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20화
급히 회사로 돌아온 성윤은 사장실로 가 노크를 했다.
자신의 아내인 지민이 있는 방이지만 회사에서는 엄연히 사장이다.
한 회사의 사장이었던 시절도 있던 터라 성윤은 그런 면에 있어서 상당히 철저했다.
쿵! 쿵!
하지만 상황이 상황인 터라 노크소리는 험악했다.
“들어오세요!”
벌컥!
허락하는 소리가 들리자마자 성윤은 문을 열어젖혔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역시 그의 아내다. 체력적으로 많이 힘든지 그녀의 눈에 짙은 다크서클이 보였다.
요 근래 일어난 사건 사고들 때문에 그녀는 정신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사건 사고의 중심에 있는 성윤이 그녀의 남편이자 회사 소속의 연결자인지라 한층 더 그랬다.
때문에 그녀는 정신적으로도 많이 지쳐 있었다.
오랜만에 같이 한 잠자리에서 그녀의 어울리지 않는 한탄과 투정 그리고 응석을 받아줘야 할 정도로.
사장실에는 그녀만 있는 게 아니었다.
“매형 오셨습니까?”
성윤에게 인사를 건네는 사내. 지민의 동생인 우상이었다.
우상의 뒤에 있던 우성도 쭈삣쭈삣 거리며 성윤에게 고개를 숙였다.
익숙지 않은 매형이라는 호칭까지 입에 담았다.
슬슬 그도 성윤을 인정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물론 가장 큰 이유는 언제나 도끼눈을 뜨고 그에게 잔소리를 날리는 누님 때문이겠지만.
동인의 악행과 현우의 배신으로 파비온은 말 그대로 공중분해 됐다.
이보다 더 완벽할 수 없을 정도로 갈가리 찢겨 사라졌다.
연결자 업계에서 힘깨나 쓴다는 대기업의 최후라고는 너무나 허무했다.
하지만 현실은 현실. 남은 자들은 그 뒤처리를 해야 했다.
현우를 따라 인류를 배신하고 사라진 연결자도 많았지만, 아무것도 모르고 착실하게 월석을 채취하던 연결자도 많았다.
파비온의 규모와 능력만큼 남은 연결자들도 상당한 능력을 갖고 있는 자들이었다. 당연히 여러 권유가 쏟아졌다.
우상과 우성도 권유를 받은 사람들 중 하나였다.
하지만 그들은 여타의 쟁쟁한 회사들의 권유를 뿌리치고 누나의 회사에 들어 왔다.
지금은 정범의 고위 연결자로서 활동하고 있었다.
“먼저들 와 있었군.”
성윤은 편하게 처남들의 인사를 받았다. 하지만 그게 끝이었다.
태평하게 인사를 나누고 있을 시간이 아니었다. 바로 지민의 앞으로 걸어갔다.
“상황은 어때요?”
“좋지는 않아요.”
지민이 고개를 저었다.
“정확히 두 시간 전부터 몬스터들의 암스트롱 강습이 시작됐다고 해요.”
“규모는 어떻답니까?”
“셀 수 없을 정도라고 해요. 암스트롱 주변은 몬스터들로 인해 발 디딜 틈조차 없다고 하더군요.”
“총력전일까요?”
우상이 끼어들었다.
“그럴 가능성도 있어. 다시 한번 인류를 달 바깥으로 쫓아내겠다는 거지.”
“그럼 적의 전력은 얼마나 되는 거지? 설마 달에 있는 몬스터들과 전부 싸우게 되는 건 아니겠지?”
지민의 대답에 이번엔 우성이 물었다.
우성의 목소리에는 옅은 공포심이 어려 있었다.
달에 있는 몬스터 전부라니. 그 상상조차 불허할 정도의 물량이 상대라면 인류에게 승산은 없다.
“그럴 가능성은 적어.”
성윤이 담백하게 부정했다.
“만약 그게 가능하다면 우리가 암스트롱을 공략하려 했을 때나, 그도 아니면 막 암스트롱을 탈환했을 때 공격했을 거야.”
“역시 어머님의 말씀이 맞는 것 같아요.”
“플루엘 장모님 말씀이죠?”
“네. 간부들의 몬스터 지배력에도 한계가 있다는 그거요.”
“저도 동감입니다. 만약 간부들이 모든 몬스터들에게 지배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면 달에 교두보를 만드는 건 꿈속의 꿈이겠죠.”
새로 생긴 장모님, 새로 생긴 어머니에게 성윤과 지민은 새삼 감사를 표했다. 그녀가 가져다준 정보는 무척이나 유용했다.
“그렇다면 이번 전투도 끝은 있겠군요.”
