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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미궁-321화 (321/354)

제321화

우주선에서 뛰어내렸지만 지구에서 스카이다이빙을 하는 것처럼 몸이 지면으로 쏜살같이 떨어지는 일은 없었다.

1/6밖에 안 되는 달의 중력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구보다 약하다 해도 중력은 중력. 달은 착실히 연결자들을 끌어 내렸다.

현재 상황은 암스트롱 주변을 몬스터들이 빼곡히 둘러싼 상태. 이런 상황에서 공중 강습은 그다지 좋은 작전이 아니다.

능숙하게 암스트롱 안으로 떨어지면 좋지만 만약 몬스터 진영에 떨어진다면 바로 집중 공격을 받는 것이다.

거기에 지금 연결자들은 낙하산조차 없다.

그나마 원하는 곳에 떨어지게 해 줄 도구조차 없는 상황. 어차피 낙하산이 있어도 대기가 없는 달의 특성상 짐밖에 되지 않는다.

하지만 인류도 바보는 아니다. 믿는 구석이 있었다.

‘거의 다 왔군.’

성윤은 착지를 준비했다. 암스트롱이 있는 달의 지면까지는 아직 한참 남아 있었다.

하지만 성윤을 포함한 연결자들의 목적지는 암스트롱이 아니었다.

성윤은 목적지에 착지했다. 충격은 있었지만 연결자의 튼튼한 신체와 달의 약한 중력 덕분에 버틸 만했다.

체공 시간이 길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럼 이제 내려가볼까.’

그가 착지한 곳은 뒤집힌 쐐기의 위. 마도 도시가 있던 거대한 지반이었다.

고대 문명의 네 개의 특수 도시 중 하나인 만큼 마도 도시는 그 규모가 거대했고, 당연히 그 지반도 엄청나게 컸다.

대부분의 연결자가 어렵지 않게 내려앉을 정도였다.

덕분에 우주선이 위험을 감수하지도 않고, 연결자들이 몬스터들의 진형에 추락하지 않는 이상적인 투입 방법이 나왔다.

그게 낙하산도 주지 않고 맨몸으로 뛰어내리라는 어처구니없는 방법이긴 했지만.

안전하게 내려오기는 했지만 지반에서 바로 탑으로 내려가는 통로는 없다.

연결자들은 조심조심 지반의 옆면을 타고 내려가 쐐기로 뛰었다. 그리고 쐐기를 통해 아래로 내려갔다.

하지만 성윤은 굳이 그런 헛고생을 할 필요가 없었다.

주변에 내려앉은 우상과 우성에게 손짓을 했다.

둘이 따라오자 성윤도 지반의 끝으로 달렸다. 바로 옆으로 암스트롱이 내려다 보였다.

성윤은 우상과 우성의 손을 잡고 암스트롱을 향해 뛰어내렸다.

‘다행히 별일 없이 착지할 수 있겠는데.’

만약 방향이 틀어지면 날개를 사용할 생각이었다.

대부분의 연결자는 쐐기를 이용했지만 성윤처럼 직접적으로 암스트롱에 뛰어 드는 사람도 있었다.

성윤처럼 공중에서 방향을 바꿀 수 있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어디서든 객기에 휩싸인 사람은 있는 법이다.

‘저건.’

성윤은 인상을 찌푸렸다.

쐐기가 받치고 있는 지반에서 뛰어내린 한 사람이 보였다.

문제는 발을 헛디딘 건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인지 그 궤도가 암스트롱과는 한참이나 떨어져 있다는 것이었다.

물론 방향을 바꾸면 그만이다. 암스트롱으로 곧장 향하는 사람들은 공중에서 방향을 바꿀 수 있는 사람이니까.

그러나 아무래도 그 사람은 그런 능력을 갖고 있지 않은 모양이었다. 다급하게 움직이는 손발이 그 증거였다.

‘구하고는 싶지만….’

그러나 성윤은 이미 우상과 우성을 옮기고 있었다.

제 주제도 모르고 조심성 없이 객기를 부린 타인보다 몇 천 배나 소중한 처남들이다. 게다가 도와주고 싶어도 거리도 너무 멀었다.

그가 서서히 몬스터 진영에 가까워진다. 몬스터들도 그를 발견한 모양이다. 그가 착지하리라 짐작되는 곳의 몬스터들의 행동이 거칠어졌다.

그는 결국 몬스터들이 우글거리는 곳에 떨어졌다.

강한 연결자인 듯 그의 필사적인 발악에 꽤 많은 몬스터들이 죽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몬스터의 공격을 몇 번 허용했다. 그리고 그 횟수는 점점 더 많아졌다.

