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달의 미궁-262화 (262/354)

제262화

성윤은 현우의 뒤를 따라 걸었다. 그러면서도 계속해서 주변의 인적을 살폈다.

시청은 암스트롱 주요 구역에 위치한다. 그 덕에 유동 인구는 많았다.

당장 현우가 자신을 덮칠 일은 그가 정신이 완전히 나가지 않은 이상 없어 보였다.

“저기면 좋겠군.”

현우가 가리킨 곳은 시청 근처의 카페였다.

“뭐 먹을 건가?”

현우의 태도는 여느 때와 다를 바 없었다.

‘정말로 넉살도 좋군. 혹시 내가 이상한 건가?’

아니, 미약한 의심은 이번 사건 이전부터 품고 있었지만 이번 건은 그 의심에 쐐기를 박아 넣기에 충분했다.

누가 이상하냐고 묻는다면 백이면 백 현우가 이상하다고 할 게 분명했다.

‘하지만 정말….’

성윤은 침을 꿀꺽 삼켰다.

‘엄청난 압박감이야.’

처음 만난 이후부터 현우란 존재는 언제나 성윤의 어깨를 든든하게 만드는 아군이었다.

하지만 의심의 싹이 터 입장이 뒤집어질지도 모르는 지금, 성윤이 받는 압박감은 상상 이상이었다.

그 정도로 성현우란 이름값은 컸다.

특히 성윤은 현우의 힘을 가까운 곳에서 목격한 바가 종종 있기까지 했다.

‘내가 강해졌다고 해도 아직 저 사람에게는 한참 미치지 못해.’

하지만 성윤은 억지로 마음을 다잡았다.

“아메리카노면 됩니다.”

“그래?”

현우는 커피를 시켜서 성윤의 앞에 내려 놨다.

성윤은 자신의 앞에 놓인 커피를 쳐다봤다.

“걱정 마. 독은 넣지 않았으니까.”

무슨 재미있는 말을 한 것처럼 현우가 킬킬댔다.

성윤은 입을 다물고 대꾸하지 않았다.

하지만 커피잔을 들어 내용물을 입 안으로 흘려보냈다.

“무슨 용건이십니까?”

성윤은 빨리 용무를 끝내 이 긴장감 넘치고 피곤한 자리를 피하고 싶었다.

“별 건 아냐. 그저 자네가 계속 강해지고 있는지 궁금해서 말야.”

이건 또 무슨 뜬금없는 소리란 말인가.

무슨 질문이 날아올지 내심 긴장하고 있던 성윤의 맥이 탁 풀렸다.

하지만 금세 다시 긴장을 조였다.

“일단은 다른 사람보다는 훨씬 빠르지 않을까 생각될 정도로 강해지고는 있습니다.”

“아직 한계가 보이진 않고?”

“그렇습니다.”

현우가 웃었다.

온갖 의심의 잣대를 들이대고 있던 성윤은 조금 놀랐다. 그만큼 현우의 미소는 깨끗했다.

“그거 반가운 소리군.”

“…실례지만 이게 현우 씨가 반가워할 만한 소리입니까?”

친분이 조금 있을지언정 그와 자신은 분명한 타인이다.

마치 자식이 시험 100점을 맞아왔을 때의 부모님 마냥 웃을 일은 아니었다.

“큭큭큭! 그저 개인적인 일 때문이라고 생각해 둬.”

현우는 남은 커피를 몽땅 입에 털어 넣었다.

입에 몇 개 섞여 들어간 얼음 조각을 와삭와삭 씹으며 몸을 일으켰다.

“그럼 나중에 보자고.”

“네?”

“뭘 그렇게 봐? 우리가 뭐 커피 사이에 둔 채 손 잡고 얘기나 나누는 연인 사이도 아니잖아? 용건 끝났으면 가야지.”

정말로 용건이 이걸로 끝이란 말인가.

성윤은 두 눈을 끔벅끔벅 뜨며 가게 밖으로 나가는 현우의 등을 쳐다봤다.

“…대체 꿍꿍이가 뭐야?”

현우가 나간 가게 문을 바라본 채 성윤은 중얼거렸다.

***

- 그래? 성현우가 그랬다고?

화면 너머에서 보이는 러셀이 신통치 않은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 그놈 대체 뭔 꿍꿍이야?

“저도 모르겠습니다.”

- 뭔 일을 했든 자기는 들키지 않을 자신이 있다는 빈정거림인가? 아니면 자신은 아무런 나쁜 짓도 하지 않았다는 무언의 항의? 이놈들, 진짜로 테러리스트 놈들을 박살냈을 뿐인가?

“심정적으로는 그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현우에게 여러 가지로 받은 게 많은 성윤으로서는 그편이 마음 편했다.

‘그리고 지민이에게도 그편이 좋을 거고.’

