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달의 미궁-285화 (285/354)

제285화

암스트롱 생존자들의 귀환과 파비온의 체포가 슬슬 뉴스에 풀리기 시작했다.

암스트롱 멸망 이후에 터진 스캔들에 언론은 앞 다투어 이 사실을 뉴스로 내보냈다.

거대 기업의 부도덕한 행위.

게다가 그 부도덕한 행위라는 것이 사람들이 말하는 조세 포탈이나 횡령, 뇌물 같은 경제적인 것이 아닌, 살인이었다는 사실이 사람들에게 충격을 줬다.

거기에 월인의 존재가 조금씩 풀리기 시작하자 충격은 배가 됐다.

당연히 여론이 들끓었다. 암스트롱의 멸망도 파비온 때문이 아니냐는 낭설이 돌아다녔다.

전 세계의 눈이 파비온의 중심인물들이 잡혀 있는 한국을 주시했다.

“여, 지민! 오랜만이야!”

“첼시!”

크게 손을 흔드는 첼시를 지민이 와락 끌어안았다.

가장 친한 친구인 첼시의 실종은 성윤의 실종과 같이 지민의 커다란 걱정거리였다.

그녀가 무사하단 얘기도 듣고 통화도 했었지만 실제로 보자 눈물이 나왔다.

“아하하, 걱정했었어?”

“당연하지, 이 멍청아!”

걱정 없이 웃는 첼시의 얼굴이 얄미워 지민은 그녀답지 않게 흥분했다.

주먹으로 가볍게 첼시의 옆구리를 쳤다. 첼시가 과장되게 옆구리를 부여잡고 끙끙댔다.

성윤은 옆에서 오랜 두 친구의 모습을 바라봤다.

“다행이네요.”

같이 있던 그레이스도 두 친구의 모습이 썩 괜찮은지 작게 미소를 지었다. 팀과 에밀리의 표정도 비슷했다.

“시장님은 어디 계십니까?”

상황이 진정되자 성윤은 헝클어진 머리를 다시 정돈하는 첼시에게 물었다.

“따라오세요.”

첼시가 두꺼운 안경을 쓸어 올렸다.

지구에서는 항상 세련된 옷만 입고 다니던 첼시가 오늘은 달에서와 같이 촌스러운 두꺼운 안경과 꼬질꼬질한 연구복을 입고 있었다.

‘오늘은 연구원으로서 활동한다는 뜻인가.’

첼시의 안내에 따라 성윤은 커다란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건물은 경비가 삼엄했다. 경찰은 물론이고 군인들도 보였다.

요소요소 완전무장을 한 연결자들도 있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 어떤 방으로 들어갔다.

“아, 오셨군요.”

성윤이 찾던 시장이 거기 있었다. 하지만 널찍한 방에 그만 있는 게 아니었다.

“소장님도 계셨습니까?”

“이래 봬도 월면 국제 연구소의 소장입니다. 이런 일에 빠질 수는 없죠.”

시장과 소장, 성윤 등은 오늘 있을 심문에 각 직업의 관점에서 소견을 얻기 위해 불렸다.

첼시나 성윤의 파티도 마찬가지였다. 그 외 몇 사람이 더 이곳에 와 있었다.

대부분이 월인과 접촉한, 암스트롱 피난 전투에 참가했던 사람들이었다.

방 안에 있던 사람들이 앞다투어 성윤과 악수를 나눴다. 한 명 한 명이 각 나라의 정계에서 알아주는 중진들이었다.

정신없이 인사를 나누고 나서야 간신히 시장과 인사를 나눌 수 있었다.

“역시 나이트의 인기는 대단하군요.”

“아직도 익숙해지질 않습니다.”

그리고 평생 익숙해질 것 같지 않았다.

“너무 어려워 마세요. 당신은 충분히 그런 칭송을 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이번 작전에서도 훌륭히 공을 세우셨죠.”

“공을 세운 건 시장님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공은 무슨 공입니까. 도시의 시장으로서 결국 도시를 지키지 못해 인류의 유일한 우주 거점을 빼앗겼는데요. 더 이상 시장도 아닙니다. 도시가 없는 시장이 있습니까?”

시장의 말투는 무척이나 자조적이고 시니컬했다.

현 사태가 시장의 탓은 아니다.

성윤은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시장의 상태는 그런 위로가 통하지 않았다.

성윤은 화제를 돌렸다. 시계를 봤다.

“곧 시간이군요.”

조용히 앉아 있는 중진들의 표정이 긴장으로 굳어졌다.

고개를 까딱이거나 껌을 씹는 사람이 늘어났다.

몇 몇은 조용히 일어나 방을 나갔다. 그들의 손에 담배갑이 꽉 쥐어져 있었다.

