.”

“전국 각지에 학교를 세울 생각이오. 그리고 이 곳 한성에는 대학을 설립하고 대학을 졸업한 이들 중 성적이 우수할 경우 관료로 특채할 것이고. 교수들은 전현직 관료들, 외국에서 유학하고 온 이들, 학문을 갖춘 서양인들을 초빙하여 구성하시오.”

“허나…… 재원이……”

“남아있는 황실의 내탕금을 내겠소. 당장 한 번에 모든 곳에 학교를 세우기는 힘들테니 차근 차근 세워 나가야 하겠지.”

이척은 한성을 비롯하여 부산, 평양, 대전, 대구, 전주, 원산, 개성, 함흥에 학교를 세우고 학교의 명을 고등학교로 명명하였다. 그리고 현재 세워져 있는 여러 사립 학교들에게 학부의 지침을 따르고 재정 및 시설 감찰을 통과할 경우 고등학교의 지위를 부여한다고 공표하여 신학문을 가르치는 학교들이 전국 각 곳에 세워지도록 하였다.

유림들은 새로운 방식의 시험에 반발했지만 이척은 향후 4년간 대학 입학 정원의 일부를 유학을 시험 쳐서 뽑겠다는 발표를 하여 반발을 가라앉혔다. 기존 제도로 뽑는 인원이 줄어들었지만 그만큼 대학에서 선발을 하고 우수한 성적을 보일 경우 추가 시험 없이 관료로 임용한다는 이야기에 유림들의 관심은 새로 건립될 성균관 대학교에 모아졌다.

“무관들은 이전처럼 무관학교를 통해 양성하되 명칭은 사관학교로 변경하시오. 그리고 관료를 선발하는 방법이 바뀌는 만큼 교육 제도도 바꿀 생각이오. 공고를 내어 전국 각지의 서당 훈장들에게 한성으로 와서 교육을 이수하고 시험에 통과해야만 서당을 열 수 있게하시오. 훈장들의 이름도 교사로, 서당도 초등학교로 명명하도록 하고.”

이척은 서당 훈장들이 유학대신 실용학문들을 가르치는 교사로 거듭나게끔 조치하였고 학부로 하여금 교사들이 가르칠 신학문에 대한 지침을 만들도록 하였다. 그리고 교사 자격증을 받은 이들만 초등학교를 열 수 있게끔 하여 신학문이 아이들에게 뿌리내릴 수 있게끔 하려 했다. 훈장들에게는 교사 자격을 받고 초등학교를 열면 학부모에게 수업료를 받을 수 있는 권리를 주고 아이들은 의무적으로 10세 전까지 초등학교에서 3년 간 교육을 받도록 하여 교사들에게 경제적 유인도 제공하였다.

‘추후에 손질을 해야하는 부분이 많겠지만 우선은 급한대로 고리타분한 유학 대신 신학문이 한국에 뿌리내리도록 하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 유림들에게도 최대한 새로운 시대에 적응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겠지만 그들이 과연 적응할 수 있을지 약간 염려는 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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