결국 몬스터의 무리 속에 그가 완전히 삼켜지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성윤은 혹시라도 놓칠까 우상과 우성의 손을 꼭 잡고 묵묵히 암스트롱으로 향했다.

그들이 발을 디딘 곳은 널따란 우주 공항 활주로였다.

성윤은 통신기를 켰다. 특수한 통신기로, 통신기의 주인이 누구인지 사령부에서 바로 알 수 있는 물건이었다.

-성윤 씨, 오셨군요!

골전도 통신기에서 들려오는 시장의 음성에는 반가움이 잔뜩 묻어나 있었다.

성윤은 긍정의 의미로 통신기를 한 번 툭 쳤다.

-지금 그레이스 씨는 암스트롱 서쪽에서 전투를 하고 있습니다. 위치를 전송해 드리겠습니다.

성윤은 이번에 배급받은 조그마한 태블릿을 꺼내들었다.

우주 사양으로 달 표면에서도 문제없이 작동하는 것이었다.

통신기와 태블릿. 모두 그레노이드와의 전투에 대비해 달에서 전투를 할 때 사용하도록 지급된 물품들이었다.

성윤은 우상과 우성을 쳐다봤다. 둘도 각각 작전 지역을 배정받은 모양이었다.

셋은 서로에게 손을 한 번씩 들어준 후 자신들이 배정받은 곳으로 달려 나갔다.

***

소리 없는 전쟁. 암스트롱에서 펼쳐지고 있는 전투를 표현하라면 그게 가장 잘 어울릴 것이다.

지구에서 펼쳐지는 전쟁들과는 다르지만, 생존을 위한 필사적인 몸부림은 마찬가지였다.

아니, 싸우는 상대가 상대인 만큼 오히려 더했다.

하지만 그 열기도 각오도 필사적인 행동도 차가운 우주 공간은 침묵으로 묻어버렸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더 참혹해 보이는 것인지도 몰랐다.

성윤이 표시된 곳에 도착했을 때, 그곳의 전황은 상당히 심각한 상태였다. 당장이라도 몬스터에 밀릴 것 같았다.

‘이쪽이 가장 불안하다고 했지.’

남쪽은 러셀이, 동쪽은 브루스가 맡고 있다고 했다.

북쪽도 상당히 강한 연결자들이 포진되어 있어, 상대적으로 서쪽이 가장 불안한 상황이었다.

때마침 성윤과 지원 연결자들이 도착하지 않았다면 다른 쪽에서 병력을 빼 증원했을 거라고 시장은 말했었다.

성윤은 가장 먼저 그레이스를 찾았다. 보급된 태블릿에 그레이스의 위치가 반짝였다.

‘저기 있군.’

그레이스는 지팡이를 들고 전선을 살피고 있었다.

아무래도 마법사들은 마법 횟수가 제한되어 있다 보니 최대한 많은 몬스터를 처리할 수 있는 상황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었다.

그레이스가 지팡이를 들었다.

번쩍!

뇌전이 달 표면을 갈랐다. 모여 있던 몬스터들에게 번개가 떨어졌다. 뇌전은 평소에 그레이스가 즐겨 사용하는 마법이었다.

하지만 위력이 조금 달랐다.

역시 소리가 들리지 않아 몬스터의 비명은 들리지 않는다. 하지만 몬스터의 비명이 얼마나 되던 번개 소리에 묻혀 들리지 않을 거라고 성윤은 확신했다.

몬스터에게 접근해 드잡이질을 하고 있던 연결자들이 분분히 물러섰다. 자칫하다간 번개에 그들까지 말려들 것 같았다.

마법이 멎었다. 번개가 떨어진 곳 주변이 새까맣게 일소되어 있었다.

마법을 시전한 그레이스도 어안이 벙벙한 듯 자신의 지팡이를 쳐다봤다. 그러다 문득 뭔가를 깨달은 모양이다.

고개를 세차게 흔들며 주변을 살폈다.

그녀가 성윤을 발견했다. 그녀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떠올랐다.

성윤은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녀의 입이 방긋댄다.

성윤에게 뭐라 하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이내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는 걸 깨닫고 무안해 했다.

여기가 공기가 없는 우주라는 걸 잠시 잊었던 모양이다.

그녀가 팔을 들어 올렸다. 검지를 펴 팔찌를 가리켰다.

‘마도장의 젬.’

그녀가 가리킨 물건이었다.

그녀는 다시 무언가를 가리켰다. 이번엔 그녀가 싹 쓸어버린 몬스터의 시체들이었다.

‘마도장의 젬의 성능에 대해 말하고 싶은 건가.’

케이빌을 쓰러뜨린 게 큰 영향을 미친 것일까.

