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달의 미궁-199화 (199/354)

제199화

성윤 일행은 거기서 더 내려가지 않았다. 이번 미궁 공략은 이걸로 만족이다.

애초에 2층인 고원에서 한동안 머무르려던 걸 예기치 않은 젬의 진화로 단숨에 여기까지 온 것이다.

드디어 미궁의 초입 부분을 전부 공략했다는 좋은 기분을 가지고 일행은 암스트롱으로 올라왔다.

미궁 밖으로 나오자 길을 왕래하는 여러 사람들이 보였다.

맛있는 냄새가 위장을 자극하고 화려한 간판이 눈을 어지럽히며 몸을 파는 사람들이 색정적인 몸짓으로 유혹한다.

저 멀리 내려온 격벽 너머에는 부서진 외장벽 공사가 한창일 것이다.

경쟁도시가 생겨 완전히 복구된 건 아니지만, 분명 암스트롱은 예전 모습을 상당 부분 되찾고 있었다.

“가는 김에 맥주나 사 가죠.”

팀이 말했다. 언제나 일을 마친 후의 술은 각별하다. 그들은 근처 마트에 들어섰다.

물론 지구의 대형 마트처럼 할인 같은 것은 일절 없었다.

역시나 여기서도 붙어 있는 물건 가격은 천문학적이다. 하지만 일행은 가격표를 보지도 않고 그들이 좋아하는 물건들을 쓸어 담았다.

지민이 필요한 물건들을 사라고 회사 경비를 지원해주지만 이미 그 한도는 옛적에 넘었다. 하지만 그들 중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다.

애초에 대미궁을 출입할 정도의 고위 연결자는 그런 법이다. 얼마 되지도 않는 회사의 경비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크하!”

집까지 기다릴 수 없는지 팀이 거리에서 바로 맥주 한 캔을 따 입 안으로 넘겼다.

매너 없다고 따졌을 에밀리도, 이번에는 조용히 넘어 갔다.

팀은 순식간에 한 캔을 비워버리고는 다시 다른 맥주 캔을 집어 들었다.

“왜 그래?”

팀이 맥주를 마시지 않고 들고만 있자 에밀리가 물었다.

“아니. 우리도 많이 올라왔구나 싶어서. 달에서 먹는 맥주 한 캔에 부들부들 떨던 게 얼마 전인 것 같은데 말이야.”

“같은 게 아니라 정말 얼마 전이지.”

그 정도로 그들은 빠른 속도로 공략을 해왔다.

성윤도 기억을 떠올렸다.

로스 남매를 만나고 그들과 시작의 미궁의 공략을 한 후 마셨던, 종업원도 없는 달에서 가장 저렴한 술집에서의 맥주가 생각났다.

‘그게 고작 2년도 안 된 일인가.’

감회가 새로웠다.

일행이 향한 곳은 정범이 빌린 회사 건물이 아니었다. 바로 암스트롱에서 성윤에게 전해 준 대저택이었다.

“언제 봐도 여기는 호화롭군요.”

“너는 여기 올 때마다 그 소리야?”

에밀리가 팀을 타박 줬지만, 그녀도 언제나 이 저택의 규모에는 감탄했다.

캐나다에 있는 남매의 저택도 이곳과 절대 꿇리지 않는 아니, 오히려 더 규모 있는 곳이었지만 달에 있는 저택과 비교할 수는 없다.

성윤은 저택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일행도 따라 들어갔다.

성윤은 자신의 것이 된 이 건물을 망설임 없이 파티원들에게 제공했다.

같은 회사인 로스 남매는 물론 회사가 달라 암스트롱에서는 기본적으로 다른 곳에서 사는 그레이스도 이 저택에 머물렀다.

일행은 먼저 사 온 술과 음식을 정리했다.

“자, 그럼 씻고 두 시간 뒤에 식당에서 만납시다.”

성윤이 말했다. 여유가 있는 것을 넘어 늦어지기까지 한 시간이었지만 에밀리, 그레이스의 샤워시간을 아는 성윤으로서는 줄 수밖에 없는 여유 시간이었다.

