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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미궁-315화 (315/354)

제315화

확실하게 끝낼 셈인지 그레이스가 다시 지팡이를 들었다.

그녀의 지팡이에서 작은 바람이 소용돌이쳤다.

바람으로 녀석들을 난도질함과 동시에 아직 남아 있는 불꽃을 더 키울 셈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마법은 완성되지 못했다.

덥석!

성윤이 다시 날개를 펴 그레이스를 낚아챈 후 불구덩이에서 떨어졌다.

“성윤 씨? 왜….”

콰앙!

굉음이 일며 석순들이 터져 나갔다.

“설마 아직 살아있는 건가요?”

“아마도 말이죠.”

주변을 석순의 벽으로 쌓아 화염의 위력을 더 높였다. 따라서 평소의 마법보다 더 위력적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한 것 같았다.

“그래도 상당한 타격은 입었습니다.”

석순의 벽을 부수고 나온 몬스터들의 모습은 끔찍했다.

온몸의 피부가 녹아 내렸고 몇몇 부위는 언뜻언뜻 뼈까지 보였다. 하지만 녀석들의 살기는 여전했다.

“터프하네요.”

“쓸데없이 말이죠.”

성윤이 갑자기 지면을 박찼다.

콰아아앙!

그들의 옆으로 거센 채찍이 훑고 지나갔다.

다시 한번 채찍이 쇄도한다. 하지만 달려온 팀이 성윤과 그레이스의 앞을 막아섰다.

폭음이 울렸다. 팀의 방패가 벌겋게 물들었다.

“두 분! 괜찮습니까?”

“네. 다친 곳은 없습니다.”

성윤이 그레이스를 내려놓았다.

“일단 잡몬스터 두 놈을 처리하고 싶었는데, 실패해 버렸습니다.”

팀이 두 몬스터를 쳐다봤다.

“그래도 부상 정도로 봐서는 더 이상 전투를 할 수는 없을 것 같은데요? 아무리 끈질길 몬스터라도 저런 몸으로는 제대로 된 전투력을….”

팀은 말을 멈췄다. 느리긴 했지만 몬스터들의 부상이 회복되고 있는 모습을 본 것이다.

“저거 무슨 몬스터였죠?”

커다란 박쥐 날개와 악마 같은 뿔. 그리고 위협스러운 눈매.

여러모로 케이빌과 닮은 몬스터였다.

“원래 알려져 있던 몬스터는 아닙니다. 케이빌과 같이 나타나기 시작했죠. 이름은 아크 데몬이라고 붙여졌습니다. 그 생김새나 강함으로 볼 때, 케이빌의 친위대 성격의 몬스터가 아닐까 생각되는 몬스터입니다.”

성윤이 대답했다.

“일단 저놈들부터 잡고 시작해야겠군요.”

“가능하다면 그 편이 훨씬 낫겠죠. 그래서 말입니다만, 팀 씨. 에밀리 씨, 그레이스 씨와 함께 케이빌을 조금 잡아 두실 수 있겠습니까?”

성윤의 의도는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팀은 케이빌을 쳐다봤다. 오연한 악마처럼 녀석은 커다란 날개를 접은 채 접근하고 있었다.

“단시간 정도는 괜찮을 것 같습니다만. 오래는 못 버팁니다.”

“잠깐이면 됩니다.”

성윤은 몸에서 슬슬 올라오는 힘을 느끼며 주먹을 쥐었다.

“그럼 최대한 빨리 부탁드리겠습니다.”

팀이 방패를 들고 케이빌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의 뒤를 에밀리와 그레이스가 받쳤다.

곧 케이빌과 팀의 전투 소리가 울러 펴졌다. 성윤은 전투 지점에서 등을 돌렸다.

아크 데몬의 몸은 착실하게 회복하고 있었다. 이미 드러났던 뼈는 다시 살 속에 파묻혔고 녹아내린 얼굴도 얼추 제 윤곽을 회복했다.

‘작긴 하지만 베히모스나 레비아탄보다도 더 강한 녀석이랬나.’

그렇다면 그레이스의 마법을 그렇게 먹고도 죽지 않은 이유가 납득되지 않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약해진 건 변함없어.’

성윤은 검을 쥐어 잡았다.

탓!

지면을 박차고 달렸다. 날개를 핀 건 아니다. 하지만 성윤의 속도는 놀라울 만큼 빨랐다.

그는 순식간에 아크 데몬의 앞에 도착했다.

크르?

두 녀석은 당황했다. 성윤에겐 좋은 기회다. 바로 검을 휘둘렀다.

‘큭!’

성윤이 신음을 냈다. 익숙하지 않은 힘이라 조절에 애를 좀 먹었다. 몸을 급격하게 세울 때 균형을 잃어 검이 흔들렸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콰르르르르릉!

귀청을 찢을 듯한 벼락음. 몬스터의 목을 반쯤 가르고 지나간 검이 상처 부위 안으로 전격을 퍼부었다.

끄이에에에에!

