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달의 미궁-309화 (309/354)

제309화

“쳇! 결국 놓쳐버렸어!”

연결자들의 휴식처로 가져다 놓은 커다란 버스 안에서 브루스가 글라이아를 놓친 일에 대해 불평을 늘어놓았다.

옆에서 물을 마시던 러셀이 어처구니없어 했다.

“놓치다니. 우리 둘이 붙어도 우세를 점하지 못했어. 오히려 밀렸지. 전세가 안 좋아지니 물러났을 뿐이야.”

간부라는 이름이 겉멋은 아닌지 글라이아는 그 정도로 강했다.

“흥!”

본인도 알긴 아는 것 같다. 브루스는 콧방귀를 한 번 뀌고 말았다.

“어쨌든 드디어 우리 집을 탈환했군. 얼마만의 암스트롱이지?”

러셀은 얼굴을 창가로 가져갔다.

육중한 암스트롱의 모습이 보인다. 여기저기 구멍이 나고 허물어져 있었지만 그 위용은 여전했다.

“다시는 빼앗길 수 없어.”

“당연하지! 내가 있었다면 그렇게 쉽게 넘겨주지는 않았을 거다!”

브루스 한 명이 추가된다고 해서 상황이 달라질 것 같진 않지만 러셀은 그냥 넘어갔다.

“그나저나 슬슬 나이트가 그 역장이란 걸 펼 때가 된 것 같은데 말이야.”

러셀의 그 말이 끝나자 마자였다.

드드드드드!

지면이 흔들리며 버스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어어? 뭐야, 이거?”

브루스가 앉아 있던 의자의 등받이를 부여잡았다. 러셀도 선반에 손을 올렸다.

와장창! 쿵! 쿵!

올려져 있던 유리컵이 떨어져 깨지고 다른 물건들도 연신 떨어졌다.

러셀과 브루스는 급히 버스 밖으로 나갔다.

지진은 점점 더 심해졌다. 버스의 유리창이 당장이라도 깨질 듯 진동했다. 바닥에 깔린 흙먼지가 자욱하게 일어났다.

- 지금 우성윤씨가 ‘쐐기’를 가동시켰다고 합니다.

골전도 무전기에서 시장의 설명이 들렸다.

‘그럼 이건 쐐기가 발동한 여파인가?’

그렇다면 환영할 만한 일이다.

러셀과 브루스의 표정이 확연히 밝아졌다. 이제 몬스터의 습격에서 지구는 완전히 안정되는 것이다.

하지만 둘은 쐐기의 발동이 고작 지진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걸 전혀 모르고 있었다.

***

마도 도시의 부유감은 계속되고 있었다.

위쪽 지면을 부수고 헤치며 마도 도시는 분명 지상을 향했다.

“이거 어디까지 떠오를까요?”

이제는 제법 익숙하게 자세를 잡은 에밀리가 위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그들이 있는 곳이 지하인 터라 위 쪽 도시의 상황을 알 순 없었지만 그래도 도시가 계속 위로 솟구치고 있다는 것은 느낌으로 알 수 있었다.

“설마 우주까지 떠오르겠어?”

팀이 애써 분위기를 바꾸려 농담조로 말했다. 하지만 진지한 공주님은 부정적인 의견을 피력했다.

“모르죠. 우리는 이 마도도시의 매커니즘을 알지 못하니까요. 역장을 펼치기 위해 우주까지 날아오를지도 몰라요.”

팀이 머쓱해 했다.

하지만 그레이스는 팀의 반응을 모른 채 자신의 생각에 빠져 있었다.

쿠웅!

도시에 커다란 충격이 일었다. 뭔가 해방감이 느껴지는 듯한, 지금까지와는 다른 충격이었다.

“지면까지 올라온 것 같습니다.”

플루엘을 부축하고 있던 성윤이 추측했다.

그 추측은 정확했다.

쩌적!

지금껏 지하에서 땅을 깨부수고 이동을 하는 상황에도 마도 도시를 완벽하게 보호하고 있던 천장에 금이 갔다.

퍼엉!

알의 겉껍질이 깨져 나가듯 마도 도시의 외벽이 부서져 내렸다.

공기가 우주로 도망가고 마도 도시의 모습이 완전히 달 지면에 노출되었다.

더 이상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마도 도시의 움직임은 계속됐다.

마도 도시는 지면으로 올라온 것도 모자라 허공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도시의 지반 전체가 들어올려져, 마치 소설이나 영화에 나올 법한 부유성처럼 보였다.

“응?”

갑작스럽게 왕족의 젬에서 정보가 전해졌다.

“왜 그러시나요?”

에밀리가 물었다.

