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76화
시장과 부시장, 성윤이 플루엘이 갇혀 있는 방에 들어갔을 때 그녀는 한창 식사 중이었다.
성윤과 대화를 나눈 후 식사 중단을 멈춘 그녀의 얼굴은 혈색이 도는 것이 또렷하게 보일 정도로 좋아져 있었다.
“질문할 게 있나요?”
묶여 있는 손으로 재주 좋게 입에 빵을 가져가던 그녀가 음식을 한쪽으로 치웠다.
시장이 입을 열었다.
“음식이 입에 맞으십니까?”
“좋아요. 미궁에서 얻는 식재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맛있어요.”
“그거 다행이군요.”
하지만 시장의 목소리에는 옅은 걱정이 담겨 있었다.
달에서는 더 이상 식료품을 구할 수 없다. 음식은커녕 식수조차 부족하다.
지금이야 몇 몇 연결자가 보관 젬에 저장해두었던 음식과 물로 간신히 연명을 하고 있지만, 미궁을 공략할 때 입의 곤궁함을 달래기 위해 챙겨둔 음식이 얼마나 되겠는가.
시장이 최대한 빨리 사람들을 지구로 보내려 하는 이유 중 하나였다.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습니다. 당신과 당신의 일행이 지구로 내려갔던 방법이 필요합니다.”
시장의 물음에 플루엘이 눈을 깜박였다. 그녀가 성윤을 쳐다봤다.
“그것 때문에 아직 이곳에 있었나요? 지구로 포털을 열면 되잖아요.”
“저는 달에서밖에 포털을 열 수 없습니다.”
“아!”
플루엘이 뭔가 깨달았다는 듯 탄성을 흘렸다.
“아직까지 왕족의 젬의 기능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시는 군요. 하긴, 각성한 지 얼마 되지 않으셨을 테니.”
지금 뭔가 중요한 단어가 튀어 나왔다. 성윤이 한 걸음 앞으로 나왔다.
“왕족의 젬이요?”
“네. 왕족의 젬. 성윤 씨가 갖고 있는, 아루원에게서 빼앗은 젬 말이에요.”
성윤의 시선이 디바이스에 꽂혀 있는 왕족의 젬으로 향했다.
붉은빛을 머금은 금색의 젬이 반짝였다.
“왕족의 젬이 뭡니까?”
시장이 물었다.
플루엘이 잠시 눈살을 찌푸리고 고민에 들어갔다.
크게 한숨을 쉬고, 고개를 저었다.
“아직 거기까지 가르쳐드릴 정도로 당신들을 믿을 순 없네요.”
시장이 앓는 소리를 냈다. 하지만 뭐라 할 수는 없었다.
그들도 플루엘을 완벽히 신뢰할 수 없어서 아직 포박하고 가둬두고 있는 게 아닌가.
“그럼 지구로 보낼 방법만이라도 가르쳐주시죠.”
플루엘도 그것까지 거부할 생각은 없는지 시장의 말에 답했다.
“성윤 씨의 왕족의 젬의 능력이 더욱 강해지면 지구까지 여는 포털을 열 수 있겠지만, 그게 언제인지는 몰라요. 그때까지 기다릴 수….”
“없습니다.”
시장이 딱 잘라 부정했다.
“음. 저에게 이런 말을 묻는다는 건 당신들이 지구로 귀환할 방법이 없어졌다거나, 있다 해도 무척 어려운 상황이라는 거겠죠?”
“…그렇습니다.”
“그럼 제 디바이스와 젬을 돌려주세요.”
시장과 부시장, 성윤의 눈초리가 험악해졌다.
“그런 눈 하지 마세요. 딱히 당신들을 습격해서 탈출하겠다든가 할 생각이 아니니까요. 제 젬이 있어야 지구까지 포털을 열 수 있어요.”
“그런 젬이 있습니까?”
“성윤 씨가 갖고 있는 왕족의 젬과 비슷한 거라고만 말해둘게요.”
더 이상은 설명하고 싶지 않은지 플루엘이 입을 닫았다.
“…일단 플루엘 씨의 말을 따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만.”
성윤이 조심스럽게 자신의 의견을 말했다.
하지만 시장과 부시장의 얼굴에는 낭패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 표정을 오해했는지 플루엘이 조금 불쾌하게 말했다.
“절 못 믿으시겠다면 어쩔 수 없어요.”
“아니, 그게 아니라….”
시장이 크게 한숨 쉬었다.
“당신의 디바이스와 젬은 지금 우리에게 없습니다.”
“네?”
“사람들을 피난시키기도 바쁜데 테러리스트 용의자의 디바이스와 젬을 챙길 여유가 있을 리 없지 않습니까.”
“그럼 제 디바이스와 젬은….”
