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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미궁-341화 (341/354)

제341화

현우에게서 들린 소리를 통해, 그가 인간 외의 무엇인가로 변하고 있다는 건 어렴풋이 예상하고 있었다.

하지만 예상보다 현우의 모습은 끔찍했다.

피부는 검붉은 색으로 변해있고 흉측한, 신경인지 핏줄인지 모를 것이 불거져 있었다.

안 그래도 두꺼웠던 근육은 이제는 아예 인간을 초월할 정도로 팽창해 있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부족한지 근육은 계속해서 부풀었다.

콰직!

현우의 디바이스가 팽창하는 근육을 견디지 못하고 부서져 땅바닥에 떨어졌다.

가장 많이 변한 건 얼굴이었다. 모발을 포함해 모든 털이 빠졌고 뾰족해진 이가 그대로 돌출되었다.

코는 주저앉고 광대가 툭 튀어나온 데 비해 뺨은 훅 들어갔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몬스터처럼 살기 가득하게 빛나는 붉은 눈이었다.

“…어떻게 된 겁니까?”

“아, 이 모습 말인가.”

누가 봐도 비명을 지를 것 같은 모습이었지만 현우는 괘념치 않았다. 오히려 마음에 든 듯 자신의 변형된 손을 쳐다봤다.

“아무래도 최고위의 연결자가 된데다 왕족의 젬까지 얻은 자네를 상대하기엔 내 힘이 미치지 못하는 것 같아서 말이야. 나도 조금 파워업을 했네.”

현우는 단순한 파워업이라고 했지만 고작 그걸로 끝날 일이 아니다.

성윤은 본능적으로 알았다.

현우는 지금 인간을 확실하게 버렸다.

“그렇게 인류에게 복수를 하고 싶었습니까? 자신의 몸마저 버릴 정도로?”

지금까지 현우의 말을 들은 성윤은 그렇게 생각했다. 현우가 인류에게 복수를 하고 싶다고.

하지만 아니었다. 그 괴물 같은 얼굴에도 감정이 뚜렷이 나타날 정도로 현우는 성윤의 의견을 부정했다.

“아니야. 잘못 짚었네. 아니, 분명 그런 감정이 있는 건 부정하지 않아. 내가 그레노이드 측으로 돌아선 건 분명 인류, 정확히는 연결자 사회와 그 연결자 사회를 만들어내고 유지하는 인류에 대한 분노 그 자체 때문이었지. 지금이라도 인류가 멸망하는 꼴은 보고 싶어. 다만 그 때문에 인간을 버린 건 아니야.”

“그것 때문이 아니다?”

“그러고 보니 얘기가 끊겼었군.”

현우는 아까의 이야기를 계속 이었다.

“그래, 정범이의 그 빌어먹을 발언까지 얘기했었지? 자네는 1세대로서 그 발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기분이 좋지는 않죠.”

한정범이 1세대 차별주의자라던 건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래도 직접 그런 말을 들으면 속이 안 좋을 것이다.

현우는 웃었다. 자신의 심정을 알아주는 이가 있다는 유쾌한 감정이 뿜어났다.

“내가 예전에 말했었지? 만약 정범이가 살아 있다면 자네와 지민이의 결혼은 무척이나 힘들었을 거라고. 솔직히 자네가 지민이랑 결혼했을 때 정말로 유쾌했네. 정범이가 저승에서라도 들으면 인상을 찌푸릴 게 뻔하니까.”

친구가 골탕 먹은 이야기를 들으며 낄낄거리는 악우 같다.

하지만 성윤이 들은 얘기로 보면 이미 두 사람은 친구 같은 관계가 아니었다. 적어도 현우에게 있어서는.

“그날 이후로 나는 정범이에 대한 모든 기대를 놔버렸지. 그 즈음이었다. 우리가 플래노트의 자손을 만난 건 말이야.”

그건 연결자, 달을 넘어서 지구의 미래마저 바꿔버릴 수 있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아마 자세한 얘기는 플루엘에게서 들었을 테지. 맞아. 당시 플래노트의 자손들은 우리와 협력하려 했지만 우리는 탐탁지 않아했어. 그들의 허무맹랑한 전설을 믿을 근거도 없었거니와 사업에 방해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거든. 하지만 정범이를 포함한 소수의 사람은 플래노트의 자손들을 믿었어. 그들을 지구에 소개하고 자신들과 동등하게 대우해야 한다고 했지. 웃기지 않나? 1세대는 그렇게 무시하던 놈이 이제 막 만난 자들을 그렇게 대우하다니 말이야.”

그때쯤 정범에 대한 현우의 감정은 이미 분노밖에 남지 않았다.

“그 즈음이었네. 그레노이드 측이 나와 접촉한 게.”