이제는 제법 지민의 이름이 입에 붙었다.

“그쪽은 어떻습니까?”

- 조사원들이 열심히 살펴보고 있으니까 뭔가 나올 게 있다면 나오겠지.

보고를 받은 후 암스트롱의 행동은 기민했다.

바로 능력이 되는 조사원을 소수 파견했고, 인력을 확보하는 대로 계속해서 현장으로 보내는 중이었다.

- 그래도 신통치 않을 가능성이 많아. 조사원이라고 해도 그런 쪽에 특출난 연결자일 뿐이니까.

마력 억제기를 착용하면 마나 스트림이 몰아칠 때가 아닌 이상 그나마 자유롭게 나다닐 수 있는 다른 미궁과는 달리 대미궁에는 항상 마나 스트림이 몰아치고 있다.

때문에 진짜 전문가들은 현장에 들어갈 수 없었다.

- 이 자식들 이거까지 계산하고 난리를 친 건가?

“그건 모르겠습니다.”

- 그럴 가능성이 커. 파비온 회장, 그 뱀 같은 작자라면 그러고도 남지.

‘예상 이상으로 파비온의 이미지가 나쁜가본데.’

러셀은 경이라는 칭호가 그렇게 어울릴 수 없을 정도로 곧은 사람이었다.

그레이스가 러셀을 그토록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이유가 그저 영국의 최강급 연결자라는 데만 있는 게 아닌 것이다.

그런 러셀이 저렇게 야유를 하는 상대라니.

‘브루스 씨도 썩 좋아하는 눈치가 아니었고.’

예전에 지민을 위한다며 지민의 사업을 방해하던 일까지 떠올랐다.

지금까지는 자신과 얽힐 일이 없을 거라 생각해 아예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좀 다르다.

‘한번 캐볼까.’

파비온이란 존재와 그 회장인 동인, 그리고 현우까지. 하지만 그건 나중 일이다.

“러셀 경은 언제 돌아오실 겁니까?”

- 조사원들의 규모가 어느 정도 커져서 나나 브루스 녀석이 없어도 되겠다 싶을 즈음에 돌아가야지. 웬만하면 빨리 좀 됐으면 좋겠어. 미궁에 들어갈 때마다 생각을 하지만 미궁 탐색은 사람이 할 짓이 아니야.

러셀이 고개를 흔드는 게 보인다. 성윤은 쓴웃음을 지었다.

- 지금도 연락을 하려 밖으로 나올 때 빼고는 미궁에만 틀어박혀 있어야 하니 아주 골치가 아파. 차라리 몬스터 퇴치라도 하면 적당히 긴장감도 있고 할 텐데, 지금은 불에 탄 잿더미와 시체들 사이에서 지내야 하니, 원.

“종종 몬스터가 찾아오거나 하지 않습니까?”

- 수준 낮은 것들이 간간이 말이야.

러셀이 한숨을 내쉬었다.

“돌아오시면 술 한잔 하시죠.”

- 그래. 그러지. 그걸 기대하면서 버텨야겠어.

불금에 맞을 광란의 시간을 기대하며 월요일 아침에 출근하는 샐러리맨처럼 러셀은 무기력한 얼굴로 통신을 끊었다.

“얘기는 끝났나요?”

성윤이 바깥으로 나오자 거실에 있던 그레이스가 물었다.

그녀는 따뜻한 물이 든 대야를 들고 있었다.

“네. 그 사람은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 했습니까?”

“네. 연결자라면 그래도 기본적인 체력이 있을 텐데, 그런 연결자가 일주일간이나 의식을 차리지도 못 할 정도로 정신적 피로가 심했을 거라니. 대체 무슨 일을 겪었던 걸까요?”

의사의 말을 떠올린 그레이스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그래도 의사 말로는 슬슬 깨어날 거라니까 최대한 돌봐야죠.”

“부탁드립니다. 상대가 남성이라면 도울 테지만 아무래도 여성 상대로 간병을 하기에는 모양새가 나빠서 말입니다.”

“괜찮아요. 예전에 할머니가 아프셨을 때도 이렇게 간병을 한 적이 있으니까요.”

“여왕님께서 무척 기뻐하셨겠습니다.”

“병이 나으신 다음에 한동안 절 끼고 사셨죠.”

그레이스가 장난스럽게 눈을 찡긋하고는 플루엘이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소영이 어머니라….’

성윤이 그레이스가 들어간 방문을 주시했다.

그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다.

‘암스트롱에 저런 연결자는 등록되어 있지 않다고 했지.’

며칠 전, 시장에게서 받은 정보였다. 연결자 등록은커녕 아예 도시에 출입한 정보 자체가 없었다.

암스트롱은 보안 문제 때문에 우주선에 내리는 순간 탑승객의 모든 정보를 등록, 보관, 관리한다.

