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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은 순종하지 않는다-8화 (8/130)

8화. 러일 전쟁 (1)

이척의 조치로 기습을 통해 이점을 누리고자 했던 일본은 처음부터 난관에 부딪히고 있었다.

“제독, 제물포에 정박하고 있던 러시아 함선들이 도망갔다고 합니다.”

“뭐라고?”

“주민들에게 물어보니 저희가 출항한 지 하루 지나고 나서 바로 떠났답니다.”

“……우리 움직임에 대한 정보가 샜군.”

일본 연합함대 사령장관 도고 헤이하치로는 일이 쉽게 풀리지 않을 것을 느꼈다.

“도고 제독, 이미 지난 일이오. 우리 육군은 제물포에 상륙시켜 주시오. 빠르게 한국과 조약을 체결해 후방을 안정시키겠소.”

“알겠습니다 노기 장군.”

일본군은 하는 수 없이 예정대로 육군을 상륙시킨 뒤 한성으로 진군시켰다. 하지만 황태자의 서신을 명분 삼아 어렵지 않게 한성에 진주할 것이란 기대도 가는 길에 바로 꺾여버렸다.

“저 놈들이 우리 나라를 침략하려 한다. 절대 문을 열어주지 마라!”

황제와 중앙정부로부터 아무런 지시는 없었지만 황태자의 격문을 받은 이들이 서울로 가는 길에 있던 관문들의 문을 닫고 길을 열어주지를 않았다.

“장군, 아무래도 한국의 황태자가 저희를 속인 것 같습니다! 이 서신이 위조된 것이라 말하며 길을 열어줄 수 없답니다!”

“…….”

육군 지휘관 노기 마레스케는 결단의 시기가 다가왔음을 느꼈다. 여기서 지체될 경우 전쟁 수행이 곤란해질 위험이 있었다.

“……저들이 문을 열지 않는다면 공격해라. 빠르게 제압한 후 한성에 진주해야 한다.”

“알겠습니다.”

“문을 열면 곧바로 지나쳐서 한성으로 향한다. 의무병을 남겨 한국군이건 우리 일본군이건 부상자는 전부 치료해주고 나머지 병사들은 대열에서 이탈하지 않도록 엄히 다스려라.”

그는 최대한 빠르게 관문들을 제압한 후 병력을 진주하여 황제를 손에 넣고자 하였다. 그리고 고종에게는 불행히도 인천과 서울은 하루면 닿을 수 있는 거리였다.

“폐하, 큰일났습니다. 일본이 저희를 공격하고 있습니다!”

“뭐라고! 아니 중립국을 왜 공격한다는 말이냐! 도대체 왜!”

“황태자 전하께서 일본에 맞서 싸울 것이란 의사를 공개적으로 표명했으니 선전포고와 다를 바가 없다 합니다.”

“이척 그놈이 이 나라를 말아먹는구나! 어서 일본군에 말을 전해라. 그 놈은 더 이상 이 대한제국의 황태자가 아니니 그 놈의 말은 아무런 효력이 없다고!”

“벌써 일본군이 지척에 이르렀습니다. 폐하 어서 피신하셔야 합니다!”

“크으으…… 이척 이 놈!”

고종은 이척의 황태자위를 폐위시켜야겠다는 결심을 하며 도망갈 준비를 하였지만 미처 준비를 갖추기도 전에 일본군이 한성을 포위하였다.

일본군이 기습적으로 한성을 포위하자 내부에선 난리가 났다. 백성들은 물론이고 대신들도 패닉에 질려 어떻게 해야할지 우왕좌왕이었다. 일부는 곧바로 패물만 챙겨서 도망가려 하고 있었고 일부는 집에 박혀 문을 콱 닫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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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령님, 어떻게 합니까?”

“……우리 시위대에게는 한성을 수비할 의무가 있다.”

“하지만 중과부적이고 폐하께서도 아무 말씀이 없으셨습니다.”

“우리가 물러나면 우리 뒤에는 아무 것도 없다.”

