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9화
‘일 복이 터졌군.’
오자마자 몬스터의 습격이라니.
성윤은 브로치 디바이스를 옷에 대충 달고 방 밖으로 뛰쳐나왔다.
그대로 옥상으로 뛰어 올라갔다. 이미 헬리콥터의 회전익이 빠르게 돌며 바람을 뿜어내고 있었다.
성윤의 뒤로 낯선 남자 한 명이 따라 붙었다.
대기하고 있던 또 다른 연결자인 모양이었다.
성윤은 그를 힐끔 쳐다보고 헬리콥터에 올라탔다.
“어디로 갑니까?”
성윤은 혹시 두고 온 디바이스가 없는지 디바이스와 젬을 다시 확인하며 물었다.
성윤에 뒤이어 올라탄 사내도 마찬가지로 장비를 확인했다.
바람 소리를 뚫으려 한층 높아진 조종사의 말이 들렸다.
“충청도 쪽입니다!”
“충청도? 우리 관할 지역이 아닐 텐데요?”
성윤의 수비 범위는 서울, 많이 가 봐야 경기도권이다. 충청도는 너무 멀었다.
“지금 비상이 떨어졌습니다! 주변 연결자들이 전부 동원돼서 그쪽으로 향하고 있어요!”
헬기가 둥실하고 날아올랐다.
주변 풍경이 전부 작아지기 시작하고 새파란 하늘이 좀 더 다가왔다.
현장으로 향할 때 풍경을 내려다보는 건 성윤의 작은 취미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어진 조종사의 말에 성윤은 풍경을 감상할 여유가 싹 사라졌다.
“그 악마형 몬스터가 충청도에 사는 1세대 연결자를 노리고 나타났답니다! 지금 아주 난리가 난 모양이에요!”
***
성윤은 조용히 마음을 다잡았다.
1세대 연결자를 노리는 악마형 몬스터.
지금 지구에서 그놈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은 분명 성윤일 것이다.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강한 놈이야.’
지형이 변할 정도로 강한 힘조차 줄어든 것이라며 투덜댄 어처구니없는 녀석.
힘도 힘이지만 지능까지 있다. 여러모로 규격 외인 녀석이 분명했다.
‘나 혼자로는 절대 막을 수 없어.’
전력으로 달라붙어도 1분이나 견딜 수 있으면 다행이다.
하지만 1세대 특유의 공포심이 녀석을 볼 때 발현하지 않았던가.
그 때문에 전력을 낼 수도 없었다.
‘그나마 다른 연결자들이 있는 게 다행인가.’
비상이 걸려 주변에 대기하던 연결자들을 전부 끌어 모으고 있다고 했다.
서울에서 대기하던 성윤까지 불려울 정도면 그 주변이라는 범위가 상당히 넓을 터.
‘상당한 수의 연결자들이 모일 거야.’
그들과 함께 싸울 걸 생각한다면 해볼 만할지도 모른다.
‘게다가 그놈, 시간제한도 있는 모양이니까.’
미리부터 겁먹을 필요는 없다. 어차피 피할 수도 없는 일이니, 최대한 승리 공식을 만들어야 했다.
“거의 도착했습니다.”
조종사가 말했다. 성윤은 헬기 유리창을 통해 아래를 내려다봤다.
전형적인 농촌 마을인 듯 아래는 온통 논이었다.
모든 수확을 끝내고 남은 것은 물이 빠져 쩍쩍 갈라진 희멀건 속살을 활짝 드러낸 논바닥과 군데군데 흩어져 있는 짚더미들뿐이었다.
하지만 헬기가 향하고 있는 곳은 달랐다.
넓은 논 사이로 옹기종기 집 몇 채가 모여 있는 곳.
얼마 전가지만 해도 울퉁불퉁 슬레이트 지붕이 덮인 농가 주택이 삭막한 도시와는 다른 고즈넉함을 뽐냈을 것이다.
하지만 농부들이 평화롭게 모여 살던 시골마을이었던 그 곳은, 지금 엄청난 불길에 휩싸여 있었다.
성윤은 헬기 문을 열고 목을 빼 현장을 더 자세히 쳐다봤다.
열 명 남짓한 연결자들이 불 붙은 주택 쪽을 경계하고 있었다.
상당히 격렬한 전투를 펼친 듯 그들의 행색이 좋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이 견제하는 불타는 건물 안에 그것이 있었다.
“저게 그 악마형 몬스터입니까?”
성윤의 뒤로 고개를 내민 같이 온 연결자가 침을 꿀꺽 삼켰다.
어느 정도 거리가 떨어져 있는데도 그것의 압박감은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주변에 헬기가 몇 대 더 보였다. 아마 먼저 도착한 연결자들을 실어 나른 헬기들일 것이다.