하지만 모두 시간 안에 방으로 돌아 왔다. 빈자리는 없었다.

째각!

초침이 돌았다. 방 안에 기묘한 긴장감이 깔렸다.

얼마 안 있어 다시 한번 문이 열렸다. 여러 명의 감시를 받으며 한 사람이 들어 왔다.

플루엘이었다.

적잖게 긴장한 눈으로 그녀가 방 안을 둘러봤다.

성윤과 눈이 마주쳤다. 그녀의 긴장감이 사라지는 게 뚜렷이 느껴졌다.

플루엘이 반가운 기색을 보이며 눈으로 아는 척을 하자, 성윤도 작게 고개를 숙였다.

“저 사람이….”

지금껏 몰랐던 또 다른 어머니. 지민의 표정이 복잡해졌다.

성윤이 소속된 회사의 대표로서 이 심문을 지켜볼 기회를 얻은 걸 좋다고 생각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플루엘은 방 중앙에 놓인 의자에 앉았다.

구속되어 있지는 않았지만 그녀를 둘러싼 사람들은 한 치의 빈틈없이 그녀를 둘러싸고 있었다.

시장이 마이크를 들었다.

“인사나 소개 같은 걸 필요 없겠죠. 한가하신 분들도 아니시니 바로 플래노트의 자손분과 질의응답을 하겠습니다.”

월인이 아닌 플래노트의 자손. 심문이 아닌 질의응답.

시장은 여전히 플루엘에게 최대한 배려를 해주고 있었다.

“그럼 플루엘 씨. 일단 저희에게 해주셨던 설명을 다시 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주어진 마이크가 익숙하지 않아 플루엘이 버벅거렸다.

자신의 목소리가 방에 울리자 그녀의 얼굴에 신기하다는 감정이 뚜렷이 떠올랐다.

그녀가 더듬더듬 말하기 시작했다.

내용은 달에서 성윤 일행이 들은 것과 같은 것이었다.

대략적인 내용은 각 나라에 보고가 올라갔지만 당사자에게 확인은 해야 해 이런 자리가 만들어졌다.

그녀가 말하는 도중 간간이 신음과 감탄이 터졌다.

“시장님과 다른 분들에게 말씀드린 건 여기까지예요.”

플루엘이 마이크를 내렸다.

시장이 사람들을 훑어봤다.

“질문 있는 분 있으십니까?”

시장이 말을 꺼내기 무섭게 많은 인원이 손을 들었다.

시장이 한 사람을 가리켰다.

“그 괴물, 그레노이드라고 했던가요? 봉인이 풀리고 있다고 하던데, 더 이상 월석 채취를 하지 않는다면 봉인이 풀리는 건 멈춥니까?”

“아뇨. 봉인이 풀리기 시작한 이상 그건 불가능해요. 그리고 월석 채취가 없었더라도 언젠가 봉인을 풀렸을 거예요. 월석 채취 이전에 달의 마력을 사용하는 연결자가 나타난 게 그 증거죠. 봉인이 풀리는 건 확정. 나머지는 언제 풀리냐예요.”

질문을 한 사람이 앓는 소리를 냈다.

시장이 다른 사람을 지목했다.

“이번 암스트롱의 사건도 그레노이드와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네. 달의 내부에서 그레노이드를 압박하고 있던 마력이 바깥으로 새기 시작한다는 건 그 마력이 봉인이라는 역할에서 벗어났다는 소리예요. 그러면 그레노이드의 영향을 받기 쉬워지죠. 몬스터야 그레노이드의 몸에서 태어나니 두 말 할 것 없고요. 몬스터의 통제된 습격. 그건 그레노이드밖에 할 수 없는 일이에요.”

다른 사람이 손을 들었다.

“연결자의 시체로 젬을 만든다고 했는데, 그럼 연결자들이 사용하는 것도 비슷하게 만드는 겁니까?”

“아뇨. 연결자의 시체로 만드는 젬은 이렇다 할 자원 없이 미궁에서 살아남기 위한 고육지책이에요. 실제로 우리 민족도 어느 정도 안정기에 접어든 후로는 거의 만들지 않았죠. 그저 전통으로서 죽은 자를 기리기 위해 소수 만든 정도예요. 다시 전력으로서 사용한 건 파비온의 습격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고 디바이스와 젬을 잃어버린 후죠.”

또 한 사람이 손을 들었다. 그의 질문은 더 무거웠다.

“플래노트의 자손들은 달은 물론이고 지구까지 원정을 와서 습격을 했었죠. 그 이유가 뭡니까?”

플루엘이 힐끔 성윤의 눈치를 봤다.

월인들의 습격에 가장 시달린 게 성윤이다.

플루엘은 숨을 고르고 답했다.