“이 도시의 정착지점을 제가 정할 수 있는 모양입니다.”

“좋은 일이네요. 그렇다면 생각할 수 있는 곳은 한 군데밖에 없죠.”

그레이스가 단언했다. 성윤도 같은 생각이었다.

“암스트롱 근처가 좋겠지요. 두 곳을 방어하는 것보다는 한 곳을 방어하는 게 더 쉬우니까요.”

물론 안전을 위해 중요시설을 분산시키는 전략도 있지만 이번은 경우가 다르다.

암스트롱이나 마도 도시 어느 하나만 함락되어도 다른 곳은 자연스레 멸망의 뒤를 따를 수밖에 없다.

중요 시설을 분산하는 이점이 없는 것이다.

그럴 바에는 지킬 시설을 한 곳으로 모으는 것이 나았다.

“그럼 움직이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시장님께 알리고 오겠습니다. 괜히 적으로 오해되어 공격받는다면 꼴이 우스워질 테니까요.”

팀이 플루엘이 열어준 포털로 넘어갔다.

성윤은 다시 마력을 집중, 암스트롱이 있는 곳을 향해 도시를 움직였다.

***

“…저게 그건가?”

“아마도.”

다시 버스 안으로 돌아온 러셀과 브루스는 저 멀리서 떠 오는 거대한 도시를 보고 입이 벌어지는 걸 참을 수 없었다.

오래 활약한 최고위 연결자로서 많은 경험을 해왔지만 도시 하나가 통째로 떠 있는 광경은 처음이었다.

마도 도시는 꽤 빠른 속도로 움직이고 있었다. 아까는 점처럼 보였었지만 그 짧은 순간에 제법 도시의 형태가 확인되었다.

“확실히 다른 도시들과는 확연한 차이가 있군.”

“다른 도시에는 저런 탑이 없었으니까.”

러셀과 브루스 사이에 영혼 없는 대화가 오고 가는 중에도 도시는 똑바로 암스트롱을 향해 다가왔다.

“거의 다 왔군. 환영 인사라도 해 볼까?”

“어쩌려고?”

“손이라도 흔들면 보이지 않으려나?”

브루스가 다시 버스에서 내리려 할 때였다.

스윽!

“응?”

둘의 눈에 마도 도시가 기묘한 움직임을 취하는 것이 보였다.

***

신기한 우주선을 타고 움직이는 기분으로 성윤과 파티원, 플루엘은 기둥 근처에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풀썩!

시장에게 마도 도시에 대해 알리고 돌아와 어느 순간부터 꾸벅꾸벅 졸고 있던 팀이 쓰러졌다.

“으응? 뭐야?”

잠인 덜 깬 상태로 눈을 비비며 팀이 주변을 둘러 봤다.

“너냐, 에밀리?”

혹시라도 동생이 장난을 친 것일까.

하지만 에밀리는 한심하다는 눈빛을 보냈다.

“잠이나 빨리 깨. 뭔가 일어나고 있는 것 같으니까.”

“일어나?”

팀은 얼마 안 가 에밀리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어어? 이거 왜 이래?”

팀은 지면이 기울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혹시 자신의 감각에 이상이 생겼는지 먼저 의심을 했지만, 그의 감각은 멀쩡했다. 정말로 지면이 기울어지고 있었다.

성윤과 다른 사람들도 발에 힘을 꽉 주고 중심을 잡으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는 법이다.

“이거 완전히 도시가 뒤집힐 모양입니다.”

성윤은 조심스럽게 발을 움직였다.

그들이 있는 곳은 거대한 구 형태의 공간이다.

바닥으로 변한 벽 부분을 따라 움직이면 일반적인 지형처럼 급격하게 추락할 위험은 없다.

“이 정도면 90도는 기울었군요.”

저 멀리 완전히 눕혀진 입구가 보였다.

“그리고 완전히 180도로 뒤집힐 것 같고요.”

성윤은 다시 한 발자국을 걸어 바닥으로 변한 벽으로 내려갔다.

“도시가 완전히 뒤집히면 어떻게 되죠?”

“가장 특징적인 변화라면 탑이 아래로 가겠군요.”

“그걸 더 이상 탑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일행은 얘기를 나눴다.

“그런데 180도로 뒤집힌 후에는 어떻게 될까요? 계속 회전을 해서 다시 똑바로 설까요? 그렇지 않으면 뒤집힌 상태로 멈출까요?”

“그러게요. 그건 궁금하네요.”

묵묵히 일행의 대화를 듣던 성윤이 생각에 빠졌다.

‘아까 기둥에 마력을 집어넣었을 때 느낌을 생각한다면 분명 기둥은 탑과 연결되어 있어. 아마 그것이 뭔가를 일으키는 것 같은데.’