“여기서 내리셔야 할 것 같습니다.”
조종사가 말했다. 성윤이 대꾸했다.
“아직 거리가 좀 남았지 않습니까?”
“위험하답니다. 이 지점에서 여러분을 내려 주고 조금 더 떨어진 곳에서 대기하라는 명령이 내려 왔습니다.”
말을 하며 조종사가 손가락으로 아래쪽을 가리켰다.
성윤과 다른 연결자의 눈이 그가 가리킨 곳으로 향했다.
성윤의 눈이 팍 찌푸려졌다.
황량한 논에 추락한 헬기가 불길에 휩싸여 있었다. 그것도 한 대가 아니었다.
산산이 조각나 정확한 대수는 알 수 없었지만 굴러다니는 회전익만 세 개였다.
“연결자들을 내려주고 근처에서 전투 장면을 촬영하고 있던 헬기 네 대를 별안간 채찍 같은 불꽃이 날아 와 동시에 쓸어버렸답니다.”
“조종사들은 탈출했답니까?”
일말의 희망을 담아 성윤이 물었다. 하지만 돌아온 건 기분 나쁜 침묵이었다.
성윤은 더 묻지 않고 젬에 마력을 공급했다. 순식간에 그의 몸에 갑옷이 걸쳐졌다.
같이 있던 연결자가 깜짝 놀랐다.
성윤의 젬 발동 스피드에 놀란 것 같았다. 그러더니 부랴부랴 자신도 젬에 마력을 불어넣기 시작했다.
“내리겠습니다.”
“잠깐만 기다려주십시오. 고도를 좀 더 내리겠습니다.”
헬기가 있는 고도는 척 봐도 무척이나 높았다.
성윤은 같이 있던 연결자를 쳐다봤다. 갑옷을 갖춰 입은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습니다.”
성윤이 망설임 없이 발을 허공에 내딛으려 할 때였다.
콰아아앙!
전투지점에서 커다란 굉음이 들렸다.
뛰어내리려던 성윤의 고개가 돌아갔다.
화산이라도 폭발하듯 악마형 몬스터의 손에서 맹렬하게 휘둘러지는 불길.
하지만 목표는 성윤이 합류하려던 연결자 집단이 아니었다.
일단의 무리가 악마형 몬스터에게 접근하고 있었다.
총 여섯 명. 불꽃의 채찍은 그들을 향해 휘둘러진 것이었다.
그 집단을 확인한 성윤의 눈이 크게 치떠졌다.
맨 앞에서 달리고 있는 검은 인영이 무척이나 낯익었다.
‘검은 갑옷?’
달에서 자신들을 습격하고 미궁으로 숨어들었다가 결국엔 행방이 묘연해진 그들이 틀림없었다.
검은 갑옷의 뒤에는 활을 든 궁수도 보였다.
슬쩍!
궁수가 뒤를 돌아봤다. 성윤과 그의 눈이 마주쳤다.
거리가 무척 멀었지만 성윤은 분명 느꼈다. 연결자의 시력에 이 정도 거리는 장애가 아니었다.
궁수가 달리는 그대로 허리를 틀어 활을 들었다. 누가 봐도 성윤이 탄 헬기를 노리는 모양새였다.
“더 뒤로 빠져요!”
성윤은 조종사에게 급히 외치고는 몸을 튕기듯 뛰었다.
뒤에서 같이 온 연결자가 뛰어 내리는 소리와 급히 헬기가 방향을 바꾸는 소리가 들렸다.
스으윽.
마치 신기루가 제 모습을 드러내듯 당겨진 활시위에 화살이 생기는 것이 보인다.
화살은 정확히 성윤을 노리고 있었다.
퉁!
가벼운 진동음. 활시위가 빠르게 제자리를 찾으며 화살을 밀어낸다.
얌전히 있던 화살이 입을 쩍 벌려 순식간에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냈다.
후웅!
무서운 파공음을 질러대며 화살이 날아왔다. 성윤이 방패를 들었다.
콰앙!
“크으으으윽!”
이건 화살이 아니라 미사일이 날아와 터지는 느낌이다.
달에서 막은 화살보다 훨씬 더 위력이 강했다. 방패가 부서지지 않았을까 걱정될 정도였다.
다행히 화살이 방패를 뚫지는 못 했지만 충격 때문에 성윤의 몸이 뒤로 날아갔다. 허공에 있어서 속도를 죽이지도 못했다.
쿠웅!
성윤이 떨어진 곳은 착지하려는 곳과 상당히 떨어져 있는 논이었다.
저 멀리로 타오르는 불길이 보인다. 성윤은 발에 힘을 줬다.
투확!
발을 디딘 논의 흙이 뒤로 팍 튀며 성윤의 몸이 쏜살같이 앞으로 달려 나갔다.