시위대대장 양성환은 성문을 열 것을 요구하는 일본의 요구를 단호히 거절한 채 항전의 의지를 다졌다.

“장군, 저들이 문을 열 기색을 보이지 않습니다.”

“……빠르게 수비대를 제압하고 한성으로 진입한다. 병사들에게 일러 함부로 약탈을 하지 못하도록 전하고 시내에 진입하는 즉시 허가 없는 무기의 사용을 엄금한다. 명을 어기는 놈은 군령대로 바로 총살해라. 대포는 절대로, 절대로 민가와 시내를 향해 쏘지 마라.”

“알겠습니다.”

노기 마레스케는 일이 꼬여감을 느꼈다. 돌아가는 정황을 보니 한국의 황태자가 그들을 속인 것이 분명했다.

‘설마 그 놈이 우리와 러시아의 충돌까지 유도한 것인가?’

노기는 마음 속 한 구석에서 차오르는 의문을 뒤로 한 채 한성의 공략을 명했다. 명령이 떨어지자 일본군은 곧장 대포를 가져와 돈의문(서대문)과 소의문을 향해 발사하기 시작하였다.

쾅 쾅

일본군이 보유한 대포는 금새 성벽을 무너뜨리기 시작했다. 대한제국군은 필사적으로 저항을 했지만 일본군이 보유한 대포에 유효한 타격을 가할 수단이 없었다.

“참령님, 더 버티기 어렵습니다. ”

‘아…… 이대로 대한제국의 사직은 무너지는 것인가……’

양성환은 절망했다. 그도 일본과 대한제국군 간의 전력 차가 압도적인 것은 알고 있었다. 그때 그에게 누군가가 다가왔다. 이척의 밀명을 수행하기 위해 한성에 남아있던 안중근이었다.

“장군, 황태자 전하의 명을 받아 말씀드릴 것이 있어 왔습니다.”

“그대는 누군가.”

“저는 안중근이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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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에 있던 외국 공사들은 영국 공사관에 모여서 현재 상황에 대해 논의중이었다.

“일본이 러시아와 전쟁을 결심하고 조선에 진주할 것은 알았지만 이렇게 기습적으로 움직일 줄은 몰랐습니다.”

“……만약 우리 국민들 중에 사상자가 나온다면 일본은 각오를 해야할 것이오.”

“아직까지 피해 사례는 보고된 바 없으니 진정하시지요. 일본도 분명 민간인들에 대한 위해행위는 하지 않았을 겁니다. 지금 성 내로 대포를 쏘는 일도 없으니 이번 일에 대해서는 추후 책임을 물으면 될 것 같습니다.”

각 국 공사들은 굉장히 불쾌했다. 최소한 자신들에게는 전언을 남겨 한성이 위험하니 피할 것을 권고했어야 했다. 한성 내부의 백성들은 전부 겁에 질려있었고 혼란을 틈탄 이들이 날뛰어 치안도 엉망인 상태였다.

“황제가 우리들에게 중재를 요청하고 있소. 어떻게든 이 일을 해결해달라고 말이오.”

“지금 대한제국의 역량으로 일본군을 막아내는 건 무리입니다. 그냥 성문을 열고 협상을 하라고 합시다.”

“그렇게 하시죠. 어차피 전쟁은 러시아와 일본의 싸움에서 결판이 날테니 대한제국이 어떻게 하던지 큰 문제는 없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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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태자 전하께서 본인을 따르는 이들과 함께 혜화문과 흥인지문(동대문)에 위치한 일본군을 공격하실테니 그 틈을 타 빠져나오라고 하십니다.”

“장수로써 어찌 자리를 버리고 도망칠 수 있겠는가. 더구나 안에는 황제 폐하뿐만 아니라 여러 대신 분들, 백성들이 있네.”

“일본군은 분명 모두에게 아무런 위해를 가하지 않을 것이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된다 하셨습니다.”

“…….”

양성환은 고민에 빠졌다. 일이 이 지경에 이르자 일전에 황태자가 자신에게 말을 전했던 것이 기억났다.