역시나 에밀리와 그레이스는 극히 만족하는 표정을 지었지만 팀은 전혀 이해할 수 없다는, 남성과 여성의 극명한 차이를 보여줬다.

성윤은 자신의 방에 들어왔다. 집의 주인인 만큼 그의 방은 가장 컸다.

전 주인의 취향인지 화려하게 장식된 방에서 성윤은 대충 침대 위에 옷을 집어 던졌다. 곧 잘 발달된 그의 근육질 몸이 드러났다.

샤워를 하려 속옷을 챙긴 성윤의 눈에 통신 단말이 눈에 들어왔다.

누군가 메세지를 남겨 놓았다.

‘첼시 씨로군.’

붉은 빛깔이 섞인 금발의 연구원의 모습을 떠올리고 성윤은 통신기의 버튼 하나를 눌렀다.

[알려드릴 게 있으니 이 메시지를 들으신다면 바로 연락주세요.]

그런 짧은 문장 하나가 메시지에 녹음되어 있었다. 기다릴 것도 없다. 어차피 시간도 널널하다.

성윤은 바로 수화기를 들었다.

***

“푸핫!”

첼시가 한 번에 반 정도를 비워버린 맥주 캔을 입에서 떼며 소리를 냈다.

온갖 피로와 짜증을 한 번에 날려버리는 것 같은, 훌륭한 소리였다.

“이야, 성윤 씨 정말 성공하셨네요. 달에서 이런 집까지 갖게 되다니. 직접 보니 정말 눈 돌아가겠어요.”

“그렇죠?”

성윤보다는 에밀리가 먼저 반응했다.

그녀는 마치 자기 일이라는 듯 조금 어깨를 으쓱였다. 팀이 어처구니없다는 시선을 보냈다.

그나마 에밀리의 반응은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이 칭찬을 받을 때 기분이 좋아서 하는 귀여운 행동 정도에 불과했기에 그 정도로 끝날 수 있었다.

“원하신다면 들어와서 사셔도 됩니다. 보시다시피 덩치만 큰 건물이니까요.”

“정말요?”

그녀가 눈을 반짝인다. 하지만 곧 심각한 표정으로 고민에 들어갔다.

“음, 끌리긴 한데. 그러면 자고 일어나서 바로 연구하러 못 가는데…. 하지만 이 좋은 시설을 포기할 수도….”

“예비용 방으로 쓰셔도 됩니다.”

어차피 방은 많다. 대청소를 하면 하루로는 끝나지 않고 근육 이곳저곳이 비명을 내지를 정도로.

이것저것 신세를 진 첼시에게 넘길 방 하나 정도는 있었다.

“아, 그러면 부탁드릴게요.”

첼시는 냉큼 그 조건을 받아 들였다.

“그래도 연구 때문에 오래 사용하진 못할 거예요. 연구에 가속이 붙으면 무조건 연구소에서 자야 하거든요.”

‘그래도 무슨 부부 같네.’

연구원 중 연구소 바깥에 사는 사람이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연구원의 박봉으로 달에 개인 집을 가지고 있을 리 없다.

대부분은 연결자와 부부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첼시 씨?”

“네, 넷?”

괜히 성윤과 부부관계 비슷한 상황에 빠진 것에 혼자 부끄러워하다가 발음이 새어버렸다.

그녀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하지만 성윤은 개의치 않고 계속 질문을 이어 나갔다.

“알려주실 게 있다고 들었는데 말이죠.”

“아, 그거 말이죠! 있죠! 있고말고요!”

첼시는 숨을 한 번 들이키고 말을 이었다.

“성윤 씨가 이번에 시작의 미궁에서 발견된 광석의 채굴권을 받으셨다고 하셨죠?”

“네.”

“혹시 계약 조건이 어떻게 되는지 여쭤 봐도 될까요?”

“별 것 아닙니다. 일단 시작의 미궁의 시스템을 계속 유지시켜준다는 조건 아래 시작의 미궁의 소유권을 받았습니다. 채굴권은 오롯이 저에게 있고 채굴한 광석 중 절반만 암스트롱에 넘겨주면 됩니다. 물론 채굴에 대한 비용은 전부 제가 대야겠지만 말이죠.”