공격을 받은 아크 데몬이 기괴한 울음소리를 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번개가 녀석의 성대마저 태워버리자 비명은 멈췄다. 애초에 커다란 벼락소리 때문에 녀석의 비명은 제대로 들리지도 않았다.

다른 아크 데몬이 성윤을 향해 덤벼들었다. 성윤은 아직 자세를 제대로 잡지 못한 상태.

아크 데몬의 손톱이 성윤을 향해 뻗었다. 하지만 성윤의 얼굴에 위기감은 없었다.

‘느려.’

성윤은 할버드를 들었다. 자세가 무너진 상태에서도 느긋하게 휘둘렀다.

서걱!

아크 데몬의 팔이 높이 날았다. 녹아 내려 근육이 훤히 드러난 녀석의 얼굴이 한층 더 기괴하게 변했다.

성윤은 할버드를 아래로 내렸다. 허공에서 몸을 회전시켜 이번엔 창날로 녀석의 허벅지를 찍었다.

퍼엉!

끄에에에엑!

녀석의 허벅지가 말 그대로 터져나갔다.

비명과 함께 녀석의 몸뚱어리가 기울어진다.

그에 비해 성윤은 발을 땅에 디뎌 몸의 자세를 바로 했다.

성윤은 망치를 잡았다. 하지만 아크 데몬에게 최후의 일격을 날리려는 건 아니었다.

후웅!

망치가 날았다. 빙빙 돌아가며 날아간 망치가 팀에게 불꽃의 검을 내리치려던 케이빌에게 향했다.

콰앙!

케이빌이 불꽃의 검으로 망치를 쳐냈다.

불꽃의 검의 불꽃과 망치의 힘이 더해져 폭발이 한층 더 크게 일어났다.

케이빌이 그를 노려봤다. 성윤은 도끼를 소환했다.

보란 듯이 높이 치켜 올려, 바닥에서 마치 갓 낚아 올린 붕어처럼 몸부림치고 있는 아크 데몬을 찍었다.

끼이이익!

팔이 잘려 나갔다. 상처 부위를 타고 독이 퍼져 나갔다.

까아아아아아악!

아크 데몬이 고통 속에 퍼덕거렸다.

하지만 그렇다고 독이 퍼지는 게 늦는 건 아니었다.

끄륵!

아크 데몬의 몸체가 고약한 냄새를 뿜으며 녹아 내렸다.

성윤은 더러운 물건을 피하는 것처럼 녀석을 뒤로 하고 팀과 케이빌이 대치하고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슬쩍 시계를 봤다.

“40초 남짓 지났군요. 늦지 않았죠?”

“그럼요! 엄청 빨리 오셨습니다!”

욱신거리는 팔의 통증에 얼굴을 찌푸리면서도 팀은 열렬히 성윤을 환영했다.

그에 비해 케이빌의 눈은 심각하게 가라앉았다.

“네놈, 이제 그 힘을 제법 능숙하게 사용하는군.”

“한두 번 써봤어야지.”

서당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했다.

예전처럼 영문 모르고 힘을 휘두르기엔, 성윤의 경험이 너무 많이 쌓였다.

‘그래도 내 마음대로 끌어내진 못하지만.’

이 힘을 쓰기 위해서는 여전히 케이빌 같은 계기가 있어야 했다.

“주인님의 힘을 쓰는 주제에 마치 제 힘을 쓰는 것 마냥 기고만장해하는 꼴이 웃기는구나.”

케이빌이 이죽거렸다. 하지만 지금, 성윤은 말싸움에서 밀릴 생각이 전혀 없었다.

“애초에 마력의 근원은 그레노이드의 힘이 아닐 텐데? 설마 네 주인이 조금 더 잘 다룬다고 네 주인 거라고 우기는 건 아니겠지? 다섯 살 먹은 아이도 그런 주장을 했다가는 어른한테 혼난다, 괴물 자식아.”

성윤이 살짝 웃었다.

“아, 인간에게 창조된 반푼이 괴물을 주인이랍시고 떠받드는 저능아에게는 조금 어려운 이야기였나? 미안하군. 네 수준을 생각하지 못했어.”

으드득!

케이빌이 이를 갈았다. 감히 미천한 인간 놈이 그의 주인을 모욕한 것이다.

하지만 성윤의 이죽임은 멈추지 않았다.

“이도 갈 수 있었나? 이거 놀라운 발견인걸? 그레노이드가 널 만들 때 그 정도의 지식 정도는 있었던 모양이야.”

“죽어!”

케이빌이 불꽃의 검을 길게 늘려 휘둘렀다. 성윤은 뒤로 뛰었다.

투확!

검이 길게 늘어났다. 불을 휘감은 뱀처럼 다가온다.

검 끝에 독니가 번뜩이는 것 같았다.

콰앙!

성윤의 방패가 검을 막았다.

쩌억!

케이빌이 입을 벌렸다. 그의 입 안에서 붉은 불길이 넘실거렸다.

퍼어어어엉!

불꽃이 쏘아졌다.