“암스트롱에 남아 있습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럼 잠시 정리해보죠.”
성윤이 말했다.
“지금 제안된 탈출 방법은 총 세 가지. 저의 이, 왕족의 젬이라고 칭한 젬의 능력이 강화되는 걸 기다리는 게 하나, 어떻게든 지구와 연락을 해 우주선을 타고 탈출하는 게 하나, 마지막으로 플루엘 씨의 디바이스와 젬을 탈환하는 게 하나.”
“일단 첫 번째는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부시장이 탈출 방법 한 가지를 부정했다.
“최대한 빨리 피난민들을 탈출시켜야 합니다. 여긴 음식도 식량도 극도로 부족하니까요. 지금 있는 음식물을 최저한으로 분배한다고 하더라도 1주일 이내에 바닥납니다. 그러니 늦어도 2주 내에는 탈출을 해야 해요. 성윤 씨의 젬이 2주 안에 각성한다는 확증이 있다면 몰라도, 그렇지 않다면 첫 번째 방법은 불가능합니다.”
플루엘이 자기가 먹던 음식을 힐끔 바라봤다.
“그럼 어떻게든 암스트롱에 잠입을 할 수밖에 없겠군요.”
성윤이 턱을 쓰다듬었다.
“통신기를 확보하든, 플루엘 씨의 디바이스와 젬을 확보하든 말입니다.”
“성윤 씨는 어느 쪽이 좋다고 생각하십니까?”
“글쎄요.”
시장의 물음에 성윤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역시 플루엘 씨의 디바이스와 젬을 탈환하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그게 가장 안전하겠죠.”
시장과 부시장도 동의했다.
“지구와 연락이 닿는다고 해도 그 때엔 또 우주선이 대규모로 필요할 테니까요. 우주선이 내려올 곳을 몬스터에게 들킨다면 또 위험하고 말이죠.”
“통신부터가 문젭니다. 통신 장치에 전력이 필요하기도 하니 말 그대로 암스트롱 일부를 탈환할 필요가 있는데, 지금의 전력으로는 가능할지조차 의문입니다.”
“선택의 여지는 없는 거나 다름없군요.”
시장과 부시장의 대화가 작금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줬다. 성윤도 그들에게 동의했다.
‘이제는 플루엘 씨가 솔직하게 말해줬기를 바랄 수밖에 없겠지.’
“플루엘 씨의 다비이스와 젬은 어디 있습니까?”
“시청 지하의 금고에 넣어 놨습니다. 금고 열쇠는 시장실의 서랍에 있고요.”
시장이 대답했다.
목적한 물품과 그 물품을 얻기 위한 열쇠가 있는 곳을 알았으니, 들을 건 전부 들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지금 당장 움직이죠. 시간은 우리 편이 아니니까요.”
“잠깐만요.”
당장 방을 나가려는 성윤을 부시장이 막았다.
“성윤 씨가 가실 생각입니까?”
“그렇습니다만?”
“안 됩니다!”
부시장이 강하게 반발했다.
“만약 포털을 다루는 성윤 씨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우리는 바로 여기에 고립됩니다. 포털이 없다면 여기는 들어올 수도 나갈 수도 없는, 거대한 감옥이나 다를 바 없습니다. 성윤 씨를 보낼 수 있을 리 없잖습니까.”
서두르느라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지 못했던 성윤이 멈칫했다.
“부시장의 말이 맞습니다. 지금 우리 상황에서 성윤 씨를 위험한 임무에 투입할 수는 없습니다. 성윤 씨는 그저 포털을 열고 유지만 시켜주십시오. 포털은 성윤 씨가 가본 곳만 열 수 있다고 했었죠?”
“그렇습니다.”
“그럼 일단 시장실에 포털을 연 후 다른 연결자를 보내 열쇠를 가져오도록 하죠. 그리고 그 이후에는 로비로 연결자를 보내 지하실로 가게 하는 게 최선이겠군요.”
시장이 대략적인 계획을 내뱉었다.
“그게 가장 좋겠습니다.”
부시장도 동의했다. 시장과 부시장 모두 성윤을 임무에 투입하겠단 생각은 전혀 하지 않고 있는 게 분명했다.
일리가 있었기에 성윤도 반대하지 않았다.
세밀한 작전을 짜기 위해 세 사람은 다시 회의실 삼은 방으로 나가기 위해 움직였다. 그들의 뒤로 플루엘의 말이 들렸다.
“혹시라도 곤란한 일이 있으면 와주세요. 제 쪽에서 말할 수 있는 선에서는 도움을 드릴 테니까요.”
“명심하겠습니다.”
성윤은 플루엘에게 고개를 한 번 숙이고 방을 나갔다.