“황제 폐하와 대신 분들께 탈출하실 의향이 있는지 물어보도록 하겠네.”

“뜻대로 하십시오.”

하지만 양성환이 사람을 궁에 보내기 전에 궁에서 저항을 포기하고 일본군을 받아들이라는 명이 먼저 날아왔다. 외국 공사들의 권고를 받아들인 고종이 보낸 것이었다.

“이대로 저항도 하지 못한 채 나라를 내주어야 한단 말인가!”

“아직 황태자 전하께서 밖에 계십니다.”

“……하지만 황명을 어길 수는 없네.”

“전하께서 일전에 장군과 하신 문답을 기억해달라 하십니다.”

“…….”

‘황태자 전하께서는 이 모든 것을 내다보셨단 말인가……’

양성환은 고민에 빠졌다. 황제의 명을 따라야 했지만 이대로 나라를 내어줄 수는 없었다. 이내 결심을 마친 그는 병사들에게 말을 전했다.

“모두 흥인지문으로 모여라! 한성을 탈출한다. 가족이 있는 자들은 가족들도 불러라!”

“참령님, 한성에 남은 이들은 어찌한단 말씀이십니까.”

“황태자 전하께서 말씀하시기를 일본군이 함부로 위해를 끼칠 일은 없다 하셨네. 그 말대로 저들은 성 안으로 포를 쏘며 적극적으로 공격하기보다는 성문을 두드리는 것에 집중하고 있고.”

“탈출하더라도 황제 폐하를 보위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폐하께서는 저항을 포기하셨잖나.”

“…….”

“안중근이라고 했나? 황태자 전하께서 언제 공격을 하신다고 하셨나?”

양성환은 성 밖으로 나가 공격할 시기를 안중근에게 물었다. 하지만 이내 그는 곧 답을 들을 필요가 없어졌다. 흥인지문 밖에 있는 일본군의 대열이 흐트러지는 모습이 보였다.

“모두 공격해라. 저 침략자 놈들을 몰아내라!”

이척은 일본군의 상륙 소식을 듣자마자 긁어모아온 진위대와 그의 친위대, 그리고 여흥 민씨 일가의 사병들을 데리고 흥인지 문 밖에 있는 일본군을 공격하고 있었다. 다행히 일본군 역시 급하게 한성으로 향했었기에 성문 근방에는 고작 수백 명만 있었다. 예상치 못한 후방의 기습에 일본군은 우왕좌왕했다.

“대대장님, 저들에게 포를 쏘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민가와 섞여 있잖나. 노기 장군께서 절대로 시내에 포를 쏘지 말라고 하셨고.”

“하지만 포와 기관총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막아내기 어렵습니다.”

“…….”

“대대장님 성문이 열리고 대한제국군이 뛰쳐나오고 있습니다. 민간인들도 섞여 있는 것 같습니다. 어서 명령을!”

흥인지문 방면에 배치된 대대장 마쓰다 중좌가 대응방안을 고심하고 있었을 때 다행스럽게도 그의 고민을 덜어줄 전령이 본대로부터 왔다.

“마쓰다 중좌님, 대한제국 황제가 항복하겠다는 뜻을 전했답니다.”

“혹시 노기 장군께서 저기 빠져나가는 자들을 어떻게 해야 할지도 지시를 주셨나?”

“……해당 사안에 대해서는 명을 받지 못하였습니다.”

고민을 하던 마쓰다는 이내 결단을 내렸다. 괜히 저기서 나오는 무리 중 외국인들이 섞여 있다 다친다면 더 곤란해질 터였다.

“한국의 황제가 항복을 하였다 하니 저들을 나가게 냅둬라. 그리고 후방의 공격을 피해 후퇴한다.”

“알겠습니다. 대대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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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무슨 무례한 짓이오! 분명 우리 대한제국은 중립국이라 하지 않았소!”

“저도 그런 줄 알았습니다. 허나 인천에 상륙하고 진군하는 중에 황태자가 저희를 침략군이라 규정하며 궐기할 것을 요청하는 격문을 돌렸다는 사실을 알게되었습니다.”

