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52화. Epilogue (1)
달에 올라가 있는 연결자들의 생활은 단순하다.
미궁에 들어가 몬스터를 죽이고 월석을 채취한다. 그리고 쉬는 시간에는 달에 있는 유일한 월면도시에서 논다.
신우 역시 그와 같았다.
이 바닥에 뛰어든 지 몇 년이 지나 이제 제법 관록이 붙었지만 그의 사이클은 평범한 연결자의 그것과 다르지 않았다.
개인 미궁에서 사냥을 하고 월면 도시에 도착한 그는 도시 옆에 마련된 거대한 주차장에 월면주행차를 멈췄다.
평소라면 차에 월석이 가득했겠지만 오늘은 일이 있어 평소보다 일찍 미궁을 나왔다.
그래서 소득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파티원들에게 미안한데.’
한창 일을 해야 하는데 주전력인 신우가 빠져버렸다. 파티원들은 괜찮다고 했지만 그의 마음이 편치 않았다.
‘다음에 거하게 한잔 사야지.’
신우는 차에서 내렸다. 저벅저벅 도시 앞으로 걸어갔다.
도시에 도착하자 입구 위에 쓰인 거대한 현판이 보였다.
- Seongyun City
볼 때마다 등 뒤가 간질거리는 이름이다.
예전, 신우가 태어나기도 전에 있던 월면도시는 암스트롱이란 이름이 붙어 있었지만, 다시 재생성된 달에 세워진 월면도시는 ‘성윤’이란 이름이 붙어 있었다.
‘이럴 때 새삼 느낀단 말이야.’
그의 아버지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신우는 ‘성윤’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길게 난 대로를 따라 쭉 걸었다. 곧 커다란 광장이 나왔다.
많은 인파가 돌아다니고 주변 가게들은 열심히 호객 행위를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은 광장 한가운데에 있는 동상들이었다.
신우의 눈이 그 동상들 가장 앞에 있는 동상에 꽂혔다.
무척이나 익숙한 얼굴. 언뜻 보면 신우와 닮기도 한 얼굴이었다.
그 동상이 바로 지구와 인류를 구한 영웅, 그중에서도 그들의 대표격이라 할 수 있는 우성윤의 동상이었다.
근엄하고 진지한 동상의 얼굴에 문득 웃음이 나왔다. 어머니들이나 동생들의 장난에 난감한 표정을 짓는 아버지의 얼굴이 스쳤기 때문이다.
그는 잠시 아버지의 동상을 바라보다 광장을 떠났다. 계속 대로를 따라가다 한 건물에 들어갔다.
“어서 오…! 아, 우신우 씨 오셨군요.”
서글서글하게 생긴 인상의 중년 남성이 신우를 맞았다.
“평소보다 일찍 오셨군요. 동료 분들은 어디 계십니까?”
“아직 미궁에서 사냥을 하고 있을 겁니다. 저는 볼일 때문에 일찍 왔고요.”
“그러셨군요.”
“이거 처분해 주세요.”
신우는 자신 몫으로 챙겨 온 월석 한 꾸러미를 내놨다.
“알겠습니다. 바로 처리해 드리죠.”
그곳은 전문적으로 연결자들이 캐낸 월석을 운반해주는 월석운반회사였다.
그의 어머니가 운영하는 회사와 독점 계약을 맺은 터라 신우는 캐낸 월석을 항상 이 회사에 맡겼다.
“요새 일은 어떠십니까?”
신우가 준 꾸러미를 포장하며 남자가 물었다.
“평소와 똑같습니다.”
“그거 다행이군요. 언제나 똑같은 일상은 중요하죠. 지루한 평화만큼 좋은 것도 없으니까요. 저도 예전 그레노이드 사건 때 확실히 깨달았습니다.”
