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달의 미궁-275화 (275/354)

제275화

소장은 연구원이 내민 보고서를 확인했다.

“확실한가?”

“일단 몇 번의 검토가 더 필요한 일입니다만, 지금까지는 확실합니다.”

달이 지구로부터 도망치는 걸 그만뒀다. 분명 비유였지만 비유가 아니기도 했다.

“달이 더 이상 지구에서 멀어지고 있지 않다라.”

소장이 중얼거렸다.

지구 주변을 회전하며 세상이 끝날 때까지 거기 있을 것 같은 달이지만, 실제로는 조금씩 지구로부터 멀어지고 있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달은 지구를 벗어나 저 드넓은 우주로 여행을 떠날 것이다.

하지만 지금 연구원이 갖고 온 보고서는 그 사실을 송두리째 뒤엎고 있었다.

‘대체 어떻게 된 거지?’

우주는 철저하게 물리법칙의 지배하에서 움직이고 있다.

그리고 천체들의 움직임은 기본적으로 상상을 가볍게 초월하는 에너지를 갖는다.

그건 달의 움직임도 마찬가지.

그런 달의 움직임이 뚜렷하게 바뀌었다는 사실은 뭔가 엄청난 규모의 외부간섭이 있었다는 사실이 된다.

“지금 달에서 일어나는 일과 뭔가 관계가 있나?”

“모르겠습니다.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아 자료 자체가 없으니까요.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그럴 가능성이 무척 높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연이냐, 아니면 인과 관계가 있는 거냐.’

하지만 우연이라기에는 시기가 너무 공교롭다.

소장도 연구원과 마찬가지로 암스트롱의 멸망과 달의 움직임 변화가 뭔가 관계가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러면 그런대로 문제가 커진다.

‘대체 얼마 만한 힘이 간섭을 한 거지?’

추측만 해도 식은땀이 흐를 정도의 힘이 분명하다.

무엇보다 더 공포스러운 건 저 변화가 달을 지구에서 멀어지지 않게 하는 것만으로 끝날 것이냐는 것이다.

만약 저 정체모를 힘이 계속해서 작용을 하고 있다면.

‘달이 역으로 지구로 접근할 수도 있겠지.’

언젠가부터 소장의 등허리는 식은땀으로 축축하게 물들어 있었다.

***

하루가 멀다 하고 암스트롱에 대한 정보가 쏟아져 나온다.

하지만 암스트롱이 멸망하고 모든 통신이 끊어진 이상 지금 지구에서는 현 상황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었다.

구출 작전을 하려고 해도 달 곳곳에 몬스터가 계속해서 목격되는 터라 섣불리 우주선을 보낼 수도 없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들의 불안감은 더욱 커져갔다. 하지만 일반인들의 불안감은 미래에 대한 불안감일 뿐이다.

형태가 없는 막연한 것으로, 사태를 우려 섞인 눈으로 바라볼 뿐. 아직 직접적인 불이익은 없다.

하지만 불안감이 구체화 된 걸 넘어 심신을 옭아매는 사람들도 있었다.

암스트롱에서 탈출하지 못 한 연결자들의, 가족이었다.

지민은 소파에 앉아 오로지 TV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앵커가 심각한 목소리로 암스트롱 사태에 대해 전한다.

하지만 새로운 정보는 없었다. 그러나 지민은 뉴스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그녀의 눈 아래에 다크서클이 짙게 내려와 있었다.

남편인 성윤. 그리고 친구인 첼시가 달에서 돌아오지 못했다.

때문에 지민은 요새 거의 제정신이 아니었다.

아버지가 돌아오지 못한 날이 떠올랐다.

어머니들이 울고 동생들은 침통한 표정을 지었던 게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시체 없는 관을 껴안은 채 엉엉 울었다.

잘못하면 그 악몽이 반복될 수도 있다. 그녀가 아직 정신을 잡고 있는 게 놀라울 정도였다.

벌컥!

“엄마!”

방에서 신혜가 나왔다. 지금 그나마 지민의 정신을 유지시켜주는 구세주.

“응? 왜 그러니?”

석상처럼 굳어 있던 그녀가 이제야 사람인 듯 움직였다.

그녀가 딸에게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어딘가 어색한 표정은 감출 수 없었다.

삑!

지민은 한 손으로 신혜를 반기며 다른 손으로 리모컨을 쥐어 채널을 바꿨다.

곧 심각한 앵커의 목소리가 사라지고 차분한 다큐멘터리 성우의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아직 신혜는 성윤의 일을 모른다. 상처 많은 아이에게 아빠가 생사불명이라는 말을, 지민은 차마 할 수 없었다.