“그 놈은 더 이상 이 나라의 황태자가 아니오!”

“어찌되었간에 저희의 입장이 상당히 곤란해졌습니다. 하야시!”

노기의 부름에 하야시 곤스케가 미리 준비해온 의정서를 내밀었다.

“여기에 서명해주시지요 폐하.”

의정서를 읽어본 고종은 기겁했다. 의정서의 내용은 한일이 공수동맹을 체결하여 러시아에 맞섬과 동시에 대한제국군의 저항으로 피해를 입은 것을 보상하라는 요구안, 일본이 당분간 대한 제국의 전시행정을 맡는다는 내용이 들어있었다.

“이런 것에는 서명할 수 없소!”

“……빠르게 결단을 내려주시지요. 서명하지 않으시면 저희도 폐하도 서로 곤란해질 겁니다.”

“……생각할…… 생각할 시간을 주시오.”

“시간을 오래 드릴 수는 없습니다.”

노기 마레스케는 협정서를 고종에게 던진 후 궁을 나왔다.

“부관, 사상자는?”

“한성까지 진군하는 길에는 경상자 일부만 있고 죽은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하지만 한성을 동쪽에서 공략하던 대대에서 사상자가 수십 명 나왔습니다.”

“외국인의 피해는?”

“다치거나 사망한 외국인은 없습니다만 한성 포위전 때 시내의 치안 불안정으로 재산이 약탈당한 이들이 일부 있다는 이야기가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각 나라의 공사들에게 피해를 받은 이들이 있다면 저희에게 바로 손실금액을 청구하라고 하였습니다.”

“잘했다. 한국 민간인의 피해는 어떤가?”

“한국인들 역시 각 지휘관들이 명령을 엄정하게 따라서 민간인의 피해는 거의 없다시피 합니다. 대한제국에게 피해를 본 민간인들에 대한 배상도 알아서 책임지라 하였으니 저희가 신경쓸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막판에 흥인지문을 열고 한국군들이 대거 빠져나간 점은 우려스럽습니다.”

“상관없다. 어차피 한국 황제는 우리 손에 들어왔다. 그 빌어먹을 황태자 놈은 어디있다고 하나?”

“……들려오는 이야기로는 마지막에 외부에서 저희를 공격한 이가 한국 황태자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빠져나간 한국군이 침략자를 몰아내겠다며 그놈을 따라갔답니다.”

“칙쇼! 흥인지문을 공략하던 마쓰다 놈은 무엇을 했나!”

“그것이…… 황태자가 밖에 있을 줄 몰랐고 인근에 민가도 많아서 적극적으로 공격을 할 수 없었답니다.”

노기 마레스케는 할 말이 없었다. 가급적 공격을 최소한으로 할 것을 명령했던 것은 자신이었다. 한국인들이 일본에 거부감을 갖고 저항하면 곤란해지기에 자신들의 피해가 더 클 것을 감수하고 적극적인 공격을 자제하며 빠르게 한성에 진주하는 데에만 열중하여 발생한 일이었다.

공사 하야시가 한국 황태자는 수원에 머무르고 있다고 알렸었지만 친서까지 보냈던 이인 만큼 자신들이 한성에 진주하면 곧장 돌아올 줄 알았다. 하지만 이렇게 뒤통수를 맞으니 얼얼했다. 황태자가 자신들을 침략자로 규정하고 저항을 선동한다면 후방이 불안정해질 위험이 컸다.

“……빠르게 황제를 압박하여 한국과 일본이 공수동맹을 체결했음을 공표하게 해라.”

“알겠습니다.”

“러시아 공사는?”

“아직 빠져나가지 못한 러시아 인들과 함께 한성에 있었습니다. 병사들이 러시아 공사관을 포위하고 있는데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한성이 우리 손에 들어왔음을 알리고 선전포고문을 전달해라. 그리고 한국 황제가 우리가 내민 의정서에 서명을 하는 즉시 의정서 내용과 함께 한성 밖으로 내보내라. 절대 함부로 위해를 가해선 안된다.”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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