당시에 현우를 스카우트 하러 우두고스가 직접 왔었다.

“놈들은 앞으로 있을 싸움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해 지구 측의 정보를 갖고 싶어 했어. 그런 놈들에게 나란 존재는 딱 알맞은 인물이었겠지. 놈은 이미 내 증오를 알고 있었거든. 뒤는 예상대로네. 나는 스파이가 돼서 정범이를 죽이고 플래노트의 자손들을 대미궁 아래로 내쫓았으며 지구에 진실을 숨겼지.”

현우의 과거는 거기서 끝이었다.

“감상은 어떤가?”

“…일단 당신의 처지에는 동정을 표합니다.”

딱 그뿐이었다.

“그래도 자신의 불행을 이유로 다른 이들까지 불행하게 만들 자격은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지구를 위해, 인류를 위해, 라는 거창한 명분보다 성윤에게는 지금 말할 이유가 더 중요했다.

“당신 때문에 신혜까지 불행해지는 건 절대로 용납할 수 없어!”

성윤이 검을 쥐어 현우에게 달려들었다.

“하하하하! 좋아! 그래야지! 괜히 동정한답시고 불쌍한 눈초리로 보는 것보다는 훨씬 나아! 역시 자네는 내 마음에 쏙 드는 존재야!”

덥석!

현우가 한껏 길어진 팔을 뻗어 땅에 떨어진 디바이스의 파편을 잡았다. 그리고 입에 털어 넣었다.

고철로 변한 디바이스의 파편과 함께 젬들이 그의 목구멍으로 넘어갔다.

우드드드득!

현우의 몸이 다시 변했다. 우둘투둘 흉측했던 피부 아래에서 매끈한 갑옷이 비늘처럼 도출됐다.

오른손이 뒤틀리며 그가 가지고 있던 플랑베르주처럼 변했고, 등에는 그의 방패였던 날아다니는 판들이 돋아났다.

우우웅!

마지막엔 핏빛 빛덩이들이 그의 전신에서 뿜어졌다.

“크아아아아아아!”

현우가 괴물처럼 괴성을 질렀다.

‘젬을 흡수했어?’

인간을 포기한 것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은 것일까.

현우의 새빨간 눈이 성윤을 노려봤다.

콰앙!

고작 이동하기 위해 땅을 박찬 것만으로도 폭탄이 터지는 소리가 난다.

현우의 플랑베르주로 변한 손이 공간 자체를 절단할 기세로 날아 왔다.

성윤의 눈으로도 흐릿하게밖에 보이지 않는 그런 공격이었다.

콰아아아앙!

성윤이 가까스로 방패를 플랑베르주의 앞에 갖다 놓는데 성공했다.

“크으으윽!”

몸이 두 동강나는 건 막을 수 있어도 충격을 막을 순 없었다.

성윤의 발이 바닥에서 떨어졌다.

콰아앙!

성윤이 튕겨나가기도 전에 플랑베르주가 방패를 한 번 더 가격했다.

쾅! 쾅! 쾅!

두 번. 세 번. 네 번. 미치도록 빠른 속도. 현우의 공격은 제대로 쓰러질 틈조차 주지 않는다.

쿠우웅!

성윤은 바닥에 아무렇게나 구겨졌다.

방패를 들고 있던 손을 부여잡았다. 무척이나 저렸다.

고개를 돌리자 놓친 방패가 그와 조금 떨어진 곳에 아무렇게나 처박혀 있는 모습이 보였다.

“한눈 팔 새가 있나?”

섬뜩!

바로 앞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성윤은 바로 방패를 역소환시켰다. 그리고 자신의 앞에 다시 불러냈다.

콰앙!

간신히 막았다. 플랑베르주가 방패를 긁어대며 으르렁거린다.

‘젠장! 자세가 안 좋아!’

성윤은 입술을 깨물었다.

등을 땅에 대고 방패를 올려 막는 형국이다.

반대로 현우는 오만하게 서서 플랑베르주로 방패를 내리누르고 있었다.

‘일단은 탈출을 해야…!’

펄럭!

성윤의 망토가 날개로 변했다. 성윤의 몸이 움직이려 할 때였다.

“어딜 가려고!”

쿠웅!

현우의 공격을 빠져나가려던 성윤의 몸이 빙글 돌았다.

땅에 몸이 질질 끌리며 거친 쇳소리가 터졌다. 현우가 성윤의 날개 하나를 짓밟은 것이다.

위로 솟구치던 성윤의 몸이 현우가 밟은 날개를 중심으로 회전하며 내팽개쳐졌다.

콰앙!

“크윽!”

결국 성윤은 탈출하지 못했다. 날개의 추진력이 역으로 성윤을 다시 땅바닥에 메다꽂았다. 정신이 혼미해졌다.

