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달의 미궁-344화 (344/354)

제344화

“커헉!”

진수의 몸이 뛰어오던 속도만큼이나 빠르게 뒤로 튕겨 나갔다. 무척이나 꼴사납게 땅바닥을 뒹굴었다.

“뭐, 뭐야! 빌어먹을, 이게 뭐야!”

꼴사나움과 쪽팔림, 그로 인한 분노에 진수는 욕설을 내뱉었다.

창대를 지팡이 삼아 몸을 일으킨다. 할버드를 맞은 부분이 얼얼했다.

후두둑!

기분 나쁜 소리가 들렸다. 진수가 소리가 들린 곳을 내려다보자 할버드에 맞은 갑옷 부분이 깨져 흘러내리고 있었다.

‘고작 일격에?’

뭔가 잘못돼도 단단히 잘못됐다.

진수가 고개를 들었다. 성윤이 천천히 다가오는 모습이 보였다.

“으…!”

그 박력에 한 걸음 물러났다.

‘이런 빌어먹을! 지금 뭐하는 거야!’

투구 속 그의 얼굴이 새빨갛게 일그러졌다.

고작해야 다 죽어가는 인간 한 명에게 겁을 먹었다는 사실이 굉장히 부끄러웠다.

“이 자식이이이이!”

괜히 목소리를 높이며 달려 나갔다. 창을 단단히 쥐어 잡고 성윤을 찔렀다.

후웅!

돌아오는 촉감은 없었다. 성윤이 몸을 틀어 피한 것이다.

진수는 당황하지 않았다.

나름 많은 전투를 해온 그다. 노련하다는 말을 붙여도 될 정도의 경험치가 있다.

진수는 오히려 발에 힘을 줘 속도를 유지했다. 동시에 창을 끌어당겨 짧게 잡았다.

“흡!”

가까워진 성윤에게 짧게 잡은 창을 다시 한번 찔러 넣었다.

콰직!

날카로운 창날이 틀어박힌다. 창날은 갑옷조차 뚫어버리고 살에 틀어박혔다.

진수에게 불행한 점은, 상대의 몸을 쑤시는 데 성공한 창날이 그의 것이 아닌 성윤의 할버드란 것이었다.

“아아아악!”

달리던 기세 때문에 창날이 더욱 깊숙하게 찔렸다.

팔에 박힌 창날이 거의 팔 절반을 갈랐다.

“이 빌어먹으으으으을!”

진수는 다시 허겁지겁 뒤로 도망쳤다. 어느 정도 거리가 벌어지자 상처에 대고 치유 마법을 시전했다.

무척이나 싸움에 진 개 같은 모습의 도주였지만 성윤 같은 즉각적인 마법 발동도, 현우처럼 자동적으로 회복도 못 하는 진수로서는 방법이 없었다.

“죽여버리겠어!”

상처가 회복되자 진수는 이를 갈며 다시 한번 성윤을 죽이기 위해 나섰다.

하지만 무언가를 눈치 채고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뭐야, 회복됐어?”

놀랍게도 다리에 난 상처 때문에 제대로 뛰지 못하고 절뚝거리던 성윤의 걸음이 한결 편해져 있었다.

‘그러고 보니 저 할버드!’

성윤의 네 가지 무기에 대해서는 진수도 알고 있었다.

뇌전의 검, 독의 도끼, 폭발의 망치, 그리고….

‘회복의 할버드!’

자신의 팔의 절반을 베어버리며 회복한 게 분명했다.

“큭큭큭! 계획이 꼬였구나. 당황하는 모습이 일품인데?”

“당신은 닥치고 있어!”

“성질은….”

어느새 이동한 건지 벽에 등까지 기대고 편안한 자세로 전투를 보고 있던 현우가 진수가 당황하는 모습을 보고 낄낄댔다.

“조심해라. 그러다가 나이트가 모두 회복해버릴지도 모르니까. 네 덕분에 말이야.”

“닥치라고 했어!”

“아, 그럼 죽일 때는 편안하게 보내주려나? 회복 방법이 끊긴 나이트에게 친히 몸을 내줘서 회복시켜줬으니까. 만약 인류가 이긴다면 너는 나이트를 도와준 기특한 적으로 교과서에 실릴 수도 있겠다.”

“닥치라고오오오!”

진수가 현우의 빈정거림을 뿌리치려는 듯 다시 튀어 나갔다.

“고작해야 다리 좀 좋아졌다고 해서!”

이번엔 바로 창날을 찔러 넣지 않았다. 창대를 최대한 길게 잡고 크게 휘둘렀다.

터엉!

성윤이 방패를 들어 창대를 튕겨냈다. 그때, 오히려 진수가 창에서 손을 놨다.

성윤의 방패를 스쳐 지나 성윤에게 가깝게 붙었다. 주먹을 꽉 쥐었다.

“죽어어어!”

진수의 주먹이 성윤의 얼굴을 향해 날아갔다.

