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달의 미궁-339화 (339/354)

제339화

“…당신은 자살 지원자였습니까?”

알지 못하는 이유 때문에 스스로 자살을 할 수 없어 성윤의 손에 의해 자살을 시도하는 걸까?

“아니면 영웅에게 퇴치되는 악당이 되고 싶은 과대망상증 환자라도 됩니까?”

성윤 보고 영웅, 영웅 노래를 부른 걸 본다면, 어처구니없지만 그런 케이스일지도 모른다.

상식적으로 판단하면 말도 안 되는 이유였지만 인류를 배신한 이후 선보인 그의 행적은 무척이나 이상했다.

그렇기에 혹, 그런 이유가 있다 해도 미심쩍을지언정 납득은 할 수 있었다.

“하하하! 그것도 괜찮은데!”

껄껄 웃으며 현우가 다시 덤벼들었다. 플랑베르주가 날카롭게 선을 그었고 날아다니는 철판들이 성윤의 신경을 계속해서 자극했다.

쾅! 쾅!

성윤도 맞상대 했다.

플랑베르주는 방패로 막거나 다른 무기로 흘렸으며 여러 무기를 바꿔가며 연신 현우의 방패를 때렸다.

‘이거 무척 거슬리는군.’

현우를 감싸고 있는 푸른 빛덩이.

현우가 공격을 할 때는 플랑베르주에 휘감겨 위력을 높였고 성윤이 현우를 공격할 때는 방어막처럼 공격의 위력을 죽였다.

공방일체. 그 말이 무척이나 잘 어울리는 능력이었다.

‘하지만!’

성윤은 도끼를 쥐어 휘둘렀다. 현우의 방패가 도끼 앞으로 움직였다.

카아앙!

예상대로 현우의 움직이는 방패는 성윤의 공격을 막았다. 하지만 자세히 살피면 제대로 막은 게 아니었다.

방패 중앙 부위로 성윤의 공격을 안정적으로 받아들인 것이 아닌, 방패 가장자리로 간신히 막고 있었다.

힘을 제대로 받지 못해 기우뚱 흔들린 건 덤이었다.

성윤의 공격 속도에 제대로 반응하지 못한 것이다.

가능성이 보이자 성윤의 공격이 한층 가열차졌다. 점점 방패가 따라오지 못했다.

후웅!

결국 방패가 따라잡지 못한 할버드의 창날이 현우의 얼굴 옆을 스쳤다.

“흡!”

그대로 할버드를 옆으로 그었다. 할버드의 도끼날이 날카롭게 현우의 얼굴을 노렸다.

쿠웅!

‘역시 욕심이었나.’

할버드의 도끼를 가로막은 방패를 보고 성윤은 혀를 찼다.

방패의 반응 속도를 뚫고 현우의 머리 부분에 창날을 날리는 데는 성공했지만 역시 연속 공격까지 당해주진 않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이번 공방으로 누가 우세인지는 뚜렷이 드러났다.

“크윽!”

현우의 입에서 신음이 흘러 나왔다. 그의 손이 어지러워졌다.

플랑베르주는 여전히 날카롭게 성윤을 베어들어 갔지만 그의 공격이 성윤의 방패를 뚫는 경우는 없었다.

그에 비해 성윤의 공격은 점점 방패를 피해 현우의 몸에 타격을 입혀갔다.

날아다니는 방패의 반응 속도보다 빠르게 휘둘러진 망치가 현우의 어깨 갑옷을 두들겼다.

콰아앙!

폭발이 일었다. 날아다니는 방패가 흔들거렸고 갑옷에 시꺼먼 그을음이 묻었다.

갑옷에 미세하게 금이 갔다. 하지만 당장 현우에게 급박한 일은 따로 있었다.

휘청!

폭발에 다리가 휘청거렸다. 자세가 무너져 검이 허공을 휘저었다.

그 찬스를 성윤이 놓칠 리 없었다.

후우우웅!

방패를 역소환하고 할버드를 두 손으로 잡아 크게 휘두른다. 섬뜩한 도끼날이 창백한 빛을 뿌렸다.

날아다니는 방패들이 앞을 가로막기도 전에 도끼가 현우를 사정권 안에 잡았다.

콰앙!

현우가 간신히 플랑베르주를 들어 공격을 막았다. 하지만 도끼날은 막을 수 있을지라도 할버드에 실린 힘까지 없앨 수는 없는 노릇.

쿠웅!

자세가 무너진 마당에 거센 성윤의 공격을 정면으로 받았으니 그 힘에 휘말릴 수밖에 없다.

현우는 땅바닥에 데굴데굴 굴렀다.

후웅!

성윤의 반응은 빨랐다. 굴러가는 현우에게 할버드를 던졌다.

현우의 방패가 급히 할버드를 튕겨냈다. 하지만 그 순간 성윤은 이미 현우의 근처에 접근해 있었다.

성윤의 등에 펼쳐진 하얀 날개가 펄럭였다.

콰아앙!

