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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미궁-235화 (235/354)

제235화

성윤은 몇 걸음 더 움직였다.

물 덩이들은 허공에만 떠 있는 게 아니고 지면에도 존재했다.

마치 땅에 떨어진 물방울 같은 모양새. 단, 크기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컸을 뿐이다.

찰팍!

벽처럼 보이는 물 덩이의 옆면에 손을 대 봤다. 손을 중심으로 파문이 번졌다.

스윽!

물 안으로 손을 더욱 넣어봤다. 손이 들어갔다.

갑옷의 틈새로 물이 흘러들어 왔다. 차가운 감촉이 기분 좋았다.

‘물이 맞군.’

혹시나 해서 당장 회복 마법을 사용할 준비를 했지만 기우에 그쳤다.

성윤은 팔을 빼냈다.

스윽!

“호오?”

갑옷에는 단 한 방울의 물도 묻어 있지 않았다.

놀랍게도 갑옷 안에 스며든 물 또한 전부 없어져 있었다.

성윤은 건틀릿을 벗었다. 뽀송뽀송한 손이 보였다.

“괜찮나요?”

걱정스럽게 쳐다보며 회복 마법을 준비하던 에밀리가 성윤의 팔을 잡고 자세하게 뜯어 봤다. 이상이 없자 안도하며 물러났다.

성윤은 조금 더 깊이 팔을 넣어보다 아예 몸을 전부 담갔다.

두꺼운 갑옷의 무게 때문에 떠오르진 않았지만 분명 부력이 있었다.

몸을 휘적이며 걷자 수압이 방해를 했다.

촤악!

몇 번 몸을 움직여 본 성윤은 다시 물에서 나왔다.

역시 이번에도 물에는 물기가 전혀 묻어 있지 않았다.

“흘러내리지 않고 거대한 물방울 모양으로 뭉쳐있긴 하지만 분명 물입니다.”

성윤은 동료들에게 말했다.

“저것들이 한 번에 떨어져 내리거나 하진 않겠죠?”

에밀리가 둥둥 떠 있는 물방울들을 올려다보며 조금 불안해했다.

일견 보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양의 물이다.

저게 한 번에 떨어져 내린다면 물에 압사당한다는 황당한 죽음을 맞을 게 분명했다.

“그건 대미궁의 이상성을 믿어야겠지. 일단 움직이자.”

팀의 말에 사람들이 이동하기 시작했다.

일단 물 자체에는 별 이상이 없다는 걸 깨달았지만, 막상 부딪치며 움직이는 건 불안했기에 일행은 물 덩어리를 피해 사이사이로 움직였다.

그건 마치 물의 벽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미로 안을 걷는 것 같았다.

두 개의 물 덩어리들이 바짝 붙어 사람 한 명 정도만이 걸어갈 공간을 만들고 있는 곳을 지날 때였다.

그레이스는 신기한 눈으로 옆에 서 있는 물의 벽을 쳐다봤다.

걸으면서도 손가락으로 살짝 물을 튕겨 그 파문을 바라보곤 했다.

자신의 그림자가 물의 벽에 비쳐 어지러이 일렁거리는 모습이 퍽 즐거웠다.

‘응?’

순간 그레이스는 자신이 목격한 것 중에 이상한 것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림자?’

광원이 없는 이곳에 그림자가 생길리가 없다.

그것도 바로 옆에 있는 물의 벽에는 더더욱.

그녀의 동그란 눈이 얼핏얼핏 비치는 그림자로 향했다.

그건 그녀의 그림자가 아니었다.

우락부락한 근육. 말린 생산 같은 얼굴. 그리고 손, 발에 돋아난 물갈퀴.

“머…!”

그레이스가 소리를 지르려는 순간.

촤악!

물 덩이에서 푸른 비늘을 지닌 손이 쫙 뻗어나와 그레이스의 목을 움켜쥐었다.

그대로 물 안으로 끌어당겼다.

첨벙!

물이 튀기다가 도로 되돌아갔다.

목을 조르는 손을 부여잡고 그레이스가 몸부림쳤다.

상대의 팔을 때렸지만 억센 팔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레이스가 물속에서 눈을 크게 떴다.

그녀의 눈에 공포가 어렸다. 물속에서 수십의 그림자가 헤엄치고 있었다.

‘머맨!’

인어의 남성형으로 알려진 상상속 생물의 이름이 붙은 몬스터.

죽어가는 동물 위를 기분 나쁜 울음소리와 함께 맴도는 까마귀처럼 그것들이 그레이스의 주위를 맴돌았다.

끼긱!

끼기긱!

웃고 있다. 커다란 입을 한껏 벌려 흉물스러운 이빨을 잔뜩 드러낸 채 녀석들이 웃고 있었다.

그레이스의 등에 소름이 쫙 돋았다.

발버둥이 커졌다. 호흡이 필요치 않아 익사할 위험은 없지만 바깥보다 확실히 몸을 움직이기 힘들었다.