휘익!

하지만 진수의 주먹은 허공을 갈랐다. 성윤이 목을 꺾어 간단히 주먹을 피한 것이다.

퍼억! 퍼억!

오히려 성윤의 주먹이 연달아 진수의 투구를 가격했다. 투구가 찌그러지며 진수의 의식이 한 순간 날아갔다.

카드득!

“아아아아아악!”

하지만 곧 타는 듯한 통증에 의식이 돌아 왔다.

“으으으으!”

할버드의 도끼날이 어깨에 틀어박혀 있었다.

급히 도끼날을 빼고 다시 뒤로 물러나 회복 마법을 사용했다.

어깨의 상처는 물론 주먹에 얻어맞아 생긴 얼굴의 상처도 순식간에 아물었다.

“후우!”

통증이 사라지자 진수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이었다.

‘저 다 죽어가는 새끼 하나한테!’

절로 이가 갈렸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바닥을 보이지 않는 자존심이 성윤을 비웃게도 했다.

‘흥! 멍청한 자식. 지금 계속 공격을 했다면 이길 수 있었을 텐데.’

바보 같은 판단을 한 성윤의 꼴을 보려 진수는 고개를 들었다.

성윤은 조금 떨어진 곳에서 진수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그를 관찰하는 듯이.

“다 끝났나?”

“뭐?”

“회복은 다 끝났냐고 물었다.”

적의 몸을 걱정해주다니. 성윤은 그 별명처럼 고결한 마음을 가진 사람인 것일까.

‘그럴 리가 없지!’

성윤의 뜻을 알아차린 진수의 속이 분노로 들끓었다.

갑자기 커다란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현우가 웃고 있었다.

상처와 고통 때문에 웃음 사이사이로 신음이 섞이긴 했지만 웃음을 멈출 수 없는 것 같았다.

“하하, 큭! 하하하하! 완전히 회복약 취급을 받고 있잖아, 김진수!”

‘젠장! 저것부터 죽일까!’

다 죽어가는 반시체 주제에 아까부터 계속 성질을 긁어대고 있다. 하지만 성윤이란 적을 두고 현우를 공격하는 틈을 보일 순 없었다.

그러나 성윤도 고작 진수를 놀리기 위해 이런 번거로운 짓을 하는 게 아니었다.

‘회복 방법이 이것밖에 없어.’

성윤의 회복 젬은 이미 잔량을 다 했다.

현우를 죽인 후에 젬을 강탈할까 생각도 해 봤지만 현우는 이번 전투에서 자체 회복을 하고 있었다. 회복의 젬을 갖고 있다는 보장이 없다.

‘게다가 김진수 이놈은 젬을 폭주시켰고.’

기습을 할 때 보다 더 성공률을 높이기 위해 모든 젬들을 폭주시킨 모양이다.

아까 다이아 젬을 보여줄 때, 녀석의 젬이 보통의 젬보다 더 강렬하게 빛나는 것을 보았다.

혹시 이 뒤에 또 전투가 있을지 모른다. 웬만하면 몸 상태는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고 싶었다.

‘어쩔 수 없지. 계속 이런 식으로 상처를 회복할 수밖에.’

그러며 성윤은 진수를 쳐다봤다.

‘다행히 저놈은 약하니까.’

진수가 들었다면 길길이 날뛸 말을 성윤은 속으로 태연스레 중얼거렸다.

“아아아아악!”

이젠 독기밖에 남지 않은 목소리로 진수가 달려든다. 마치 짐승 같았다.

입에 침을 튀기며 전략도 전술도 없이 무조건 돌진을 할 뿐. 오로지 성윤에게 창을 꽂아 넣겠다는 일념뿐이었다.

하지만 조심스럽게 작전을 짜서 덤벼들어도 승산이 희박한 판에 미친개처럼 달려들어 봤자 성윤의 먹잇감이 될 뿐이다.

성윤은 진수를 천천히 옭아매갔다.

“젠장! 젠장!”

진수는 또다시 생긴 상처를 치료했다.

그의 치유의 젬도 서서히 잔량이 떨어져 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에 비해 성윤은 오히려 멀쩡해져 있었다.

마지막 상처가 남아 있던 왼손을 살펴보던 성윤이 만족스럽게 상처가 있던 부위를 탁 쳤다. 그의 피부는 평소처럼 매끄러워져 있었다.

‘상처는 모두 치료했어. 몸 상태도 최상이야.’

그 말은 곧 진수의 효용이 끝났다는 소리다.

스윽!

성윤이 할버드를 역소환했다. 그리고 검과 방패를 들었다.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진수도 알았다.

“으으으!”

아까 같은 자신감은 흔적도 없다. 성윤이 접근하자 그에 맞춰 한발 한발 뒤로 물러났다.

그 행동에서 진수가 그토록 원하던 특별함이란 일절 찾아볼 수 없었다.

“끝낼 건가?”