그레이스도 팀도 에밀리도 자신들의 특수 젬을 처음으로 각성시킬 수 있었다.

게임으로 치자면 케이빌은 엄청난 경험치를 주는 중간 보스 정도 되는 모양이었다.

당연히 좋은 일이었다. 그들도 조금만 있으면 포털을 사용할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세 명, 거기에 성윤까지 포함해서 네 명은 예상하지 못한 특수 젬의 힘을 더 얻을 수 있었다.

성윤은 그레이스의 어깨를 두드렸다.

여기는 전장이다. 개인적인 일로 계속 시간을 끌 순 없었다.

성윤의 의도를 알아챈 그레이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지팡이를 들자 성윤도 무기를 소환했다.

검과 도끼가 손에 쥐어졌다.

‘시작할까.’

당장이라도 무너질 듯한 방어선으로 성윤이 달려들었다.

첫 번째 목표는 온몸에 부상을 입은 채 악전고투를 하고 있는 연결자에게 덤벼드는 몬스터였다.

‘저거 뭐였지?’

도감에서 본 기억이 있지만 잘 생각나지 않았다. 적어도 싸워본 몬스터는 아니다.

‘기억을 떠올려서 특성과 약점을 생각해야….’

하지만 그 전에 위험에 빠진 연결자를 돕는 게 먼저였다.

성윤은 일단 몬스터의 공격을 상쇄시키려 도끼를 휘둘렀다.

마치 두부를 자르는 것 같다. 그것도 물렁해빠진 연두부를.

몬스터의 피가 튀며 팔이 치솟아 올랐다.

‘약해.’

아직까지 생각나지 않지만, 상대는 그렇게 약한 몬스터는 아니다. 적어도 대미궁에서 발견되는 수준 높은 몬스터라는 것까지는 기억이 났다.

하지만 도끼에서 올라오는 감촉은, 대미궁의 몬스터라고 하기에는 터무니없이 약했다.

‘아니, 아니지.’

몬스터가 약한 게 아니다.

‘내가 강해진 거지.’

보지도 않고 뒤쪽으로 검을 휘둘렀다. 뇌전이 꿈틀거렸다.

아까 그레이스가 쏘아낸 마법에 비하면 초라한 번개다. 하지만 몬스터의 내부를 태워버리는 데에는 충분했다.

검에 베인 몬스터가 내부가 진탕이 된 채 쓰러졌다.

부상을 입은 연결자가 성윤을 올려다본다.

얼빠진 얼굴. 성윤은 도끼를 역소환하고 연결자에게 수신호를 보냈다.

상부가 연결자들에게 알려준 몇 가지의 신호 중 하나였다.

‘치료받고 와.’

자신을 구해준 사람이 성윤인 걸 알아챈 그의 눈이 커졌다. 격렬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전선에서 이탈했다.

‘나머지는 치유 마법사들이 알아서 해줄 테고.’

성윤은 다시 도끼를 소환해 잡았다.

‘날뛰어볼까.’

성윤은 다시 격렬한 전투 현장에 끼어들었다.

검을 휘두르고 도끼로 찍는다. 망치가 폭발을 일으키고 할버드가 조금 먼 거리에 있는 몬스터들을 찢어발긴다.

성윤은 분명 고위 연결자로 분류되고 있었지만, 지금 그의 움직임은 분명 그 이상이었다.

‘역시 케이빌 그놈은 경험치를 잔뜩 주는 중간 보스가 분명해.’

농담조의 말이지만 케이빌은 그 정도로 성윤에게 많은 도움을 줬다.

케이빌을 토벌한 후, 성윤의 젬은 일제히 레벨이 올랐다. 그것도 지금처럼 감질나게 한 단계씩 오른 게 아니었다.

말 그대로 폭렙을 했다.

‘아슬아슬했어.’

젬이 모두 진화한 건 좋은 일이지만 젬에 맞는 디바이스가 없다면 빛 좋은 개살구다.

성윤이 갖고 있는 가장 좋은 디바이스의 홈은 쥬얼 2등급 사파이어 랭크가 여섯 개, 쥬얼 3등급 에메랄드 랭크가 열 개, 쥬얼 4등급 루비 랭크가 열 개다.

다행히 모두 만능 홈인 터라 진화한 에메랄드로 진화한 젬들을 어떻게든 끼울 수 있었다.

하지만 에메랄드 랭크까지 진화한 젬이 조금만 더 많았어도 기껏 진화시킨 젬들을 사용할 수 없을 뻔했다.

‘또 더 좋은 디바이스를 찾아야겠군.’

분명 행복한 고민이지만 절박한 고민이기도 했다.

‘진화의 젬의 랭크를 더 높일 방법도 찾아봐야겠고.’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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