남성이 눈을 찡긋하자 신우는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는 이 일도 신입이었지만, 저도 벌써 나이를 먹어 버렸군요. 솔직히 그레노이드가 쓰러진 이후 다시 이 일을 하게 될지는 몰랐습니다.”
전투가 끝난 지 얼마 후, 그레노이드의 시체는 녹아내리듯 지면 아래서 사라졌다.
그레노이드 안에 남아 있던 마력의 근원이, 달의 중심에 있는 탑 안의 마력의 근원에 이끌려 사라진 것이다.
사람들은 놀라지 않았다. 현우가 남겨 놓은 정보에는 이런 현상이 생길 거라는 예측까지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얼마 후, 미궁과 몬스터가 다시 등장했다.
“우리로서는 다행이죠. 먹고살 방법이 다시 나타났으니까요. 그런 면에서는 그레노이드가 시체라도 도움이 되어서 다행입니다.”
완벽한 상태로 돌아온 마력의 근원은, 흡수한 그레노이드의 육신 때문에 몬스터를 생성해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달의 재생성 때 탑에서 생긴 마력의 파동 때문에 여기저기 복잡하게 뚫린 통로들 안으로 마력이 새기 시작했다.
새로운 달 안에 생긴, 새로운 미궁의 등장이었다.
“이게 다 당신의 아버님과 그 동료 분들 덕분입니다.”
“하하, 아버지도 기뻐하실 겁니다.”
사내의 초롱초롱한 눈이 신우는 못내 거북했다.
태어난 이후부터 쭉 따라다닌 아버지의 후광이 부담스러웠던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 익숙해져 있었다.
‘사춘기도 아니고. 아버지의 그림자를 투영하지 말라고 날을 세우는 것도 옛날이지.’
질풍노도의 시기를 떠올리며 내심 웃은 그는 사내와 작별하고 건물을 나왔다.
‘자, 드디어 지구다!’
얼마만의 귀환일까.
도시 위로 보이는 둥그스름한 지구를 신우는 조용히 올려다봤다.
***
최종 목적지는 한국이었지만 신우는 한국이 아닌 미국 비행기에 탑승했다. 지구로 가기 전에 할 일이 있었다.
그가 도착한 곳은 세계에서도 유수의 대학이었다. 입학했다는 사실만으로 주변 사람들이 선망의 눈길로 보는 곳.
‘좋을 때다.’
재잘재잘 떠들며 캠퍼스를 누비는 학생들을 보며 신우는 마치 수십 살은 더 먹은 할아버지 같은 생각을 품었다.
정작 본인은 그들보다 몇 살 더 위일 뿐인데도.
“아, 저기 있다.”
많고 많은 학생들 중 신우는 어렵지 않게 원하던 인물을 찾을 수 있었다.
다른 곳에 집중을 하고 있어도 눈에 확 띌 정도로 예쁜 인물. 하지만 그건 상관없었다.
그녀가 어떻게 생겼든 그가 자신의 동생을 몰라볼 리 없다.
“여, 신희야.”
“오빠?”
친구와 웃으며 걸어오고 있던 그녀의 눈이 커졌다.
***
“기가 막혀. 대체 내가 몇 살이라고 데리러 오는 거야?”
자취집에서 짐을 챙기며 신희가 투덜거렸다.
하지만 신우는 변명할 말이 있었다.
“아직 네가 어리게 보이시나 보지. 어머니들 명령으로 왔으니 나한테 뭐라 마라.”
“오빠랑 나랑 한 살밖에 차이 안 나거든?”
그녀가 톡 쏘아붙였다. 하지만 신우는 어깨를 으쓱일 뿐이었다.
“아니면 네가 믿음직해 보이지 않던가. 그 왜, 예전에 네가 한 일이 있잖아. 뭐라더라? 나는 전생에 왕국을 구한 고귀한 자의 딸이라고 했던…! 어이쿠!”
신희가 던진 옷가지를 신우가 과장스럽게 잡았다.
“그거 말하지 말라니까!”
