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달의 미궁-319화 (319/354)

제319화

그레노이드가 직접 창조한 세 간부 중 하나, 케이빌이 죽었다는 소식은 분명 충격적인 것이었다.

스스로를 위대한 주인이 창조한 존재로서 자랑스러워하며, 다른 간부도 똑같이 생각하는 우두고스의 인식을 고려하면 저런 난리를 치는 것도 이해가는 바였다.

요는 동료 의식이 아니라 위대한 주인의 창조물이 사라졌다는 슬픔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우두고스, 멀리는 그레노이드의 창조물끼리의 인식이었다.

“그래? 안됐네.”

몬스터가 아닌 진수의 반응은 그걸로 전부였다. 우두고스의 분노가 다시 상승했다.

“네놈은 위대한 주인께서 창조하신 존재가 사라진 것에 분노하지 않는단 말이냐!”

“어쩌라고.”

진수는 귀를 후볐다.

“케이빌이란 놈은 얼마 보지도 않았어. 봤을 때도 오만방자해서 제대로 인사도 못 했지. 그런 놈이 죽었다고 너처럼 울면서 방방 뛰라는 게 오히려 비정상 아니냐?”

손을 빼내 손가락 끝에 묻은 귀지를 ‘후~!’ 불었다.

“만약 우리, 나나 현우 씨가 죽으면 너는 지금처럼 울면서 난리를 칠 것 같냐? 아니면 우리처럼 ‘그랬냐?’로 끝날 것 같냐.”

빈정대고는 있었지만 진수의 말은 핵을 짚고 있었다.

우두고스는 이를 바득바득 갈았지만 반론하진 않았다.

진수는 의기양양해 했다.

“그만해라, 김진수. 그래도 동료 아니냐. 같이 슬퍼해주진 못해도 지금은 조용히 있어라.”

“동료요?”

진수가 현우를 웃기는 놈을 본다는 식으로 쳐다봤다. 하지만 현우는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동료.”

“…뭐, 현우 씨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죠.”

진수는 우두고스를 향해 손을 들었다.

“미안!”

세상에는 분명 안 하느니만 못 한 사과가 있고, 진수의 사과는 분명 그런 류의 것이었다.

우두고스의 인내에 한계가 왔다.

“아, 급한 일이 있어서 가봐야겠네요!”

그걸 눈치 챈 진수는 되도 않은 핑계를 남기고 서둘러 미궁 밖으로 뛰어 나갔다.

우두고스의 눈이 그의 등을 끝까지 쫓았다. 그의 손에서 넘실거리던 어둠의 기운이 슬며시 사라졌다.

“미안하게 됐군.”

현우가 사과했지만 우두고스는 싸늘하게 몸을 돌렸다.

어색하기 짝이 없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하지만 진수만큼은 아니더라도 현우도 분위기에 휩쓸리는 성격이 아니다.

그는 바로 질문을 날렸다.

“지구에 남겨 놓은 가장 큰 전력이 죽었다. 이젠 어떻게 할 거지?”

솔직히 지금은 진수고 현우고 아니, 인간 자체를 상대하고 싶지 않은 우두고스였지만 참모로서 그럴 수는 없었다.

지금 현우는 개인적 의견이 아닌 전략적 의견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었으니까.

“…죽었어도 그놈은 제 할 일을 하고 죽었다.”

우두고스는 천천히 앞으로 걸어 나갔다. 현우가 그 뒤를 따랐다.

“내가 예전에 말했지? 케이빌에게 몇 가지 계략을 주고 보냈다고.”

“그러고 보니 그런 말을 했었지.”

“그중 최후이자 최악의 일을 녀석이 행했다.”

“최후이자 최악이라니. 그 정도로 상황이 나쁜가?”

현우가 심각한 어조로 물었다.

“아니. 상황만 따진다면 우리에게 엄청난 기회가 찾아온 거다. 조금 불리해진 상황을 일거에 역전시킬 수 있을 정도로.”

“그럼 뭐가 최악의 일이라는 거지?”

“케이빌이 죽었지 않나!”

우두고스가 지팡이로 땅을 찍었다. 소리가 미궁에 크게 울려 퍼졌다.

“그 계획은 케이빌이 목숨을 바쳐야만 기동하는 계획이다!”

아무래도 우두고스가 케이빌의 죽음을 애통해하는 건 진심인 것 같았다. 설혹 그 감정에 케이빌에 대한 연민은 단 1g도 없다 하여도.

“그럼 전세는 다시 우리 쪽에 유리하게 돌아올 수 있는 건가?”

“그래. 하지만 바로는 아니다. 우리도 준비할 게 필요해.”

“준비?”

“힘! 피! 영혼! 그리고 희생!”

우두고스가 몸을 휙 돌렸다. 그는 붉은 안광으로 현우를 쏘아봤다.

“글라이아에게 일러라! 지금 우리가 지배할 수 있는 모든 몬스터들을 끌어 모으라고!”