게다가 머리에 피가 통하지 않아 의식이 아른거렸다.

가장 위험한 건 이대로 목뼈가 부러질 것 같다는 점이었다.

머맨의 팔을 때리는 그레이스의 힘이 점차 약해질 때였다.

퍼엉!

물의 벽 바깥에서 맹렬한 기세를 갖고 할버드가 날아왔다.

수중에서도 힘을 잃지 않은 할버드가 그레이스의 목을 잡고 있던 머맨의 팔을 잘라냈다.

까아아악!

맑은 물속으로 새빨간 피가 확 퍼진다.

머맨이 팔을 붙들고 버둥거렸다.

덥석!

그레이스는 누군가 자신의 뒷덜미를 잡는 걸 느꼈다.

억센 손아귀. 또다시 머맨에게 잡힌 것일까 그레이스는 기겁했다.

하지만 그 손아귀는 그녀를 더욱 어두운 물속이 아닌, 시원한 공기가 몸을 어루만지는 바깥으로 끌어냈다.

“푸하!”

다시 한번 말하지만 그녀는 호흡이 필요 없다. 하지만 무저갱 같은 물속에서 밖으로 나오자 무의식 적으로 크게 호흡을 들이켰다.

“괜찮습니까?”

물에 빠졌다 나온 것 같지 않게 물기 한 점 없는 그녀의 등을 성윤이 천천히 두드렸다.

“서, 성윤 씨! 저기에 머맨이…!”

그레이스의 다급한 발언은 끝을 맺을 수 없었다.

끼기기긱!

끼기! 끼기기기!

그건 공포스러운 장면이었다.

커다란 존재감으로 일행을 압박하는 커다란 물 덩어리들.

그 물 덩어리들의 수면 위로 엄청난 수의 머맨들이 몸을 내밀고 있었다.

캬아아악!

첨벙!

상반신을 반 쯤 내민 머맨 하나가 괴성을 내지르며 물의 벽에서 튀어 나와 일행을 향해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갈퀴가 달린 손에서 긴 손톱이 내밀어졌다.

“흡!”

투확!

성윤이 할버드를 재소환해 집어 던진다. 괴력을 담은 할버드가 머맨을 향해 똑바로 날아갔다.

머맨이 손을 옆으로 쭉 뻗었다. 물의 벽에 녀석의 손이 닿았다.

쑤욱!

녀석의 몸이 빨려들듯 물의 벽 안으로 들어갔다. 할버드는 목표를 잃고 하릴없이 허공을 향해 치솟았다.

할버드가 지나가자 녀석이 다시 물 밖으로 눈을 내밀었다.

씨익!

녀석의 눈동자가 웃는다. 분명 그들을 비웃고 있었다.

스윽!

할버드를 역소환시키고 성윤이 주변을 둘러봤다.

캉!

카캉!

물의 벽과 벽 사이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녀석들이 팀과 에밀리를 노렸다.

날카로운 손톱이 계속해서 팀의 방패를 공격했다.

“팀 씨! 에밀리 씨! 일단 이 좁은 공간에서 벗어납시다!”

환경이 너무 안 좋았다. 그들이 서 있는 한 줌의 작은 길과 길 위로 트인 공간을 제외하면 전부 머맨의 활동 영역인 물이다.

일단은 조금 넓은 공간을 확보할 필요가 있었다.

“알겠습니다!”

팀이 에밀리를 뒤에 두고 천천히 뒤로 이동했다.

성윤은 검을 뽑아들었다. 파직 거리는 뇌전이 섬뜩하게 비쳤다.

파티원들이 물에 닿지 않고 있다는 걸 확인한 성윤은 검을 물 덩어리에 꽂았다.

파지지지직!

검에서 튀기는 번개가 섬뜩하게 물속을 휘저었다.

카아아아악!

으카카칵! 카카카칵!

역시 물에 사는 놈들이라 그런지 번개에 약했다.

검 가까이 있던 몇 마리가 진저리를 치더니 허겁지겁 달아났다.

나머지 놈들도 황급히 성윤 주변에서 물러나는 게 보였다.

한쪽 물 덩어리의 놈들을 쫓아낸 성윤은 다시 다른 물 덩이에 검을 꽂았다.

검의 성능을 본 머맨들이 화들짝 놀라 사방으로 흩어졌다.

“뜁시다!”

쫓아냈다고는 하지만 뚜렷한 타격을 입힌 것도 아니다.

그들은 너른 공간을 찾아 달렸다. 그들의 뒤로 머맨들이 빠르게 헤엄쳤다.

드디어 물의 벽으로 포위된 작은 길을 벗어났다.

넓은 공간을 확보한 일행은 바로 몸을 돌렸다.

다행히 머맨들은 물 덩어리 바깥까지 쫓아오지 않았다.

수면에 상체를 내밀고 으르렁거리다가 곧 몸을 돌려 물 덩어리 안으로 사라졌다.

“후우!”

전투가 일단락되자 일행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한숨을 쉬었다.

