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80화
꾸역꾸역.
그것이 지금 몬스터들의 행진을 가장 잘 표현한 단어일 것이다.
암스트롱 외벽에 난 구멍을 통해 몬스터들이 끝도 없이 몰려나왔다.
‘무작정 시청 주위만 봉쇄하고 금고를 찾으려 했다면 정말 큰일 났었겠군.’
암스트롱과 조금 떨어진 야산에서 전장을 보던 성윤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양동을 맡은 부대가 쓰나미에 휩쓸리기 직전인 나무집을 보는 것처럼 불안불안해 보였다.
당장이라도 포위당해 몬스터의 바다 속에서 익사할 것 같았다.
‘그래도 다행히 잘 피해내고 있어.’
폭풍우 속에서도 용케 길을 잃지 않고 험난한 파도를 뚫고 가는 범선처럼 월인들은 몬스터의 노도를 능숙하게 받아 넘기고 있었다.
부대 중앙에서 지휘를 하는 플루엘 덕분이었다.
동료들의 디바이스와 젬을 빌리고 전장에 나선 그녀의 지휘는 무척이나 훌륭한 것이었다.
하지만 잘 버티고 있는 부대를 보면서도 성윤은 불안했다.
‘역시 말리는 게 좋지 않았을까.’
혹시라도 플루엘에게 이상이 생긴다면 디바이스와 젬을 회수하더라도 지구로 귀환하지 못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생겨버린다.
그러나 플루엘의 작전 참가는 그녀의 강력한 의향에 따른 것이었다.
월인을 이끌던 셋 중 하나가 그녀다. 그 때문인지 셋에 비해 다른 월인들의 지휘는 많이 미숙했다.
특히 소리가 들리지 않고 중력도 약한 달 표면에서의 지휘는 일반적인 환경에서 하는 지휘보다 훨씬 어려웠다.
그리고 그 지휘를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가 플루엘이었다.
그녀가 한사코 자신이 지휘봉을 잡아야 한다고 주장한 것도 틀린 말은 아니었다.
‘아루원이 맡아줬으면 했지만.’
그러나 그도 할 일이 있어 불가능했다.
‘그래도 약속한 것처럼 다른 사람의 보호를 받으면서 직접 전투는 확실히 회피하고 있으니, 저 정도면 괜찮겠지.’
게다가 그녀에게는 포털 기능이 있는 플래쉬 젬도 하나 줬다. 위험할 때는 바로 포털을 타고 귀환할 것이다.
성윤은 전투 지점에서 눈을 뗐다. 그들이 바쁜 만큼, 성윤도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성윤은 포털을 타고 귀환했다.
“어떻습니까?”
성윤이 포털에서 나오자마자 기다리고 있던 시장이 물었다.
“나오던 몬스터의 수가 줄기 시작했습니다.”
무한하게 나와 양동에 들어간 두 부대를 압살할 것처럼 보였던 몬스터들도 끝은 있는 모양이었다.
성윤은 귀환하기 전, 암스트롱에서 나오던 몬스터의 수가 확연히 줄어든 걸 확인한 상태였다.
“좋습니다. 그럼 다음 작전을 시작하죠.”
시장은 방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사람들을 들였다. 두 번째 작전에 투입될 연결자 부대였다.
그들은 중무장을 한 채였다.
전장을 앞둔 진한 긴장감이 그들에게서 진하게 풍겨 나왔다.
“준비는 됐습니까?”
두 번째 작전에서도 가장 먼저 투입될 연결자 조를 향해 성윤이 말했다.
어쩌면 그들은 나가자마자 죽을지도 모른다.
암스트롱 안의 상황을 재기 위한, 어떻게 보면 목숨을 건 미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장 앞에 있는 연결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본인이 각오를 했다.
그러면 더 이상 할 말은 없다.
우웅!
성윤이 포털을 열었다.
잠시 긴장했지만 예전처럼 몬스터가 튀어나오지는 않았다.
대기하던 연결자들이 착실하게 포털 안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포털로 들어갔던 한 명의 연결자가 다시 포털에서 나왔다.
“건물 안에 몬스터는 없습니다. 암스트롱 내부의 몬스터도 극히 적습니다.”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이 작게 환호를 질렀다.
암스트롱 내부에 있는 몬스터들을 밖으로 끌어낸다는 첫 번째 작전이 성공한 것이다.
“좋습니다. 결과가 좋군요. 바로 두 번째 작전을 본격적으로 실시하겠습니다.”
시장의 말을 듣고 보고를 한 연결자는 다시 포털 안으로 들어갔다.