“괜찮겠나? 예전에 받은 피해가 아직 남아 있을 텐데.”

간부들이 미궁에 있는 모든 몬스터들을 지배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들은 그레노이드가 아니다.

만약 그랬다면 인류가 혹 세상을 놀랠 계략과 천하를 울릴 힘을 갖고 있다고 해도 암스트롱을 탈환하는 건 불가능했을 것이다.

지금 몬스터 측은 암스트롱 탈환전에서 받은 피해를 메우기 위해 계속해서 다른 몬스터들에 대한 지배력을 확장하는 중이었다.

“괜찮다! 어차피 이 계획만 성공하면 다른 자잘한 계획들 따위에 헛심을 쓸 이유조차 사라지니까!”

“알겠다. 글라이아에게 말하지.”

현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그 몬스터들을 모아서 어디다 쓸 생각이지?”

“달에 갇힌 지금, 우리가 공격할 곳은 한 곳밖에 없지.”

“암스트롱이군.”

“그렇다!”

우두고스의 붉은 안광이 더욱 광채를 뿜어냈다.

현우는 생각에 잠겼다.

‘안전지대는 네 개의 도시가 전부 완전히 각성을 해야 기능한다고 했었지? 그리고 마도 도시는 쐐기가 발동한 후부터 각성을 시작한다고 했고.’

그리고 쐐기가 발동한 지는 얼마 지나지 않았다.

‘적어도 당분간 안전지대가 펼쳐지진 않을 거야.’

우두고스는 이번 작전에 제법 자신이 있는 모양이었다.

어쩌면 암스트롱을 다시 몬스터에게 강탈당하고 인류는 또 한 번 달에서 축출당할 수도 있었다.

‘상관없나.’

암스트롱이 멸망하든 말든 그가 상관할 바가 아니다. 아니, 오히려 이건 그의 계획을 더 가속화시켜줄지도 모른다.

‘우성윤은 얼마나 강해졌지? 잠깐 만나면서 이번 계획을 가르쳐줄까?’

하지만 현우는 내심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더 이상 도움을 줄 필요는 없지. 필요 이상의 도움은 오히려 성장을 저해할 테니까.’

이미 인류가 승리로 향할 길을 가르쳐 주지 않았던가.

‘여기서 죽는다면 거기까지인 인간일 뿐.’

그런 인간이 자신의 목표치까지 강해질 수 있을 리 없었다.

“암스트롱을 치고 케이빌이 행한 의식을 마무리한다. 케이빌을 죽이고 한창 들떠 있는 인간 놈들에겐 좋은 교훈이 될 테지.”

우두고스의 진득한 살기 어린 말이 현우의 상념을 깨며 쩌렁쩌렁 울렸다.

***

세월은 참 빠르다. 말로만 듣던 그 말을 성윤이 피부로 느낀 건 20대 초중반 즈음이었다.

그리고 시간의 가속도는 점점 더 빨라졌다.

특히나 요새는 더 그렇게 느꼈다. 작게는 신혜의 미래를 위해, 크게는 인류의 평화를 위해 계속해서 싸워대다 보니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정신을 차렸을 때, 시간은 성윤을 한층 더 미래로 옮겨놓은 상태였다.

“아빠! 이거 봐!”

성장기라서 쭉쭉 큰 신혜가 책가방을 메고 신이 나 말했다. 벌써 신혜도 여덟 살을 앞두고 있었다.

올 해의 달력도 얼마 후면 슬슬 떼어야 할 시기.

신혜는 내년에 들어갈 초등학교에 대비해 책가방을 고르고 있었다.

“그게 좋아?”

성윤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 가격은 애초에 보지도 않았다. 그저 신혜가 좋다면 성윤은 그걸 살 생각이었다.

하지만 정작 신혜의 표정은 아리송했다.

“으음!”

가방을 벗어 두 손으로 들고 하염없이 바라본다. 신혜가 성윤에게 고개를 돌렸다.

“다른 것도 볼래!”

“그래. 얼마든지 봐도 돼.”

신혜가 콧노래를 부르며 다시 가방이 있는 곳으로 뛰어 갔다.

사방에 걸려 있는 가방들을 보며 신혜가 계속 고민을 한다.

성윤은 뒤에서 그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봤다.

‘요새 초등학교 가방들은 이렇게 나오나?’

성윤의 시선이 신혜에게서 산더미처럼 걸려 있는 가방들로 향했다.

성윤이 초등학교를 다닌 건 거의 30년도 더 전이다. 당연히 그때의 가방과 지금의 가방의 디자인이 같을 리가 없다.

자신이 골라 준 가방을 신혜가 좋아한다면 그것만큼 기쁜 일도 없을 터.

성윤도 자신의 눈에 드는 걸 찾기 위해 가방들을 뒤적이기 시작했다.

찰칵!

“응?”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는 소리에 성윤은 고개를 돌렸다.

