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달의 미궁-300화 (300/354)

제300화

성윤은 자신이 본 것을 설명했다. 옆에서 동료들이 부족한 부분을 보충해줬다.

사라들은 진지하게 그들의 말을 들었다.

“나이트가 설명한 것과 비슷한 장소에 들어갔던 사람이 있습니까? 아니면 다른 미궁과 다른 특이한 곳을 본 사람은요?”

시장의 물음에 연결자들이 웅성댔다. 하지만 나서는 사람은 없었다.

모두 고개를 저었다.

“역시 성윤 씨가 들어간 곳이 특별한 모양입니다.”

“이번에도 공을 세웠군그래.”

러셀이 크게 웃으며 성윤의 등을 두드렸다.

힘이 상당했기에 기침이 나올 것 같았다. 시장도 무척이나 기뻐했다.

“안 그래도 지구의 상황이 많이 안 좋아서 걱정이 많았는데 한시름 놓겠습니다.”

“아직 그곳이 성현우가 말한 곳이라고 확정된 건 아닙니다.”

사람들이 너무 김칫국부터 들이키는 것 같아 성윤이 제동을 걸었다.

하지만 사람들도 바보는 아니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지금 상황에서 ‘그럴 듯한 곳’을 발견했다는 것만으로도 큰 공입니다.”

그때 보인 시장의 얼굴은 말 그대로 명예퇴직 순간이 목 아래까지 들어 온 초라한 중년의 모습 같았다.

“지구가 그 정도로 힘듭니까?”

성윤이 물었다.

“연락을 하러 잠시 달 표면에 나갈 때마다 엄청난 독촉을 받고 있습니다.”

시장이 한숨을 쉬었다.

“물론 이해는 갑니다. 지구의 상태가 무척이나 심각한 모양이니까요. 여러분들이 미궁으로 내려간 후부터 대략 20만 명 정도가 사망한 모양입니다.”

사람들이 숨을 들이켰다.

20만. 절대로 그냥 넘어갈 만한 숫자가 아니다.

“그것도 파악된 것만 그 정도입니다. 파악되지 않는 희생자까지 고려한다면 대략 25만 정도가 죽었을 거라는 추측입니다.”

“대체 어떻게 그런 피해가….”

그레이스가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도시와 마을이 여러 개 불탔습니다. 몬스터들은 계속해서 몰려오는데 요격할 연결자들은 이 작전에 동원돼서 지구를 방어할 연결자 자체가 적어졌으니 그럴 수밖에요. 게다가 소수의 인원만으로 어떻게든 몬스터들을 억제하느라 무리를 해서 지구에 남아 있던 연결자들도 상당수가 죽었습니다. 마나나이트의 재고는 예전에 떨어졌고요. 요새는 몬스터를 마력이 없는 곳으로 유인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더군요. 몬스터가 마력이 없는 곳에서 오래 날뛰면 현대 무기가 통하긴 한답니다. 문제는 그때까지 많은 피해가 발생한다는 거죠.”

시장의 말은 끝나지 않았다.

“거기에 달이 지구로 떨어지는 속도도 점점 빨라지고 있습니다. 주력이 이쪽에 모여 있으니 케이빌도 더 대담한 행보를 보이며 사람들을 납치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의식도 아주 대놓고 하고 있는 모양이더군요. 이런 상태로 계속 달의 추락 속도가 늘어나다간 앞으로 몇 년 안에 달이 지구와 충돌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사람들은 침묵했다. 그들이 대미궁에 들어가 위기를 타파할 단서를 찾는 동안, 지구의 피해는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었던 것이다.

“알겠습니까, 우성윤 씨? 제가 당신을 칭송한 건 당신을 아껴서도 편애해서도 아닌, 말 그대로 컴컴한 어둠 앞에 비춰질 한 줄기 빛줄기를 가져와 줬기 때문입니다.”

“그럼 이렇게 있을 때가 아니군요. 당장 그곳을 확인해 보죠.”

성미 급한 브루스가 당장 일어섰다. 하지만 그를 플루엘이 막았다.

“잠시만 기다리세요. 우성윤 씨는 지금 막 귀환한 참이에요. 그것도 정체 모를 극상의 몬스터와 싸운 다음에 말이에요. 적어도 하루 정도는 쉬어줘야 해요.”

“그녀의 말이 맞아, 브루스. 나이트 일행은 조금 쉬어야 해.”

러셀마저 플루엘을 두둔하자 브루스도 강하게 주장할 순 없었다. 그리고 그도 플루엘의 말이 일리 있다고 여겼다.

“좋아. 당신들 말이 맞아. 그럼 그 곳에 가는 건 내일이면 되는 거지, 러셀?”