“암스트롱이 버틸 수 있다면요.”
지민은 그렇게 말하고 앞에 있는 세 사람을 쳐다봤다.
그녀의 회사인 정범의 최고 연결자들. 그리고 동시에 그녀의 가족이기도 했다.
아직 철이 덜 들긴 했지만 미워할 수 없는 동생인 우성.
듬직하지만 누나가 보기엔 아직도 불안한 점이 보이는 우상.
그리고 그녀의 남편이자 은인. 많은 위기들을 헤쳐 나와 지금은 인류의 영웅 취급을 받는 성윤.
지민은 한 명 한 명 시선을 맞췄다.
“암스트롱에서는 지금 당장 지구에 있는 모든 연결자들을 보내주길 원하고 있어요. 당연히 여러분도 마찬가지예요.”
지민은 떨리는 목소리를 한껏 억누르고 말했다.
“조심하세요.”
세 명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
“아빠!”
사장실에서 나오자 신혜가 성윤에게 달라붙었다.
가방 가게에서 긴급 연락을 받고 바로 온 터라 신혜를 다른 곳에 데려다줄 여유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회사까지 데려온 상태였다.
“아, 삼촌들도 있다!”
“안녕, 신혜야!”
우성이 활짝 웃으며 신혜 앞에 손바닥을 내밀었다.
짝!
신혜는 스스럼없이 손바닥을 우성의 손바닥과 마주쳤다.
“잘 지냈어?”
“응!”
우성이 신혜 앞에 쪼그려 앉고는 신혜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신혜는 웃는 낯으로 삼촌의 커다란 손을 부여잡았다.
“우성 처남은 신혜랑 정말 잘 놀아주는군.”
“정신 연령이 비슷해서 그런 걸걸요?”
“나도 그렇게 생각해.”
형과 누나의 평가가 너무 짜다. 성윤은 쓰게 웃었다.
“희의는 끝나셨나요?”
성윤이 사장실에 들어가 있을 때 신혜를 돌보고 있던 선아가 다가왔다.
지민, 우상, 우성이 슬쩍 눈치를 봤다.
“자, 신혜야. 잠깐 동안 삼촌이랑 놀까?”
우성이 신혜를 안아 올렸다. 신혜가 까르르 웃으며 발을 흔들었다.
우성도 같이 웃으며 신혜를 안고 휴게실로 들어갔다.
“저도 잠시 조카랑 놀고 있겠습니다.”
우성도 우상과 신혜를 따라 나섰다. 지민은 잠시 할 일이 있다며 사장실로 들어갔다.
순식간에 주변에는 성윤과 선아만이 남았다.
‘이것 참.’
이럴 때 말도 없이 순식간에 의견을 교환하고 실행하는 걸 보면 셋은 분명 남매였다.
‘지민이는 그렇다 쳐도 처남들까지 자리를 피해주는 건가.’
일반적인 눈으로 보면 매형이 누나가 아닌 다른 여자와 친근하게 지내는 것에 대해 반발해야 하지 않은가.
하지만 둘은 정말로 자연스럽게 자리를 피해줬다. 끝까지 성윤과 지민의 결혼에 반발한 우성마저도.
‘연결자 가족 사이에서 자란 인식의 차이라는 거겠지.’
애초에 우상, 우성 형제도 만나는 여자가 한 명이 아닌 걸로 알고 있다. 그랬기에 자연스럽게 이해를 하는 것이리라.
게다가 우성이 성윤과 지민의 결혼에 반발을 했다지만, 그건 정말로 진지하게 반대를 한 것이 아닌 투정의 일종이었던지라 둘의 결혼이 성사된 이후로 제법 빠르게 성윤을 인정했다.
“음, 뭔가 제 예상과는 다른 반응이네요.”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선아의 인식도 성윤과 비슷한 모양이었다.
살짝 우상, 우성 형제의 눈치를 보는 것 같던 그녀는 두 사람이 자리를 피해주자 조금 당황한 낌새였다.
“다시 달로 가신다면서요?”
“암스트롱이 위기에 빠졌다고 하니, 달려가야죠.”
선아는 한 걸음 앞으로 걸어왔다. 둘의 거리가 가까워졌다. 그녀가 성윤의 앞섶을 살짝 잡았다.
“조심하세요.”
단 한마디.
하지만 그녀의 마음을 표현하는 데는 그 한마디면 충분했다.
“알겠습니다.”
성윤은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
***
성윤을 실은 우주 비행선이 날아올랐다.
케이빌을 처치하고 받은 짧은 휴가 일정을 모두 채우지도 못한 채 다시 전장으로 나서는 터라 성윤도 상당히 불만이 많았다.