“조심하게.”

현우의 목소리가 마치 저 멀리서 웅성대는 것처럼 현실성 없이 들린다.

“날 실망시키지 마.”

후웅!

성윤의 목으로 플랑베르주가 떨어졌다.

콰앙!

당장이라도 성윤의 목을 떨어뜨릴 것 같았던 공격이 막혔다. 게다가 아까 방패 하나만 들고 태풍에 휘말린 가랑잎처럼 이리 날리고 저리 내팽개쳐질 때의 힘이 아니었다.

현우의 플랑베르주를 막고 있는 성윤의 검은 묵직했다. 현우가 아까와는 달리 일방적으로 밀어붙이지 못할 정도로.

“큭큭!”

자신의 공격이 막혔음에도 현우의 괴물 같은 입가에는 미소가 맺혔다.

“그래! 이래야지! 영웅 우성윤은 이래야지!”

퍼억!

성윤이 현우의 복부를 걷어찼다. 비늘처럼 돋아난 갑옷 덕에 크게 대미지를 입진 않았지만 현우를 물러나게 하는 데에는 충분했다.

성윤이 비틀비틀 일어섰다.

휙! 휙!

고개를 세차게 저어 정신을 붙든다. 아직까지 살짝 풀려있던 눈에 초점이 제대로 돌아왔다.

‘이건…!’

성윤은 자신의 몸에 흐르는 힘을 느꼈다.

‘마력의 근원!’

그것도 왕족의 젬에서 나오는 미약한 것이 아니었다.

“인간을 그만뒀다고는 생각했지만, 간부와 비슷한 존재가 된 겁니까?”

그건 간부들을 앞에 뒀을 때의 느꼈던 힘의 흐름이었다.

“크흐흐! 아무래도 자네를 상대하려면 이 정도로 공을 들여야지. 지구를 구할 영웅을 상대하는 게 아닌가.”

“영웅, 영웅. 귀에 딱지가 앉겠습니다.”

하지만 다행인 일이었다. 몸에 흐르는 이 힘이 있다면 지금처럼 일방적으로 당하지는 않을 것이다.

“딱지가 앉아도 상관없어. 자네의 운명은 둘 중 하나야. 여기서 나한테 죽던가, 아니면 나를 넘고 그레노이드조차 죽여서 지구의 영웅이 되든가.”

“왜 그렇게 제가 영웅이 되는 일에 집착하는 겁니까?”

여기까지 오면 성윤도 알 수 있었다. 지금 현우의 목적은 인류의 파멸 따위가 아니다. 복수도 아니다.

성윤의 ‘영웅화’. 그것이 목적이었다.

히죽!

현우가 웃었다.

“1세대는 다른 세대의 연결자들에 비해 쓸모가 없다. 모두가 그렇게 생각해왔다. 나도 그렇고. 그런데 내가 안 진실은 전혀 다른 것이었지. 이젠 자네도 알지? 진짜 재능 있는 자들은 우리 1세대였다는 것을.”

성윤은 예전 플루엘이 해줬던 얘기를 떠올렸다.

“몸과 재능의 부조화. 그 빌어먹을 것 때문에 우리는 언제나 푸대접을 받았지. 웃기지 않나? 우리 덕에 좋은 신체를 타고난 저능한 것들이 감히 우리를 무시하고 있어. 하지만 그 누가 뭐래도 진짜 타고난 재능을 가진 자들은 우리들이야. 거기서 생각을 했지.”

쿵! 쿵!

현우가 천천히 성윤에게 다가가기 시작했다.

“나는 이 세계가 끝장나길 바라. 하지만 만약 이 세계가 구원을 받는다면!”

현우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건 우리 1세대의 손에 의해 구원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그건 온갖 이유로 뒤틀려버린 망집이었다.

“감히 우리를 무시하던 놈들이 범접조차 하지 못할 위업! 지금 연결자들의 주류인 2, 3세대! 조금씩 나타나기 시작한 4세대! 앞으로 태어날 5세대 이후의 연결자들까지! 그 누구도 감히 부정하지 못할 절대의 위업! 그 위업을 완수한 영웅! 그건 오로지 1세대 연결자의 것이어야 해!”

“…그래서 선택한 게 저입니까?”

“그래! 자네는 내가 꿈에서나 생각했던 존재 그 자체였다! 1세대이면서도 강력하기 이를 데 없는 연결자! 자네가 아니면 누가 이 세상을 구해내겠나!”

현우는 철저하게 성윤을 자신의 이상을 구현할 체현자로서 봤다.

“무기를 들어라, 우성윤! 나를 죽이고 그레노이드를 죽여서 세계에 이름을 떨쳐라! 그리고 다른 이들에게 알려라! 진정 뛰어난 자는 우리 1세대라고!”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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