신희가 빽 소리쳤다. 신우는 눈물을 흘리며 웃었다.
쌍심지를 켜고 신우를 노려보던 신희가 저벅저벅 걸어오더니 옷가지를 휙 낚아챘다.
“내 놔! 동생 속옷을 들고 뭐 하는 거야!”
“네가 던졌잖아. 그리고 동생의 속옷 따위 관심도 없으니까 과대망상은 정도껏 해라.”
신희는 콧방귀를 끼고 다시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공부는 잘돼 가?”
“대충은.”
목소리에 날이 서 있긴 하지만 그래도 꼬박꼬박 대답은 돌아온다.
신우는 팔짱을 끼고 벽에 기댔다.
“너도 참 별종이다. 연결자, 그것도 최상위급의 재능을 갖고 태어난 연결자면서 굳이 연구 쪽에 발을 들이다니. 어차피 달에는 꾸준히 가야 하잖아.”
마력의 근원이 아직 달에 있으니, 달로 가고 싶어 하는 연결자들의 욕망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었다.
그래서 지금도 대부분의 연결자들은 달로 가 몬스터를 사냥한다.
하지만 그의 동생은 연구자의 길을 걷고 있었다.
욕망 때문에 달에 올라갈 수밖에 없고 그러면 달에 머물 체재비를 마련하느라 몬스터를 사냥해야 한다.
당연히 공부와 연구만 하는 다른 사람들보다 시간이 모자랄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의 동생은 묵묵히 그 길을 가고 있었다.
“엄마의 영향이지, 뭐. 그래도 난 후회 안 해. 이게 재미있으니까.”
신희는 환하게 웃었다. 거기에는 그늘 한 점 없었다.
‘첼시 어머니의 딸이니, 영향이 없을 순 없나.’
신희는 지금 과학자로서 상당히 유명해진 첼시 스트로브의 딸이다.
어머니가 가진 연구원의 피를 진하게 물려받은 게 분명했다.
“그러면 순수하게 연구만 하면 되잖아. 달의 체재비 정도는 아버지나 내가 내줄 수 있는데.”
“평생을 아빠나 오빠의 손을 빌리라고? 됐어. 이건 내 인생이니까, 내가 해결할 거야.”
‘어쩜 똑 부러지기도 하지.’
고생하는 동생이 안쓰럽기도 했지만 그만큼 자랑스럽기도 했다.
“네가 좋다면 그걸로 됐어.”
“응, 난 지금 내 인생이 너무 좋은걸.”
짙게 웃는 신희에게 신우도 같이 웃어줬다.
“그런데 예전부터 궁금했는데 왜 설정이 ‘왕국을 구한 자의 딸’이야? 우리 아버지는 자그마치 세계를 구한 사람이잖아. 중2병 놀이를 할 거면 설정을 키워야지 왜 현실보다 축소….”
“당장 나가 이 인간아!”
결국 신우는 신희가 짐을 다 싸고 나올 때까지 집 밖으로 쫓겨나 있어야 했다.
***
신희를 대동시킨 신우가 다음으로 향한 곳은 런던이었다. 공항에서 택시를 잡고 목적지로 향했다.
그가 도착한 곳은 꽤나 고풍스러운 건물이었다. 둘은 커다란 현관을 지나 정원에 들어섰다.
“그 녀석은 정말 잘도 이런 곳에서 사네.”
편한 복장을 입은 채 신희는 이곳저곳을 둘러봤다. 하지만 감상은 무척이나 짰다.
“나라면 답답해서 못 살 텐데.”
“그게 너와 나의 차이다.”
딱딱한 목소리가 들린다. 신희가 싫은 표정으로 목소리가 들린 곳을 쳐다봤다.
청년 한 명이 둘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선이 가는, 순정만화풍의 미청년이었다.
근엄한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아직 빠지지 않은 앳된 끼가 조금은 언밸런스해 보였다.