성윤은 기둥을 쳐다봤다.

‘기둥. 쐐기. 설마!’

무언가를 눈치 챈 성윤의 눈이 커졌다.

***

“회전했네?”

“응. 회전했어.”

버스 안에 자리를 잡고 아예 주스에 얼음까지 띄운 뒤 러셀과 브루스는 암스트롱과 조금 떨어진 곳에서 시작된 마도 도시의 환상적인 곡예를 감상하고 있었다.

“그래도 이젠 멈췄군. 다음 쇼는 뭐지?”

브루스가 주스를 마시며 농담조로 중얼거렸다.

러셀이 노려보는 걸 브루스는 어깨를 으쓱이며 넘겼다.

“너무 그렇게 보지 마. 농담이었다고. 저 도시가 역장을 펼치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며? 저 공중에 떠서 역장을 펴는 게 전부겠지. 저 괴상한 회전도 그 과정일 테고. 내 감으로는 중요한 변화는 모두 끝났어.”

하지만 브루스의 예상은 크게 빗나갔다.

마도 도시가 하강을 시작했다.

브루스는 급히 입을 다물고 손으로 덮었다. 하지만 너무 늦었다. 이미 말은 내뱉어졌고 마도 도시는 새로운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다.

브루스가 흘끗 러셀을 쳐다봤다.

러셀의 눈초리는 당연히 더 사나워져 있었다.

“그 입조심 좀 하라는 말은 언제 들어 먹을 거냐. 정말로 입을 꿰매야 정신을 차릴 거냐!”

브루스는 조용히 다른 손마저 입을 덮었다.

***

마도 도시의 낙하는 당연히 마도 도시에 있는 성윤 일행에게도 느껴졌다.

“이번엔 뭐야!”

부유감. 그 이후에 느껴진 회전감. 그리고 낙하감까지.

몇 번이나 변하는 감각에 팀은 당혹감과 짜증스러움을 내비쳤다.

“쐐기라는 말이 마음에 걸립니다.”

“네?”

자세를 낮춘 그레이스가 성윤에게 되물었다.

“쐐기는 어딘가에 박는 게 일반적이죠. 처음에 저 기둥을 쐐기라고 불렀을 때 그저 은유적인, 혹은 감정적인 이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만약 그게 아니라, 정말로 쐐기의 역할을 한다면요?”

“하, 하지만 쐐기인 기둥은 움직일 낌새도 없잖아요. 혹시 성윤 씨는 저 기둥도 움직일 거라고 생각하나시요?”

“그렇진 않습니다, 에밀리 씨. 하지만 마력의 움직임을 느껴보면 저 기둥은 탑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탑과 기둥은 별개의 존재가 아니라, 저 기둥 자체가 탑의 연장선이라고 보면 됩니다. 그리고 지금, 마도 도시가 완전히 뒤집힌 관계로 탑은 아래로 향하고 있죠.”

“지면에 내려꽂히기 아주 좋은 포지션을 점하고 있는 거네요.”

그레이스는 자세를 바꿨다. 누가 봐도 거대한 충격에 대비하는 모양새였다.

투구를 벗은 사람이나 로브의 후드를 젖힌 사람이나 분분이 자신의 투구와 후드를 뒤집어썼다. 성윤과 팀은 방패까지 들었다.

“충격에 대비하세요!”

성윤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는 언제든 포털을 펼쳐 탈출할 대비를 했다.

***

“어어? 저거 지면에 충돌할 것 같은데?”

러셀에게 온갖 잔소리를 듣고 있던 브루스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러셀도 잔소리를 멈추고 도시를 바라봤다.

거꾸로 뒤집어져 아래로 내려온 탑이 지면과 가까워졌다.

우르르르릉!

버스 안에 다시 한번 진동이 울렸다. 탑이 내리꽂힌 곳에서 엄청난 흙먼지가 피어올랐다.

만약 달에 공기가 있었다면 고막이 찢어질 듯한 굉음이 울려 퍼졌을 것이다.

“나이트 일행은 괜찮겠지, 러셀?”

“나이트에게는 포털이 있어. 위험하면 탈출하겠지.”

하지만 러셀도 마음이 편치는 않았다.

성윤이 걱정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성윤의 파티에는 그가 애지중지하는 그레이스도 있는 것이다.

탑은 계속해서 아래로 파고들어갔다.

하지만 무엇에 보호라도 받는 것인지 탑은 전혀 손상을 받지 않았다.

마치 땅을 파내는 공사 현장처럼 계속해서 땅 속으로 파고들던 탑이 멈췄다.

쿠쿠쿠쿠쿠쿵!

달의 진동이 한층 더 심해졌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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