“와, 사자다!”

신혜가 TV로 시선을 돌렸다. 자연스레 지민의 무릎에 앉았다.

지민은 팔을 뻗어 신혜를 껴안았다.

그 상태로 몇십 분이 흘렀다. 석양빛이 물드는 아프리카의 초원을 배경으로 엔딩 크레딧이 올라왔다.

“끝났네.”

“그래, 끝나 버렸네.”

신혜가 거실에 걸린 벽시계를 바라봤다.

“아, 이제 자야겠다!”

신혜가 지민의 무릎에서 폴짝 뛰어내렸다.

“자려고?”

“응!”

“그래. 잘 자렴.”

신혜가 지민을 빤히 바라봤다.

“응? 왜 그러니?”

“엄마 괜찮아?’

지민은 말문이 탁 막혔다. 아이의 깊은 눈이 자신의 심부를 들여다보는 것 같았다.

문득 눈물이 떨어질 뻔했다. 하지만 꽉 참았다.

어느새 신혜의 작고 보드라운 손이 지민의 손을 잡고 있었다.

아이들은 민감하다. 특히 부모의 감정에는 더욱 민감하다. 게다가 신혜같이 불운한 과거를 갖고 있는 아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그렇기에 지민은 필사적으로 눈물을 거뒀다.

“응, 괜찮아.”

얄팍한 거짓말. 하지만 지금 할 수 있는 유일한 말이다.

지민은 최대한 활짝 웃으며 말했다.

“으음, 안 괜찮아 보이는데.”

“아니, 엄마는 정말로 괜찮은데?”

신혜가 지민의 얼굴을 요모조모 뜯어본다.

“응, 안 괜찮아도 괜찮아.”

신혜가 밝게 웃었다.

“뭐든 아빠가 해결해줄 거야.”

‘안녕히 주무세요!’라는 말을 남기고 신혜가 다시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평소라면 ‘잘 자렴.’ 이라고 상냥한 인사를 해줬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 그녀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

지민은 회사에 나갔다. 아무리 반쯤 정신을 놨다고 해도 회사를 완전히 놓을 순 없었다.

성윤과 첼시가 죽었다는 확증도 아직은 없지 않은가.

간신히 몸을 이끌고 사장실에 들어갔다. 부하 직원들의 걱정스러운 시선이 그녀의 등에 꽂혔다.

건성으로 책상 위의 서류를 몇 번 훑어본다. 하지만 누가 봐도 그건 영혼이 없는 행동이었다.

한 시간 쯤 뒤.

“후우~.”

결국 서류를 덮고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똑! 똑!

노크 소리가 들렸다.

“들어와요.”

이 시간에 사장실에 들를 사람 중 생각나는 사람은 한 명뿐이다.

지민은 망설이지 않고 바로 노크를 한 사람을 들였다.

들어 온 사람은 선아였다. 지민에게 결코 뒤지지 않을 정도로 그녀의 얼굴색은 안 좋았다.

“사장님, 저어~.”

뭔가 망설임 가득한 목소리. 정말로 묻고 싶은 질문이 있지만, 들려올 대답이 두려워 머뭇거리는 모습이었다.

“아직 아무 소식도 없어요.”

지민이 말했다. 선아의 얼굴이 더욱 거무죽죽해졌다.

그녀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감정을 품고 있는지 지민도 알고 있었다. 분명 그녀 자신도 똑같은 감정을 품고 있을 테니까.

하지만 지금, 정말로 조금이지만 그녀는 여유가 생겼다.

눈물을 한가득 머금은 얼굴로 땅바닥을 쳐다보던 선아에게 무척이나 메마른, 하지만 조금은 부드러운 어투로 말했다.

“괜찮을 거예요.”

그건 전날, 딸아이가 해준 말이었다.

안이라는 폭풍 속에 빛나는 한 줄기 빛처럼, 그것은 분명 자그마한 희망의 싹이 되어 있었다.

“신혜가 말하기를, 뭐든 그이가 해결해줄 거라네요.”

그렇게 말하고 지민은 살짝, 아주 살짝 미소를 지었다.

***

지구에서 난리가 나고 사람들이 불안감에 떨며 연결자 가족들이 울부짖고 있을 때.

달에 남은 사람들은 필사적으로 타개책을 찾고 있었다.

“아마 지금쯤 지구에서는 난리가 났을 겁니다.”

“분명 그렇겠죠.”

