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달의 미궁-245화 (245/354)

제245화

성윤이 딱 잘라 말했다.

“습격자들도 이걸 사용하는 것 같고 몬스터의 등장도 원리도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게다가 시장님이 생각하시는 것처럼 암스트롱의 존재의의에 직격탄을 날리겠죠.”

사람들의 표정이 굳었다. 하지만 시장은 오히려 옅게 미소를 지었다.

“역시 거기까지 생각을 하셨군요. 맞습니다. 포털이란 존재는 무척이나 위험합니다. 특히나 암스트롱에는요.”

“포털이 만약 지구와 연결된다면 암스트롱은 더 이상 필요가 없으니까요.”

일단 성윤부터가 암스트롱에 머물 생각이 없다.

항상 신혜와 집에서 보낼 수 있는데 무엇 하러 암스트롱에서 지낸단 말인가?

‘종종 신혜에게 우주를 보여줄 때 별장 같은 곳으로 쓸 수는 있겠지만.’

“저기….”

대화를 묵묵히 듣고 있던 에밀리가 슬그머니 손을 들었다.

“그래도 암스트롱에 완전히 나쁜 것만은 아니지 않을까요? 미궁과 가장 가까운 도시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고 도시를 개발할 때나 보수할 때의 비용도 더 싸질 테니까요. 관광 수입도 많이 들어올 것 같고요.”

그녀의 말에도 일리가 있었다.

그리고 시장이라고 그 생각을 하지 않은 건 아니다. 하지만 시장은 아무 말이 없었다.

답을 준 건 성윤이었다.

“하지만 연결자가 굳이 암스트롱에 머물 이유가 사리지면 연결자의 돈을 긁어모을 수 있는 수단이 사라집니다. 게다가 암스트롱에 머물 비용을 대기 위해 연결자들이 월석 채취를 해야 한다는 동기 부여도 줄어들 거고요. 그렇게 되면 연결자들이 암스트롱에 목메지 않게 될 거고, 그건 다시 말해 연결자의 통제 수단이 극히 약해진다는 뜻이 됩니다.”

개인 단위로 압도적인 무력과 금력을 갖추고 있는 자들이 연결자들이다.

암스트롱이란 폐쇄적인 환경을 이용해 그들의 고삐를 쥐고 있던 나라들로서는 무척이나 뼈아픈 일이 될 것이었다.

뒤로 자신의 생각보다 훨씬 더 복잡한 사정이 있다는 걸 알게 된 에밀리가 입을 다물었다.

시장이 옅은 미소를 지었다.

“정확합니다. 때문에 하나 부탁을 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

“포털에 대한 걸 숨겨 달라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죠?”

성윤이 대답을 하기 전에 뾰족한 질문이 먼저 들어 왔다.

그레이스가 험한 눈초리로 시장을 노려보고 있었다.

“지금 암스트롱의 이권을 위해 연결자들이 편해질 수 있는 길을 막겠다는 건가요?”

“끝까지 막을 생각은 없습니다.”

시장은 그레이스를 자극하지 않도록 톤을 조금 낮춰 부드럽게 말했다.

“포털이란 존재는 자칫하다가는 암스트롱을 혼란에 빠뜨릴 수도 있지만 잘만 사용하면 암스트롱에 훨씬 더 도움을 줄 수도 있습니다. 여느 신기술이 그렇듯이 말이죠. 때문에 저도 그 기술을 완전히 사장할 생각은 없습니다.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건 포털의 등장으로 인한 혼란을 줄이기 위해 대비할 시간을 달라는 겁니다.”

그레이스의 시선이 조금 누그러들었다. 시장의 말이 이어졌다.

“게다가 지금 당장 포털의 존재를 공표하는 것도 좋은 일은 아닙니다. 말마따나, 포털의 존재를 경험한 건 네 분이 전부입니다. 성윤 씨가 포털을 마음대로 열 수 있는 것도 아니고요. 나중에 성윤 씨가 젬을 완벽하게 다뤄 포털을 완전히 다룰 수 있다고 해도 그게 얼마나 대중적이 될지는 알 수 없습니다. 성윤 씨 혼자서만 포털을 다룰 수 있을 수도 있으니까요. 만약 그렇게 되면 포털은 오직 성윤 씨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 되겠죠.”

포털이란 존재만이 확인됐을 뿐, 그 외에는 아무것도 확인된 것이 없다.