평범한 불길처럼 바람이나 공기에 이리저리 휘말리지 않고, 그 불꽃은 일직선으로 쏘아졌다.

성윤도 감히 경시하지 못하고 옆으로 피했다.

콰콰콰쾅!

케이빌이 고개를 돌렸다.

그에 따라 불꽃도 이동했다. 가로막는 건 모조리 불태우고 파괴했다.

자욱한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고 지면이 녹아내렸다.

“흐아아아압!”

하지만 그 순간, 케이빌에게 접근한 팀이 망치로 녀석의 턱을 후려쳤다.

콰앙!

“크으으!”

턱이 닫히며 케이빌의 입 안에서 폭발이 일었다.

케이빌은 고통에 신음하며 주먹으로 팀을 내리쳤다. 팀은 황급히 방패를 들었다.

쿠웅!

“으으으!”

팔꿈치와 무릎이 확 꺾였다.

하지만 팀은 버텼다. 방패로 후려쳐 반격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 전에 케이빌의 꼬리가 팀의 발목을 휘감았다.

“우와아아아악!”

케이빌의 꼬리가 팀을 들어올렸다.

우악스러운 힘은 덩치 큰 팀과 그가 입고 있던 갑옷의 무게를 마치 종잇장처럼 취급했다.

후웅!

케이빌의 꼬리가 크게 휘둘러지며 팀을 날려버렸다.

콰앙!

팀이 땅바닥에 처박혔다.

“쿨럭!”

그가 기침을 내뱉었다.

“팀!”

에밀리가 황급히 그에게 달려왔다.

“괘, 괜찮아. 갑옷 덕에 다친 곳은 없어.”

실제로 그의 몸에 상처는 없었다. 하지만 충격을 완전히 막을 순 없어 숨쉬기가 조금 곤란했다.

그러나 그건 일시적인 것이라고 팀은 알고 있었다. 그래서 에밀리가 치유 마법을 걸려는 것을 막았다.

콰앙! 콰앙!

무기가 부딪치며 폭음이 인다. 케이빌이 팀을 던져버린 직후, 성윤이 케이빌에게 달려들었다.

검과 도끼, 망치, 할버드가 번갈아 케이빌을 공격했다.

하지만 케이빌은 공격을 모조리 튕겨냈다. 그러곤 거대한 날개를 펄럭여 바람을 일으켰다.

성윤은 바람에 밀려 조금 물러났다.

차앙!

케이빌의 손톱이 더욱 길어졌다.

거의 1.5m는 될 것 같았다. 날붙이와 다를 바 없는 손톱이 성윤을 노렸다.

콰앙!

성윤은 방패를 들어 손톱을 막았다.

케이빌의 꼬리가 뱀처럼 숨을 죽이고 방패를 우회해 성윤을 찔러갔다.

꼬리 끝에는 날카로운 가시가 붙어 있었다.

쿠웅!

성윤은 방패를 한 손으로 고정시키고 검을 들어 꼬리를 막았다.

파지지직!

검에서 뇌전이 번쩍였다. 하지만 케이빌은 별로 타격을 입는 모습이 아니었다.

‘역시 상처 안으로 집적 때려 박는 게 아닌 이상 별 소용이 없는 것 같군.’

성윤은 언뜻 봐도 무척 단단해 보이는 비늘로 감싸인 케이빌의 피부를 쳐다봤다.

‘그럼 상처를 입히면 그만이지.’

성윤은 힘을 줬다. 방패와 검을 밀어내 케이빌을 물러서게 했다.

성윤의 손에 들린 무기가 바뀌었다.

한 손에는 망치가, 한 손에는 도끼가 들렸다.

콰앙!

망치가 케이빌의 불꽃의 검과 부딪쳐 폭발한다.

차앙!

도끼는 케이빌의 손톱 공격을 끊어냈다.

놀랍게도 성윤은 케이빌과 1대 1로 붙어 대등한 싸움을 하고 있었다.

아니, 오히려 성윤이 조금 더 유리해 보였다.

“이… 자식이!”

케이빌의 목소리에 조급함이 실렸다. 그와는 반대로 성윤은 속으로 환호했다.

‘통한다!’

증폭된 성윤의 힘은 상상이상이었다. 지금 상태라면 성윤 혼자서도 케이빌을 퇴치하는 것이 가능할 것 같았다.

성윤이 날아오는 손톱을 피했다. 발을 휘감으려는 불꽃의 채찍을 방패를 내리찍어 끊어냈다.

케이빌의 몸통 안이 훤히 비었다.

“하아아앗!”

성윤의 손에 망치가 쥐어졌다.

콰아아앙!

거센 폭발이 일었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전투를 지켜보고 있던 성윤 일행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누가 봐도 지금 건 깨끗하게 들어간 치명타였다.

하지만 공격을 행한 성윤의 얼굴은 잔뜩 찌푸려져 있었다.

“후우! 위험할 뻔했군.”

케이빌의 짜증나는 목소리에 성윤의 얼굴이 더 일그러졌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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