시장과 부시장이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방에 모인 연결자들의 대표들도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리고 그만큼 심각한 일이기도 하고요. 일단 우리는 어떻게든 달을 벗어나 지구로 탈출을 해야 합니다.”

“방법은 있습니까?”

한 연결자가 물었다.

“달에는 지금 몬스터가 우글거리지 않습니까. 달 표면으로 나간다고 해도 몬스터를 마주치지 말란 법은 없고, 그러면 우리는 몰라도 일반인들은 위험합니다. 무엇보다 지구로 향하려면 우주선이 있어야 하는데, 우주선이 없습니다. 우주선을 보내달라고 지구로 연락을 하려 해도 연락 방법도 없고요.”

“일단 통신장비를 확보해야 하겠군.”

“하지만 어디서? 지구까지 통신을 보낼 설비는 암스트롱에만 있어. 암스트롱을 다시 되찾자고?”

“얼마 전에 멸망한 가가린·양 시티는 어때? 거기 통신기기가 살아 있진 않을까?”

“거긴 이미 예전부터 몬스터가 잔뜩 깔린 곳이야. 살아있는 통신기기가 있다 해도 어디 있는지조차 모를 가가린·양 시티를 확보하려 하느니 차라리 암스트롱을 다시 재탈환하는 게 나아.”

“지금쯤 몬스터가 사라지지 않았을까? 원래 암스트롱 근처는 마력이 새어나오는 시기에 맞춰 몬스터가 나타났다 사라졌다 했잖아.”

“몇 시간 전에 정찰을 나갔던 사람에 의하면 아직 잔뜩 있답니다. 새어나오는 마력도 줄지 않았고요.”

의견을 나누던 사람들이 신음을 흘렸다.

“그렇다면 암스트롱 주변도 가가린·양 시티 주변과 비슷하게 변했다고 봐야겠지.”

사람들의 고심이 더욱 깊어졌다.

“아, 그래!”

한 사람이 허벅지를 툭 쳤다. 그리고 팔짱을 끼고 있는 성윤을 바라봤다.

“이봐, 나이트. 당신이 저 포털을 만들었다고 했지? 그렇다면 지구까지 만들 순 없어?”

그런 생각을 한 사람은 질문을 던진 사람만이 아니었다.

사람들의 시선에 기대가 가득 찼다. 하지만 성윤은 무겁게 고개를 가로 저었다.

“불가능합니다. 제가 포털을 열 수 있는 영역은 어디까지나 달, 그것도 마력이 있는 지역뿐입니다. 지구까지 확장은 무리예요.”

“젠장!”

질문을 던진 사람이 벽을 쿵 때렸다.

연결자의 괴력에 벽이 조금 흔들렸다.

사람들이 인상을 찌푸리고 다시 앞으로의 대응책을 필사적으로 짜내기 시작했다.

그때, 성윤이 시장을 향해 말했다.

“시장님. 플루엘 씨 말입니다만.”

“네? 그녀에게 무슨 일 있습니까?”

대략적인 사정을 듣고, 세세한 질문을 하는 건 뒤로 미뤄둔 채 그들은 아직까지 플루엘을 방 안에 가둬두고 있었다.

“역시 그녀에게 도움을 받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사람들의 시선이 시장과 성윤에게 쏠렸다.

혹시 방법이 있는 것일까. 그들의 눈에 희망의 빛이 반짝였다.

하지만 시장은 썩 내키지 않는 모습이었다.

“그녀는 지구와 달을 왔다 갔다 했습니다. 그녀가 쓴 방법은 역시 포털이겠죠. 그 방법을 알아낸다면 사람들을 지구까지 안전하게 대피시킬 수 있을 겁니다.”

“으음.”

성윤의 말이 맞다. 시장이라고

그 생각을 안 해본 건 아니다. 하지만 문제가 하나 있었다.

“그녀를 믿을 수 있겠습니까?”

아직까지 그들과 플루엘 사이에 신뢰란 단어를 쓰기는 모자랐다.

혹시 플루엘이 잘못된 정보를 가르쳐 줘 그들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었다.

성윤도 그 의견에는 동의했다.

“하지만 만약 가능하다면, 여기 있는 모든 사람들을 안전하게 피신시키기 위해서는 그 방법이 가장 안전합니다. 적어도 물어보는 정도는 괜찮지 않습니까?”

시장은 꽤 오래도록 고민했다.

남아 있는 생존자의 목숨이 전부 그의 어깨에 달려 있는 것이다.

시장은 곧 결정했다.

“좋습니다. 한번 물어보도록 하죠.”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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