아니, 당장은 포털의 존재를 주장할 수 있는 증거는 성윤 일행 네 명의 증언뿐이었다.

“이 말이 먼저 퍼져버렸다가는 괜히 혼란만 부추기게 될 겁니다. 어디까지나 혼란을 줄이기 위해서입니다. 납득하실 수 없다면 일단 성윤 씨가 그 포털을 열 수 있는 젬을 완전히 다룰 수 있을 때까지로 시한을 정해두면 어떻습니까. 그리고 성윤 씨가 그 젬을 완전히 다룰 수 있다면 다시 상의를 하는 겁니다.”

성윤은 팔짱을 끼고 생각에 잠겼다.

솔직히 성윤으로서는 신혜와 이제는 자신의 가족이 된 지민, 그리고 동료와 지인들이 직접적인 피해를 입지만 않는다면 어찌되든 상관없었다.

게다가 시장의 말도 납득이 안 가는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다시 말하자면, 주변인이 피해를 입을지도 모르는 일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는 뜻이었다.

“습격자들의 일은 어떻게 처리하실지 묻고 싶군요.”

어떻게 보면 지금 성윤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아시다시피 포털을 열 수 있는 젬은 녀석들에게서 빼앗은 겁니다. 녀석들이 신출귀몰하게 나다닐 수 있던 건 아무래도 포털 때문이라고 봐도 되겠죠. 다른 사람들에게 녀석들의 이동 수단을 알리지 않아도 되겠습니까?”

“알리지 않아도 괜찮다고 판단을 내렸습니다.”

생각해 둔 바가 있는지 시장의 대답은 상당히 빨랐다.

“포털에 대해 설명하지 않는다 해도 이미 그들이 특별한 이동 수단을 갖고 있을 거라는 판단은 널리 퍼졌습니다. 포털이라는 확실한 답까지 가지는 못했지만 공간 이동을 할 수 있을 거라는 추측도 많이 가지고 있고요.”

실제로 성윤 일행도 그런 예상을 하고 있었다.

“포털이 있다는 걸 알린다 해도 뚜렷한 대응책은 마련되지 않습니다. 그 때문에 포털을 알린다는 건 득보다는 실이 많은 행위라고 판단했죠. 물론 이번에 성윤 씨 일행이 대미궁에서 습격자들에게 습격을 당했다는 사실은 공표해야겠죠. 연결자들이 대비를 하게는 해야 하니까요.”

그게 옳든 그르든 납득은 가는 설명이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전 괜찮습니다.”

성윤이 먼저 말을 꺼냈다.

“저도 괜찮습니다.”

“저도 그래요.”

로스 남매도 찬성했다. 모두의 시선이 그레이스에게 쏠렸다.

압력을 느낄 만도 하건만 그녀는 당당하게 시장을 쳐다봤다.

“그 말 약속하실 수 있죠?”

“뭣하다면 계약서라도 써드리죠.”

시장이 담담하게 말했다. 그제야 그레이스도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철저하게 개인적인 사정으로 대미궁 공략에 임하는 성윤, 로스 남매와는 다르게 그녀는 정의감과 사명감으로 대미궁을 공략하는 사람이다.

시장의 말에 충분히 반발할 만하다고 성윤은 생각했다.

그것으로 대충 논의할 말은 끝났다.

방의 긴장감이 조금 풀어졌다. 하지만 아직 용건이 남은 사람이 있었다.

“그런데 성윤 씨.”

말을 건넨 사람은 소장이었다.

“성윤 씨는 다시 미궁 공략에 나서실 생각이십니까?”

“심정 같아서는 그러고 싶습니다만.”

성윤의 대답은 모호했다.

“습격자들이 걸리시는 거군요?”

“아무래도 그렇죠. 제가 그 자들과 조우한 경우만 세 번입니다. 특히 첫 번째와 두 번째는 몰라도 세 번째는 저희를 노리고 왔다고밖에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원인은 물론 그것이겠죠?”

소장이 아직 탁자 위에 놓여 있는 황금색의 젬을 바라봤다.

“그럴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성윤 씨. 잠시 미궁 공략을 쉬는 게 어떻습니까?”

성윤은 조금 난감해했다.

“저도 그 생각을 안 해본 건 아닙니다만, 미궁에 들어갈 수 있는 일수도 정해져 있던 터라 말입니다.”

이번에는 운이 좋았을 뿐이다.

