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달의 미궁-230화 (230/354)

제230화

성윤은 냉정하게 머리를 굴리면서도 일단 가장 가까이 있는, 투구에 달려 있는 뿔이 인상적인 연결자의 어깨를 두드렸다.

뿔 투구의 연결자가 화들짝 놀랐다.

그의 도가 살벌한 곡선을 그리며 날아오다 멈췄다.

“깜짝이야!”

적이 아니라는 안도와 놀란 것에 대한 짜증이 교차한다.

다른 연결자들도 성윤을 눈치챘다.

그 정도로 그들은 악마형 몬스터와 습격자들의 전투를 경계하고 있었다.

“아, 젠장! 기척 좀 내고 다니지!”

뿔 투구의 연결자가 신경질적으로 내뱉었다. 하지만 그가 투덜거린 건 그 한 번뿐이었다.

곧 성윤의 무장을 알아보고는 그의 목소리가 누그러졌다.

“뭐야, 나이트가 온 거야? 잘 왔수. 나이트가 합류한다면 마음 든든하지.”

“나이트는 저 녀석에게 한 번 물먹지 않았나?”

다른 연결자가 말한다. 뿔 투구의 연결자가 톡 쏘았다.

“너는 저 녀석을 혼자 감당할 수 있고?”

들려오는 대답은 없었다.

지금 여기서 불꽃을 숨결처럼 내뿜으며 엄청난 파괴를 뿌리는 악마형 몬스터를 1:1로 대적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성윤이 물었다.

“상황이 어떻게 된 겁니까?”

“어떻게 되고 자시고, 보는 대로요. 난장을 치고 있는 저 빌어먹을 악마 자식과 드잡이질을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이상한 놈들이 끼어들더니 악마 자식과 싸우기 시작했지. 우리편인가 하고 좋아했더니 저놈들이 우리 헬기를 공격해서 격추시켰다지 뭐요.”

“저놈들, 달에서 암스트롱의 연구팀을 습격한 놈들입니다.”

“뭐야. 그럼 저놈들이 미궁 안에서 귀신처럼 사라졌다는 놈들이란 말이야?”

뿔 투구의 어조에 뚜렷한 적대감이 섞였다.

“실수로 헬기를 격추시킨 우리 편이길 바랐는데….”

그 일말의 희망마저 사라져버렸다.

“이제 어쩔 거야?”

커다란 메이스를 어개에 걸친 연결자가 물었다. 뿔 투구 연결자가 대답했다.

“일단은 삼파전인 건 확실해졌어. 그렇다면 상황은 우리한테 유리하지. 삼파전일 때 다른 두 쪽이 싸우면 남은 쪽은 남의 집 불구경하듯 하다가 살아 놈은 쪽을 족치면 되니까. 가장 좋은 건 한쪽이 죽을 때까지 기다리는 거고. 살아남은 놈도 기운이 쪽 빠져 질질댈 확률이 높거든.”

일리 있는 말이다. 하지만 성윤은 고개를 저었다.

“전 반대입니다.”

“나도 마찬가지요.”

방금 한 말과는 달리 성윤에게 동조한 뿔 투구 연결자의 시선이 움직였다.

그의 눈에 쓰러져 있는 1세대 연결자가 들어왔다.

“저기 있는 사람이 1세대 연결자겠지? 습격자 놈들이 저 사람을 죽이려고 용을 쓰는 듯하니, 구해와야지. 악마 자식도 저 사람을 납치해가기 위해 온 것일 테고.”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됐습니까?”

성윤이 물었다.

성윤과 비슷한 은색의 전신 갑옷을 입은 사람이 말했다.

“늦었습니다. 저와 동료들이 근처에 있어서 불기둥을 보고 바로 달려왔는데, 마지막 남은 민간인이 불길에 휩싸여 죽었습니다. 어떻게든 사람들을 지키려던 저 1세대 연결자 분도 그때 쓰러졌고요.”

그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근처에 있었다고요?”

“아, 저와 동료들은 대기 임무가 아닙니다. 휴가 중에 고향에 들렀는데 휘말린 경우라.”

그것 참 재수도 없다고 성윤은 생각했다.

하지만 그 덕에 주변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고도 다른 연결자들이 오기 전에 1세대 연결자를 납치, 유유히 사라지는 악마형 몬스터가 지금까지 이곳에 묶여 있을 수 있었다.

어떻게 보면 절호의 기회다.

“그럼 어떻게 할 거요? 저놈들, 제들끼리 박 터지게 싸우고 있으면서도 이쪽에 대한 경계는 늦추지 않고 있는데. 우리가 어떻게 움직이든 저놈들도 반응을 할 거요.”

뿔 투구의 연결자가 그렇게 말하고 성윤을 바라봤다.

“나이트는 어떻게 생각하쇼? 그래도 저놈들과 다 싸워본 사람이잖수.”