성윤은 옆을 쳐다봤다. 성윤의 옆에는 아루원이 서 있었다.
“시작하죠, 아루원 씨.”
“알겠습니다.”
아루원이 손을 들어 올렸다.
그의 전사장의 젬이 발동하며 포털 하나가 생성됐다.
성윤도 포털을 새로 만들었다. 방금과는 다른 곳으로 통하는 포털이었다.
“돌입!”
시장의 명령에 조를 이룬 연결자들이 하나하나 포털 안으로 뛰어 들어가기 시작했다.
***
작전은 순조로웠다. 포털을 통해 암스트롱 안으로 연결자들이 계속해서 투입됐다.
성윤과 아루원은 연신 정해둔 구역으로 통하는 포털을 열었다.
재미있게도 포털을 여는 빈도는 성윤보다 아루원이 훨씬 더 많았다.
왕족의 젬이든 전사장의 젬이든 기본적으로 포털을 열 수 있는 곳은 자기가 가본 곳에 한한다.
한데, 성윤은 암스트롱을 그렇게 구석구석 돌아본 적이 없다.
그의 활동반경은 자신의 집, 주요 기관들이 모여 있는 1지구, 간간이 하는 외식 장소. 그리고 시작의 미궁과 대미궁 정도였다.
그에 비해 아루원은 적대 세력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암스트롱 구석구석을 조사한 상태였다.
암스트롱 곳곳에 연결자를 보내야 하는 두 번째 작전의 내용을 본다면 이 작전에 적합한 자는 성윤이 아니라 오히려 아루원이었다.
플루엘이 월인들의 지휘를 맡게 된 이유이기도 했다.
그런 이유에서 암스트롱 곳곳에 연결자들을 보내는 건 아루원에게 맡기고 성윤은 주요 시설 내부에 연결자들을 이동시키는데 집중했다.
아무래도 시장이 신뢰하는 연결자로서 암스트롱 주요 시설의 내부를 아는 건 성윤이 위였다.
시장이 지도의 한 곳을 가리키면 성윤이나 아루원이 그곳의 모습을 되새기고 포털을 연다. 그 모습이 한동안 계속됐다.
“끝입니다.”
마지막 조가 포털 안으로 사라지자 시장이 말했다.
성윤과 아루원 모두 작게 숨을 내쉬었다.
그들이 맡은 두 번째 작전의 임무가 끝난 것이다.
하지만 아직 마지막이 남아 있었다. 그리고 그 마지막이 이번 작전의 핵심이었다.
시장이 방 밖에 대기하고 있던 나머지 연결자들을 들였다.
마지막 세 번째 작전을 결행할, 지금 암스트롱에서 가장 정예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성윤 씨, 부탁드립니다.”
시장이 말했다.
연결자들이 각자의 방법으로 긴장을 풀었다.
심호흡을 하거나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거나, 괜히 무기를 흔들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의 눈은 똑바로 성윤을 향하고 있었다.
성윤이 포털을 열었다.
그 포털은 작전의 최종 목표인 금고가 있는 시청으로 뚫린 포털이었다.
“가세요!”
시장의 명령에 마지막 부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
연결자들을 보내고 바로 닫아버린 다른 포털과는 달리 성윤은 시청으로의 포털은 계속 열어 두고 있었다.
작전 목표를 회수하면 최대한 빨리 도시에 들이기 위해서였다.
시간은 조용히 흘러갔다.
침묵 속에서 기다림이 계속됐다. 시장은 연신 손목시계를 들여다봤다.
하지만 그런다고 시간이 빨리 흘러가진 않았다.
열린 포털은 아무것도 토해내지 않은 채 잔잔한 형태를 유지했다.
‘아직인가.’
성윤도 초조한 건 마찬가지였다.
시장처럼 시계를 계속 보진 않았지만 느껴진 것만으로도 몇십 분은 족히 지난 걸 알 수 있었다.
그럼에도 귀환자는 없었다.
‘역시 지하까지 완전히 파괴한 것 같군.’
건물 잔해가 나뒹굴고 있다지만 연결자의 능력이라면 잔해를 걷어내는 데 오랜 시간은 걸리지 않는다.
아마 완전히 파괴된 지하에서 금고를 찾고 있는 것 같았다.
그때, 포털에서 반응이 일었다.
투확!
포털에서 무언가가 튀어나왔다.
퍼억!
벽에 강하게 부딪친 그것이 쭈욱 미끄러져 내렸다. 벽에 새빨간 선혈이 자국을 남겼다.
