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달의 미궁-337화 (337/354)

제337화

우두고스가 손을 뻗었다.

커다란 뱀의 모양을 한 물줄기가 거세게 뻗어 나갔다.

막대한 수압이 앞에 놓인 모든 걸 부수려 했다.

“흐아아압!”

하지만 팀이 커다랗게 기합을 지르며 내민 방패가 물뱀을 가로막았다.

퍼어엉!

물뱀은 팀의 방패를 뚫지 못했다.

그러기는커녕 기세를 잃고 형태조차 유지하지 못한 채 단순한 물로 변해 사방으로 흩어졌다.

주변이 물바다가 됐지만 그뿐, 팀에게 어떤 타격도 입히지 못했다.

“하하! 이거 할 만한데? 너 정말로 그레노이드의 간부냐? 너무 약하잖아!”

팀이 소리쳤다.

“이거 바깥에서 싸우는 사람들에게 정말로 미안해지네! 그 사람들은 정말로 목숨 걸고 싸우고 있는데, 나는 이런 호구 새끼 만나 편하게 싸움질 하고 있으니!”

물론 팀의 말처럼 우두고스가 정말로 쉬운 상대는 아니었다. 만약 팀이 혼자서 우두고스를 상대했다면 당장에 목숨이 날아갔을 것이다.

하지만 상대가 그 그레노이드의 간부 중 하나라는 걸 생각하면 전투가 무척이나 수월한 것도 사실이었다.

“이, 이놈이이이이!”

우두고스가 소리를 높였다. 분노가 들끓고 감정이 격해진 게 빤히 보였다.

우두고스가 다시 지팡이를 들어 올렸다. 자신을 능멸한 분수를 모르는 미천한 놈을 한시라도 빨리 심판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레이스가 한 발 더 빨랐다.

그레이스의 손에 빛이 나타났다.

빛을 본 순간 우두고스는 반사적으로 움직였다. 아무리 오만한 그라도 그레이스의 빛의 마법은 감히 경시할 수 없었다.

그의 앞에 반투명한 벽이 이십 겹이나 나타났다. 성윤의 젬 발동 속도에 밀리지 않는, 가히 굉장한 속도였다.

‘간간이 나오는 저게 걸리는군.’

성윤이 눈을 찌푸렸다.

우두고스의 마법 시전 속도는 빠르긴 했지만 그렇다고 성윤처럼 바로바로 마법을 쏘아낼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가끔씩, 지금처럼 딜레이가 거의 없이 마법을 시전할 때가 있었다.

그때의 마법은 위력도 평범한 마법보다 훨씬 더 높았다.

‘하지만 뭔가 제약이 있어.’

만약 제약이 없다면 굳이 시간도 오래 걸리고 위력도 낮은 다른 마법을 쓸 필요가 없었다.

번쩍!

그레이스의 손에서 빛줄기가 떠났다.

퍼어어어어어엉!

반투명한 벽 열 세 개가 일순간에 박살났다. 그걸로도 성이 차지 않는지 빛은 계속해서 장벽을 밀어 붙였다.

“크으으으!”

우두고스는 급히 장벽을 몇 개 더 쳤다. 하지만 그것들은 척 봐도 방금 전의 장벽보다는 훨씬 약해보였다.

스으윽!

다행히 빛의 마법은 장벽을 모두 뚫지 못하고 사라졌다. 우두고스가 안심하던 그때였다.

“안심할 여유도 있나 보지?”

콰아아앙!

간신히 남아 있던, 너덜너덜한 장벽 위로 망치가 날아왔다. 커다란 폭발이 간신히 살아남은 장벽을 날려 버렸다.

“크아아악!”

우두고스의 몸이 뒤로 떴다.

성윤은 그대로 우두고스를 따라갔다. 망치와 방패를 집어넣고 할버드를 들었다.

할버드를 쭈욱 뻗었다.

턱!

할버드의 갈고리에 우두고스의 로브가 걸렸다.

성윤은 할버드를 당겼다. 우두고스의 몸에 제동이 걸렸다.

낚싯바늘에 걸린 물고기처럼 속절없이 성윤에게 끌려 왔다. 성윤은 다른 손에 다시 망치를 들었다.

콰아아아아앙!

기분 탓일까. 이번 폭발이 아까보다 더 큰 것 같았다.

우두고스가 아까보다 더 강하게 날아갔다.

녀석이 꼴사납게 땅바닥에 굴렀다. 하지만 끝난 게 아니었다.

그레이스가 날려보낸 불덩이가 날아왔다.

우두고스가 급히 지팡이를 들었다. 또 예의 그 딜레이 없는 마법을 펼치려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한계가 왔군.’

허둥거리는 우두고스의 모습에 성윤은 직감했다.

콰아앙!

불덩이가 우두고스를 직격했다. 방 안에 화끈한 열기가 솟아올랐다.