한 번 물속으로 끌려갔던 그레이스는 자리에 주저앉았다.

“역시나 대미궁. 쉬운 곳이 없군요.”

투구를 벗고 머리를 거칠게 흩뜨리던 팀이 물 덩어리를 노려봤다.

“물 덩어리들은 전부 녀석들의 세력권이라고 봐도 되겠죠?”

“아마 그럴 겁니다.”

성윤이 대답하고 앞으로 그들이 향해야 할 곳을 쳐다봤다. 일행의 시선도 성윤과 같은 곳을 향했다.

물 덩어리들이 곳곳에 포진해 길을 나누고 있는 공간이 보인다. 그리고 방금처럼 물 덩어리 사이로 좁게 난 길도 여럿 보였다.

“각오를 해야겠군요.”

성윤은 검을 꾹 쥐었다.

***

첨벙!

팀의 뒤에 있는 에밀리를 물속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머맨 한 마리가 수면 밖으로 팔을 뻗었다.

하지만 머맨의 손이 에밀리를 낚아채기 전, 두터운 도끼날이 머맨의 팔에 틀어박혔다.

카아아악!

두 동강 난 팔을 잡고 머맨이 물 속으로 숨는다. 하지만 상처에는 이미 독이 퍼져 있는 상태.

물속에서 몸을 비틀던 머맨이 곧 흉측한 몰골로 변하며 축 늘어졌다.

하지만 그건 공격을 하고 있는 많은 머맨 중 한 마리였다.

챙! 챙! 채챙!

그레이스에게 날아오는 공격을 팀이 연신 막아선다.

방패로는 기본적으로 그레이스를 지키는 터라 그의 갑옷에 적중하는 공격이 점점 많아졌다.

무척 가늘어 약하게 생긴 겉모습과는 다르게 머맨의 손톱은 무척 날카롭고 무거웠다.

팀의 갑옷에 점점 생채기가 늘어났다.

“됐어요!”

팀에게 반가운 소리가 들렸다. 그레이스가 벌떡 일어나 지팡이를 높이 들었다.

그녀의 지팡이에 막대한 전격이 휘몰아쳤다.

“최대한 왼쪽 물 덩어리에서 떨어져요!”

콰르르릉!

그레이스는 바로 번개를 뿌렸다. 어둠을 환하게 물들인 번개가 물 덩어리에 작렬했다.

물 만난 물고기처럼 번개가 물속을 누볐다.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도망치던 머맨들이 한꺼번에 감전됐다.

까아아아아악!

끄에에에엑!

성윤의 검이 뿜어내는 번개와는 그 질이 다르다.

순식간에 번개가 떨어진 근처에 있던 머맨들의 눈이 뒤집혔다.

머맨의 터전이 순식간에 머맨의 공동묘지로 화하는 순간이었다.

“빠져나가죠!”

머맨의 공격이 사그라지자 일행은 다시 뛰기 시작했다.

성윤이 그레이스의 옆으로 다가왔다.

“번개 마법은 얼마나 남았습니까?”

“이제 다섯 번이요.”

많이 남지 않았다. 성윤은 인상을 찌푸렸다.

그레이스의 번개 마법은 머맨들의 천적과도 같은 효과를 보였지만 무한하게 쓸 수는 없었다.

‘빨리 이 공간이 끝났으면 좋겠는데.’

그래도 일단은 이번에도 무사히 물 덩어리에 감싸여 있는 좁은 길을 빠져 나왔다.

“아, 젠장! 정말로 짜증나네! 젬이랑 월석도 못 챙기고 이게 뭔 꼴이야!”

팀이 지면을 걷어찼다. 말은 꺼내지 않았지만 다른 사람들도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도 머맨들 이외에 다른 몬스터는 나오지 않잖아.”

에밀리가 그를 다독였다.

“저런 것들을 일일이 상대하느니 차라리 거대 몬스터 하나 상대하는 게 나아!”

팀이 입을 삐죽이며 불만을 내뱉을 때였다.

우우우우우우우!

일행의 움직임이 멎었다.

심부의 공포를 적나라하게 끌어내는 것 같은 울음소리.

녹슨 기계가 움직이듯 일행의 시선이 위로 향했다.

그것을 보고 처음 생각난 건 용이었다.

기다란 몸체가 허공에 떠 있는 물 덩어리 밖으로 솟아 나와 있다.

몬스터 특유의 위협적인 붉은색 눈동자.

커다란 입은 코끼리라도 한 입에 삼킬 수 있을 것만 같이 거대했다.

그것이 똑바로 일행을 바라보고 있었다. 절대로 호의적이라고 볼 수 없는 눈빛을 보이면서.

“…레비아탄.”

성윤이 중얼거렸다.

저 허공에 있는 녀석은 무척이나 유명한 몬스터였다.

“너, 내가 입조심 하라고 예전에 그러지 않았던가?”

으르렁거리는 에밀리의 말에 팀은 자신의 입을 조심스럽게 입으로 틀어막을 수밖에 없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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