“더 이상 시간을 끌 이유가 없습니다.”

현우에게 냉정하게 대답하고 성윤은 진수에게 검을 겨눴다.

“으, 으아아아아아!”

마지막 발악. 딱 그것이었다.

진수가 창을 내질렀다. 젖 먹던 힘까지 낸다는 표현이 어떻게 나왔는지를 완벽하게 보여주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의 창은 성윤의 방패에 너무도 쉽사리 튕겨나갔다.

서걱!

성윤의 검이 깔끔한 궤적을 그렸다. 진수의 목에서 피가 튀었다.

“컥!”

목이 베어져 피가 입 안으로 역류한다. 상처를 타고 넘어 온 번개가 온 몸을 헤집었다.

“끄어어어!”

역류한 피, 내부가 타 뿜어지는 연기, 뭔지 모를 신음이 불규칙적인 3중주가 되어 진수의 입에서 튀어 나온다.

생기가 빠져 나가기 시작한 그의 눈이 성윤을 잠시 응시했다.

쿵!

진수의 몸이 썩은 나무토막처럼 쓰러졌다.

“끝났군.”

현우가 말했다.

“…이 사람은 어째서 이렇게 됐습니까?”

성윤의 뇌리에 방금 진수가 남긴 눈빛이 어른거렸다.

생애의 마지막으로 남긴 눈빛. 하지만 그 순간에도 진수의 눈에는 분노와 질투가 우글거렸다.

“나랑 비슷하지만 더 안 좋은 케이스야. 1세대 연결자로서조차 각성하지 못한 나. 그렇게 보면 되네.”

그래서 진수가 그리 나대도 현우가 많이 참아준 것이다.

진수를 보는 현우의 눈에 씁쓰름한 동정이 어렸다.

“뭐, 안타깝긴 해도 그건 녀석의 사정이지.”

현우의 말이 맞았다. 진수는 세계를 배신한 배신자다. 그 과거에 동정할 순 있어도 용납할 순 없다.

진수의 시체를 물끄러미 응시하던 성윤이 곧 시선을 현우에게 돌렸다.

‘끝내야겠군.’

아무리 현우가 멀쩡히 탑으로 이동시켰다고 했지만 그래도 동료들의 안위가 걱정됐다. 거기에 그레노이드에 대해서도 대비해야 했다.

성윤은 검을 고쳐 쥐고 현우에게 다가갔다.

“끝낼 생각인가?”

“마지막으로 묻습니다만, 같이 지구로 돌아가 법의 심판을 받을 생각은 있습니까?”

“또 그 소린가? 내 감정은 여전히 그대로야. 지구나 인류에 대해 죄책감 같은 건 전혀 없어. 무엇보다 지금 난 지구까지 가지도 못하네. 진수 녀석의 말대로 심장이 완전히 박살났거든. 난 얼마 못 가.”

성윤의 얼굴에 고민의 빛이 흘렀다.

“고민할 시간이 있는가? 자네는 한시가 급할 텐데? 자네보다 나이 먹은 자로서 충고하건데, 일의 우선순위를 헷갈리지 말게. 지금 자네가 할 일은 내 젬을 가지고 가 최대한 빨리 대책을 세우는 걸세. 아, 참고로 내 젬은 내가 죽어야 빠지네.”

그 말이 성윤이 결심을 굳히게 만들었다.

현우의 젬, 정확히는 현우의 보관의 젬이 필요하다.

성윤이 현우를 향해 검을 들이 댔다.

“당신의 죽음을 기다리기엔 시간이 없군요.”

“그래. 그래야지.”

죽음이 코앞에 다가왔음에도 현우는 전혀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었다. 오히려 기꺼워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마지막으로 할 말은 있습니까?”

“없어. 유일하게 아쉬운 건 1세대인 자네가 구한 세계를 보지 못하고 죽는 거다만, 그건 어쩔 수 없지.”

“세상을 구한다 해도 제 힘으로만 구한 게 아닙니다.”

“하지만 가장 큰 역할을 한 건 자네야. 이제 1세대를 무시할 인간은 구제할 도리가 없는 멍청한 놈들 이외에는 없겠지.”

그건 현우가 그토록 바라고 기대하던 세상이었다.

“1세대를 조롱한 놈들을 역으로 있는 실컷 조롱하고 비웃고 싶었네만, 그건 자네에게 맡기겠네.”

“안 합니다.”

“그럼 어쩔 수 없고.”

성윤의 검이 올라갔다

“탑의 이 폐쇄 공간은 내가 죽으면 풀릴 걸세. 내려가서 동료들과 합류하게나.”

성윤은 마지막으로 현우를 내려다봤다.

괴물처럼 뒤틀리고 변형된 얼굴에는, 얄미울 정도로 평온한 미소가 떠 있었다.

“잘 가십시오.”

“잘 있게나.”

담백하기 그지없는 대화가 오가고, 성윤의 검이 떨어졌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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