시장이 깜짝 놀라고 성윤과 아루원이 무기를 겨눴다.
“젠장!”
날아온 물체를 확인한 성윤이 무기를 거뒀다. 그리고 물체 쪽으로 황급히 걸어갔다.
날아온 물체는 인간이었다. 금고를 탈환하기 위해 시청으로 투입된 연결자가 분명했다.
시장과 아루원도 상황을 파악했다. 시장은 급히 성윤의 뒤를 따랐다. 그에 비해 아루원은 포털을 경계했다.
“어, 어떻게 된 겁니까?”
“모르겠습니다.”
성윤은 부상자를 살폈다. 이미 갑옷은 걸레라고 불러도 지장이 없을 정도로 부서져 있었다.
‘젬이 안 깨진 게 용하군.’
온몸에는 피칠갑이 되어 있고 몸 여기저기에 크고 작은 상처가 보였다.
하지만 특히 심한 건 사지였다. 팔과 다리가 하나씩 사라져 있었다.
간신히 숨은 붙어 있지만 그대로 뒀다간 강인한 연결자라도 오래 살지 못할 게 뻔했다.
성윤은 당장 치유 마법을 전개했다.
후웅!
서서히 부상자의 상처가 사라져 갔다. 호흡이 안정됐고 신음소리가 작아졌다.
하지만 결손된 사지는 돌아오지 않았다.
‘내 치유 젬으로는 여기까지가 한계야.’
에밀리도 현재 작전에 나가 있는 상황. 다음에 수준 높은 치유 젬을 갖고 있는 사람에게 부탁을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목숨을 살리는 건 가능했다.
그가 눈을 뜨자 성윤이 다급히 물었다.
“뭐가 어떻게 된 겁니까? 금고는 찾았습니까?”
“그, 금고…?”
아직 정신이 제대로 돌아오지 않았는지 그의 말투는 어눌했다.
하지만 곧 눈빛이 뚜렷해졌다.
“그, 크윽!”
사라진 팔다리를 허우적거리다가 그가 중심을 잃었다. 성윤이 그를 붙잡았다.
“내, 내 팔이랑 다리가…!”
“다른 치유 능력자가 오면 고칠 수 있습니다! 일단 침착하고 포털 너머의 상황을 알려 주세요!”
혼란스러워하던 상대였지만 성윤의 설득이 먹혔는지 더듬더듬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 금고가 있는 곳은 찾았어. 하지만 몬스터가 너무 몰려들어서 빼낼 여유가 없어. 게다가 이상한 몬스터가 나타나고부터는 오히려 우리가 밀리고 있어. 벌써 몇 명이 죽었어.”
“이상한 몬스터요?”
“상반신은 인간인데 하반신이 뱀이야. 나도 그런 몬스터는 처음 봐. 하지만 엄청나게 강해.”
“글라이아군요.”
포털을 경계하고 있던 아루원이 말했다. 성윤은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었다.
“글라이아요?”
“네. 그레노이드의 몸에서 자연스레 태어나는 몬스터들과는 달리 그레노이드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몬스터입니다. 다른 몬스터들을 지휘하는 개체들로, 그레노이드의 명령에 따라 일반 몬스터들을 부리는 간부라고 보시면 됩니다.”
“간부라니….”
처음 들어보는 존재에 시장이 아연하게 중얼거렸다.
“예전에 지구에서 우성윤 씨를 습격한, 불꽃을 사용하는 몬스터. 녀석도 간부 중 한 명입니다. 케이빌이라고 하죠.”
성윤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지금 나타난 글라이아라는 간부는 모르지만 케이빌이란 간부는 직접 맞싸워 본 상대다.
‘지금 나타난 간부가 그 케이빌이라는 녀석과 비슷한 힘을 갖고 있다면….’
몸이 오싹했다. 무엇보다 녀석은 지구에서는 힘을 다 내지 못한다는 듯 투덜댔던 걸 기억한다.
즉, 달에서는 녀석의 힘이 훨씬 더 강해진다는 뜻.
그만큼 글라이아라는 몬스터도 강할 가능성이 높았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경악을 추스르고 성윤이 시장에게 물었다.
“시청에 투입한 연결자들이 금고는 찾은 것 같지만 그걸 들고 올 여력은 없는 것 같습니다. 지원으로 투입한 연결자도 없고요. 있다면 저와 아루원 씨겠죠. 저희도 투입하시겠습니까? 아니면 다른 생각이 있으십니까?”
성윤은 딱딱하게 굳은 시장에게 결단을 촉구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