도끼를 내리찍었다. 검을 찔렀다. 망치를 휘둘렀다. 할버드까지 찔러 넣었다.

카아앙!

마지막 할버드는 방패에 막혔다.

하지만 이미 정타만 세 방이 들어갔다.

그것도 제대로 반응하지 못하는 몸뚱이를 향해 전력으로 내리친 일격들이었다.

쿠웅!

짧은 시간에 집중된 연속 공격에 현우의 몸이 종잇장처럼 휘날려 벽에 충돌했다.

“쿨럭!”

간신히 나동그라지지 않았다. 벽에 등을 붙여 주저앉은 현우가 기침을 토했다.

피를 토할 정도로 무겁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기침 몇 번으로 훌훌 털어내고 일어날 정도로 가벼운 공격도 아니다.

“큭! 그 짧은 시간 안에 이 정도까지 실력 차이가 났나.”

현우는 한 발 늦게 자신의 주변으로 날아오는 방패들 뒤로 저벅저벅 다가오는 성윤을 쳐다봤다.

둘의 젬은 기본적으로 별 차이가 나지 않았다.

둘 다 주력으로 사용하고 있는 젬은 쥬얼 2등급 사파이어 랭크의 젬. 그리고 둘 다 인체 젬을 이용해 능력을 증폭하고 있었다.

차이라면 성윤이 갖고 있는 왕족의 젬과 현우가 갖고 있는 다이아 젬 정도였다.

그리고 둘 중 어느 쪽이 우위를 갖냐고 묻는다면, 아무래도 왕족의 젬에 손을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그 차이로 인해 지금 현우는 완벽하게 성윤에게 밀리고 있었다.

턱!

성윤은 현우의 앞에 발을 멈췄다.

“뭐냐? 끝을 내지 않는 거냐?”

“싸우겠다고 한 현우 씨가 이렇게 쉽게 항복을 선언할 리는 없겠죠. 뭔가 믿을 만한 구석이 있으니 그렇게 여유를 부리고 있는 것 아닙니까?”

“큭큭큭큭!”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 미묘한 웃음소리. 하지만 성윤은 그걸 자신의 말에 대한 긍정으로 받아들였다.

“…이제 그만하지 않겠습니까?”

성윤이 말했다.

웃던 현우가 물끄러미 성윤을 바라봤다.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모습이었다.

“이대로 저한테 체포돼서 지구로 귀환하지 않겠냐는 말입니다.”

“어처구니없는 소리를 하는군.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게다가 자네 아내를 생각하면 더더욱 그러면 안 되지. 지민이의 아버지, 자네의 장인을 죽인 건 나야.”

“압니다. 당신은 장인어른을 죽였습니다. 인류도 속였죠. 많은 사람들이 당신이 한 배신 때문에 죽었습니다. 당신은 변명할 여지도 없는 배신자입니다.”

지구에서 현우를 산 채로 찢어죽이고 싶어 하는 사람이 최소한 한 트럭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이유가 어찌 됐건 당신이 제게 도움을 줬던 것도 사실입니다.”

정범이 오로지 지민의 재력 하나만 믿고 맨땅에 해당하는 식으로 세워진, 그것도 이미 거하게 사기까지 당했던 회사인 터라 성윤에게는 대단한 지원을 해주지 못했다.

그렇게 오로지 자신의 능력만을 키 삼아 미궁을 공략하고 있을 때, 몬스터 사냥을 봐주거나 고위 젬을 내주는 등 이런 저런 도움을 줬던 게 현우다.

“돌아가서 당신이 왜 인류를 배신했는지, 왜 장인어른을 죽였는지를 전부 털어놓으세요. 그러고 죗값을 치르세요. 물론 당신이 살아남을 확률은 적겠죠.”

성윤이 아무리 생각해도 현우가 저지른 짓은 사형 미만의 구형이 나오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당신이 ‘인간’으로서 생을 마칠 마지막 기회입니다.”

성윤의 말이 끝났다.

현우는 입을 열지 않았다. 그는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크!”

현우의 다물린 입술 사이로 조그만 소리가 새어 나왔다.

성대를 일부러 거칠게 긁어내는 것 같은 소리.

한쪽 입꼬리가 쭈욱 올라간 모양새가 적어도 성윤에게 긍정하는 말을 내뱉으려는 것 같진 않았다.

“크흐흐흐흐흐!”

억눌리고 비틀린 웃음이 나왔다. 얌전히 지구로 내려가 법의 심판을 받을 것 같지는 않았다.

성윤은 한숨 쉬며 무기를 부여잡은 손에 힘을 줬다.

“크흐흐흐흐흐! 웃기는, 아주 웃기는 소리였어. 그리고 불쾌한 소리이기도 해.”

현우가 스윽 일어섰다. 몸이 흔들거리는 폼이 마치 정신을 놓은 사람 같았다.

하지만 그의 눈에 타오르는 불꽃 같은 심령은 전혀 흔들리지 않고 있었다.