하지만 우주선이 암스트롱에 접근했을 때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에 성윤의 불만은 쏙 들어갔다.
성윤과 같은 우주선을 타고 있던 우상과 우성이 성윤의 옆 창문을 통해 달의 지면을 내려다봤다.
“장난이 아니군요.”
“저게 다 몬스터야?”
성윤처럼 농도 짙은 경험을 한 것은 아니지만 경력만 따지면 성윤보다 훨씬 오래 연결자 생활을 한 두 사람이다.
그런 두 사람이 질린 목소리를 낼 정도로 몬스터는 많았다.
아직 고도가 높아 자세히 보이진 않는다.
하지만 자세히 볼 필요도 없었다. 장난감처럼 보이는 암스트롱 주변으로 검은 점들이 물결치듯 움직이고 있었다.
‘개미 떼가 생각나는데.’
어렸을 적, 시골에서 지렁이를 공격하는 개미떼를 본 기억이 있었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전투 장면은 그때의 것과 꼭 닮아 있었다.
‘물론 결과는 달라야겠지만.’
지렁이와 개미떼의 승부는 개미떼의 승부로 끝났다.
끝까지 보지 않고 자리를 떴지만, 그때 이미 지렁이의 몸은 두 동강 난 상태였다.
암스트롱을 지렁이처럼 되게 놔둘 수는 없었다.
“처남들의 파티는 도착했나?”
“일부는 지금 암스트롱에 있고, 일부는 다음 우주선을 타고 온다고 합니다.”
우상이 대답했다.
파비온이 공중분해 될 때, 당연히 회사 안에서 파티를 맺고 있던 연결자들도 갈기갈기 찢겼다.
파티원들이 각자 다른 회사로 이전한 경우도 있었고 지금껏 믿고 싸워온 파티원이 현우와 같은 배신자인 경우도 있었다.
다행히 우상, 우성의 파티는 그런 경우가 아니었다.
회사는 갈렸지만, 다행히 각자의 회사에서는 그들의 특수한 사정을 이해하고 계속해서 파티를 짜도록 허락했다.
이미 파티에 익숙해져 생산성이 극대화 된 그들을 찢어봤자 회사에 손해밖에 없을 거라는 인식도 한몫했다.
“매형의 파티는 어떻습니까?”
“한 사람은 암스트롱에 있고, 두 사람은 나중에 온다는군.”
암스트롱에 있는 사람은 그레이스고 나중에 오는 사람들은 로스 남매였다.
‘하여간 그 공주님….’
그레이스를 생각하며 성윤은 혀를 찼다.
케이빌을 처리한 후 전용기를 타고 함께 움직인 그들은 한국에서 잠시 시간을 보내다가 각자의 나라로 출국했다.
성윤과 로스 남매는 휴식을 취하기로 했지만 책임감 높은 공주님은 뭔가 도울 일이 없는지 일찌감치 암스트롱으로 날아올랐다.
‘무사하겠지.’
질릴 정도로 몬스터들이 드글대지만 암스트롱이 함락된 건 아니다.
시장이 정말로 철저하게 암스트롱의 방어 계획을 세워둔 터라 암스트롱은 몬스터의 공격을 정말로 잘 막아내고 있었다.
“내려가죠, 매형.”
우상의 목소리가 성윤을 일으켰다.
연결자들이 우주선의 입구 쪽으로 몰려들었다.
아직 착륙을 하기에는 한참 남았기에 그들의 움직임은 다소 의아했다.
하지만 우주선은 달에 착륙할 예정이 없었다.
자칫 착륙을 시도했다가 몬스터들에게 우주선이 손상될 위험이 있는 것이다.
“또 공중 낙하인가.”
“그러고 보니 매형은 케이빌을 처치할 때도 공중에서 뛰어내렸다고 하셨죠. 기분은 어땠습니까?”
“별로 기억나는 건 없어. 뛰어내리기 전에는 좁아터진 전투기 안에서 대기해야 했고 뛰어 내렸을 때는 곧 있을 케이빌과의 전투 때문에 잔뜩 긴장한 상태였으니까.”
“그런가요?”
“그래. 게다가 그때의 경험을 듣는다고 해도 도움이 되거나 하지는 않을 거야.”
덜컹!
문이 열렸다. 우주 공간에 노출된 우주선 안에서 공기가 순식간에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거센 바람 속에서 성윤은 마지막으로 입을 열었다.
“적어도 거기선 낙하산이라도 있었으니까!”
터억!
가장 앞에 있던 연결자가 우주선 밖으로 뛰어내렸다.
그걸 시작으로 연결자들이 일제히 뛰어내리기 시작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