“그래.”

“그럼 나는 준비를 끝내놓지.”

브루스가 손바닥을 치며 주변에 몰려든 연결자들에게 외쳤다.

“자, 들었으면 흩어져서 내일을 준비하자고! 저 아래에 뭐가 있는지 모르니 전투 준비든 마음의 준비든 단단히들 하고! 나이트와 그 일행은 쉬어야 하니 빨리 흩어져!”

“쉬려면 지구로 귀환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

누군가 그렇게 말했다. 연결자들이 하나둘 그 의견에 동조했다.

“하긴, 이런 아무것도 없는 도시보다는 그게 낫지.”

“가족이 걱정되기도 하고 말이야.”

연결자들이 지금 유일하게 지구로 갈 수 있는 방법을 가진 플루엘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들의 바람을 깬 것은 플루엘이 아닌 브루스였다.

“멍청이들아! 지금 지구로 갔다가 만약 몬스터들이 쳐들어온다는 이유만으로 국가에게 잡혀봐라! 편히 쉬기는커녕 언제 돌아올지 모르게 돼! 아니, 돌아올 수 없을지도 몰라! 지구나 자기 가족이 걱정되는 건 아는데, 그 걱정거리를 근본적으로 끊으려면 내일 반드시 우리 힘이 필요하단 말이다!”

브루스의 말이 쩌렁쩌렁 울린다.

연결자들은 한숨을 쉬었다. 몇몇은 고개를 푹 숙였다.

하지만 브루스의 말에 어깃장을 놓는 사람은 없었다. 하나둘 흩어져 자신들의 숙소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성윤의 주변이 순식간에 비었다.

“저런 건 잘 한단 말이야.”

러셀이 멀어져 가는 브루스의 뒷모습을 보고 감탄했다.

“평소에 성미가 급하고 단순하게 보인다고 해도 지금껏 온갖 역경을 이겨내 온 분입니다. 기본적인 전술 능력과 지휘 능력은 당연히 갖추고 있죠.”

“저런 것도 없으면 전 아마 열이 뻗쳐 죽었을 겁니다. 자, 그럼 우리도 쉬러 갑시다, 시장님.”

“그러죠.”

시장과 러셀도 자리를 떴다.

“몸조리 잘해요.”

마지막으로 플루엘이 떠나고 주변엔 성윤 일행만이 남았다.

“좋아. 그럼 오랜만에 늘어지게 자볼까.”

팀이 기지개를 쭉 폈다. 목소리가 제법 활기찼다.

하지만 그가 일부러 저런 소리를 내고 있다는 걸 일행은 눈치 챘다.

아무래도 지구의 상황이 마음에 걸리는 모양이었다.

“그렇네. 샤워까지는 무리지만 그래도 대충 씻기라도 해야지. 꿉꿉해 죽겠어.”

“빨래도 하고 싶은데 그럴 여유까지는 없는 것 같네요.”

에밀리와 그레이스도 팀에게 장단을 맞췄다.

“세 분은 쉬고 계십시오.”

쉬러 가는 세 사람과 합류하지 않고 성윤은 그렇게 말했다.

“성윤 씨는요?”

“확인할 게 있습니다.”

성윤은 다가온 에밀리에게 왕족의 젬을 보여줬다.

“제가 그곳을 느끼게 된 건 이 녀석 때문입니다. 혹시 수도에도 어떤 변화가 나타났는지를 확인하고 싶습니다.”

“저도 같이 갈게요.”

“아뇨. 에밀리 씨는 다른 분들과 같이 휴식을 취해주세요. 잠깐 둘러보고만 올 겁니다.”

성윤은 따라 온다는 에밀리를 말리고는 다른 동료들에게 사정을 설명한 후, 포털로 자취를 감췄다.

***

‘별 다른 변화는 없군.’

수도는 조용했다.

오래전 영광의 자취를 간신히 남긴 채 기나긴 휴식을 남기고 있는 곳.

성윤이 기대했던 변화는 없었다.

수도는 여전히 계속된 침묵에 취해 있었다.

하지만 얻은 게 없진 않았다.

‘역시.’

성윤은 눈을 감았다.

‘이 감각은 도시의 감각인가.’

신전 도시에 귀환했을 때, 성윤은 강렬한 감각에 휩싸였다.

마치 자신이 지배하는 곳에 들어서는 듯한 강한 정복감과 안정감. 그 감각은 수도에 왔을 때도 느껴졌다.

그리고 대미궁에서 찾은 통로에서 느낀 감각 또한 이와 비슷한 감각이었다.

‘그렇다면 거기도 이런 도시 중 하나란 말인데.’