그들이 나간 후, 플루엘은 한쪽으로 치워뒀던 빵을 다시 챙겼다. 역시 지구에서 만든 이 빵이란 음식은 무척 맛있었다.
***
우우우웅!
포털이 푸른색의 빛을 흩뿌리며 사람들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언제 봐도 아름다운 존재군요.”
나선형으로 도는 거대한 은하를 축소해 푸른색 물감을 섞은 것 같은 자태에 부시장이 저도 모르게 감탄성을 내뱉었다.
“작전은 알고 있겠죠?”
시장이 특별히 뽑은 다섯 명의 연결자를 향해 물었다.
조용히 디바이스와 젬만 챙겨나오는 일에 많은 연결자는 필요 없었다.
아니, 오히려 숫자가 많으면 작전에 지장을 받을 게 분명했다.
“네! 몬스터와의 접촉이나 전투를 최대한 피하고 일단 시장실 책상 안에 있는 금고 열쇠를…!”
대답하던 연결자의 말은 계속 이어지지 않았다.
쉬이이익!
갑자기 포털이 출렁거리더니 무언가가 툭 튀어 나왔다.
날카로운 칼처럼 생긴 거대한 뼈가 그 연결자에게 날아갔다.
콰앙!
“우왁!”
다행히 그 연결자가 목숨을 잃는 일은 없었다.
혹시나 모를 상황을 대비해 방 안에 대기시켜 두었던 다른 연결자가 그 공격을 막은 것이다.
덕택에 공격을 받은 연결자는 크게 놀란 것 이외에는 피해가 없었다.
성윤도 바로 반응했다.
후욱!
포털을 없애고 할버드를 소환, 그대로 포털에서 튀어나온 몬스터를 찔렀다.
콰지직!
아직 자세를 고치지 못한 몬스터는 방어할 수 없었다.
할버드의 날이 몬스터의 척추 부분을 그대로 찢어버렸다.
쿠어어어어!
몬스터가 비명을 지른다.
하지만 녀석이 다른 행동을 할 새도 없이 바로 다른 연결자들의 공격이 날아들었다.
몬스터는 별다른 저항조차 못한 채 죽음을 맞았다.
“뭐, 뭐야!”
상황이 끝났음에도 어지간히 놀란 한 연결자가 혼이 빠진 얼굴로 중얼거렸다.
하지만 바로 상황을 파악한 사람들은 심각한 얼굴로 몬스터를 바라봤다.
“죽었습니까?”
“네. 완전히 죽었습니다.”
성윤이 몬스터를 발로 툭 차 뒤집어 시장에게 보여줬다.
몬스터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곧 몬스터는 월석으로 변해 사라졌다.
“시장실에 몬스터가 있던 모양입니다. 재수가 없었군요.”
부시장이 포털이 떠 있던 곳을 보며 물었다. 하지만 성윤은 부시장의, 그저 재수가 없었다는 말에 동의할 수 없었다.
“과연 그냥 재수가 없던 걸까요?”
“…무슨 소립니까?”
“이 녀석들이 암스트롱의 주요 지점을 지키고 있었던 건 아닐까요?”
사람들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우리가 포털을 통해 이동한 걸 이 녀석들은 알고 있을 겁니다. 몬스터 앞에서 대놓고 사용했었으니까요.”
피난민들을 빨리 대피시키기 위해서는 포털을 건물 안에 열 수 없었다.
그래서 외부인 시청 마당에 열었었는데, 당연히 몬스터들의 시선에 노출됐다.
“…몬스터들이 대비를 하고 있다고요? 너무 앞서 나간 생각 아닙니까?”
하지만 그런 말을 하면서도 부시장의 말에는 불안감이 가득 차 있었다.
못 믿겠다는 반응이 아닌, 믿기 싫다는 반응이었다.
“그런 가능성도 있죠. 저도 그랬으면 합니다. 어쨌든 다른 곳에 포털을 열어보죠. 그걸로 알 수 있겠죠. 정말로 우연히 몬스터가 시장실에 있었을 가능성도 있으니까요.”
그렇게 말하며 성윤은 다시 포털을 열기 시작했다.
방 안에 긴장감이 가득했다.
성윤은 몇 번 더 포털을 열었다. 하지만 포털이 열린 곳마다 몬스터가 튀어 나왔다.
몬스터가 튀어나오지 않은 곳도 포털 밖으로 나가 보니 몬스터가 대기하고 있어, 연결자들은 바로 포털을 통해 귀환했다.
결국 성윤은 더 이상 포털을 여는 걸 포기했다.
방 안에 기분 나쁜 분위기가 감돌았다.
“아무래도….”
정말로 크게 한숨을 쉬며, 성윤이 입을 열었다.
“또 한 번 플루엘 씨와 대화를 해보는 게 좋을 것 같군요.”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