“…전혀 별거 아닌 게 아니잖아요.”

예상보다 훨씬 더 좋은 조건이었다.

‘시장이 암스트롱 부동산의 가치를 훨씬 높게 봤거나, 아니면 광석의 가능성을 낮게 봤거나 인데….’

지금의 시장이 보수적인 건 익히 알려져 있으니 아마 전자이리라.

하지만 아마, 그 보수성 때문에 지금 시장은 땅을 치고 후회하고 있을 것이다.

“왜 그걸 묻습니까?”

성윤은 물론이고 같이 술을 들이키던 파티원들까지 첼시의 말에 주목했다.

“요새 TV 같은 것 안 보셨나요?”

“이번엔 아예 대미궁 초입부를 전부 공략하려 작정하고 들어간 터라 거의 몇 달 정도는 대미궁 안에 있었습니다. 오늘은 오자마자 침대에서 한숨 잤고요.”

다른 파티원들도 사정은 별반 다를 게 없었다.

“시작의 미궁에 있는 광석 말이죠. 캘 방법을 찾았어요.”

“그걸요? 상당히 단단했을 텐데요?”

성윤은 제법 놀랐다. 암스트롱에서 일어난 골렘퇴치에는 거의 모두 연관되어 있던 그인 만큼 미궁 벽을 파내는 게 얼마나 힘든 줄 잘 알고 있는 것이다.

“네. 이건 저희 연구소에서 밝혀낸 건데요.”

첼시의 콧대가 아주 살짝 올라간 것 같은 건 착각이 아닐 것이다.

“아무래도 그 광석들, 예상대로 쥬얼 랭크의 무구들에 쓰인 것과 같은 성분의 금속이었어요. 골렘을 이루고 있던 물질도 그 광석과 비슷하고요. 특히 슈퍼 골렘을 이루고 있는 물질은 명백하게 광석보다 더 상위의 물질이었어요.”

슈퍼 골렘의 단단함이 이해가 가는 순간이었다.

“슈퍼 골렘들의 몸체를 이루고 있는 물질과 채취된 광석들을 이용해 몇 개의 채취기를 만들어 봤는데, 샘플로 갖고 있던 광석을 분쇄할 수 있었어요. 이제 미궁 안에서 시험해보기만 하면 되는데, 암스트롱 상층부에서 그건 성윤 씨의 허가가 있어야 한다고 하더군요.”

시작의 미궁의 골렘을 싹 쓸어버린 후, 청소를 하며 겸사겸사 성윤의 허락을 받고 캐온 광석으로는 더 이상의 실험은 무리였다.

“알겠습니다. 허락을 내드리죠. 뭔가 필요한 게 있습니까?”

“여기에다가 싸인 좀 부탁드려요.”

첼시가 부스럭거리며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허가서였다.

성윤은 마시던 맥주까지 내려놓고 꼼꼼히 읽어 갔다.

계약서 때문에 크게 데인 적이 있는 성윤으로서는 자그마한 글자까지 절대로 놓칠 수 없었다.

별 대단한 건 없었다. 성윤은 익숙하게 싸인을 해 넘겼다.

“그런데 그 광석이 뭔가 쓸모가 있나요?”

맥주를 홀짝이며 조용히 둘의 대화를 듣고 있던 그레이스가 물었다.

“일단 웬만한 대미궁에서 나오는 월석보다 마력 함량 비율이 높아요.”

첼시가 허가서를 가방에 넣으며 말했다.

“어라? 그러면 그거 대단한 거 아닌가요?”

“엄청 대단하죠. 말 그대로 월석과 동등하거나 어쩌면 능가할 수도 있는 신에너지원의 등장이니까요. 그것도 적절한 조치를 하면 연결자가 아닌 평범한 사람이 캘 수도 있는 물건이기까지 해요. 여러분은 대미궁에 들어가 있어 소식을 듣지 못하셨겠지만, 순간 월석 가공 회사의 주가가 폭락할 정도로 엄청난 반향이 일었어요.”