성윤이 천천히 악마형 몬스터와 습격자들을 뜯어봤다.

“일단 저 악마형 몬스터는 길게 전투를 하지 못할 가능성이 큽니다. 예전에 만났을 때도 마력이 어쩌고 하면서 전투 중간에 물러났으니까요.”

사람들의 눈이 반짝였다. 하지만 성윤은 고추가루를 확 뿌렸다.

“하지만 더럽게 강하죠.”

반짝이던 사람들의 눈이 바로 며칠이나 실온에 방치된 동태눈깔처럼 썩어들어갔다.

“습격자들은 소수긴 하지만 하나하나가 웬만한 고위 연결자급의 강함을 자랑합니다. 무엇보다 아까 잠깐 공격을 받았는데, 달에서 공격을 받았을 때의 위력과 비슷했습니다.”

“잠깐만. 그럼 설마…!”

“녀석들은 어떤 수단인지 모르겠지만 달과 별 차이 없는 힘을 사용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안 그래도 썩은 동태눈깔을 하고 있는 사람들의 얼굴에 소태 씹은 표정이 추가됐다.

“…한 마디로 만만한 놈이 없다는 거군.”

“게다가 저 녀석들도 지금 상황이삼파전이라는 걸 알고 있을 겁니다. 그런데 보란 듯이 둘만 붙고 있죠. 악마형 몬스터야 그저 공격을 받아 반격을 하는 것뿐이라고 생각한다면, 적어도 저 습격자들은 뭔가 믿는 구석이 있을 겁니다. 그러니 저렇게 대놓고 악마형 몬스터를 공격하는 것이겠죠.”

사람들이 전투 지점을 바라봤다.

여전히 살벌하고 격렬한 전투였다. 달이라면 저 사이에 당당하게 끼어들 수 있지만, 지구라는 환경이 발목을 잡았다.

“일단은….”

성윤이 말했다.

“빈틈이 생기기를 노리죠.”

다른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

케이빌은 짜증이 났다. 그분의 명을 받고 그분의 명령을 실현하기 위해 내려온 지구.

나쁘지 않았다. 아니, 좋았다.

텁텁하고 음습한 어둠과 칙칙한 동료들, 멍청한 부하들만 득시글거리는 미궁과는 새로운 환경.

정말로 부술 보람이 있는 곳이었다. 특히 그분의 명령에 따라 특별한 쓰레기들을 납치하는 건 특히 재밌었다.

특별한 쓰레기들에게 가족이 있다면 더더욱 그랬다.

자신을 보고 그분의 그림자를 느껴 공포에 몸부림치면서도 지킬 것이 있다며 눈물을 흘리며 반항하는 것들.

그 반항을 하나하나 짓눌러주는 것은 엄청난 희열을 가져다주는 일이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주변 인물을 짓밟자 특별한 쓰레기는 공포에 휘감긴 상태에서도 하지 말라고 울부짖으며 덤벼왔다.

적당히 후려패며 눈앞에서 평범한 쓰레기들을 하나하나 찢어줬다.

그때의 보람. 희열. 기쁨.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

하지만 이번에는 변수가 생겼다.

‘이건 그 놈들이지?’

날아오는 대검을 쳐내며 케이빌은 생각했다.

자칫했다가는 다른 쓰레기들과 착각할 법도 하지만 그 특유의 냄새가 있었다.

‘지구까지 쫓아온 건가.’

정말로 지겨운 녀석들이었다.

아마도 목적은 자신이 수집하고 있는 특별한 쓰레기들일 터.

여기가 달이라면 이미 전부 시체로 바꿨겠지만, 빌어먹게도 자신은 지구에서 전력을 낼 수 없다.

게다가 시간제한까지 붙어 있다. 더욱이 신경을 거슬리게 하는 쓰레기들이 한 무리 더 있었으니.

‘이 개자식들이!’

성질머리 더러운 동료들 중에서도 가장 폭급하고 무식하다고 알려진 케이빌이다.

마음대로 되지 않는 상황에 열이 받을 대로 받았다.

퍼엉!

그의 몸에서 흘러다니는 불꽃이 커졌다.

양손에 들고 있는 불꽃의 채찍과 불꽃의 검이 길어졌다.

케이빌을 상대하던 습격자들이 흠칫 몸을 멈추는 게 보인다.

-죽어라, 이 버러지들아아아!

콰앙! 콰앙!

충격파가 대지를 덮치고 불꽃이 휘감는다.

그 엄청난 위력에 논이 말 그대로 폭발했다.

마치 지면에서 용암이 터져나온 것 같았다.

지금껏 케이빌을 잘 상대하던 습격자들도 이번 공격에는 타격을 입은 듯 몇 명이 바닥에 쓰러졌다.