하지만 성윤이 알기로 수도도 신성 도시도 요새 도시도 통로로서 바깥과 연결되어 있진 않다.

만약 그 통로가 도시까지 연결되어 있다면 자연스레 정체가 선명해진다.

‘마도 도시.’

현우가 준 젬도 마도장의 젬. 그런 현우가 가라 한 곳이 마도 도시라면 앞뒤가 맞긴 하다.

‘마도장의 젬은 전혀 각성이 안 되고 있었지.’

무척이나 중요한 전력이 될 마도장의 젬을 놀릴 수는 없는 노릇이라 시장은 마도장의 젬을 각성시킬 연결자들을 찾았다.

하지만 그 누구도 젬을 각성시키지 못했다.

혹시 시간이 지나면 각성할지도 모른다며 지금은 러셀이 가지고 다니는 중이었다.

‘어쨌든 이 사실은 알려야 하겠군.’

확인할 것은 더 있었다.

성윤은 홀로그램이 떠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역시 여기는 바뀌었어.’

건물 단면도의 푸른 부분이 훨씬 더 많아졌다.

‘여기 오니 확실하게 느껴져.’

성윤은 다시 왕족의 젬을 바라봤다. 그것이 마치 의지를 가진 것처럼 성윤에게 지식을 전달하고 있었다.

성윤은 왕족의 젬에 마력을 집어넣었다.

우웅!

포털이 열렸다.

그는 망설임 없이 포털에 몸을 집어넣었다.

푸른빛이 환하게 시야를 가로막는다. 그가 푸른빛에서 벗어났을 때, 그의 시야는 확연히 달라져 있었다.

“…아빠?”

스케치북에 크레파스를 뭔가를 그리고 있던 신혜가 놀라서 성윤을 쳐다봤다.

성윤은 방긋 웃었다.

***

성윤은 지금 공략하고 있는 대미궁에 마도 도시가 있을 확률이 있다는 것과 지구까지 가는 포털을 여는데 성공했다는 것을 동료들과 시장에게 알렸다.

마도 도시에 대한 설명을 들을 때 사람들은 그저 ‘그런가보다’ 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들이 원하는 건 지금의 난제를 타개할 방법이지 그 방법의 정체가 마도 도시인지 다른 것인지는 상관이 없던 것이다.

하지만 포털을 여는데 성공한 것에 대해서는 무척이나 기뻐했다.

특히 시장의 표정은 광희한다고 표현해도 틀리지 않을 정도로 밝아졌다.

지구와 달의 직통 통로가 또 하나 생긴 것이다.

암스트롱이 멸망하고 달에 지구의 세력권이 완전히 사라진 지금, 지구로 통하는 포털은 전략 무기 그 자체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왕족의 젬의 각성이 꾸준히 이루어지는 걸 보고 플루엘과 아루원도 축하를 해줬다.

특히 아루원은 기묘한 말을 남겼다.

“이번 전투가 끝난 후에 주면 되겠군.”

무슨 말인지 물어보려 했지만 그는 이미 자신의 동료들에게 돌아간 후였다.

그리고 다음 날.

일행은 모두 성윤의 포털을 타고 성윤 일행이 마지막으로 도달했던 곳으로 내려갔다.

“과연. 일반 미궁이나 대미궁과는 다르군.”

무리의 가장 앞에 선 브루스가 건틀릿으로 벽을 툭툭 두드렸다.

“좁은 곳은 싫은데. 젠장.”

검을 휘두르기에는 좁은 환경이라 러셀이 투덜거렸다.

“불평하지 말고 얼른 가자고.”

그에 비해 브루스는 무척이나 여유 있었다.

아니, 러셀을 놀릴 의도인지 짓궂게 건틀릿을 맞부딪치기도 했다.

“오, 벌써 한 마리가 보이는군.”

통로에서 걸어 나오는 몬스터를 보고 성윤 일행은 얼굴을 굳혔다.

전날, 그들을 고전에 빠뜨렸던 리빙 아머였다.

성윤은 경고를 하려 했다.

리빙 아머의 강한 방어력이 이 좁은 지형과 어울려 엄청난 위력을 발휘한다고 설명하려 했다.

하지만 성윤이 입을 열기도 전에 브루스가 움직였다.

후웅!

콰아앙!

성윤은 눈을 비볐다.

팀이 입을 벌리고 에밀리가 눈을 동그랗게 떴으며 그레이스가 헛웃음을 지었다.

“자, 빨리빨리 움직이자고!”

일격. 성윤 일행을 고전시켰던 리빙 아머를 고작 주먹질 한 방으로 때려 부순 브루스가 쾌활하게 말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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