“휘유우우~!”

팀이 휘파람을 불며 기꺼워했다.

열기가 줄어들고 화염이 꺼졌다. 웬만한 것들은 잿더미가 됐어도 몇 십 번은 됐을 상황.

하지만 우두고스는 살아 있었다.

“저거 아직도 살아 있네?”

팀이 얼굴을 찌푸렸다. 하지만 이내 우두고스의 행색을 보고 찌푸렸던 얼굴을 폈다.

겉모습과는 다르게 상당히 좋은 방어구로 생각된 로브가 불타고 찢겨져 있었다.

지금 우두고스의 모습은 먼지구덩이에 굴러다닌 시궁쥐 그 자체였다.

“끄으으으.”

녀석이 신음했다. 로브 사이로 흉측한 녀석의 몸이 언뜻언뜻 보였다.

“죽진 않았지만….”

팀이 방패를 조금 내렸다.

“더 이상 전투는 못 할 것 같네.”

우두고스는 완벽하게 무력화됐다.

그레노이드의 마지막 간부의 꼴이라고는 믿기지 않은 모습이었다.

“천한… 천한 놈들이이이…!”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계속 ‘천한 놈’들을 되뇌는 우두고스는 비참한 것을 넘어 볼썽사나웠다.

당연히 여기서 그 목소리에 연민을 느끼는 자는 없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저벅! 저벅!

성윤의 발소리가 마치 우두고스의 목숨을 빼앗을 카운트다운 같았다.

“큭큭! 나를 죽이면 지구를 구할 수 있을 성 싶더냐.”

최후의 발악이라도 하는 것일까. 우두고스가 성윤을 비웃었다.

“달을 다시 원래의 궤도로 되돌리겠다고? 그래, 그렇지. 우리도 솔직히 달을 정말 지구에 충돌시킬 생각은 없다. 하지만 네놈들에게 불행하게도 그 방법은 여기에 없어!”

성윤의 발걸음이 멈췄다.

“나를 죽이고 위로 올라간다고 해도 너희들이 원하는 건 찾을 수 없다! 너희들은 목숨 걸고 헛수고를 한 거야!”

그 말은 성윤을 포함해, 이 작전에 관련된 모든 사람들이 우려하는 사실이었다. 그들의 도박이 실패했다는 걸 뜻하기 때문이다.

성윤은 다시 걸음을 옮겼다.

“그건 너를 죽이고 위로 올라가 확인해 보면 될 일이야.”

아직 희망이 꺼진 것은 아니다. 적어도 그의 눈으로 절망을 확인하기 전까지, 희망의 가능성은 계속해서 타오르고 있었다.

성윤의 손에 들린 서슬퍼런 검을 보고 우두고스는 이를 갈았다.

자신은 위대한 그레노이드의 마지막 남은 간부이다. 여기서 이렇게 비참하게 생을 마감하는 건 있을 수 없고 있어서도 안 되는 일이었다.

그랬기에, 우두고스는 성윤 파티를 상대하러 나올 때 코웃음 치며 거절했던 도움을 애타게 부르짖었다.

“성현우! 성현우, 당장 나와라아아아아!”

째진 목소리가 뾰족하게 울린다. 성윤과 파티원들의 경계도가 일제히 올라갔다.

저벅! 저벅!

또 하나의 발소리가 위층에서 계단을 타고 흘러 나왔다.

아까 성윤이 낸 발소리가 카운트다운이라면, 지금 들리는 발소리는 긴장감을 극대화시키는 교향곡 같았다.

“…현우 씨.”

계단을 통해 저벅저벅 내려오는 현우를 보고 성윤이 낮게 뇌까렸다.

“오랜만이로군.”

현우는 푸근한 미소를 지었다. 목숨을 뺐고 뺐기는 상대에게 짓는 것이라기엔 무척이나 친절한 웃음이었다.

“결국 여기까지 왔군그래. 아주 대단해.”

기분 탓일까. 현우의 웃음에 기꺼워하는 기색이 넘쳐났다.

“과연 내가 눈여겨 본….”

“뭘 얘기를 하고 자빠졌어!”

현우의 표정이 순식간에 일그러졌다. 그건 두근대며 생일 선물을 뜯는 아이를 방해했을 때 아이가 짓는 표정과 비슷했다.

하지만 우두고스는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다. 숨넘어가는 목소리로, 하지만 그 더러운 성격을 여지없이 드러내며 계속 외쳤다.

“저 빌어먹을 녀석들을 죽여!”

현우가 못마땅하게 우두고스를 쳐다봤다.

“아까 도와줄까 물었을 때는 이 정도쯤 혼자서 처리할 수 있다고 무시했으면서 이제 와 왈왈 짖어대다니. 품위가 없어도 너무 없는 것 아닌가?”