당장 다른 습격자가 달라붙어 치료를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케이빌은 그럴 시간을 주지 않았다.

후웅!

다시 한번 마력이 요동쳤다.

이렇게 힘을 쓴다면 활동할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들지만 지금 그의 머리에 그런 걸 생각할 여유는 없었다.

오로지 자신의 성질머리를 건든 어리석은 벌레들의 죽음만을 원할 뿐이었다.

상대를 완전히 끝장내기 위해 케이빌이 검과 채찍을 높이 들었다.

하지만 그때 자신의 감각에 걸리는 무언가가 있었다.

케이빌은 뒤를 돌아봤다.

‘이런!’

싸움에 끼어들지 않고 눈치를 보던 일단의 쓰레기 무리들이 어느새 근처까지 다가와 있었다.

“쳇!”

케이빌이 눈치를 채자 몇몇의 연결자가 혀를 차면서도 케이빌에게 방패를 내밀었다.

그 사이 성윤이 쓰러져 있는 1세대 연결자를 부축했다.

자신이 1세대 특유의 공포심이 있다는 걸 알리고 전투 전면에 나서지 않은 것이다.

‘아직 살아 있어.’

미약하게 숨을 쉬고 온기도 있다. 이대로 빠져나가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케이빌은 자신의 사냥감을 놓아줄 생각이 없었다.

‘저건?’

케이빌이 성윤을 알아봤다.

-이 버러지 자식이 나를 방해하려고 또 들어 왔구나!

케이빌의 채찍이 휘둘러졌다.

연결자들이 방패를 들었다. 그들의 젬은 폭주로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하지만 누구도 케이빌의 분노에 찬 공격을 막을 수 없었다.

“크악!”

“아악!”

불꽃의 채찍이 사방을 휩쓴다. 케이빌을 막아선 사람들이 멀리 튕겨져 나가 논두렁에 힘없이 처박혔다.

몸이 움찔거리는 것으로 봐 죽은 사람은 없는 것 같지만 몸에서 피어나는 연기가 상당히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는 사실을 알리고 있었다.

이번엔 불꽃의 검이 휘둘러진다. 2선을 이루고 있던 연결자들이 황급히 피했다.

그들이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위력이었다.

다행히 그들은 무사히 몸을 뺐다. 하지만 그 때문에 성윤과 1세대 연결자가 케이빌의 전면에 그대로 노출됐다.

-죽어버려어어!

퍼엉!

불꽃이 춤을 춘다.

케이빌의 분노에 찬 목소리와 함께 화염의 파도가 입에서 튀어 나왔다.

새빨간 혀가 날름거리는 것처럼 불꽃이 성윤을 향해 뻗어갔다.

이미 케이빌의 머릿속에 성윤이나 1세대 연결자가 납치 대상이고, 그들을 생존시켜야 된다는 생각은 사라져 있었다.

있는 건 오직 그가 뿜어대는 불길만큼이나 이글거리는 분노뿐.

1세대 연결자를 부축해서 빠져나가려던 성윤이 멈칫했다.

케이빌의 적의에 그대로 노출되자 다시 공포감이 머릿속을 채우기 시작했다.

인간의 한계를 초월한 성능을 발휘하던 든든한 두 다리가 돌덩이처럼 굳어버렸다.

‘안 돼!’

혀를 강하게 깨물어 몸을 움직이려 한다. 하지만 덜커덕거리기만 할 뿐이었다.

관절에 굵고 긴 쇠말뚝이라도 꽂힌 것 같았다.

‘젠장!’

불꽃아 점점 가까워진다.

성윤은 식은땀을 흘리면서 마력을 움직여 무작정 젬에 쑤셔 넣었다. 그건 최후의 발악에 가까운 행위였다.

‘응?’

그 순간 성윤 스스로도 놀랄 정도로 몸을 억누르는 공포가 싹 사라졌다. 발걸음도 몹시 가벼웠다.

하지만 너무 늦었다. 이미 불길은 그의 바로 뒤편까지 도달해 있었다. 피하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

그러나 성윤의 눈동자는 편안했다. 굳이 이 불길을 피할 필요가 없다.

몸에서 자신감이 솟았다. 그의 손에 검이 잡혔다.

그대로 휘둘렀다.

꽈르르르릉!

화창한 날씨 아래로 벼락이 솟구친다.

불길과 부딪친 벼락은 달려드는 불길을 찢고 부수고 삼켰다.

비명을 지르며 사라진 불길을 따라 벼락이 흩어졌다.

주위로 정적이 내렸다.

정확히 그 순간.

-응?

대미궁 깊숙한 곳에 있던, 로브를 뒤집어쓰고 있는 몬스터의 간부가 고개를 들었다.

그의 주군이 있는 곳의 커다란 문이 흔들렸다. 마치 주군이 무척이나 불쾌한 감정을 내뿜는 것처럼.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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