“나왔다. 답답한 자식.”
“기본적인 예의라는 것도 모르는 너보다는 나아.”
“자자. 싸우지 말고. 오랜만에 만나는 남매 아니냐. 사이좋게 지내야지.”
신우가 둘을 말렸다. 하지만 공염불이었다.
“시비는 저 녀석이 먼저 걸었습니다.”
“나, 생리적으로 저 녀석은 무리야.”
둘 모두 신우의 ‘사이좋게’라는 말에 질색을 했다. 신우는 한숨을 한 번 쉬었다.
‘뭐, 원래부터 저런 녀석들이니.’
자유분방한 신희와 규율 같은 것을 칼같이 지키는 신현은 성격상 맞지 않았다.
‘어떻게 동갑인 놈들이 사이가 더 안 좋냐.’
아니, 동갑이라서 더 그런 걸 수도 있었다.
“그레이스 엄마는 그래도 말은 통하는 분인데, 저 녀석은 너무 딱딱하잖아.”
“누가 할 소리를. 첼시 어머니는 자유롭게 행동하시면서도 예의와 예절은 딱딱 지키시는 분이야. 너랑은 달라.”
다행히 둘은 서로의 어머니마저 싫어하진 않았다.
그 점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우리 가문은 세계에서도 유명한 가문이다. 역사는 짧지만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업적을 이룩하신 아버지가 계신 가문이니 당연하지. 그만큼 우리도 몸가짐 하나하나를 조심해야 한다고. 우리의 섣부른 행동이 아버지와 어머니들의 명예에 먹칠을 가할 수도 있어.”
“그러니까 그런 고지식한 얘기는 그만하라고. 21세기에 무슨 가문 운운이야? 그리고 남들의 시선 따위는 뭐가 어때서? 내가 잘못한 것만 없으면 그만이지.”
둘의 말은 그들의 사고방식이 어떤지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역시 어머니들의 영향이 크겠지?’
지금 시대에 안 그런 직종이 어디 있겠냐마는, 과학자라는 인종은 창의력이 무척이나 필요한 존재다.
때문에 첼시는 자신의 경험에 따라 자식인 신희를 그렇게 키워 왔다.
그랬기에 그녀는 상식에 얽매이지 않고 세상을 자유롭게 보는 사람으로 자랐다.
신현도 마찬가지.
빠르게 입헌군주제를 도입하고 민주주의의 발전에 큰 공헌을 한 영국이지만 아직 왕실과 귀족이 남아 있는, 어떻게 보면 아이러니기까지 할 만큼 보수적인 곳이기도 하다.
그런 영국의, 그것도 여왕인 증조할머니와 공주님 대접을 받는 어머니를 둔 신현은 귀족적 예절에 물들 수밖에 없었다.
서로를 보며 으르렁거리는 둘을 보며 신우는 다시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곧 미소를 지었다.
문득 옛날 생각이 났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 녀석들. 어릴 때와 똑같구나.’
다행히 둘은 진심으로 서로를 미워하진 않는다. 만날 때마다 티격태격 하는 정도.
때문에 심하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뭐, 우리끼리 있을 때 이렇게 다투는 건 괜찮아. 싸운 만큼 친해진다는 말도 있으니까. 하지만.”
신우의 입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싸늘한 안광이 둘을 향했다.
흠칫!
신희와 신현이 서로를 노려보는 것도 잊고 몸을 움츠렸다.
“그 모습, 오랜만에 하는 가족 만찬에서도 똑같이 보이기만 해 봐라.”
아주 가만히 안 둘 테니까.
신희와 신현은 신우가 굳이 더 말하지 않은 뒷말을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었다.
둘은 서로의 눈치를 보더니 신우를 향해 굳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의 형이자 오빠인 신우는, 친근하고 어떻게 보면 호구라고까지 생각되는 평소의 태도와는 달리, 한 번 화를 내면 정말로 무서운 사람이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