“이봐, 성윤. 내 예전 얘기를 들려줄까?”

현우의 말투가 부드러워졌다. 호칭도 성을 빼고 이름만 불러 더욱 친근감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 목소리에는 분명 차갑기도 하고 뜨겁기도 한 광기가 어려 있었다.

“혹시 내 어머니를 아나?”

“예전에 한 번 뵀었습니다.”

“그래? 그건 의외로군. 자네와 내 어머니와의 접점은 없었을 텐데?”

“예전에 한 번 그분이 시장실로 찾아 온 적이 있었습니다.”

“알 만하군. 내 재산이 목적이었겠지.”

성윤은 대답하지 않았다.

아무리 전 아내와 비슷한, 성윤이 끔찍하게 싫어하는 부류의 존재라고 해도 잘 모르는 사람에 대해 험담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성윤의 침묵은 무엇보다도 강한 긍정이었다.

현우의 몸에 흔들림이 멎었다. 그가 고개를 들었다.

“그럼 내 어머니와 나의 과거에 대해서도 알고 있나?”

“당신의 어머니의 직업이 달에서 활동하던 윤락 여성이라는 것. 그리고 연결자인 자식이 필요해 당신을 낳았다는 것. 그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많이 알고 있군. 그럼 내 아버지가 1세대 연결자라는 것, 그리고 나와 내 형제들이 각성할 낌새가 보이지 않자 우리를 짐덩이로 다뤘던 것도 알고 있나?”

“알고 있습니다.”

“내가 각성하기 전까지 삶이 형편없었다는 것도?”

성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말하기 편하겠군.”

헌우가 고개를 이리저리 흔든다.

아까부터 확실하게 그의 상태는 이상해 보였다.

“그 말은 다음에 기회가 있으면 듣도록 하죠.”

현우가 또 쓸데없는 일을 하려고 하는지도 모른다.

현우의 과거가, 왜 배신하게 됐는지가 궁금하지 않은 것도 아니지만, 지금은 느긋이 현우의 과거 한탄을 들어 줄 여유가 없다.

성윤은 현우에게 달려들었다.

그대로 검을 힘껏 찔러 넣었다. 스치기만 해도 검의 전격 능력이 알아서 현우에게 타격을 줄 것이다.

현우의 방패가 검 앞으로 움직였지만 성윤은 개의치 않았다.

방패의 반응 속도는 자신의 속도를 따라오지 못한다. 검이 막히더라도 2차, 3차 공격을 하면 그만이다.

콰득!

하지만 손에 느껴진 감촉은 방패에 부딪친 감촉도, 갑옷을 가르는 감촉도 아니었다.

“뭐!”

성윤은 자신도 모르게 큰 소리를 냈다.

방패를 떨쳐낼 속도를 내기 위해 전력으로 찔러 넣었던 검이, 현우의 손에 잡혀 있었다.

“자자. 너무 서두르지 말라고. 내 얘기 듣는다면 재밌을 게 분명하다니까!”

퍼억!

현우가 다른 손으로 성윤의 복부를 후려쳤다.

성윤은 방어하지 못했다.

검을 잡힌 충격에 당황한데다가 무엇보다 현우의 속도가 너무 빨랐다.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속도였다.

우당탕탕!

아까와는 다르게 지금은 성윤이 바닥을 굴렀다. 그것도 현우보다 더 심하게.

숨을 쉴 필요가 없는 터라 숨이 막힌다거나 하진 않았다. 그저 무지하게 아팠다.

성윤은 복부에 손을 가져다댔다. 갑옷이 움푹 찌그러져 있는 게 그대로 느껴졌다.

“어디까지 얘기했더라?”

몸을 추스르는 성윤에게 천천히 다가가며 현우가 말을 이었다.

“아, 내 삶이 형편없었다는 얘기까지 했었지.”

마치 손자에게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는 할아버지처럼 현우의 말투는 나긋나긋했다.

하지만 복부에 받은 충격 때문에 귀까지 이상해진 것인지, 성윤은 현우의 목소리에 인간의 것이 아닌 느낌의 소리가 섞이기 시작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건 마치 몬스터가 그렁거리는 소리 같았다.

“어렸을 때는 정말 지옥이었지. 아버지는 없었고 어머니는 항상 달에 나가 있었어. 어쩌다 한 번 집으로 돌아 왔을 때도 항상 술만 퍼먹었지. 그럼 나랑 형제들은 집안 한구석에 숨었어. 벌벌 떨면서 말이야. 우리 어머니란 작자는 항상 술만 퍼먹으면 우리를 때렸거든. 연결자로서 각성도 못 한 쓰레기라고 말이야.”

쿵! 쿵! 쿵!

현우의 발소리가 울린다. 점점 묵직하고 둔중하게.

마치 인간의 발소리가 아닌 것 같았다.

정확히는 아니게 돼 가는 것 같았다. 명백히 사람보다 무게가 훨씬 더 나가는 존재의 걸음 소리였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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