하지만 그녀의 정보는 그 방대한 정보 속에서 단 하나도 찾을 수 없었다. 수상쩍기 그지없었다.

‘테러리스트나 혹 그와 관련된 인물일 가능성이 많다라.’

때문에 지금 그녀는 시장과 암스트롱의 주시를 받고 있었다.

이미 성윤의 저택 주변에는 암스트롱에서 파견 나온 연결자들이 암암리에 감시를 하며, 혹시라도 정신이 든 그녀가 저택을 탈출하는 걸 방지하고 있었다.

그러며 얼른 그녀가 정신을 차리길 바라고 있었다.

그리고 그건 성윤도 마찬가지였다.

그녀의 신분이 확인되지 않았다는 소리에 일단 성윤은 암스트롱의 지시를 받아 그녀의 디바이스와 젬부터 회수했다.

그리고 그녀의 젬을 발동시켜 어떤 젬인지 확인하기 시작했다. 혹시라도 그녀의 정체를 알 수 있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설마 저 사람이 그 자일 줄이야.’

신혜와 소영이의 사이 때문에 플루엘의 이미지는 성윤의 안에서 퍽 좋았다.

하지만 그녀의 검과 갑옷을 본 순간, 성윤의 감정은 소용돌이에 휩쓸린 나뭇잎들처럼 뒤죽박죽 뒤집혔다.

성윤이 확인한 건 자신들을 습격한 자의, 예전 정범이 입고 있던 것과 똑같은 검과 갑옷이었다.

‘그런 사람이 현우 씨와 파비온의, 테러리스트를 박멸했다 주장하는 사건 뒤에 달 표면에 쓰러져 있었다? 관계가 없다는 게 이상하지.’

그녀는 가깝게는 현우와 파비온의 사건, 멀게는 정범의 사망 사건과 관계가 있을 확률이 농후했다.

‘어서 깨어나시기 바랍니다. 소영이 어머니.’

그녀에게는 물어볼 게 무척 많았다.

***

- 실수했구나.

화면 저 너머에서 삭막한 목소리가 들린다.

감정이 섞이지 않아, 그저 성대에서 내뱉어진 바람을 입과 혀로 형태만 만들어 낸 것 같다.

하지만 기수는 알고 있었다. 저 상태의 동인은, 말 그대로 폭발하기 일보 직전의 활화산과 같다는 것을.

“그, 그게…. 설마 저 녀석들에게 포털 같은 물건이 있을 줄은 모르고.”

- 지구와 달을 마음대로 왔다갔다 한 놈들이다. 아무리 포털까지 생각이 미치지 못하더라도 뭔가 특별한 이동수단이 있다는 것쯤은 당연히 할 만한 생각 아닌가?

‘놀고 있네.’

기수를 신나게 갈구는 동인의 행동에 현우는 내심 이죽였다.

‘만만한 부하한테 화풀이하는 꼬라지 하고는.’

기수는 생긴 것 답게 단순한 행동 대장으로서는 충분히 유능했다.

하지만 세세하게 계획을 세우고 작전을 짜는 타입은 아니었다.

이 사단이 난 계획은 내부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사장인 동인이 초조함에 쫓겨 억지로 세우고 밀어붙인 일이었다.

‘그래서 리더도 멍청한 기수 놈 붙인 거고.’

명령 받은 일은 우직하게 하는 놈이다. 충성심도 대단하고. 지금도 그랬다.

누가 봐도 동인이 화풀이를 하는 모양새였지만 기수는 정말로 자신의 잘못이라도 된 듯 쩔쩔매고 있었다.

‘뭐, 내 알바는 아니지.’

일단은 자신도 잔소리를 듣는 처지였지만 이미 저 소인배가 하는 말을 귓등으로 흘리는 스킬은 몇십 년 전에 마스터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아무리 연결자라고 하더라도 단명했을 것이다.

옆을 보니 진수도 비슷비슷하게 말을 흘리는 게 보였다. 현우는 내심 웃었다.

그러나 다음에 동인이 한 말은 현우조차 귀를 기울이게 만들었다.

- 플루엘이 우성윤의 집에 있는 모양이다.

“네?”

“뭐?”

“응?”

기수는 물론이고 현우와 진수까지 동시에 소리를 냈다.

“그 여자가… 그 여자가 왜 거기 있습니까?”

기수가 떠듬떠듬 말했다. 현우와 진수도 지금까지의 무성의한 자세를 바로잡고 귀를 기울였다.

- 우성윤이 귀환할 때 달 표면에 쓰러져 있는 걸 주웠다고 한다.

“무슨 그런….”

‘우연 한번 기막히군.’

슬슬 불을 뿜기 시작한 동인과 아직도 얼빵한 표정을 짓고 있는 기수.

그 뒤에서 현우는 비어져 나오는 웃음을 참느라 필사적으로 입술을 물어뜯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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