“뭐…!”

현우의 폭언에 우두고스가 아연해 했다. 하지만 현우는 우두고스에게서 신경을 끄고는 성윤 파티를 둘러 봤다.

아주 느긋하고 여유롭게.

“하지만 확실히.”

현우는 성윤 파티, 정확히는 성윤을 제외한 나머지 세 사람을 쳐다봤다.

“자네들은 필요가 없지.”

딱!

현우가 손가락을 부딪쳤다. 순간 그레이스의 발밑에 원형의 진이 생겼다.

“뭐…!”

그녀가 당황했다.

진은 순식간에 크기를 늘렸다. 그레이스의 곁에 있던 팀과 에밀리마저 진 안에 들어갔다.

마력이 짙어졌다.

“서…!”

그레이스가 성윤을 향해 팔을 뻗었다. 하지만 진의 발동이 먼저였다.

슈욱!

진이 짧게 빛난다 싶더니 팀, 에밀리, 그레이스의 모습이 사라졌다.

남은 건 역할의 특성상 파티원들과 상당히 떨어져 있던 성윤과 쓰러진 우두고스 그리고 현우뿐이었다.

“…무슨 짓을 했습니까?”

성윤이 물었다. 흥분해서 난리를 치진 않는다.

하지만 억눌린 성윤의 어투에서 파티원에 대한 걱정과 파티원들을 말 그대로 ‘없앤’ 현우에 대한 분노가 여실히 드러났다.

“걱정 말게. 그 사람들한테 해를 끼친 건 아니니까.”

반대로 현우는 여전히 느긋했다.

“그저 이 방에서 추방해, 원래 자네들이 있던 탑의 미궁으로 보낸 것뿐이야.”

그 말에 성윤은 조금 마음이 놓였다. 하지만 오히려 경기를 일으킨 자도 있었다.

“네, 네가 어떻게!”

우두고스는 믿을 수 없었다.

자신의 역작이라고 불러도 모자람 없을 탑. 당연히 탑의 기능을 사용할 수 있는 건 우두고스 자신뿐이었다.

하지만 방금 현우는 성윤의 파티원 세 명을 추방하며 자신도 탑의 힘을 다룰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네가 어떻게 탑의 힘을 사용할 수 있는 것이냐!”

뺏겼다. 그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자신만이 사용할 수 있는 힘이 남에게 넘어가 있는 걸 본 순간 자부심이 산산이 부서지는 것 같았다.

너무 크게 소리쳐 상처가 벌어졌다. 하지만 우두고스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상처에 신경을 쓸 겨를이 없었다.

“이 탑을 지을 때 총지휘를 누가 한 건지 잊은 거냐?”

우두고스의 감정실린 고함과 현우의 차분한 음색이 묘한 대조를 이뤘다.

우두고스가 얼이 빠졌다.

“설마 그때 네 녀석이 탑의 설계를 바꿨다고? 웃기지 마라! 나의 역작을 인간 따위가 마음대로 바꿀 수 있을 리가 없다!”

게다가 우두고스는 설계의 변경을 눈치조차 채지 못했다.

현우가 비록 몬스터의 편에 섰다지만 어디까지나 인간이다. 인간을 미천하다 여기며 우월감을 느끼던 우두고스는 절대로 인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인간 따위라…. 네 녀석 다운 말이로군. 그러지 않았다면 탑의 건설을 나에게 맡길 리가 없지.”

탑의 건설을 맡긴 건 현우를 믿어서가 아니다. 건축 같은 천한 일은 인간에게 맡겨도 충분하다는 오만 때문이었다.

그리고 현우가 이상한 짓을 한다면 바로 눈치챌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 때문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게 네 패착이고 말이야.”

“아무리 네 녀석이 탑을 만들었다고 해도 설계를 바꿀 기술을 알 리가 없어!”

우두고스는 계속해서 부정했다.

“이봐. 방법은 네가 가르쳐줬잖아.”

우두고스가 눈을 굴렸다.

“내가?”

“그래. 마법이나, 마법진, 유동하는 마력의 사용법 같은, 플래노트의 자손들은 예전에 잃어버렸던 지식을.”

“설마! 그런 기초적인 것들로 내 설계를 뒤틀었다고!”

“그 외에도 네가 보관해 뒀었던, 플래노트의 책들도 많이 참고했지. 그거면 충분했어.”

현우는 보란 듯이 검지로 자신의 머리를 툭툭 두드렸다.

“내가 좀 천재라서 말이야.”

우두고스는 할 말을 잃었다. 그만큼 현우가 한 짓은 터무니없는 짓이었다.

그러다 문득 한 가지에 더 생각이 미쳤다.

“설마! 저놈들을 이곳에 끌어들인 것도 왕족의 젬 때문이 아니라.”

“내가 그런 거다.”

현우가 시원스레 인정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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