일행의 눈이 일제히 성윤에게 쏠렸다. 어찌 보면 현재, 그 대단한 광석을 채굴할 수 있는 존재는 성윤뿐인 것이다.

“아직 실용화는 되지 않았고 이제 막 채굴 방법을 알았을 뿐이니 주가 폭락은 곧 회복됐지만 아마 본격적으로 실용화가 되면 월석의 가치는 지금보다 분명 떨어지겠죠. 물론 조금 떨어질 뿐, 여전히 높은 가치를 가지고 있을 테지만요.”

첼시는 성윤을 보고 웃었다.

“축하해요. 성윤 씨의 로또가 성공적으로 당첨된 것 같아요.”

“하지만 그렇다면 암스트롱에서 뭔가 연락이 와야 하는 것 아닙니까?”

실제로 성윤은 암스트롱에서 별다른 연락을 받은 적이 없다.

“암스트롱은 지금 암스트롱 주변 미궁의 조사를 하고 있어요. 아무래도 채굴권을 넘긴 시작의 미궁보다 다른 미궁을 조사하는 쪽이 더 유리하다고 판단하고 있는 모양이에요.”

그 말은 곧 암스트롱은 시작의 미궁 광석 채취에는 손을 쓰지 않겠다는 뜻.

‘어쩐다.’

받긴 했지만 정작 그 광석들을 채취한다고 생각하니 조금 머리가 아팠다.

예전이라면 의욕에 차 사업을 추진했겠지만 완전히 연결자로서 정착한 지금은 굳이 자신이 전면에 나서 사업을 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사장님과 상의를 해 봐야겠어.’

역시 만만한 게 지민이었다.

“그나저나 이제 지구로 내려가실 생각인가요?”

“네. 조금 이르긴 하지만, 이번에 다 같이 휴가나 보낼까 해서 말이죠.”

“어디서요?”

“아직 정하진 않았습니다만, 사장님까지 포함해서 바다나 갈까 생각중입니다.”

“부럽네요.”

파란 바다와 하얀 파도. 따뜻한 남국의 이미지가 첼시의 머리를 휘감겨 지나간다.

매일 우울한 우주 공간의 회색 도시 안에서만 살고 있으니 눈앞의 넷이 정말로 부러웠다.

“시간만 되시면 같이 가실래요?”

“네? 그래도 되나요?”

에밀리의 제안에 첼시가 반색했다. 다른 파티원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하자 첼시가 마지막으로 성윤을 바라봤다.

마치 먹이 앞에서 끙끙대고 있는 강아지를 보는 것 같았다.

“…시간만 되신다면 첼시 씨도 같이 가시죠.”

“감사해요! 안 그래도 요새 한 연구 성과 덕에 휴가가 나와서 어디 쓸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그걸로 첼시의 휴양지도 결정되는 순간이었다.

***

새파란 바다와 저 멀리 펼쳐진 수평선이 아름다운 곳.

태양이 떨어져 더 이상 전체적인 모습은 보지 못하지만, 선명한 하늘에 떠 있는 달과 무수히 많은 별들의 빛이 대신 수면 위를 은은하고 아름답게 비추고 있었다.

그 환상적인 풍경의 바다 옆으로 우뚝 솟은 산이 하나 보였다. 곤충들이 훌륭한 합주를 연주하며 각자의 매력을 뽐낸다.

하지만 어느 순간, 곤충들의 울음이 일제히 뚝 멎었다.

쿵!

무언가 허공에서 떨어졌다. 지금까지 평화로운 분위기가 가득하던 곳에 팽팽한 긴장감이 어렸다.

허공에서 떨어진 무언가는 서서히 몸을 일으켰다.

피막 달린 박쥐 같은 날개와 검은 비늘이 달린 몸. 그리고 가장 인상적인 커다란 뿔.

과거 미궁의 중심부에서 케이빌이라 불린 몬스터였다.

섬뜩한 눈을 굴리며 주변을 둘러보던 그것은 씨익 웃었다.

느껴진다. 아주 익숙하고 향기로운 기운이.

오염되지 않은, 친숙하고 친근한 기운.

[찾았다.]

붉은 눈이 번뜩인다. 그것은 천천히 이동하기 시작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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