넓은 보폭으로 성큼성큼 뛴다. 논두렁을 뛰어넘고 잘려진 벼 밑둥을 짓밟으며 불꽃이 이는 곳까지 무조건 일직선으로 달렸다.
콰앙!
공중에 맴돌던 헬기 한 대가 폭발했다. 악마형 몬스터의 불꽃 때문은 아니었다.
작은 선 하나가 하늘을 갈라 헬기에 꽂히는 걸 똑똑히 목격했다.
그 궁수가 쏜 화살이 분명했다.
성윤의 얼굴이 귀신처럼 일그러졌다.
헬기가 일제히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사이에도 화살은 날아왔다.
콰앙! 콰앙!
헬기 두 대가 더 터졌다. 날개가 날아가고 동체가 불꽃에 싸여 논바닥에 처박힌다.
성윤은 논 사이에 불뚝 솟아 있는 좁은 길에 올라갔다.
저 멀리 활을 겨누고 있는 놈이 보인다. 성윤은 할버드를 소환해 역수로 잡았다.
콰앙!
무겁게 한 걸음을 내딛는다. 발에서 올라오는 반탄력을 온 몸의 탄력을 이용해 할버드까지 보냈다.
슈우욱!
할버드가 직선으로 날아갔다. 또 한 차례 사격을 가하려던 궁수가 흠칫했다.
쿠웅!
그가 방패를 들어 할버드를 막았다.
날아간 기세가 무색하게도 할버드가 힘없이 튕겨져 나왔다.
별 것 아니라는 것을 과시하든 방패를 툭툭 턴 궁수가 다시 성윤을 향해 활을 겨눴다.
그때였다.
퍼어어엉!
궁수의 뒤쪽에서 거대한 불길이 일었다.
그가 뒤를 돌아본다. 아쉬운 듯 고개를 몇 번 흔든 궁수가 성윤에게서 등을 돌렸다. 그리고 불꽃이 일어난 곳으로 달려갔다.
성윤은 할버드를 역소환하고 뛰어가는 궁수의 등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곧 그도 불꽃이 보이는 곳으로 뛰기 시작했다.
***
열기가 훅 하고 올라온다. 검은 연기가 하늘을 뒤덮어 기분마저 우중충하게 만들고 있었다.
전력으로 달린 성윤이 연결자들이 모여 있는 곳에 도착했다.
하지만 그들에게 인사를 할 짬이 없었다.
“저건 뭐야.”
무의식적으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멀리서부터 보긴 했지만, 가까이서 보니 더 당황스러웠다.
눈앞에서는 한창 전투가 진행 중이었다.
하지만 그가 예상한, 파견된 연결자들과 악마형 몬스터의 격렬한 전투가 아니었다.
‘아니, 격렬하긴 하네.’
다만 그 주체가 파견된 연결자들이 아닐 뿐.
전투지점에서는 악마형 몬스터와 습격자들이 주변을 초토화시키며 싸우고 있었다.
대체 둘이 무슨 관계인 걸까?
습격자들도 지구에 나타난 몬스터는 쓰러뜨려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그것도 아니면 성윤 자신조차 모르는 이유가 있는 걸까?
‘게다가 그 힘.’
성윤은 방패를 쓸어내렸다.
아직까지 저릿한 감각이 잊히지 않는다.
저번에 달에서 싸웠을 때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던 걸로 기억한다. 분명히 힘이 강해져 있었다.
‘아니야. 이건 상대가 강해졌다기보다는 내가 약해진 거야.’
이유는 안다. 연결자의 힘은 아무래도 달에 있을 때보다 지구에 있을 때 약하다.
‘그럼 습격자들은 지구에서도 달에 있을 때의 힘을 고스란히 사용이 가능하다는 뜻인데.’
그 때문인지 습격자들은 고작 여섯 명의 인원으로도 악마형 몬스터와 대등하게 싸우고 있었다.
‘응?’
고민하던 성윤의 눈에 무언가가 눈에 띄었다.
악마형 몬스터의 뒤편에 사람 한 명이 쓰러져 있었다.
아마 저 사람이 습격당한 1세대 연결자일 것이다.
화살 한 대가 날아가는 게 보였다. 습격자 무리에 합류한 궁수가 쏘아댄 것.
하지만 화살은 몬스터를 향하지 않고 분명 쓰러진 1세대 연결자를 향하고 있었다.
우직!
악마형 몬스터의 주먹이 화살을 짓이긴다. 그리고 불꽃의 검이 다시 한 번 습격자 무리를 향했다.
‘습격자들은 1세대 연결자를 노리고 그걸 악마형 몬스터가 지켜?’
성윤의 생각이 미궁 속으로 빨려들듯 복잡하게 엉켰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