게다가 상대는 자기 영역에서 기다리다가 들어오는 연결자에게 무차별적으로 덤벼드는 몬스터가 아닌, 뚜렷하게 목표를 정해 움직이는 인간이다.

만약 습격자들이 성윤 일행을 목표로 삼았다면 계속 미궁을 돌아다니는 건 위험하다.

“그래서 말입니다만. 이번에 역할을 바꾸는 건 어떻습니까?”

소장의 말은 성윤에게 하는 말이었지만, 동시에 시장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다.

소장의 시선이 시장에게 향했다.

“계속 말해보세요.”

시장이 말했다.

“성윤 씨의 미궁 공략 시기와 암스트롱 방위시기를 바꾸는 겁니다. 성윤 씨가 암스트롱 방위 임무로 돌려진다면 그 습격자들이 함부로 습격을 가할 수 없겠죠. 방위 임무는 성윤 씨 혼자서 하는 게 아니니까요. 그리고 그 시간동안 성윤 씨가 포털의 젬에 더 익숙해질 수도 있고요.”

“시간을 벌자는 거군요.”

“지금은 그게 가장 좋지 않겠습니까.”

시장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일리 있군요. 정당한 이유도 있으니 그렇게 무리할 일도 아니고요. 찾아보면 지금 역할을 바꾸고 싶은 연결자들도 있을 테니.”

그가 성윤을 바라봤다.

“중요한 건 성윤 씨의 의지군요. 저는 나름 괜찮은 제안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성윤은 동료들을 쳐다봤다. 모두의 얼굴이 썩 괜찮다는 표정이었다.

대미궁에서 습격을 받은 것이 마음에 걸리지 않을 리 없는 것이다.

‘고작해야 시간을 버는 것에 불과하지만.’

아무런 준비도 없이 다시 대미궁 공략에 들어서거나, 대미궁 공략에 들어서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것보다는 훨씬 나을 것이다.

그리고 시간을 벌어서 해결되는 일도 분명 있었다.

“반대하시는 분 있습니까?”

동료들은 일제히 고개를 저었다.

“그렇다고 하는군요. 시장님의 호의, 감사히 받겠습니다.”

“그럼 정해졌군요. 여러분은 남은 기간 동안 암스트롱 방위에 협력해주시기 바랍니다.”

논의는 그걸로 끝났다.

***

습격자들의 재습격을 우려해 당장의 대미궁 공략을 미룰 수밖에 없던 성윤 일행.

하지만 성윤 일행이 걱정하던 습격자들도 썩 좋은 상태는 아니었다.

“이걸로 며칠째지?”

“5일째야.”

티오투도와 플루엘은 늦은 점심을 먹고 있었다.

“아루원은 어때?”

“아직도 똑같지.”

티오투도가 정체모를 고기를 물고 쭈욱 잡아 뜯었다.

“제 방에 처박혀 있다.”

“충격을 어지간히 받았나 보지?”

“왕족의 젬의 포털 기능은 저 녀석의 일족이 가장 먼저 잃어버린 기능이다. 우리가 고향에서 떨어져 나왔을 때부터 기능하지 않았지. 그런데 저 녀석이 천한 놈이라 내려다보는 자가 하필이면 가장 먼저 각성시킨 기능이 포털 기능이라니.”

평소에 플루엘과 같이 아루원의 선민사상을 지긋지긋하게 여기는 티오투도였지만, 아무래도 이번 일에는 상당한 동정을 안은 모양이었다.

그건 플루엘도 마찬가지였다.

“제가 믿던 신념이 뿌리부터 흔들렸으니 어쩔 수 없겠지.”

물론 플루엘은 자업자득이라고 생각하는 면도 있었다.

“하지만 남의 일이라고만 생각할 수도 없잖나.”

“맞아. 나도 포털 기능이 활성화될 줄은 몰랐어.”

플루엘이 자신의 손목을 들어 올렸다. 팔찌 형태의 디바이스에 젬이 꽂혀 있다.

풀루엘과 티오투도의 시선은 그 중 하나의 젬에 꽂혔다.

은빛의 젬. 하지만 언뜻언뜻 푸른빛이 섞이는 것처럼도 보이는 젬이었다.

“왕족의 젬은 내 제사장의 젬보다 상위의 젬이니까. 진짜 본격적으로 각성하기 시작한다면 위험하기 그지없잖아.”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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