고등학생 즈음 되어 보이는 아이들이 핸드폰을 성윤에게 향한 채 꺅꺅 대고 있었다.

시선을 조금 더 돌리니 꽤 많은 사람이 성윤을 일정 거리에서 둘러싼 채 수군거리고 있었다.

핸드폰을 들이대고 있는 사람도 꽤 많았다.

‘이건 정말 익숙해지지 않는 걸.’

나이트라는 낯간지러운 별명을 넘어 이제는 인류와 지구의 수호자라는 말까지 슬금슬금 따라다니기 시작한 성윤이다.

안 그래도 그레노이드와의 싸움이 시작된 뒤로 연결자에 대한 관심이 폭등했다.

그에 따라 가장 유명한 연결자였던 성윤의 관심도도 기하급수적으로 높아졌다.

‘시장님도 부채질을 한 모양이고.’

[잘 들으세요, 성윤 씨.]

예전에 시장이 했던 말이 생각났다.

[지금은 전쟁 중입니다. 직접 전투를 해야 하는 여러분이 힘든 건 잘 압니다. 여러분들만 전장에 몰아넣는 것에 대한 죄책감이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힘든 건 후방에 있는 일반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전쟁은 누구에게나 고통스러운 법이다.

[게다가 이번 전쟁은 역사적으로 한 번도 없었던, 인간 외 존재와의 전쟁입니다. 그 특수성 때문에 사람들은 더욱 두려워하죠. 전쟁에서 후방은 무척이나 중요합니다. 전장에 있는 사람들을 지원할 물자들을 생산하고, 보충병들도 훈련되니까요. 연결자들이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마나나이트의 발굴로 일반인들도 싸울 수 있게 되었으니, 후방의 중요성은 여전하죠.]

무엇보다 전쟁이란 그 후방 즉, 국민과 영토를 지키기 위해 하는 것이다.

[우리는 후방을 안정화시켜야 합니다. 그러려면 일단 국민들을 어느 정도 안심시킬 필요가 있어요. 그래서 말입니다만.]

그때 시장의 얼굴에는 자신에 대한 미안함이 가득 차 있던 걸로 기억한다.

[정말로 죄송한 말이지만, 성윤 씨와 연결자 몇 분을 영웅으로 만들어야겠습니다.]

놀라운 일은 아니다. 전쟁 영웅이란 역사적으로도 빈번히 있어오지 않았던가. 그리고 그만큼 효과가 입증된 방법이기도 했다.

게다가 이번 케이빌을 처리한 일 때문에 성윤은 다시 한번 대대적으로 매스컴에 올랐다.

지금 성윤은 대한민국뿐만 아니라 세계 어디서든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당기는 블랙홀이 되어 있는 것이다.

그게 지금 성윤이 이 웃기지도 않는 광대역이 돼버린 이유였다.

신혜와의 오붓한 시간을 방해받고 싶진 않았지만 여기서 사람들에게 짜증을 내는 것도 안 될 일이다.

‘이 나이 돼서 이미지 관리라니.’

성윤이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최대한 사람들을 신경 쓰지 않는 것뿐이었다.

웬만하면 밖에 나오기 싫었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하더라도 신혜가 초등학교에 다니며 사용할 가방을 고른다는 이벤트를 무시할 순 없었다.

‘다시 가방이나 고를까.’

하지만 성윤 자신의 센스는 그다지 좋지 않다. 성윤은 점원을 찾았다.

“저기….”

“네!”

우연의 일치일까. 아니, 그건 아닐 것이다.

마치 성윤의 개인 비서처럼 옆에서 대기하고 있던 점원이 쏜살같이 달려 왔다.

이제 이십대 후반이나 삼십대 초반처럼 보이는 사내다.

하지만 그 눈에는 마치 어린 시절 동경하는 만화 속 영웅을 만난 것처럼 반짝임이 엿보였다.

“크, 크흠!”

사례가 들릴 뻔했다. 도저히 익숙해지지 않는 시선이다. 하지만 이것도 견뎌내야 하는 노릇.

“지금 가장 잘나가는 제품은 어떤….”

성윤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 했다.

주머니 속에서 핸드폰 벨소리가 울렸다.

성윤의 표정이 굳었다.

“응? 아빠, 전화 안 받아?”

가방을 고르던 신혜가 다가왔다.

성윤은 억지로 미소를 지어 고개를 끄덕이고는 핸드폰을 꺼냈다.

“아, 아빠가 평소에 쓰던 거랑 다른 핸드폰이다!”

신혜가 꺄르르 웃었다. 하지만 성윤은 웃을 수 없었다.

그 핸드폰은 성윤의 사적인 핸드폰과는 다른, 비상 연락용 핸드폰이었다.

그게 울렸다는 건 어떤 긴급상황이 벌어졌다는 것.

“네, 우성윤입니다.”

성윤의 목소리는 돌덩이 같았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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