“지구에 내려온 케이빌의 저지. 그리고 1세대 연결자들을 죽이기 위해서였어요. 저기 있는 성윤 씨를 습격한 것도 그 때문이죠.”

이건 처음 듣는다. 뚜렷이 사람을 죽이러 왔다는 소리에 사람들이 긴장했다.

1세대 연결자인 성윤은 당연히 플루엘의 말에 집중했다.

“케이빌의 저지는 알겠습니다만, 1세대 연결자들을 죽이기 위해 왔다고요? 어째섭니까?”

“그레노이드가 그들을 이용해 뭔가를 꾸미고 있으니까요.”

“확실히 지구에서 1세대 연결자들이 케이빌에게 납치를 당했죠. 당신들이 처음 습격한 조사대에도 1세대 연결자가 있었고. 그런데 굳이 죽일 필요가 있었습니까?”

“적이 필요한 것을 손에 넣지 못 하게 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없애버리는 것이에요. 당시에는 파비온 때문에 지구의 사람들을 적 취급 했었고요. 거기에 우리도 그레노이드를 막으려 필사적이었어요. 망설일 이유가 없었죠.”

“굳이 저들이 1세대를 이용하려는 이유가 뭡니까? 1세대는, 그러니까, 후 세대의 연결자들보다 능력이 낮은 사람들이 많은데 말이죠.”

성윤이 1세대인 걸 아는지 질문자는 살짝 성윤의 눈치를 봤다.

말도 최대한 순화했음이 틀림없다.

“아무래도 이 점은 짚고 넘어가야겠네요.”

플루엘이 자세를 조금 고쳤다.

“지구의 대다수의 사람들은 1세대를 무시하는 경향이 있는데, 순수한 재능만으로 따지자면 다른 2, 3세대들보다 1세대의 연결자들이 압도적으로 위입니다.”

사람들이 놀랐다. 지금까지의 상식이 여지없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엄청난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는 달의 마력을 처음으로 끌어온 사람들이에요. 재능이 떨어질 리가 없죠.”

“그럼 어째서 2, 3세대보다 능력이 떨어지는 겁니까?”

“아마도 마력 자체에 익숙하지 않아서일 거예요. 재능은 본능적으로 마력을 끌어올 정도로 뛰어났지만 마력 없는 삶에 익숙하다 보니 신체는 마력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죠. 그러니 능력이 떨어질 수밖에요.”

“2, 3세대의 신체는 마력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겁니까?”

“부모 중 한 명이, 혹은 모두가 원래부터 마력을 쓰던 사람들이니 당연히 마력에 익숙하죠. 신체부터가 마력에 익숙하니 연결자로서 각성할 확률도 높아지고요. 물론 각성한다 해도 1세대와 비견되는 재능을 가지고 있는가는 별개의 일이지만요.”

규명되지 않던 연결자의 매커니즘 하나가 알려지는 순간이었다.

소장과 첼시가 정신없이 노트북을 두들기고 있는 것이 보였다. 단 한 자라도 빠뜨리지 않겠다는 열의가 전해졌다.

“그럼 케이빌은 그 재능이 뛰어난 1세대 연결자를 모아서 뭘 하려는 겁니까?”

“저도 정확히는 몰라요. 그래도 그레노이드에게 이득이 되는 뭔가를 하려 하는 건 분명해요. 1세대 정도의 능력이라면 ‘제물’로 사용해도 상당히 쓸 만할 테니까요.”

제물. 살벌한 단어가 나왔다.

사람들 대부분이 인상을 찌푸렸다.

그 말을 아무렇게나 하는 플루엘에게 반감을 가진 사람도 있었다.

“납치된 사람들이 살아있을 가능성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별로 기대하지 않는 게 좋지 않을까요. 그레노이드에게 인간이란 쳐 죽여야 할 적일 뿐이니까요. 곱게 대해주는 일은 절대로 없어요.”

그 후로도 질문은 계속됐다. 플루엘은 자신이 아는 대부분의 것들을 설명해줬다.

질의응답이라 포장된 심문이 끝나고 사람들이 하나둘씩 떠났다.

새로 얻은 정보에 골머리가 아픈 듯 대부분 좋은 인상을 하고 있진 않았다.

곧 방 안은 텅 비었다. 하지만 성윤 일행은 나가지 않고 오히려 플루엘에게 다가갔다.

“오랜만이에요, 성윤 씨.”

플루엘이 성윤을 반겼다. 그리고 시선을 돌렸다.

제법 익숙한 사람들이 보였다. 그리고 처음 보는 사람도 있었다.

플루엘이 그녀를 응시했다.

처음 보지만 알고 있는 사람.

“당신이 한지민 씨로군요.”

그녀의 또 다른 딸이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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